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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우울한 청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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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노련하고도 질긴 비밀. 드러내어도 남은 결코 알 수 없는 아픔, 까발릴수록 더욱 감추어지는 어둠, 떠들수록 더 돋아나는 슬픔, 악에 치받칠수록 덩달아 빛나는 설움. 그 누구라도 남의 몸에 새겨지고 있는 고통의 지도를 손톱만큼도 봐낼 수 없다. 그러한 나날의 순간과 오해들이 모여, 모여, 순식간에 지나갈 청춘을 만든다.   청춘, 푸른 봄, 청춘은 봄이었는가. 지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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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은 노련하고도 질긴 비밀. 드러내어도 남은 결코 알 수 없는 아픔, 까발릴수록 더욱 감추어지는 어둠, 떠들수록 더 돋아나는 슬픔, 악에 치받칠수록 덩달아 빛나는 설움. 그 누구라도 남의 몸에 새겨지고 있는 고통의 지도를 손톱만큼도 봐낼 수 없다. 그러한 나날의 순간과 오해들이 모여, 모여, 순식간에 지나갈 청춘을 만든다.   청춘, 푸른 봄, 청춘은 봄이었는가. 지나간 자에게도, 지나고 있는 자도, 결국은 지금이 봄인 줄은 모른다.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더욱 겨울처럼 느껴질 뿐, 그러니 그림자 없는 환상처럼 봄인 줄로만 알지, 길 잃은 개처럼 떠도는 풍문으로 흘려버릴 줄로만 알지, 봄에 몸 비비며 부대낄 줄을 모른다. 왜 스스로를 궁휼히 여기지 않았지?   겨울, 나는 고향의 방죽에서 자주 노닐었다. 여름이면 도롱뇽의 알을 건져내어 삼키곤 하던 음습한 산의 썩어가는 자궁. 그래도 겨울이면 따스한 김도 나다가 견디지 못하고 얼어버리던 방죽에서 혼자, 이쪽에서 저쪽까지 얼음장 위를 지나다니기를 좋아했다. 잘못 디딘 발마다 즉시 꾸짖어주던 방죽의 얼음. 오냐, 오냐, 짖어라, 짖어라, 걷다보면 내 발자국은 무늬가 되고 피안에서 차안으로 건너가는 여정처럼 저기 훤히 보이는 방죽의 건너편은 아득하기만 했고, 건너자마자 방죽은 날 배신했기에 빠뜨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얕은 물 속에 감추고 있던 진흙뻘로 날 덮어주지 않았다.   청춘은 얼음으로 된 다리, 또는 사다리. 지나고 나면 두 번 다시 딛고 싶지 않은 시절, 그러고 싶어도 늙은 지금의 나는 이미 봄, 얼음은 녹아서 복숭아뼈를 간질이며 비웃네. 그러니 이제 봄에 서서히 졸면서 늙어가는 인생만 남았을 뿐, 흔들의자에서 그 시리던 시간의 기억을 들추며 가끔씩 불어오는 환상의 바람에 웃을 뿐, 결국은 아름다운 겨울이었던 청춘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계절이다.   하이힐 신고 싶은 욕망, 나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청춘이야말로 드높은 하이힐의 시절, 발꿈치 들고, 오! 까치발 짚고, 오! 더 멀리, 더 높이, 더 아슬하게. 발뒤꿈치를 땅에 대야 편안해지는 나날에, 팽팽하게 당겨진 아킬레스건의 꿈틀거림을 보는 관음증을 가지게 되었다. 닥쳐도 모르는 재앙인 듯, 뱀처럼 땅에 몸을 비비며 굴신하며 지내는 날들이 남았다.   전역하고 여름 내내 쟈니, 데니스, 젱, 죠죠, 미키 등등의 필리핀 친구들과 막노동하면서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그 시절은 벌써 아득하게, 녹았다. 새삼 꺼내어 읽는 이 책의 맛은 오래전 사라진 후 내 눈에 와 박히는 별빛처럼 타락했지만 돌아 본 뒤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린 욥의 몸뚱아리마냥 내게는 그래도 늘 볼 때마다 애잔하고 사무친다. 스무 살 때 읽어야지 이후에 읽으면 이 책은 풋내, 비린내, 설익은 어설픔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래서, 그러니, 내게 이 책은 청춘으로부터 파문당했음을 알리는, 빛바랜 기차표다.
