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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7 《평양의 여름 휴가》 유미리 글 이영화 옮김 도서출판615 2012.10.4. 나는 조국의 말을 모른다. 거리를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소리의 울림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얼굴과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빛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은 감정이 무의식중에 움직여질 때이다. 감정이 움직일 때만 셔터를 누른다. (25쪽) 운동복 차림의 청년들이 열 명 정도 둘러앉아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제히 얼굴을 숙여버렸다. 그들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로, 여기서 놀고 있는 게 알려지면 교수한테 혼나니까, 찍지 말라고 했다. (45쪽) 나 자신은 귀화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본에서 받는 ‘부자유’, ‘불공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귀화할 수는 없다. ‘부자유’, ‘불편함’, ‘불평등’ 입장을 계속 강요당하는 한, 일본은 내게 있어 ‘고향’이 아닌 ‘태어난 토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3쪽) 쉰 살을 맞이한 2018년 4월에 후쿠시마에 책집을 연 소설가 한 분이 있어요. 미나미소마시 간이역 한켠에 연 책집은, 핵발전소가 터지면서 와르르 무너져내려 쓸쓸한 그 고장 푸름이가 느긋하게 쉬면서 삶을 새롭게 꿈꾸는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흐른다고 합니다. 핵발전소가 터진 자취가 아직 뚜렷한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서 살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 고장에서 자라야 하는 푸름이를 헤아리는 마음이 놀랍구나 싶습니다. 한국에 이런 걸음을 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있을까요? 이 소설가는 이녁 아이한테 ‘어머니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느끼도록 이끌고 싶어서 남녘마실도 하고 북녘마실도 했다고 합니다. 소설가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지만, 일본 곁에 어떤 이웃나라가 있는가를 헤아리도록 이끌고 싶었다고 합니다. 《평양의 여름 휴가》(유미리/이영화 옮김, 도서출판615, 2012)는 책이름처럼 평양을 다녀온 자취를 남긴 글입니다. 글쓴이는 소설을 쓰는 유미리 님이고, 이녁은 재일조선인이라 하며, 아쿠타가와상을 받았습니다. 유미리 님은 남녘은 진작에 여러 걸음을 했으나 북녘은 제대로 걸음한 적이 없는 터라, 재일조선인이라는 삶에서 뿌리인 ‘한겨레’를 제대로 헤아리자면 남북 두 나라를 모두 걸음해야 한다고 여겼다고 해요. 무엇보다 글쓴이 아이가 남녘뿐 아니라 북녘도 같이 겪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북녘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소설가답게 찬찬히 엮어서 풀어냅니다. 북녘사람 누구하고나 홀가분하게 만나거나 이야기할 수 없고, 이른아침에 평양 시내를 달려 볼 수 없고, 평양 아닌 다른 고장에는 발을 디뎌 볼 수 없고, 일본으로 팩스를 보낼 수도 없고, 겨우 팩스 보낼 곳을 찾았더니 값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 ‘없고’투성이인 마실길이지만, 여느 남녘사람으로서는 아예 닿을 수 없는 곳을 보고 느낀 이야기로 어렴풋하게 ‘한겨레 이웃집’ 살림을 그려 봅니다. 북녘은 아직 자유가 묶인 나라입니다만, 자유가 묶인 곳에서도 대학생들이 풀밭에 모여 고기를 구워먹습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소설가 아줌마한테 대학생들은 ‘고기굽고 노는 모습’을 교수한테 들키면 꾸중을 듣는다며 찍지 말아 달라고 했답니다. ‘사진은 안 돼’가 아닌 ‘꾸중들을까 봐 손사래’는 사뭇 다르겠지요. 북녘마실을 다룬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북녘 소설가 한 사람이 남녘하고 일본을 마실하고서 꾸밈없이 글을 쓸 수 있기를, 또 이러한 글을 덜거나 빼지 않으면서 북녘에서 책으로 나와서 읽힐 수 있기를, 수수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거나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남녘·북녘·일본 모두에서 찬찬히 피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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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유미리 저 <평양의 여름휴가 : 내가 본 북조선> - 작가는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조국과 동포를 만나고 느끼면서 자신의 정신질환을 극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책 안 곳곳에서 밝힌다.
