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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 크리스마스 때면 단골로 TV에서 틀어주었던 영화 중 대표로 뽑을 만하다. 지금 들어 보면 당대 正劇의 전통에 걸맞게 대단히 장황하고 화려한 표현의 대사가 맨 먼저 부각되는 느낌. 물론 기독교의 구약 성경(혹은 토라)에 이런 말이 나올 리가 없고, 거의 대부분이 영화를 위해 새로 창작된 표현과 어구들이다. 굳이 저본을 꼽자면, 시오니스트 정치가, 유태계 러시아인인 제예프 자보틴스키가 쓴 '나지르인 삼손'이 있겠으나(영화가 나오기 대략 20년 전에 쓰임), 세실 B 데밀과 언제나 호흡을 맞춰 온, 그의 아들 같았던 스탭 프레데릭 프랭크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였기에 보통은 이를 원작 소설로 들지는 않는다. 이 디스크는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으므로, 바로 대사를 듣고 이해해야 할 소비자들을 위해 적는 정보다.
데릴라 역을 맡은 헤디 라마를 두고 이 영화의 히로인으로 꼽아야겠지만, 영화를 차분히 보다 보면 데릴라의 언니 세마다 역을 맡은 여인이 눈에 먼저 들어 올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앤젤라 렌스베리인데, 내가 며칠 전에 리뷰를 쓴 '내니 맥피'에서 아델레이드 노부인 역을 맡아 코믹한 연기를 보여 준 그 사람이다. 물론 '나일 강의 죽음'에서 엉터리 작가로 나와 많은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분이 그 리즈 시절에 이처럼이나 퍼펙트한 미모를 자랑했던지 몰랐던 이가 많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알 것 다 알 나이의 농익은 미모를 자랑한 라마가 30대 중반이었다면, 이때 그녀는 이제 甲子를 막 두 번 돈 나이였다. 여동생이 아닌 언니로 출연한 건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삼손에게 나지르인의 서약을 시키고 평생 머리를 자르지 않게 한 이는 바로 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사기(판관기)에 나와 있지 않다. 이 어머니의 이름을 영화에서 (하)젤렐포니라 지은 건, 유대교 전승을 따른 것이다. 어머니 역은 페이 홀든이 맡았는데, '애수'의 감독 머빈 르로이가 연출한 '애정은 강물처럼(1941)'에 새뮤얼 힌즈와 부부로 나온 그 사람이다. 나이 든 영화 팬 중에는 그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이가 제법 있을 것이다.
아직 '칼과 샌들' 장르가 본격 유행을 타기 훨씬 전부터 빅터 마츄어는 이런 장르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는데, 리처드 버튼과 진 시몬즈가 공연한 '성의'나, '검투사 드미트리우스'가 그 좋은 예다. 여기서 운명의 단짝으로 같이 나온 헤디 라마와는 거의 동년배였고, 묘하게도 빅터 마츄어가 죽은 그 이듬해에 라마도 사망했다. 이 둘이 함께 나온 영화는 그러나 이 작 한 편뿐이며, 개인적으로 그리 친한 편도 아니었다고 한다. 마츄어가 미국 중서부에서 나고 자란 반면, 라마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이민 온 케이스이다. 그러나 마츄어도 그 부친이 합스부르크 제국령 이탈리아의 신민으로 태어나 뒤늦게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었으므로(이걸 보면 진정 미국이야말로 이민자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가문의 내력으로 따지자면 역시 공통점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많은 이의 시선을 잡아채는 씬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블레셋 신전의 두 기둥을 잡은 채 다시금 제가 믿는 신에게 자비를 구하며, 아레나에 들어찬 이족의 원수들을 절멸시키는 그 장쾌한 볼거리가 아닐까 한다. 영화는 구약의 기술과는 달리, 눈이 뽑혀진 채 지하의 감옥에서 방아를 돌리는 비참한 꼴의 삼손에게 데릴라가 은밀히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있다. 악녀는 악녀로되 영혼 깊은 곳 그 일말에서 intergriity를 추구하는 묘한 면으로도 볼 수 있고, 배덕을 범했기로서니 마음 한편에서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던 삼손을 진심으로 사모했던, 어쩔 수 없는 천생 여인으로서의 모습도 드러내는 설정이라 하겠다. 잔혹한 장면은 나오지 않고, 벌겋게 단 칼을 삼손의 눈 앞에 갖다 대는 데서 화면이 바로 전환된다. 비명 소리 등을 통한 암시적 표현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징그러운 난쟁이들이 많은 관중들 앞에서 거인 삼손을 조롱하는 장면은,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해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내가 4년 전에 다른 디스크를 두고 리뷰를 적은 적 있으나 이제 새 상품을 감상했기에 이 란에다 다른 리뷰를 새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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