n******s 2005.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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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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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건 같지 않은 사건을 나름의 사건으로 만드는 새로운 작가의 열정을 읽는다. 많은 경우 그의 사건은 사람의 탈난 내부에서 발생한다. 이성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의 그물에서 애써 벗어난 자리에서 겨우 생겨난다. 그의 인물들이 대부분 삶을 제대로 살기도 전에 삶에 대해 절망한 자들인 까닭이다. 세상을 텅빈 허무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불가피하게 비극적 열망에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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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건 같지 않은 사건을 나름의 사건으로 만드는 새로운 작가의 열정을 읽는다. 많은 경우 그의 사건은 사람의 탈난 내부에서 발생한다. 이성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의 그물에서 애써 벗어난 자리에서 겨우 생겨난다. 그의 인물들이 대부분 삶을 제대로 살기도 전에 삶에 대해 절망한 자들인 까닭이다. 세상을 텅빈 허무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불가피하게 비극적 열망에 몰입하고 만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아름다운 혼돈, 치밀한 몽상과 삶의 불확실성들이 혼음”하고 있다. 이 대목이 그의 소설들을 핵심적으로 대변해준다. 작가, 시인, 화가 등 대부분 예술가 주인공들은 `불확실한 삶'의 현실에서 `아름다운 혼돈'을 일으키기 위해 `치밀한 몽상'을 꿈꾸는 자들이다.  그들은 현실의 삶에서 매우 아파한다. 작가는 소설 쓰기에 절망한 채 대책없이 낙향하고, 시인은 저주받은 운명 때문에 철저히 삶의 파편 속에 유폐된다. 화가나 다른 이들의 운명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속절없이 이혼하거나 헤어지고 버림받는다. 왜 아프고 어떻게 상처받았는가 하는 문제가 불확실하다는 것이 그들의 고통을 더해준다. “푸른 안개”에 젖어 “상처마저 환상인 자들의 상처”는 덧나기는 쉽되 치유되기 어려운 법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상처라야 객관적 성찰이 가능할 터인데,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고작 가족 구성 문제를 빌미삼아 “아버지는 내 슬픔의 교주”라고 둘러댈 뿐이다.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는 거세 콤플렉스를 일으키게 하는 주체이자 자식의 거세 충동의 구체적인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비극적 운명의 책임은 상당부분 부모 세대로 전이된다. 또 그에 비례하여 자식 세대는 어둡고 쓸쓸한 자유의 지분을 획득한다.  예의 자유의 지분으로 그들은 아름다운 혼돈을 일으키러 몽상 여행을 떠난다. 자전거를 타고 달의 뒤편으로 가고자 인도를 여행하는가 하면, `나무묘지'를 향한 몽중보행을 하기도 한다. 모두 현실을 넘어선 안개 지대에서의 감각적인 문체에 힘입은 시적 몽상이라는 점에서 한결같다. 비극적 운명의 개인을 속절없이 배반한 현실에 대한 복수의 형식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초기작인 `이제 나무묘지로 간다'에서 `나무묘지'는 고감도의 상징성을 획득한다.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우주적 생명의 공간이다. 이 안개 환상은 최근작 `달의 뒤편으로…'에서 `애련'의 정조로 실감있는 성숙을 보이게 된다. 이 성숙이 세기말의 파편화한 허무적 단독자로 하여금 타자를 깊숙히 껴안는 새로운 세기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기획자로 변신하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세기말의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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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그렇지만 외롭지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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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tv에서 보게되서 만날수있던 고마운 책이다. 나는 그닥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그때 나는 오직 나만이 특별하게 우울하고 동떨어져있던 20대초반이었다. 무얼할지 모르고 누구도 나를 이해할수 없었고 어디에도 내가 있기엔 어색한 날들이었다. 지금도 별달라지진 않았지만, 나는 모든사람에게 주목받는 것들보다 조금 숨겨져있는 것들을 많이 끄집어내고 있었다. 비밀스럽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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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tv에서 보게되서 만날수있던 고마운 책이다. 나는 그닥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그때 나는 오직 나만이 특별하게 우울하고 동떨어져있던 20대초반이었다. 무얼할지 모르고 누구도 나를 이해할수 없었고 어디에도 내가 있기엔 어색한 날들이었다. 지금도 별달라지진 않았지만, 나는 모든사람에게 주목받는 것들보다 조금 숨겨져있는 것들을 많이 끄집어내고 있었다. 비밀스럽게 나 그리고 몇명만 아는 음악들, 그림들, 이야기들.. 비주류? 그렇게 말하고싶진 않지만..... 그런것들을 사랑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어떤것도 내게 위로가 될수없고 내 이야기가 될수없다는 생각에 묻혀있을때. 난 이 작가와 책으로 만날수있었고.....한참이나 나는 위로받았다. 내가 느끼는 방식으로 당신도 느끼고있군요. 하고. 어쩌면 나를 알고있는 작가같은 느낌. 글쎄 딱히 나는 할말이 없다 이정도밖에는. 당신도 외롭다면.아웃사이더같이 느껴진다면. 아직도 어두운 시절을 기억하고 있거나 지나가는 중이라면. 여기 당신같은 영혼이 하나있으니, 그다지 외로워하진 말라고. 말하고싶다. 몇번씩 읽는 '소설'은 많지않았다 내게는. 소설사는거는 솔직이 짐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주어야 편할것처럼.. 그렇지만 모르겟다 나에게 이책은 30대가 된 지금도. 침대맡에 꽂혀진 몇안되는책이다.. 쓸쓸할때마다 어딘가 전화를 하고싶고 너도 쓸쓸하냐고 묻고싶을때. 펼치게되는.책..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거나 애착갖게되진 않을것같은 그런 책.