우리들은 일본에서 조선인 또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데, 힘든 이유 중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것도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사회는 특이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상존하고 섬나라의 일부 폐쇄성 극우 반공적 정서의 소유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남북한 전체에 대하여 식민지 시대의 차별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그런 일본인들로부터 작가 유미리씨는 평생 수시로 갖은 협박과 야유와 멸시와 비난을 당했기에 ‘조국’이란 술어가 주는 느낌은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작가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던 핏줄의 의미, 그 ‘마음이 조국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자각하는 과정이 감동적이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2008년 10월과 2010년 4월 그리고 2010년 8월에 북한을 방문했다.
작가가 첫 번째로 방문하던 2008년 4월은 국제 정세가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남동생에게는 방북을 알리지 않은 채 아홉 살이 된 아들을 맡게 된 동거인에게만 알렸다. ‘만약의 사태’까지 논의할 정도였다 한다. 체재기간은 열흘이었다.
책의 제1장은 첫 번째 방북기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특히 북한의 현대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중요한 관광지를 두루 돌며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주민 생활사와 역사의식이 소박하고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 북한에 웬만큼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그런 사실을 재일 동포 인기 여류작가의 시선으로 재확인한다는 점이 다르게 새삼 느껴진다.
작가는 열흘이 다가올수록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북한과 북한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할 생각이 없고 더욱 알고 싶기에 재방북을 결심한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어서, 이 나라는 내 조국이니까.”
첫 번째 방문에서 작가는 방북 목적을 ‘조국 방문’이라고 썼다. 작가는 자신의 국적은 한국인데 방문 목적을 ‘조국 방문’이라 한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설명한다.
“왜냐하면 조부가 일본으로 건너왔던 그때 조선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지 않았고, 장거리 주자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던 조부가 달리는 걸 그만 두고 조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해방 후 조부는 공산주의자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됐다. 인민군이 남하하면 투옥되었던 사람들이 인민군에 가담할 게 뻔하다며, 유치장을 통째로 불태우려고 가솔린을 뿌리고 수류탄으로 폭파하려 했으나 조부는 그 직전에 탈옥했다.-한국전쟁 초기에 이승만 정권의 교도소 학살 사건을 말하는 듯..- 조부의 남동생도 남로당 청년조직인 민주애국청년동맹의 간부가 되어, 장거리 주자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남한 군인들에게 사살당했다.)을 생각했을 때, 조부의 남동생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형제가 모두 북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p.14)
2010년 4월 작가는 북한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평양마라톤대회와 태양절(4.15) 기간에 맞추었다. 두 번째 방문을 다룬 제3장에서 인상 깊게 남은 대목은 재인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들의 일본으로의 귀화 상황과 작가의 입장이었다.
"1980년대부터 연간 5천 명 정도로 추이하고 있던 일본 귀화자 수는, 서울 올림픽ㅇ이 개최된 1988년을 계기로 7,8천 명으로 급증했고, 납치문제가 크게 보도된 2003년에는 11,778명으로 절정에 달했다. 나 자신은 귀화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본에서 받는 ‘부자유’, ‘불편함’,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귀화할 수는 없다. ‘부자유’, ‘불편함’, ‘불평등’ 입장을 계속 강요당하는 한, 일본은 내게 있어 ‘고향’이 아닌 ‘태어난 토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93)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반도 남단에서 친일파 후예들이 설치고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이 온국민을 부자유스럽고, 불편하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한국을 고향이 아닌 ‘태어난 토지’로 생각하도록 강요하여 작가와 같은 ‘유랑민’을 늘리지 않나 싶다.
