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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공산주의가 만인의 적이었다.
오죽이나 공산주의가 밉고 두려웠으면 반공강사라는 직업까지 있을 정도였다.
한 1980년대까지 실제로 있었지.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공산권이 무너지고, 2000년 들어서 김정일이 한국 대통령과 직접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하기야 체제 경쟁에서 한국은 북한을 추월한지 최소한 20년은 넘었으니까...
그래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힘을 잃자, 지식인들은 이제 새로운 적을 찾아냈다.
군사 독재? 그런 건 너무 많이 떠들어서 좀 식상하고... 새로운 주제를 발굴했으니, 그게 바로 민족주의였다. 정확히 말하면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탈민족주의.
이 탈민족주의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대략 IMF 구제 금융 사태가 벌어진 1997년부터 급물살을 탔다. 그 흐름을 주도한 세력은 한겨레 같은 진보 진영 언론이었고, 시사평론가로 유명한 진중권 씨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에서 한국 민족주의를 아주 신명나게 깠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솔까말 이것도 제대로 파고들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틀린 부분도 많지만)이 공론화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때도 이 때부터였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탈민족주의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반공주의에 비견될만큼 붐을 이루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주춤해졌다. 권위주의적인 보수 정권이 들어서니까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건지...
그리고 탈민족주의의 흐름에서 대두된 의견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유명해진 뉴라이트였지. 이들은 그동안 한국인들에게 상식으로 굳어졌던 일제 수탈론 같은 인식들을 반박하면서 일제 시대는 경제 발전이 이루어진 풍요와 행복의 시대였다고 주장했고, 일본군 종군 위안부도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고 했다가 반발을 사고 주춤했지만... 그 이론에 동조하는 자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 죽기는 뭘 죽어? 버젓이 잘만 살아 있었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 위안부들은 높은 임금을 받았다, 일제 과거사 문제는 한일수교에서 다 끝냈으니 더 이상 일본에 책임이 없다... 는 주장은 주로 일본 극우나 아니면 그냥 평범한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계속 이걸 가지고 사과하라 배상하라 하고 하니까 일본인들도 슬슬 짜증이 났나 보다. 고이즈미나 아베 신조 같은 극우파들이 계속 총리로 당선되고 있으니까.
이 책도 그런 일본인들의 시각을 거의 다 반영한 책인데, 저자 본인부터가 위안부로 대표되는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감을 가지고 책을 썼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진짜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요약하면 이거다.
"반일 민족주의 나쁘다, 일본 욕하지 마라."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본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 자료들만 쭉 나열하면서 일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대신 한국인들의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같은 한국인인 위안부 포주들에게 몽땅 돌리려 애를 쓰고 있다.
"한국인 위안부는 일본군에게서 좋은 대접을 받았고, 나름 긍지도 느꼈다."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 "위안부는 어디까지나 한국인 포주들이 모집해서 일본군에게 넘긴 거니까,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는 잘못이 없다." "일제 과거사 문제는 한일수교회담으로 다 끝났다. 더 이상 일본한테 사과나 배상하라고 하지 마라."
또, 저자는 중국인과 동남아 및 네덜란드인 위안부를 한국인 위안부와 비교하면서 전자는 강제로 끌려갔지만, 후자는 그런 증거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이는 위안부 운동 관계자들이 중국과 동남아 위안부와 한국인 위안부 문제를 연계시켜 일본을 압박하는데 대한 고도의 분리 술책이다. 즉, 강제 연행된 중국과 동남아 위안부와 한국인 위안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까 연계하지 마라는...
근데 저자의 주장인 '위안부는 어디까지나 조선인 포주들이 주범이고, 일본 정부나 군부는 잘못이나 책임이 없다.'에서 근본적인 토대가 잘못된 건 아닐지? 이 책이 나오고 바로 직후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란 책이 번역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부가 조선인 위안부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는 사실과, 이들을 성노예로 삼으며 철저히 관리,통제 했다는 사실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즉, 위안소 업자들이 영업을 위하여 위안부들을 데리고 일본군 부대를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일본군 부대들이 군의 하부조직으로 편성된 위안소와 위안부들을 전선으로 끌고 다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긴, 조선인 포주들이 위안부들을 데려 와서 싫다는 일본 군부한테 억지로 떠넘겼겠나?
