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로마에는 파우스 9세가 교황의 성좌에 있었다. '시뇨르 모몰로 모르타라'의 여섯 살 아들 '에드가르도'가 가톨릭교도인 하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종교재판관으로 연행해간다. 유대인 아이가 세례를 받으면 가톨릭교회는 그 아이가 더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보았고, 아이를 부모 품에서 떼어놨다. 부모의 품에서 빼앗은 아이는 '교리문답의 집'으로 보내지고,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부모와의 접촉을 금하는 교회법이 강행됐다. 당시 열네 살이던 하녀 '안나 모리시'가 한 살된 에드가르도에게 한 행동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유대인 부모에게는 사악한 외부인이 한밤중에 중무장하고 들어와 아이를 납치해간 끔찍한 사건인데 반해, 기독교인에게는 타락한 삶과 영원한 지옥이 예정된 소년을 하느님이 구원하셨다는 감동의 일화로 대치한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탈리아에서 살아왔었다. 그들은 가톨릭 신학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살해한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교황들은 16세기 이래 유대인을 게토에 가두고 기독교인이 유대인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회가 교황령에서 세례받은 아이를 붙잡아갈 권리를 주장한다면, 다른 종교가 지배적인 국가의 가톨릭교 시민을 강압적으로 개종해도 된다고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에드가르도가 잡혀가고 며칠 사이 볼로냐의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인맥을 통해 사건 소식이 이탈리아 전역의 동포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수세기 동안 있어 왔던 유아납치사건이 모르타라 사건을 분수령 삼아 국제적인 유명세을 타게 된 것은, 전에 없이 불만의 소리를 높이고 국경을 넘어 신속하게 소통하고 조직하는 능력을 얻은 덕분이다. 또한, 종교의 자유와 계몽주의 사상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와 함께 유대인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다. 과거와 달리 유럽 언론이 달려들어 교황지배의 야만성을 앞다퉈 폭로했다. 1858년 들어 극변한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아 교황이 세속지배를 계속할지 신권국가를 유지할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한 시기였던 것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다양한 세력이 교황권의 신뢰도를 허물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교황과 중계가 필요할 때,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은 '로스차일드가'에 도움을 청하는 관습이 있었다. 바티칸은 오래도록 재정난에 허덕였고 지난 세월 적자 없이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로스차일드가에게 융자를 받아왔다.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라는 자들이 자기 영토에서 유대인의 재산 소유와 전문직 종사를 금하면서 유대인 은행가에게 의존하는 형태라니 아이러니하다. 교황령 유대인들은 로스차일드가를 막강한 교황청 대변자로 보았고,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의 온갖 부당한 정책을 두고 불만을 제기했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영국계 유대인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은, 에드가르도를 보내달라는 청원을 위해 바티칸행도 감행한다. 독일의 명망 높은 랍비들이 모르타라 가족을 지지하는 항의서한을 모아 교황에게 보냈고, 대서양 양쪽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집회를 벌였으며, 로마의 넝마주이 유대인부터 국제금융업자까지, 영국의 개신교 목사부터 프랑스 황제까지, 모두가 한목소리로 에드가르도를 부모 품에 보내라고 외쳤다. 대서양 건너 미국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은 전에 없던 단결의식을 심어주었다. 이 사건은 유대인뿐 아니라 비유대인에게도 엄청난 수위에 이른 유명한 사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교황은 요지부동이었다. 국제적 규모의 저항운동을 촉발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다. 피에몬테의 도시 알레산드리아에서 사르데냐 왕국에 산재한 모든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가 집결한 긴급회의에서 대표단은 전 세계 유대인에 대한 모욕과 수모에 격분했고, 프랑스 유대인 공동체 연합은 나폴레옹 3세에게 탄원서를 낸다. 나폴레옹 3세는 바티칸의 시대착오적 태도에 염증을 느껴, 카보우르 백작과 비밀리에 회동한다.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는 동시에 볼로냐와 로마냐 마머지 지역을 포함해 교황령 4분의 3을 샤르데냐 왕국에 합병시킬 계획을 일 년도 되지 않아 실현시킨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교회는 국가 통일의, 근대국가와 입헌국가 건설의 큰 걸림돌이며, 국왕 노릇을 겸하는 교황은 중세의 잔재이자 수치였다. 교황지배 반대론자들에게 모르타라 납치 사건은 교황지배 옹호 세력을 허물고, 유럽 전역에 걸쳐 폭발 직전인 개신교의 반교황권 정서를 이용하기에 적합한 사건이었다. 프랑스 황제는 교회가 저지른 짓을 시민법과 자연법 모두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가톨릭교회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것은, 문맹인 하녀의 세례와 에드가르도의 납치사건이 아니다. 1859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통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촉진한 사르데냐 왕국과 연합해 오스트리아 주둔군을 이탈리아 북부에서 몰아내고 오스트리아 치하의 영토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주둔군의 보호를 받고 교황령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토들을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하기로 한 프랑스 정부, 나폴레옹 3세의 결정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이탈리아 통일의 열혈 지지자였고 카르보나리당이 주도한 이탈리아 봉기에 개입한 전력도 있다. 