2010년 8월 작가는 아들과 함께 세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대동강변, 모란봉, 을밀대, 백두산, 개선문, 아리랑공연, 푸에블로호 전시관, 판문점 등을 함께 다니고 경험하도록 한다. 아들을 북한에 데리고 간 이유에 대해 작가는 “최초로 조선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2년간, 나는 아들과 손을 잡고 대동강 강변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것은, 혈육을 나눈 아들에게 조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와 아들의 개인사를 조국에 대면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 말한다.
작가는 북한의 현실적인 여러 정황에 대하여 구태여 이해하고자 하지 않은 채 그냥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사실 그대로를 르포화 한다.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하기 보다는 일본사회에서 자란 자유주의자답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런 점이 오늘의 북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국가보안법’이 상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닌 적이 북한이요, 한 핏줄이라는 큰 깨달음으로 그의 아들에게까지 모국을 일깨워준 작가에게 존경을 보낸다. “서울에서 판문점과 개성을 가보았던 그가 다시 평양에 가보고, 그 두 가지 체험 속에서 진정한 조국과 민족이 무엇인가 깨달아가는 모습은,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현재 보다 ‘미래’에 속해 있는 젊은이들에게 참다운 민족적 화두 모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문병란 후기) [ 2014년 10월 0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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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조국’이야기, 유미리 작가의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를 읽고...
“ 대동강 버드나무 가지들이 마른 바람에 조금씩 일렁거리고, 매미들이 쉴 사이 없이 “맴맴”거리며 시끄러이 울어대는 대동강 강변 어딘가 적당한 곳에, 아니 이왕이면 버드나무 바로 아래에 미리 준비해간 돗자리를 펼친다. 어디든 놀러간다면 김밥부터 싸대는 내 야릇한 성미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열심히 말고 썰어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아놓은 김밥과 음료들을 꺼내어 놓고, 이제 막 옹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딸내미는 옆에서 연신 뭐라 뭐라 시끄럽게 재잘거린다. 항상 잠이 모자라 휴일이면 쉬고 싶어 하는 옆지기 신랑은 돗자리를 펼치자마자 그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잠시 쉬더니 이내 일어나 대동강 맥주 한 병을 따서 단숨에 마셔 버리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강물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올린 모습. 그것은 지금이라도 당장 북조선에 가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하고픈 일중에 하나, 다름 아닌 대동강을 바라보고 앉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는 일. 그리고 이러한 나의 꿈이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일상이 되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의 모든 것이자, 통일의 완성이 아니겠냐는 생각. 유미리.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라고들 했고, 이 책을 읽고서야 나는 그녀가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우리말, 우리글을 전혀 모르는, 그러나 그녀의 조부와 부모의 고향은 경남 밀양인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미리, 그녀는 그녀가 불혹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인 2008년 조선민주주의공화국 평양의 첫 방문을 시작으로 세 번의 조국 방문을 통해 그녀의 조국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녀 자신의 뿌리 찾기’ 혹은 ‘정체성 찾기’에 나서게 된다.책 속에서 그녀는 한국은 꼬박이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북조선에 대해서는 꼬박 꼬박 ‘조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조국(祖國)이라... ‘할아비조’에 ‘나라국’자를 쓰는 조국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단어 설명이 이렇게 되어 있다. (1) 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 또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2) 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분리되어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 그 본디의 나라. (3) 자신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냉정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전의 뜻에 좀 더 잘 부합하려 한다면 그녀 자신에게 조국은 남조선인 한국이어야 하는데, 그녀는 왜 꼬박 꼬박 한국은 그저 ‘한국’이라 칭하면서 북조선에 대해서만 유독 ‘조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현재 유미리, 그녀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라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조부와 부모 모두 고향이 경남 밀양으로 그녀의 뿌리가 되는 이들의 고향 또한 한국이거늘, 그녀는 굳이 그녀의 인생에 단 세 차례 방문했을 뿐인 북조선을 ‘조국’이라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그녀가 