뭐, 좋다. 위안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어떤 뉴라이트 회원은 "위안부는 일본군만 한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다 했는데, 왜 일본만 욕하냐?"라는 말도 했으니까.
그런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온갖 딴지를 걸며 일본을 쉴드쳤다면, 그런 방식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있었던 한국군의 학살 문제도 함께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베트남전의 한국군 학살 문제도 지나치게 부풀려지거나 과장된 점도 많으니까. 한일수교회담으로 일본 정부의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한국군이 파병되었던 남베트남 정부의 소멸로 인해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 현 베트남에 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사과의 책임도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베트남전 학살 문제로 한국을 비난하는 '반한 민족주의'가 판을 쳐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하여간 어딜가나 그 놈의 민족이 문제야. 민족과 민족주의만 없어지면 이 세상은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고 젖과 꿀이 넘치는 유토피아가 될 텐데... 라는 생각은 나도 예전에 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안 한다. 그건 사유재산 제도만 없어지면 세상이 낙원이 된다고 믿었는 공산주의자들의 망상과 같은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추신: 그런데 그 놈의 민족주의가 지 애비를 때려죽였냐, 에미를 욕보였냐? 왜 다들 민족주의를 못 까서 안달이지? 민족주의 까면 그냥 멋지고 쿨해 보이나? 그게 유행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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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일제징용피해자입니다.. 길게 말 안합니다. 당신도 꼭 겪어보시길 간절히 빕니다. 역사의 슬픔을 왜곡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잘못된것이, 맨날 국사 시간에 조선시대 왕조만 외울게 아니라 이승만정권이 뭔짓을 했는지 근현대사를 좀 사실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구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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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입니다 세종대 박교수님. 일제를 대변하는건 식민지근대화론 정도 까지만...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그러는건 조금 가혹하지 않나요? 그렇게 탈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싶으면 당신먼저 탈민족해서 일본가서 일본어로 마음껏 이런 책 쓰세요. 실수로 사보는 사람들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서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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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및 교과서문제)는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최유라 씨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조영남씨가 지난 2005년 4월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를 펴낸 후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말은 책 제목 처럼 당시 이 발언은 "맞아 죽을 정도"로 엄청난 비판을 자초했었다. 특히 그해는 '을사늑약 100년', 공복60년과 맞물려 분노는 더 컸다. 그럼 아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어떤가?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쉽게 읽으면 일본 극우세력이 쓴 글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똑 같은 가혹한 '운명'을 겪고도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위안부마다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면서 "그런 그녀는 일본군이 아닌 업자를 '폭행 주체로 기억한다.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교감'없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들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쯤되면 영락없이 '친일파'다.
"일본군이 이용했다고 해서 아시아 전역에 있었던 그런 유의 시설들을 전부 '일본군 위안소'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38쪽)
물론 그는 "군인이나 헌병에 의해 끌려간 경우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개별적으로 강간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말한다. 하지만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였다면일본 군인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강제로 끌려온' 존재였다"며 일본군을 '강제성'에서 위안부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잠깐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 전 위 글들이 담긴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를 읽은 후, 판단을 내리자. 글쓴이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따위가 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2007년에는 일본어판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아사히 신문사)을 수상했다.
'소녀상'....위안부 리얼리티 표현이 아니라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
박유하 연구와 활동 그리고 펴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제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도 "조선인 위안부와는 거리가 있다"면서 "리얼리터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위안부'를 바람직한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
2011년 12월 세워진 '평화 소녀상'은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박유하 주장은 충격이다. 특히 그는 "미국에 설립된 위안부 기림비는 '강제로 끌려간 20만명의 소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며 "그러한 그 비는 '위안부'에 관한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표한 것일 뿐 위안부 자체를 표한 것은 아니다"는데 까지 이른다.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따라가보자. 미군기지 주변 여성들이 현대판 '위안부'라고 한다.
