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가브릴로 프린치프
"가브릴로 프린치프" 내용보기
가브릴로 프린치프, 라고 말하면 대부분 누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누군지 몰랐고, 단지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는 사라예보 사건, 오스트리아 황제의 암살 사건은 세계사를 공부하며 언급이 되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사실 보스니아, 세르비아 같은 이름이 그나마 낯설지 않은 것도 90년대의 민족전쟁, 인종청소 등의 끔찍한 전쟁으로 인해 알고 있는 것으
"가브릴로 프린치프" 내용보기

가브릴로 프린치프, 라고 말하면 대부분 누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누군지 몰랐고, 단지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는 사라예보 사건, 오스트리아 황제의 암살 사건은 세계사를 공부하며 언급이 되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사실 보스니아, 세르비아 같은 이름이 그나마 낯설지 않은 것도 90년대의 민족전쟁, 인종청소 등의 끔찍한 전쟁으로 인해 알고 있는 것으로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그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역시 그것때문이다. 사실 한 청년이 황태자부부를 암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계대전이 일어났을리는 없고,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라고 해도 황태자를 암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나는 기본적으로 살인과 폭력으로 민족의 해방과 세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백년 전 사라예보에서 황태자를 암살하고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한 청년을 단지 살인법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비참하게 살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학교도, 문화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합스부르크 왕조를 미워한 게 아닙니다. 네, 저는 무정부주의 사상을 키웠고 모든 걸 미워했지만 그래도 프란츠 요제프 폐하께 악감정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우리는 악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들이며 명예로운 이상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고자 했고, 우리 민족을 사랑했으며, 우리의 이상을 위해 기꺼이 죽을 것입니다" (1914년 10월 23일. 사라예보 네델코 차브리노비치의 법정 최후진술)

 

"진실은 문에 쓴 글과 같다. 이것은 실화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이야기는 당시 발칸반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프린치프가 무정부주의자로서 이상향을 실천하고 싶어한 고민과 갈등,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감성을 지니기도 한 평범한 인물이었음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수많은 애국열사, 의사들의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지도 생각이 났고, 왜 9.11 테러가 일어났는지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행해지고 있는 잔인한 폭력들,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자지구에서는 평소에도 그렇게 이스라엘의 잔인한 보복이 벌어지고 있었고 단지 하나의 사건만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도화선,이라는 면에서 그 모든 일들은 닮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전쟁, 그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보고 억압의 상황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며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헨리크 레르의 그래픽 노블은 줄거리만 따라 가며 보는 것에 더해 그림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글 자체에도 문학으로서 손색이 없지만 그림으로 표현되는 인물들의 생각과 이야기의 흐름이 간결하고 명확할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와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백년 전, 사라예보에 울린 총성이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라는 말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역사와 민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남슬라브 민족주의자이며,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해방된 범남슬라브족의 통일을 믿습니다. 나는 테러로써 그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사악한 것을 파괴했으니 나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선한 일을 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생각이 자라났고, 그래서 우리는 암살을 결행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변론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1914년 10월 23일. 사라예보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법정 최후진술)

 

 

 

 

 

 

r***2 2014.08.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브릴로 프린치프 - 헨리크 레르
"가브릴로 프린치프 - 헨리크 레르" 내용보기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으로 인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이루어지고, 이것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가 된다. 세르비아인에 의하여 벌어진 이 암살사건이 직접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알고 있지만, 역사에서는 한 개인의 행위가 거대한 전쟁을 불러
"가브릴로 프린치프 - 헨리크 레르" 내용보기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으로 인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이루어지고, 이것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가 된다. 세르비아인에 의하여 벌어진 이 암살사건이 직접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알고 있지만, 역사에서는 한 개인의 행위가 거대한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였는지 다양한 원인을 제시해왔다.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극한 대립, 제국주의 경쟁에 뒤늦게 참여한 독일을 비롯한 3국동맹의 불만 팽배와 같이 좀더 넓은 시각으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이야기하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 암살을 자행한 인물들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실제 이 책의 제목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보고서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쉽사리 짐작을 하지 못하였던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바로 사라예보 사건에서 황태자 부부를 권총으로 저격한 인물이다.

