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한 일본 우경화.. 아 참 정화였지... 비극을 통한 淨化'를 논했으나, 나는 이런 秀作을 통해 코믹 카타르시스의 위대한 미학적 효과를 절감한다. 이렇게 남을 웃기려면 1) 일단 머리가 좋아야 하고, 2) 제 업무를 일찌감치 마쳐 놓아 그 정신에 여유가 있어야 하며(비유적으로 말한 거고, 결국 인생에 있어 이른 시기의 자기 성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3) 인생과 세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낙관적인, 그리고 건전한 패러다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인간이 혹여 남을 웃길 때가 있다면, 그것은 끝도 없는 거짓말로 일관하던 행각이 제 풀에 지쳐 잠시 순순히 진실을 털어 놓는 그 짧은 순간밖에 없다.
정말 정신없이 웃겨주는 영화다. 일단 서두에서 부시 대통령 夫妻를 비롯해, 에너지 산업 巨頭들이 대거 참여하는 백악관 만찬회장이 나온다. 아마 1편이 타국의 국가 원수들을 유치하게 모욕한 데 대한 나름 개운찮은 심사가 있었는지, 이 영화에서는 자국의 국가 원수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미안풀이 겸 시리즈의 전체적 공정성을 기하려는 듯 보인다. 사실 1편 역시, 미국 지배층이 언제나 정신적 고향으로 생각하는 영국의 국가 원수, 군주를 사정 없이 비꼬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으므로, 유치한 우익 프로파간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No Offense, just kidding'이라는 후렴구를 붙이지 않으면, 뭔가 '다 자란 성인'으로서의(바로 요 영화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지만) 처신이 아니라는 강박이 있는 듯, 로그 스테이트의 국가 원수를 다 해치우고 난 후 드레빈 자신도 창 밖으로 떨어지는 덜떨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1편의 태도는 코미디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괜한 정치적 시비를 걸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저 에너지 산업의 거두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그럴 필요도 없고). 무슨무슨 단체 대표라고 할 때 그 약칭들은 다만 다 코믹 어구들이다(줄이면 개그가 되는). 그러나 뚱뚱한 체구를 한 백악관 비서실장은 싧명 그대로 나오고, 배우도 그 실물과 엄청 닮은 사람이다. 이 수누누라는 이름은 한국인들도 귀에 많이 익을 것이다. 레이건 정부에는 리건이라는 비서실장이 있었고, 바로 이어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시절에는 수누누 비서실장이라는 저 이름이 한국 뉴스에서도 자주 들렸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중남미계 이민자(혹은 이 사람처럼 망명자) 출신으로 저 정도 고위 공직에 오르는 게 극히 힘들고 드물었다. 바로 다음 차례, 민주당 리버럴인 클린턴 행정부만 해도 유색인종 출신을 찾기 힘들었고, 고작해야 2기 행정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최초 여성 출신 국무장관으로 기용되었을 뿐이다. 콜린 파월(아버지 부시 때 군경력의 최정점을 쌓은,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진)은 정작 아들 부시 때가 되어야 얼굴에 흰 분장을 하고 국무장관에 임용되었는데, 사실 민주당2)에서 대통령 후보 콜이 이미 들어왔던 사람이어서 이 조치가 별 감흥은 주지 못했다. 수누누의 말투를 잘 들어 보면 약간 이상한 발음과 억양이 있다. 배우가 영리하게 그 특징을 간파해서 연기를 하는 건데... 저게 쿠바 출신 망명 백인들의 인토네이션이다. 이런 게 또 어디 나오냐 하면, 2012년작 '엑스맨: 퍼스트클래스'에서 이름 없는 캐릭터로 CIA 회의 뒷자석에 앉아 있는 정체 모를 거한이 이런 말투를 또 쓴다. 분명 자기 시설을 安家에 갖출 정도로 거물인데, 왜 직함도 없이 뒷자리에 앉아 있을까? 이 역은 코믹 악역 전문 올리버 플랫이 맡았고, 내가 당시 이것 관련 리뷰나 포스트를 좀 쓸까 하다가 고급 정보의 누설이라서 그만두었다(다음에 생각해 보겠음). 