미군,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해...새겨 들어야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인 여성은 '전리품'이었다. 물론, 전리품이든 군수품이든,' 일본군' '남성'에게 물건처럼 착취를 당했다는 점에서는 '남성 중심 국가'로서의 일본의 사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일본 패전 후에 일본이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고 한국전쟁 때 한국 정부가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던 미국 역시 그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동안 미국이 이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어온 것은, 그들의 '위안소' 문제를 지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19쪽)
박유하가 미군도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여성들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박유하 이 지적은 우리가 새겨야 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미군 '위안부'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28일 경기 동두천 보산동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 참혹하게 살해(범인은 맥주병을 시신에 넣었다)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미군 케네스 마클(당시 20세) 이었고, 피해자는 윤금이씨였다. 윤금이씨같은 이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같다고 할 없지만, 가해자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강제성과 여성들 인간존엄성이 파괴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라도 이런 주장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성노예인지 아닌지는 국제사회로부터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세계 각국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때 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 것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에 '배상 요구'는 무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청구권협정으로 배상은 끝났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식민지때 강제징용했던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징용 배상금을 낼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는)해결이 끝났다"고 했다. 박유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송자들이 소송을 낸 근거는 위안부들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국제법을 어긴 것이었다는 것이 '배상'요구의 근거였는데, 당시의 법을 실제로 어긴 직접적 주체는 일본국이 아닌 업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자들의 '법적 책임'과 '배상 요구'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237쪽)
일본 우익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일협정은 또 하나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하에서 이루어진 탓에 식민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양쪽에 주지 않았다는 점일 인식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박유하는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며 정대협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차원 배상 요구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면에 이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위안부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성'문제
특히 "수요 시위를 비롯한 정대협 활동에 어린 학생들을 대거 동원되는 상황은 극히 우려스럽다"면서 "그들이 새롭게 심어진 '반일'적 적개심을 넘어서 같은 또래의 일본 청소녀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감정소모의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말을 들으면 '위장된 일본 우익'이라는 세간의 평이 낯설지 않다. 그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 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빨갱이'이나 '친일파'라는 명칭이 그저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320쪽)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아닌, '제국'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책 제목 역시 <제국의 위안부>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직접 책임을 묻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는 그들이 조선인 여성을 짓밟앗기 때문에 분노하기 이전에, 인간존엄성이 짓밟힌 문제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들이 소녀상 앞에서 분노한다.
책을 덮어면서 머리에 든 생각은 '박유하가 쓴 책을 일본 우익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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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부족한 나라이기에 드디어 이런 괴물이 나타나는 것 이게 도대체 나라냐? 이건 나라가 아니다. 나찌를 옹호하는 일이 유럽에서 있을 수 없듯이 70년이 지난 후에도 나찌 전범을 추적해서 법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일본의 전쟁범죄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였던 한국 그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전쟁 피해자였던 위안부의 문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이제 유엔에서까지 위안부 문제가 다루어지고있는 마당에 하물며 같은 동족으로서 그것도 아무리 삼류대학이지만 대학교수라는 직을 가진 이의 입으로 이렇게 민족을 모독하고 피해자를 모독하고역사를 왜곡하는 철저히 친일적인 사고를 마음껏 지껄일 수 있는게 나라라면 이런 나라는 법도 없는 것이고 절대로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렇게 맘껏 민족을 모독하고 인간을 모독하는 반민족 반인륜적인 여자는 절대로 옹서 받아서는 안되며 저 여자는 형법에 의해 처리해야 하며 제대로 된 법이라면 구속이 아닌 사형도 모자란다. 