국내 가톨릭 세력을 건드리면 다친다는 생각에 군대를 로마에 그대로 주둔시켰지만, 교황이 교회법으로 다스리는 국가에 대한 반감으로 교황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소심한 지지 정도에 그쳤다. 즉, 모르타라 사건이 프랑스에 미친 영향이 아니라 이미 교황권에 크게 휘둘리지 않게 된 이탈리아의 자유주의파와 프리메이슨 세력에 미친 영향이 이탈리아 통일과 교황의 세속적 지배를 종식시킨 것이다. 1870년 9월 20일, 이탈리아는 로마의 교황지배를 종식시켰고 모르타라 가족은 아들이 돌아올 희망에 젖지만 에드가르도가 교황을 선택하면서 이내 절망한다. 그의 친부의 결말도 너무 비극적이다. 모르타라 사건은, 이탈리아 통일과도 일맥상통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납치한 직후, 교황은 갖은 외교적 압박에도 한사코 아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교황청의 세속지배권 집착 배경이 된 세계관과 19세기 유럽에 퍼진 자유주의와 세속적 이념이 충돌한 이탈리아의 중대한 전환점에 놓인 중심 세력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19세기 가톨릭교회 역사를 논하는 과정에서만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만 다뤄질 뿐이다. 모르타라 이야기는 주류인 이탈리아사에서 게토인 유대민족사로 분류되어 버렸다. 저자는 이탈리아 가톨릭교회와, 이탈리아 유대인 두 집단이 각기 다른 이유로, 고통이고 치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사건을 통해, 교회가 중세의 근본주의를 졸업하고 근대성을 받아들인 게 고작 20세기에 들어선 시점이란 점을 부각시킨다. 유대인에게 색깔 배지를 착용하게 한 관례는 가톨릭교회가 그 효시였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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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렌즈로 전혀 다른 세상을 보았기에 교회의 충실한 지지 세력과 유대인은 늘 위태로운 대치선상에 마주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가르침이 문제의 중심일 경우, 특히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 - 기독교의 우월함과 세례받은 자가 누리는 신의 가호 - 이 쟁점일 경우, 역사를 거슬러가면 매번 유대인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결의 장이 만들어지곤 했다. 모르타라 사건에서도 이렇듯 서로 다른 두 현실의 충돌은 서로 다른 두 서사,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p.104~105
1858년 6월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그들은 여섯 살 난 아들 에드가르도를 연행하기 위해 왔다. 아이는 가족이 모르는 사이 세례를 받아 기독교도가 되었고 교회법에 근거해 유대인 가정에서는 자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알아보니 에드가르도가 첫돌 무렵 집에서 일하던 가톨릭교도 하녀가 큰 병에 걸린 아이에게 남몰래 세례를 주었고, 그 소식이 종교재판관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아이를 되찾으려는 한 가족과 그를 조력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고군분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이는 결국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대서사시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가족이 보는 앞에서 납치된 유대인 아이, 대중의 뭇매와 점점 조여오는 외교적 압박에도 아이를 놓아주지 않는 교황의 이야기라는 서사는 마치 소설처럼 매우 흥미롭게 읽히지만,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교황이 장악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지점으로서 역사적 가치 또한 매우 중요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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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인 하녀와 상점 주인, 그리고 볼로냐의 한 유대인 꼬마에 얽힌 이야기가 이탈리아와 가톨릭교회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 황당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 이탈리아 마을 광장들을 장식한 조각상이 된 리소르지멘토 영웅들보다 안나 모리시 - 성적으로 문란하고, 찢어지게 가난하며,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 가 이탈리아 통일에 훨씬 많이 기여했다고. p.323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풍부한 사료를 완벽히 장악한 치밀함과 픽션에 비견되는 흥미진진한 전개로 놀라운 역사 논픽션을 그려 내고 있다. 논픽션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이야기에 빠져 들어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 유대인 소년의 납치사건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역사의 한 장면으로 확장되는 지를 보여주는 서사 자체도 놀랍고, 교황이 장악했던 시대가 저물고 혁명과 자유와 계몽의 신세계가 도래하던 그 시대적인 배경 또한 시선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과연 부모는 억울하게 빼앗긴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드라마와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유대인 공동체의 분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픽션을 능가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 준다.