전세계 인터넷 다 뒤져 봐도 '올리버 플랫의 그 캐릭터가 쿠바 망명자 출신 모 인사를 상징한다'고 분석한 사람은 아마 지구에서 나밖에 없을 것이다(마침 그 영화가, 쿠바 위기를 배경으로 다루고도 있지 않은가? 잘 생각해 보길). 이런 리뷰나 포스트는 멍텅구리 블로거들뿐 아니라 일반 웹에 잘 노출되므로 내 이런 말에는 至大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마지막에 아수라장이 되는 세미나홀에서, OJ 심슨이 범인을 지목하려 하자 그 귀한 VIP들이 옆의 여자 하나를 인질로 잡고 대치하려다 자신이 아닌 줄 알고 뻘쭘하게 각각 주저앉는 장면은 정말 대단한 개그고(높은 놈치고 안 구린 놈 없다는 뜻), TO SERVE MAN(=인류)이라 쓰여진 책을 들고 "이건 요리책이야!'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일종의 배우 개그다. 한국인들은 잘 모를 1960년대 '트와일라잇 존3)'에 나오는 한 회분 에피소드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는, 우호와 친선을 주장하며 몇 가지 서비스를 베푼 후, 자기들 행성으로 지구인을 데려간다. 외계인들이 가지고 온 책 중 하나를 제목만 번역했을 때에는 SERVE가 '봉사하다'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내용을 보니 그 단어는 '요리해서 대접하다'의 의미였던 것. 이미 이륙해 버린 우주선을 향해 '아, 이 책은 요리책이었다고! 돌아와(외계인들의 맛잇는 식사가 될 것이므로)'를 외치는 그 장면이, 해당 배우(세월이 지나 이제는 중년이 된 그 배우)를 통해 패러디된 것이다.
바버라 부시의 머리가 그 유명한 백발인 사실도, 아마 드레빈 역의 레슬리 닐슨의 트레이드마크가 백발이므로 코드 시너지를 위한 게 아니었겠나 싶다. 참고로 실물과 배우는 진짜 닮지 않았으며, 바버라 부시는 남편과 키가 비슷하고 저 배우보다 떡대도 좋으며 얼굴은 약간 넌센스로 매번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그러니 저 배우가 연기를 그리 잘 한 셈이 아님). 그러나 2년 전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정권을 바꿔야 한다'며 공화당 다수도 별 기대 않던 롬니의 당선을 희망하는 강경 발언을 하는 등, 의외로 이 노부인은 정치적인 인물이다. 바버라 부시의 백발은 유명해서, 아들 부시가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할 때, '내가 젊은 시절 말썽을 부린 탓에 우리 엄마 머리가 저렇게 되었습니다!' 라는, 털털하다면 털털하고 사람에 따라선 초딩같이 들리는 발언으로 회중에 큰 웃음을 선사한 일, 그것 때문에 유명하기도 하다. 참고로 1993년작 '데이브'에서 케빈 클라인이 '미첼'이라는 가공의 대통령을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저것도 어느 정도는 아버지 부시를 염두에 두고 벌이는 풍자다. 케빈 클라인은 우리가 잘 아는 피비 케이츠의 남편이기도 한데, 나이 차는 제법 나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두 사람 다 유명인사치곤 드물게 보는 정말 착한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들이 만나면 죽을 때까지 해로하는 법이다. 아름다운 혼인에 축복이 가득하길! 이 영화의 명장면은 한둘이 아니지만, '사랑과 영혼' 도자기 씬 패러디에 이어지는 성행위 은유 장면(명화들에서의 다양한 클립들을 모음)은, 단지 코믹이 아닌, 일종의 감동까지 불러오는 대단한 솜씨였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인 섹스가 유발할 수 있는 극한의 환희를 저런 심상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참... 아마 내가, 배경 음악 EBB TIDE(이 장면 바로 앞에 나온 '언체인드 멜로디'와 같은,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보컬이다. 이제 나는 이 노래만 들으면 아랫도리가 묵직해질 것 같은...) 때문에 지나친 몰입을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런 게 바로, 비극을 통한, 아니 희극을 통한, 우경화, 아니 정화라고나 해야 하지 않을지. (그렇지 경화4)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