내가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여자 때문에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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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사회, 까진 입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올바르게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누군가에게 조종되지 않는 주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해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되어 유통되는 정보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팍팍하게 만드는지 전율이 느껴집니다.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한 소수의 엘리트만이 권력집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체계를 좀 먹듯이 갉아먹는 사람들,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민족주의, 집단 피해의식을 무기로 들고 나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로 위험한 권력집단입니다. 문제는 이들에게는 어떤 감시도 비판도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기에는 두려운 주제, 민감한 주제, 본전도 찾기 어려운 주제를 정말 용기를 가지고 잘 다루었습니다. 지식인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지식인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평소 의심하고 의아했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책을 쓰신 분은 기나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정의를 독점한 오만한 세력과 진실을 향한 기나긴 투쟁,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결국 진리가 승리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형극의 길을 걸어야 할지, 조직화된 집단과 홀홀단신으로 법정 투쟁을 벌여야 할 박유하 교수님께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보다는 가공된 정보와 유사, 사이비 진실을 더 가깝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조미료 안들어간 음식은 먹기 어렵습니다. 익숙한 주제와 접근에 약간의 창조적인 맛을 가미한 음식이 좋지 평소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불편합니다. 아얘 먹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평소 나름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야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 동안 햇빛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는 것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소 불편하더라고 끝까지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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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뭔가 한 곳이 허전하고 찜찜한 느낌이 떠나지 않아서 머리속이 복잡했었다. 그런데, 문득 책 후반부에 나오는 한일합방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니 그때서야 박 교수의 논리가 체계적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독해력이 부족한가 보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가 되자마자 저자에게서 보고자 했던 일말의 합리적 핵심이나 긍정성도 보기 어렵게 됐다. 결국은 일제강점기를 '한때 일본이었던' 시기로 보는 전제에서 출발해, 그것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자는 한일합방은 국가간 체결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합방조약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전제로 위안부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즉,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이었고, 조선반도는 일본의 영토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 자체가, 식민지 대 제국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논리를 쉽게 풀면 이렇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매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 중에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로 시작한 경우도 있었지만,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아서 마땅히 생계의 방도가 없어서 자발적으로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금, 감시, 폭행이 있긴 했지만 그건 국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업자인 '포주'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며, 그런 사례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매매춘에 종사한 여성과 구매자 사이에는 때로는 사랑을 나누거나 서로를 위해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따라서 이런 피해를 당했다고 국가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고, 다만 국가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측면에서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가 법을 어긴 것이 아닌데 정부 차원의 배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가 자금을 대지만 민간단체의 형태를 통해서 피해자를 지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국가의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위안부의 강제성 여부나 조선인 업자에 대한 강조, 죄와 범죄의 구별, 동지적 관계 등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전제를 갖고 접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으며, 특수성이라면 전시의 군 위안부였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책에서는 수시로 위안소의 열악한 상황을 언급하지만 그건 '나도 그게 문제라는 건 안다'는 알리바이 확보 차원이며, 핵심은 (점령국이나 적성국에게는 일본인으로 이해되고, 일본도 그렇게 이해한) 조선인 위안부는 대부분 가난의 탈출구로 성매매에 나선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기, 납치, 감금 등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결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본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를 형성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 요지다. 