그렇게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내세운 혁명가들이 입헌통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 질서를 추구하던 19세기 중반, 로마에 다음가는 구세계의 중심부 볼로냐에서 벌어진 유대인 소년 납치사건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교황권 종식과 근대국가 건설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하니 역사학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2002년에 연극으로 초연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친 영화계의 러브콜 끝에 마침내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중요했지만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에드가르도 모르타라의 이야기를 통해 치밀한 역사서인 동시에 오늘날에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을 던지는 논픽션의 걸작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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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이 아니면서도 소설과 유사한 측면이 많은 논픽션입니다. 먼저 재미난 소설처럼 스토리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어요. 그리고 나름 상당히 충격적인 반전이 말미에 도사리고 있어서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입니다. 아마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그리 놀랍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소설과는 또 차별화 됩니다. 먼저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고증하면서 스토리를 풀어갑니다. 이 책에서 제가 본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년도입니다. 1858년의 이탈리아 교황령 안의 볼로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이 책의 핵심적인 배경이자 주연 그 자체인 듯합니다.
1858년에 유럽에서는 두 건의 기적이 발생했다고 전합니다. 성모마리아가 루르드에서 어느 가톨릭 신자 앞에 발현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교황 측에 의해 납치된 지 며칠 안에 교황과 국무원장, 각국 대사, 한 국가의 수상, 심지어 잠깐에 불과하지만 한 나라의 황제마저 안녕을 걱정해줄 정도로 최고의 유명세를 누리게 될 이탈리아의 유대인 가정의 한 평범한 소년 앞에도 성모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1858년 반유대주의가 강한 가운데 교황령인 볼로냐 시에 살던 유대교 가문인 모르타라 가에서 일하던 가톨릭 신자 하녀가 모르타라 가의 아이인 에두가르도에게 몰래 세례성사를 주었다는 진술을 하면서 교황청 경찰이 아이를 가족에게서 떼어내어 교황에게 데려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그 당시 교황령의 법으로 비기독교 신자가 그리스도교 신자를 양육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는 했다고 하지만 애초에 이 세례가 아이의 부모 등 양육자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당시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납치가 불법이고 억지임은 분명합니다.
교황은 아이를 돌려달라는 가족 및 각국의 탄원을 외면한 채 세례를 받은 아이를 유대교도 가정에 맡길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텼고 결국 교황궁에서 사제로 키웠습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이후 주세페 코헨이라는 아이에게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자 더 많은 신망을 잃게 됩니다. 이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까지 반가톨릭 여론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납치된 소년, 에두가르도 모르타라 신부는 후일 가족들이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며 눈물로 호소하고 회유했으나 초자연적 은총의 힘을 목격하고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교황청 경찰력이 발동되었듯 교황은 당시까지 교황령에서 세속적 권한을 유지했으나 이 때까지가 교황의 힘이 마지막으로 발휘된 시기로 이탈리아에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통일 전쟁이 발발하여 교황령 자체가 상실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후 이탈리아 통일 운동은 지속되어 1861년에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었고 교황은 로마를 제외한 모든 교황령을 무력하게 잃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제2제국이 보불전쟁에서 패하자 로마를 보호할 마지막 수단은 사라졌고, 마침내 1870년 9월 2일에 로마는 점령당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로마를 점유하는 대신 교황청을 존속시키고 교황에게 매년 보상금을 주며, 이탈리아의 주교 서임권을 교황에게 양도합니다. 이 책은 1997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전미 유대인 도서상을 수상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그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논픽션입니다. 이러한 상들이 아깝지 않는 멋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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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도 크게 광고되어 있듯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손으로 영화화가 결정된 논픽션으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에요. 책을 펴면 26개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목차와 함께 1858년 이탈리아 지도가 제시되어 있어요. 이 책의 사건들은 당시 이탈리아의 중심이라할 로마를 포함하고 있는 교황령에 속한 도시 볼로냐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1858년 6월 23일 밤 이탈리아 볼로냐의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쳐서 모르타라의 여섯 살 난 아들 에드가르도를 연행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아이는 첫돌 무렵 큰 병을 앓았는데, 당시 그 집에서 일했던 가톨릭교도 하녀가 남몰래 세례를 주었다는 고발이 접수되었어요. 세례를 받아 가톨릭교도가 된 아이는 더 이상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아 간 것이에요.