 

 사라예보 사건에 이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급속하게 전개가 되는 과정을 보면 마치 이러한 전쟁을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전쟁은 미리 정해진 수순이었고, 다만 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수긍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예보 사건을 일으킨 인물에 대하여 관심을 덜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실제 그 사건을 자세히 다룬 책도 쉽사리 접할 수가 없었다. 헨리크 레르의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읽기 전까지 말이다. 흑백의 만화의 형식으로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과 그가 일으킨 사건이 거대한 역사의 참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만화의 가벼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흑백의 그림으로 묘사되고 있는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생애는 당시 복잡하고 암울한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도 가지 못한 이 젊은이는 도대체 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골수 민족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세르비아인이었던 프린치프는 비록 자신의 조국이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지만, 그들의 민족이 살고 있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지역이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분개해했다.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던 세르비아는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상황이었고, 프린치프는 이러한 정부의 소극적인 행태에 불만을 갖게 되면서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또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도 역시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대학생이었던 그는 학업보다는 이러한 정치적인 사상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게 되고, 세르비아인으로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형성을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에 대한 저격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성공을 거두게 된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더불어 프린치프의 사상관을 떠올린다면 이 사건을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오스트리아 내부에서도 이러한 암살의 위험을 감지하였으며, 세르비아 정부도 뒤늦게 프린치프의 암살 계획을 알아차리고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스트리아에 은밀히 정보를 넘겨주지만, 여러 우연의 결과로 인하여 결국 이들의 저격 사건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러한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비록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인 비극을 촉발시킨 인물이긴 하였지만, 세르비아에서는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다. 안중근 의사 역시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하고 우리의 역사에서는 독립 투사로서 우리의 역사에 전해지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거의 비슷한(안중근의 하얼빈의 거사는 1904년) 이 둘의 거사는 어쩌면 당시 시대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비록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행동이 세르비아의 입장에서는 영웅적인 것으로 묘사가 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의 행동과 사상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동의를 표하지는 않고 있다. 프린치프는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대안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하여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하여 자신의 모든 행위는 오로지 세르비아를 위한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정당화를 하는 장면과 거사 이후의 대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대목을 본다면 그의 방법은 과격하고 극단적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의 프린치프의 법정 최후 진술을 보명 그의 생각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는 남슬라브 민족주의자이며,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해방된 범남슬라브족의 통일을 믿습니다. 나는 테러로써 그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사악한 것을 파괴했으니, 나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선한 일을 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생각이 자라났고, 그래서 우리는 암살을 결행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변론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법정 최후 진술 -

 

 그의 암살 사건 이후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세르비아 전체 인구의 28%인 120만명이 사망한 사실과 그의 바램대로 2차 세계대전이후 유고슬라비아가 건국되었지만,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 대청소와 같은 내전이 최근까지 벌어졌던 사실을 땅속에서 프린치프가 알았더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좀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대참사를 촉발시킨 장본인인 프린치프는 오히려 사건을 벌였을 때, 20세 미만인 19세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법으로 인하여 사형 선고를 받지 않고, 20년 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그는 감옥에서 폐결핵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결국 병사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옳다고 생각한 그는 정말 워하는 것을 이룬 것일까?

 

 정말 한 개인에 의하여 1차 세계대전이라는 커다란 비극이 일어난 것일까? 프린치프는 간수에게 자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앞당겼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떠올린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역사가들의 주장대로 분명 1차 세계대전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정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지 않았더라도 정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나 거대한 역사적인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순식간에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버린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생애는 인상깊게 느껴진다. 19세의 나이에 거대한 사건을 저질렀지만, 이 책을 통하여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그렇게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에 압박을 받아온 세르비아인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역사가 한 개인에 의하여 휘둘러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서 조용히 사람들의 관심 저편에 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삶을 통하여 당시의 역사적인 흐름과 배경을 느낄 수 있었기에 흥미로웠던 것 같다.

g*******7 2014.1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