그것을 인간 그 자체로서 위안부를 이해해야 한다는 명제를 들면서 핵심을 흐리게 있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인간은 다면적 존재라는 명제 수준의 당위적 언급일 뿐이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뚜렷이 하고자 했다면, 그리고 '오독'을 피하고자 했다면, 위안부라는 미끼를 내세울 게 아니라, 한일합방의 강제성 여부를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즉, 일제강점기간을 정상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모든 논의의 출발이며, 여기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생산적 토론을 목적으로 한다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본다. 이 책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다. << 조선은 일본국/일본인 -> 공창제 존재 -> 일본군의 위안부 수요 -> 업자의 위안부 모집 -> 대안이 없는 가난한 조선 여성 자원 ->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하는 조선인 위안부-> 일본군과 심정적 연대, 동지적 관계 형성 -> 패전 후 살해, 유기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귀국 -> 전후 위안부를 피해자로만 왜곡. 일본을 용서하고자 하는 위안부의 목소리는 배제함 -> 진보좌파의 이념적 투쟁이 문제 악화 -> 아시아여성기금 수령거부는 잘못 >> 위안부를 자발적 매매춘으로 보고 일본군을 동지로 생각했다는 요지의 소송 기사를 보면서 이건 저자의 주장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차분히 토론할 것을 이런 식으로 선정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의 주장은 이것이다. 물론 이것을 소송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 위안부 당신들은 자발적 성매매에 나선 사람들이고, 어린 나이에 끌려간 것도 아니고, 돈을 번 사람도 있고, 적국이나 점령국 여성보다는 우월적 지위에 있었으며, 감금이나 폭행이 간혹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일본군과 동지적 연대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후 일본이 잘못했다고 인정할 점은, 비록 그녀들이 자발적이었긴 했지만 성매매라는 비윤리적 행위에 나서게 한 상황에 대해 피해보상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가 알고 있는 이런 위안부는 나눔의 집에는 없지만 이런 말을 꺼내고 싶어도 정대협을 장악하고 있는 진보좌파(?) 때문에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충 이렇게 저자의 논리체계를 이해하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수준만큼도 안된다는 사실에 심하게 실망하게 된다. 저자는 의식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고, '때린 놈도 마음아픈데 왜 몰라주냐'는 가해자의 시각에서, 피해자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논리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위안부 할머니를 두번 죽이는 짓이다.
"할머니, 자발적 성매매가 나쁜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이해해요. 나쁜 건 가난하고 못배운 여성을 그런 길로 나서게 만든 남성 국가주의랍니다. 당시엔 일본군을 마냥 미워하지만은 않았잖아요. 이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세요" 이 책이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이거다. 끝으로 진보좌파 운운하는 얘기는 안하는 게 훨씬 나을 뻔 했다. 일반적인 수준에도 못미치는 편협한 사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일군사보호협정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두고 정대협이 정부를 '뼛속까지 친일'이라는 말로 비난한 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정대협의 정체성은 민족주의나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이기도 하다." "실제 운동의 주도권은 분명 좌파가 가지고 있었다. 정대협이 90년대 이후 일본의 좌파와 연대하고 북한과 긴밀히 연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제국'에 저항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한 문장을 읽으면, 저자가 갖고 있는 정치 성향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보인다. 한일군사보호협정은 긍정적이었고, 북한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논리라고 할 수 있을까? 친일우익인사나 뉴라이트 계열에서 나올 만한 얘기다. 이런 식이면 김구 선생도 진보좌파로 분류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여러 날 생각을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수준 이하의 책, 친일우익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는 책, 몇몇 주장에서는 학자적 기본 소양이 의심되는 책이란 것이다. 여기에 들인 내 시간이 좀 아깝다. 이 분에 대해서는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박 교수를 우호적으로 보는 분들도 좀더 깊게 생각해보고 접근할 것을 권한다. 단지 아시아여성기금, 정대협 등과 같은 개별 사안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만 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일제에 대한 역사 인식의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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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에서는 처음으로 제기한 책과 저자의 내용을 북한공작원 정신대의 논리를 합리화 하기 위한 책이었다면, 초판에서는 책과 내용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그들이 가공한 거짓의 증거를 하나 둘씩 캐고 있다. 유관순 열사의 모델로 소녀상을 만들고, 소녀상의 나이는 15세도 안된다. 고로 제국의 위안부는 평균연령이 25세 였다고 한다. 40여년 전에 들고 나왔던 위안부 이론을 통해서 공창들의 당시 생활상을 기록한걸 무시했다. 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인과 일본인과의 기억을 지워야 성노예 시절의 기억을 지금에 와서도 계속 끄집어낼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에서 피해당사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왜곡해서 위로금은 국가가 아닌 NGO를 통한 보상금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