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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소감은 영화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가 자신의 삶이 한 편의 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슷했다.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를 떠나서 비슷한 종류의 충격이었다. 바로 자기 삶이 부정당했을 때의 기분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는 덜 자란, 미성숙한이라는 뜻으로 대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현대의 젊은이들 그러니까 2030세대가 지난 세기와 다르게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조금 다른 종류의 어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우리의 부모 세대에게는 어른의 표지가 있었다. 인생을 바쳐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차리는 것이 바로 어른의 증거였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결혼을 해야 어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현대의 2030세대는 이런 누구나 알 수 있는 외적 표지 대신 오직 자기만이 알아볼 수 있는 내적 표지로 어른이 된다. 그건 바로 자아의 성숙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낯선 환경은 우리를 상처입히고 그런 상처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낭떠러지를 피하고 지뢰가 있는 곳을 돌아가듯이 기존에 받았던 상처의 경험을 통해 다치지 않는 경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너무 많은 상처 혹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아서 더 이상 경로를 그릴 용기를 상실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현재의 2030세대는 바로 이러한 상처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를 근거로 스스로의 성장을 판단한다. 요컨대 현재의 자신을 과거에 받았던 상처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모험담의 주인공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상처를 받고 어쩔 줄 몰라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상처를 잊으려고 했던 과거의 자신이 미성숙하고 어린 자신이라면 지금의 자신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고 올바른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말하자면 외부의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해서 내부의 자아가 다치지 않게 하느냐가 바로 어른의 기준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사실 같은 상황에서 옛날과 똑같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엄연히 성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만약 약간의 여유까지 가질 수 있다면 꽤나 그럴 듯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성장 소설 <데미안>에서 데미안의 어머니는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만약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당하게 원하거나 깨끗하게 포기해야 하는 거라고. 여기서 말하는 정당함과 깨끗함이란 결국 어쩔 줄 몰라하는 정신의 혼탁함과 반대되는 말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욕망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것을 어떻게 대할 지 결정한 후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삶을 결정할 권리가 욕망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어른이란 유약한 자아를 통제할 수 있는 정신이다. 그런데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이것이 유일한 성장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2030세대가 자아의 성장을 통해 어른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어른이 되는 진정한 길이라서가 아니라 평생 직장과 결혼이라는 전 세대의 표지가 더 이상 얻기 불가능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2030은 자신의 부모와 같이 평생 일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음으로써 어른이 되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다는 표지를 외부에서 내부로 돌린 것이다. 즉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고 자아의 성숙을 이룸으로써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차선책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표지(직장, 결혼)를 얻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외부의 공인 대신 자기 자신의 승인을 얻어 어른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기존의 어른은 직장이나 결혼 같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인된 지표를 통해 만들어지는 반면 현재의 어른은 자아의 성숙이라는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지표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마약을 끊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는 방식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 중 한 가지 특징은 바로 그러한 단절을 거치지 않는 이들을 경계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술을 마시고 세월을 흥청망청 보내던 사람이 어느 날 술을 끊고 매일 운동과 공부를 하게 되자 여전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경멸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에 꾸준한 운동과 공부가 직장과 결혼으로 연결되는 확실한 길이라면 이 경멸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혹은 그밖에 무엇을 하든 아무리 그걸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직장과 결혼이라는 성장의 표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의 자기 계발 열풍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아의 성숙을 이룬다는 성장 서사에 편승한 마케팅일 뿐 자기 계발이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사람을 점차 개인주의에 빠져들게 만들고 실패와 성공 모두 자신의 탓이라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빠져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트루먼 쇼>의 짐 캐리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자기 계발에 애쓰면 언젠가 이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 성장 서사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술과 담배를 끊었고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이게 벌써 5년째인데 과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건강해졌고 좋은 습관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안 좋은 변화다. 나는 시간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5년 되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어쩌면 조금 먼 미래에 어떤 종류든 보상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보상은 없고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 믿는 인생 모델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 현 세대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심지어 그것은 윤리적으로 꼭 옳은 변화도 아니며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모든 보상을 독차지하고 싶어하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편향된 개인주의일 뿐이라고 말이다. 넋이 나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말을 들으니 왜 5년 동안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뒤 생각했다. 그만둘까.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담배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았던 적도 없다. 오히려 매일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리하게 운동하다 부상을 입은 적은 몇 번 있다. 책을 계속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시간에 좀 더 구체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내가 생각했던 보상에 좀 더 가까워지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금세 이런 생각들을 털어버렸다. 제시카 M. 실바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소위 말해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는 방법이 아닐 수는 있다. 보상 같은 건 영원히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운동이라곤 하지 않던 과거와 술담배를 끊고 매일 운동하고 책을 읽는 현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가. 그러니까 무엇을 위해 좋은가가 아니라 어느 것이 기분을 더 좋게 하는가만 따져봤을 때도 지금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보상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를 중독시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내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통제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순수하게 즐겁다. 제시카 M. 교수는 자기 계발이 소위 성공이라는 요소를 통제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솔직히 나는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년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적어도 외적으로 봤을 때 나는 좋아지지 않았다. 평생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고 결혼을 하지도 못했으니까. 다만 술담배를 끊고 매일 운동하고 책을 읽는 일이 꼭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뭔가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즐겁다. 필연적인 것보다 우연적인 것이 많은 이세상에서 몇 안 되지만 확실한 필연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것은 마치 인생이라는 미지의 세계 속에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신념은 가능하지도 않고 괜히 스스로를 해칠 뿐이지만 적당한 영토를 다스리고 이웃 나라들과 잘 타협하면서 때로는 내부의 봉기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명문화된 정치적 권리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주권을 생생히 실감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나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높이겠다는 다짐은 몇몇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두가 가능하지는 않다. 그건 앞에 말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세계를 모두 정복하겠다는 제국주의적 태도와 비슷한데 인생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과 섞여 있는 것이므로 물리적으로 모두가 성공한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세계의 어느 곳에 깃발을 꽂고 성벽을 세우고 논과 밭은 개간하고 도로를 닦으며 마차와 자동차가 다니게 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 왕국이 부동산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땅일 수는 있다. 가령 내가 술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 책과 운동을 한다고 해서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별 가치가 없을 지라도 확실한 나만의 영토를 가지고 그곳에서 주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인생을 가치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제시카 M. 실바 교수는 이러한 태도를 개인주의라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 같지는 않다. 성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상상 속에서 짓는 것이니까. 게다가 내가 성벽을 열심히 쌓아올리고 있는데 건너편의 누군가는 나무로 대강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술에 취해 누워있다면 아마도 그를 멸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면서 한편으로는 그곳에 문을 만드는 것이다. 한양에 사대문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각자의 왕국에도 사대문을 만들어서 이곳이 자신의 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가는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이 나 혼자만이 지배하는 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었을 때 더욱 가치있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 커밍 업 쇼트들은 평생 직장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갈 지도 모르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한다. 2024년 12월 25일부터 2025년 1월 5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
| 미국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독립의 부재, 성장이 당연하지 않아진 시대,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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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데라곤 자기 자아-고난과 고통을 겪고 힘겹게 획득한-밖에 없는 세계에서 관계는 리스크 가득한 것이 된다." 커밍 업 쇼트는 특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리먼 위기 즈음의 노동계급 청년 100여명을 인터뷰하여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능력주의가 도래하면서 전통적인 '어른'의 상이 되지 못한/될 수 없었던 청년들은 어떻게 내면을 형성하고 있는가에 관해 논한다. 시기적으로는 꽤 이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 자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