졸지에 아이를 잃게 된 가족은 사태를 저지하려 노력하지만 교회는 완강하게 대응했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해요. 그렇지만 이러한 가족의 비극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차별과 억압사를 공유하는 유대인 공동체로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되요. 이들은 누구나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근대적 평등권을 지지하면서, 언론이라는 창구로 비판 수위를 점점 높여요. 그러자 전 세계가 관심을 보내며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라는 촉구가 쇄도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교황 피우스 9세의 특별감독 하에 강제로 가톨릭 교육을 받게 되죠.
그러나 이미 시대는 1858년 중세를 훨씬 넘어서서 근대에 이르는 시대였고, 당시 이탈리아에 통일운동이 벌어지고 있었고 교황령은 이에 대한 장애물이었기에, 통일론자들은 이 사건을 이용해서 교황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죠. 이렇듯 이 사건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에 반향을 일으켜서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권위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근대 이탈리아 탄생의 기폭제가 되요. 저자는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문명은 기독교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은 문명의 바깥에 놓인 존재였다고 지적해요. 그리고 이 사건이 당시에 엄청난 화제와 반향을 일으킨 사건임에도 정작 이탈리아 본토에선 거의 잊힌 사건이라고 해요. 저자에 따르면 가장 깊숙이 연루된 교회에는 떠올리기 싫은 치부이면서 중세 근본주의로 퇴행한 지난 과오를 들추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피해자였던 유대인 역시 무력한 자신들이 느꼈던 모욕감을 부각하는 일이기에 애써 지우려 했다고 봐요.
이 책은 논픽션이지만 소설과 비슷한 구성으로 소설과 같은 재미를 주고 있어요. 오히려 웬만한 추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논픽션이네요. 그래서 630여 페이지에 달하기는 하지만 술술 읽히는 책이에요. 그래서 올 가을 연휴 기간에 읽어보기에 딱! 좋을 듯해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특히 재미난 책이겠지만, 그냥 소설처럼 읽기에도 너무 좋은 책이라 일독을 권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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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어린아이를 납치한 종교집단과 아이 가족의 이야기, 근대의 문턱에 선 국가의 변혁에 대한 이야기, 신과 정치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순간의 이야기,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라는 책안에.
미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I. 커처는 특히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다. 「중앙 이탈리아의 가족생활」, 「교황과 무솔리니」, 「유대인을 박해한 교황들」과 같이 이탈리아의 역사와 생활을 소재로한 책을 저술했다. 관심의 연장선에「모르타라 납치사건」이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역사 속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책이다.
1858년 6월 23일 수요일 해질 무렵, 볼로냐에 위치한 유대인 상인 모르타라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 집의 일곱 아이 중 에드가르도를 데리러 온 것이다. 아이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밝혀졌으므로 이제 교황의 자녀가 되었다는 게 이유다. 무슨말인고 하니 볼로냐는 당시 교황령이었다. 즉 교황의 말이 법이고 경찰도 교황 소속이며 정치도 교황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례를 받으면 가톨릭 교도가 되는 것이고 가톨릭 교도는 이교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르타라는 친부모의 품을 떠나 교황이 운영하는 교육시설로 옮겨져야 한다는 논리다.
모르타라 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 법이 그 당시 로마를 비롯한 교황령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모 품을 떠난 적이 없는 아이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인가. 모르타라는 집요하게 아이가 세례받은 일을 파헤치고 무효화하고자 노력한다. 특유의 응집력으로 유럽 전체의 유대인이 이 가족을 도우려 한다. 당시는 사분오열돼 있던 이탈리아 영토의 여러 나라들이 통일 이탈리아를 세우고자 했던 시기이며, 국제 정세 또한 혼란스러웠다.
