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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세상을 만나는 당신의 열쇳말은 무언가요. 이 물음에 나는 답해요.
도서관에 비치된 이 책을 만났을 때 문득 떠올렸어요. 날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책 가운데 “행간에 놓인 사랑과 철학, 위대한 대화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사람들 눈에 잘 띌 법한 곳에 배치한 도서관 사서를. 그이는 분명 멋진 사람일 거예요.
나는 한나 아렌트를 <전체주의의 기원>이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난해한 책으로,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낭만적인 문구의 발화자로 기억해요.
이 책에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사이에 오간 편지가 많이 실렸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엘즈비에타 에팅거라는 지은이는 한나, 마틴, 블뤼허(한나의 남편)의 편지를 부분적으로 인용했고, 작가의 관점과 해석으로 기술된 부분이 책의 대다수를 차지하죠. 긴장을 잃으면 안 돼요. 작가는 전적으로 한나 편이거든요. (한나는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기도 하고요.)
나는 편지가 좋아요. 지나친 1인칭 서술이 거짓말인 듯한 때가 있어요. 나의 무의식에서는 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를 상정하면서도, 마치 화자와 청자가 오직 나뿐인 것처럼 이야기를 마구 꺼내놓는 것이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일기나 감상문을 쓰다 보면 자기연민이나 자아도취, 자기만족에 그치고 말아요. 이건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지금 내가 책을 읽고 난 후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편지는 내밀한 자기고백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의 서술이 가능한 방식이거든요. 내 글을 읽는 상대방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하면서, 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여 말하게 되고요. 나는 이게 좀더 솔직한 태도인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말이에요. 그리고 언제나 내 이야기만 하고 싶어 환장했고 상대가 내 이야기를 전적으로 귀 기울여 들려주기를 요구하는 나이기에, 눈맞춤 없는 대화인 편지는 날 적당하게 만족시킬 수도 있어요. 후후. 혹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특히 마틴 하이데거가요. 불경스럽죠. 미천한 나와 위대한 학자들을 감히 비교하다니! 하하하.
이 책을 통해 둘의 철학을 맛보리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어요. 제가 볼 때 이건 ‘사랑이야기’랍니다. 애틋하고 가슴 아프고 때로는 뻔한 사랑이야기. 대신 두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지요.
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지요. 의식과 무의식, 성, 인종, 계급 등.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내가 처한 상황과 무관할 수 없어요.
정체성에 대해 고찰을 하는 이라면 그럴 만한 계기가 있고 그럴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에요. 남성성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인 곳에서 여성성을 묻게 되고, 경상도인들의 화합을 주장하는 곳에서 나의 지역성을 살피게 되고, 백인들의 세계에서 내 피부색을 깨닫게 되죠.
한편 열정 가운데 이성이라는 게 빼꼼 고개를 들 때 자문해보죠.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전 이런 상황을 생각해봐요. 한 여성이 한 남성과 사랑에 빠졌어요. 여성은 노동자이고요, 남성은 자본가랍니다. 여성노동자는 자기가 왜 노동자로 살아가는지 생각을 하는 인간이에요.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라든지 비인간적인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회사의 구조라든지 동료가 해고되는 일상이라든지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인간 말이에요. 노동자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지속하게 하는 어떤 구조나 힘이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돼요. 그 구조의 핵심에 남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요. 내가 사랑하는 이가 체제유지에 기꺼이 복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그 당혹스러움은 사랑에 빠진 순간만큼이나 강한 힘을 발휘하죠. 그는 나를 구원하겠지만, 내가 속한 세계를 구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오르니까요.
모든 사랑은 필연적으로 자기기만적이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성평등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남녀평등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을 하던 여자가 사랑에 빠졌어요. 남자는 여자에게 다정다감해요. 그런데 때때로 남자는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여요. 그래도 여자에게는 최고의 남자이지요.
이야기가 길었죠. 나는 한나와 하이데거의 사랑이 위에 언급한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처음부터 대등한 사랑이 시작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이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한나 아렌트는 자유롭고 기쁘게 사랑했고 관습을 무시했다.” (36쪽)
“자신의 수줍음과 말없는 숭배가 하이데거를 기쁘게 하고 흥분시킨다는 것을 그녀는 직관과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39쪽)
“근본적으로 선한 하이데거의 천성을 신뢰하는-내게는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 그 누구도 이 점을 이해할 수 없어요-확신이 내게 있었고, 이것은 항상 나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어요.” (132쪽) -한나가 남편 블뤼허에게 쓴 편지 중에서
이것이 함정이죠. 인간성에 대해 신뢰를 하는 이가 사랑에 빠진 경우라면. 내가 사랑하는 이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의 환상이 그렇게 볼 뿐이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자는 결코 그것을 알 수가 없어요. 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그랬다고 하죠, 한나가. 나는 이게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강한 첫사랑은 후발주자들에게 결코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요.
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꼈어요. 한나 곁에서 한나를 오랫동안 지켜준 블뤼허가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한나는 자신의 지적 유산이 하이데거로부터 빚진 거라고 말했지만, 글쎄요 제가 보기엔 한나 아렌트는 블뤼허가 없었다면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한나와 하이데거는 지금까지만으로 족해요. 이 둘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일 뿐이거든요. 그러니 이제는 한나와 블뤼허의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당신은 확실히 모든 걸 올바르게 하고 있어요.” 하고 한결같이 다정하게 말을 건넨 블뤼허의 이야기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