[인상깊은구절]
나의 이야기며, 또한 읽고있는 당신의 이야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는 없는 이야기,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꼭 한번 쓰고싶엇다.
k******y 2003.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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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통과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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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7편의 단편으로 엮어 96년도에 출간되었던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을 엮은 작가 이응준은 70년 생으로 대학생 때, 작가 데뷰를 한 유망주였던 것 같다. 이미 90년대 들어오면서 시로 데뷰를 한 시인이기도 하다. 어렵고 읽기 힘든 문학은 싫다. 다만 독자들이 고독을 알고 외로움을 아는 동병상련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작가의 바람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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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7편의 단편으로 엮어 96년도에 출간되었던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을 엮은 작가 이응준은 70년 생으로 대학생 때, 작가 데뷰를 한 유망주였던 것 같다. 이미 90년대 들어오면서 시로 데뷰를 한 시인이기도 하다. 어렵고 읽기 힘든 문학은 싫다. 다만 독자들이 고독을 알고 외로움을 아는 동병상련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작가의 바람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책은 주제는 인간 방랑기랄까. 7편의 단편은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 일인칭 시점이다. 둘째, 주인공이 전부 남자다. 셋째, 주인공들의 성장배경은 편부모들이거나, 버림을 받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져 키워졌다. 또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직업은 글과 관계가 있다. 무언가에 결핍되고 염세주의로 가득찬 시선들이 종횡무진 7편에서 달리고 있다. 솔직히 위와 같은 비슷한 설정으로 각기 다른 7편은 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였을까? 내 머리 속은 7편이 구석에 쳐박힌 잡동사니들처럼 뒤엉켜 분류작업조차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란 책이 왠지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뒤엉킨 7편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정의 개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주변의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것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와 부모, 나와 형제, 나와 여자, 나와 일, 나와 세상. 이물질을 몸 속에 심어야 하는 고통처럼 나와 다른 대상과의 관계는 이물질을 몸 속에 억지로 넣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책 속에서 이러한 분리, 즉 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통과적 제의에 관한 문제를 신화와 전통 의식 속에서 찾고 있다. 즉 신화 속의 영웅의 행적이란 모호하고 알지 못하는 세상을 청년이 되어감에 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겪는 괴리감의 행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웅이 어찌 어찌하여 엄마 품에서 떠나, 시련을 통해 세상을 알고 자아를 깨달아 귀향하는 과정은 어른이 되어 사회에 편승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 책에서도 주인공들은 결국 정신적 공황과 방랑을 통해 어느새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존재하는 자신을 깨달아간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행보하는 인간의 삶이란, 한 시기가 저물어가고 한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인생의 괘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20살이 될 때 아이의 단계를 벗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15살에 이미 청년의 단계에 들어 섰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지은 이응준 작가의 96년의 글쓰기는 이 통과적 제의를 지나는 시기가 아니였을까?
k*****a 2002.08.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