교황청에 의한 모르타라 납치 사건은 가톨릭과 유대인 집단에게 각각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한 빌미로 모르타라 사건을 이용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은 교황제의 억압성과 전근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왜곡시킨다. 전 유럽이 이 사건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지만 어느 누구도 모르타라 가족과 에드가르도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에드가르도는 풀려나지 못한 채 가톨릭 교육기관에서 무려 12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그 사이 교황령은 무너지고 사보이 가문을 수장으로 하는 통일 이탈리아 정부가 들어선다. 새로운 정부는 구세력의 대표적인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에드가르도를 자유롭게 풀어주려 한다. 모르타라 가족은 꿈에 그리던 상봉을 기대하며 로마로 달려온다. 12년의 간극이 가족에게 가져온 끔찍한 변화는 어떤 결말을 가져왔을까.(이 부분이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길.)
나에겐 이 책이 세계사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일개 가족과 개인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지만 크고 작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가족이 찢기고 개인의 인생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다. 개인의 정체성마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고 만다. 무엇보다 모르타라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라는데 큰 울림이 있다. 흔한 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다. 작가는 모르타라 가족의 서사를 풀어나감과 동시에 그 사건을 바라보는국가 내외의 다양한 시선, 가톨릭과 유대교인의 서로 다른 주장을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교황청 관계자, 각국의 대사와 정치인들, 이탈리아 각지의 유력인사들의 진술 자료를 서사구조 사이사이에 체계적으로 직조하는 솜씨를 발휘한다. 수많은 자료를 한 줄기의 이야기 속에 매끄럽게 직조해 넣은 덕분에 숨 쉴 틈 없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탈리아 땅의 세계관이 뒤바뀌는 시기였다. 교황이 모든 것의 중심이던 시대에서 개인의 법앞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거스르려던 교황령의 사람들은 바티칸을 유지하는 선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구체제가 스러지는 와중에 부서져나간 개인의 삶은 어디서 되찾을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유연하게 변화할 능력이 없는 집단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 집단이 크면 클수록 또 우리 삶과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이 휘청일 때 우리의 일상도 흔들린다. 그들이 제때 변화하지 못하는지 자신들의 특권만 움켜쥐려 변화를 거부하는지 제대로 지켜볼 일이다. 우리 삶이 함께 쓸려 내려가는 고통을 얼마간이라도 줄여보려면 말이다.
1997년에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던 책이 이제 와 출판된 이유는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화계의 미다스의 손’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주연배우 이름까지 책 날개에 명시되어 있는 걸 보면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은 책,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이탈리아 근대사를 다룬 책을 출판되도록 만드는 영상화의 힘, 아니 스필버그의 힘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의 중세가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그 와중에 ‘모르타라’라는 이름의 개인이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영영 알 일이 없었을테니. |
![]() 권위자라 한다. 일단 이 책은 논픽션으로 1997년 출간되었다. 당시까지 저자는 주로 미시사? 이탈리아 사회사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의 말미 후기를 보면, 이게 1997년 출간 당시에 실린 후기인지, 아니면 이후 시간이 지났던지, 개정판이 나온건지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와있다. '내가 이 이야기(모르타라 납치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개인적 동기(선대 가족사와 이어진 동기가 더 컸다)와 직업적 동기가 합쳐진 결과였다. 나는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어로 '부흥'을 의미, 19세기에 일어난 이탈리아의 국가통일과 독립운동) 전공자도, 가톨릭교회사 전공자도 아니며, 유대민족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저런 역사적 문제에 흥미를 갖게 된 사회인류학자로서 나의 아탈리아사 연구는 이때까지 사회사에, 구체적으로는 과거에 대부분 문맹이었던 대중이 어떻게 살았으며 19세기 들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쏠려 있었다. ... 중략 ... 한마디로, 나는 유명한 사람의 삶을 연구한 적도 없고 국정이나 외교사를 파고든 적도 없다는 얘기다. ... 이렇게 얘기하면서 본인은 역사에서 주로 조명된 비중있는 인물의 일대기나, 규모가 있는 전쟁, 과 같은 거시적인 연구 방법을 비판하는데 앞장선 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갑자기 유럽사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얼키고 설킨 내러티브한 역사서를 쓰게 되었는지도 밝힌다. 내털리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 초점맞춰 당대의 시대상을 역사적 기법과, 문학적 필치로 잘 버무려 쓰는 것을 흠모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참고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중세 붕건제 후기를 미시사적으로 잘 표현한 실재한 이야기(동명의 문학작품, 영화가 있다)는 제법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본 작품 '모르타라 사건'과 '마르탱 게르 이야기'는 중요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도 말한다. --------------------------------------------------------------------------------------------- <모르타라 납치사건>은 전술한 것처럼, 책소개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점차 쇠락해 가던 교황권이 더이상 '성聖'과 '속俗'에서 두 권능을 절대적 행사하지 못하고 이 기점에서 리소르지멘토 운동지속으로 통일운동세력과 가톨릭이 서로 격렬히 맞부딪히다 교황권이 미치는 범위는 로마 바티칸으로 권역이 축소되고 권능도 상당부분 잃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의 전말이 저자 데이비드 I. 커처를 통해 어느 정도 수면 아래에서 위로 떠오른 것은 놀랍기도 하고 스필버그 감독아래 영화화 된다는 것도 조금은 주목될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이 '모르타라 납치사건'은 가톨릭교회에서도 밝혀지기 꺼리는 대목이고,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데 공감된다. 공개적으로 양 측에서 누가 먼저 발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근시일의 사건으로 잘 몰랐던, 묻혔던 사건에 대해, 이런 사건이 있었구나 하면서 새로운 역사의 편린?을 알게되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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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시작은 작은 것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결과를 발휘한다는 의미로 많이 등장하는 말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 말이 연상 떠올랐다.
개인이 가지는 신앙은 자유다. 그 자유란 말에는 개인적인 신앙심을 중심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범주의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권력에 의해 자신의 종교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면? 더군다나 자의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에 의해 취했던 어떤 행동 하나로 인해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꿨다면?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의 논픽션이란 말,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 확정했다는 말에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깃든 논픽션이길래 스티븐 감독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더군다나 유대인인 스티븐 감독에 의해 그려지는 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 또한 유대인이기에 같은 유대인이 그리는 영화는 차지하고라도 전통적인 서유럽의 역사에 대한 획을 그었다는 사건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 역사, 정치, 문화에 관한 한 권위자라고 한다.
그가 이 실제 벌어진 사건에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당시의 흐름을 역추적해 그린 논픽션은 종교와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을 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1858년 6월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쳐 그 집안의 6살 아들인 에드가르도를 연행하는 것으로 서막을 알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교황청의 명에 의해 끌려간 자신의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부모들, 알고 보니 부모들조차 모른 채 아이가 아픈 것을 본 하녀가 자신이 믿는 가톨릭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인데 교회법에 근거해 기독교인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으므로 데려간다는 취지였다.
이 일은 한 가정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 이야기로 비칠 수 있었으나 당시의 정세는 그렇게 호락하지 않았다.
위정자들이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작은 것 하나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 시대의 분위기는 이른바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내세운 혁명가들이 입헌 통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 질서를 추구하던 19세기 중반이었다.
과거 중세시대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교황을 대표로 하는 구세계에 대한 반발, 특히 볼로냐가 강했던 지역이었기에 이 사건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다.
교황의 정치 권위 세력의 저지, 근대 국가로의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피에몬테에 있는 그의 수상 카보우르 백작부터 런던에 망명 중인 혁명적 민족주의자 주세페 마치니까지 오늘날의 이탈리아란 국가 태동의 시발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읽으면서 그저 순수한 뜻으로 행했던 행동이 이렇듯 종교란 이름 아래 개인의 생활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사건, 진정한 종교와 권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개인의 삶조차 이렇듯 감시와 허용과 불허용의 사이를 긴박하게 넘나들듯 해야만 했던 당시의 흐름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부모의 간절한 호소와 바람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통일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나섰던 방향들은 논픽션이라고는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의 세세한 당시 기록 자료조사와 함께 전공한 학문을 십분 발휘한 덕에 푹 빠져 역사와 종교, 개인의 인생과 통일 국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모두 알 수 있었던 책, 영화로 만난다면 원작에서 그려진 긴박함의 극치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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