왜 그리 칭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조국은 그저 자신이 태어나거나 조상들이 태어나 자란 나라 혹은 국적을 가진 나라가 아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워 주고, 그녀 스스로에 대한 뿌리를 찾도록 해 준 나라, 우리말, 우리글도 모르는 재일교포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새로이 깨어나게 해 준 나라가 바로 북조선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칭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열 번 이상 다녀간 한국에서의 기자회견 때마다 ‘왜 한국말을 배우지 않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본인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에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고 대답했다던 그녀가 2008년 북조선을 처음 방문하고 난 후, 우리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인즉슨, 대단한 무엇 때문이 아니라,북조선 사람들과 통역 없이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명태를 씹으면서 우리말로 이야기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세 번의 조국 방문기를 통해, 그녀가 본 북조선의 모습 그대로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그녀가 바라본 북조선의 모습은, 미국이 항상 전 세계를 향해 떠들어대는 ‘악의 축’ ‘불량국가’ ‘깡패국가’의 모습이 아닌, 그저 따뜻하고, 순박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조선 이라는 것을, 그곳에도 사람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준다. 대동강 강변을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 강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평양거리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유원지 놀이기구를 타며 즐기는 모습 등등의 어찌 보면 꽤 사사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소개하며, 북조선, 그곳에도 ‘괴물’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음을, 그 사람들 또한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살 당연한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며,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평화로이 살아가고 있음을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각인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 유미리 작가가 만난 이옥기라는 사람. 그녀는 조선대학교 문학역사학부 강사이며, 67세의 여성이라 했다. 조선노동당 당원이었던 이옥기씨의 부친은 미군에게 붙잡혀 고문으로 양쪽 귀를 절단당한 뒤 살해되었고, 부친이 사망한 이틀 뒤 음식물을 가지러 집에 돌아온 7살 된 옥기씨를 붙잡은 미국 치안대는 “공산당 딸은 불행해져라. 한 평생 고생해야 해”라고 하면서 양팔 팔꿈치 부근을 톱으로 절단했다고 했다. 기적적으로 생명만 건진 옥기씨는 부친과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장애를 극복하고 입과 다리로 연필을 쥐고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민군 장교 남성과 결혼을 하고, 세 명의 딸을 낳아 이름 또한 ‘복수하리라’라는 글자를 셋으로 나누어 ‘복수’ ‘하리’ ‘라’라고 각각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만약 지금 그녀의 부친을 죽이고, 그녀의 팔을 잘라낸 미군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너에게 아버지를 빼앗기고 양팔을 빼앗겼다. 그러나 너는 내게서 행복을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너에게 이겼다. 너는 내게 졌다.”라고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했다. 나는 이옥기라는 분의 이야기에서 유미리 작가가 느낀 느낌, 충격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이옥기씨에게 있어 자신의 부친을 죽이고,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든 미군이라는 적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그녀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더 행복하게 살아남아 그녀의 모든 것을 통렬히 빼앗으려 했던 원수에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삶” 전체로 충분히 복수 했다고 생각하는 것 이었다. 유미리, 그녀는 이러한 북조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듯하다. 늘 뿌리도 없는 존재, 들풀처럼 자라난 재일교포 존재의 모습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있어 북조선은 그야말로 우리말을 배우고 싶게 하고, 대동강 강변을 떠나고 싶지 않게 하며, 소소한 일상을 누리며 따뜻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녀만의 ‘유일한 조국’이었던 것이다. 유미리, 그녀가 2010년 8월 마지막으로 북조선을 다녀온 이후, 여전히 남과 북은 분단국가이고, 여전히 남조선과 북조선은 갈라져 있으며, 남한에 있어서 북한은 국가보안법상 ‘주적’으로 규정되는 나라이다. 2011년 ‘우리 민족 통일, 평화만세’라고 외치며 분단의 벽을 넘었던 한상렬 목사님은 2013년 4월인 지금에도 여전히 남한의 감옥 안에,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쓰고 갇혀 계시고, 수많은 양심들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막걸리 법으로 인해 무자비한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으며, 또 수많은 양심들이 남한 이곳저곳 교도소에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이후 다시 ‘빨갱이’ 마녀사냥에 들어간 남측 정부는 2013년 여전히 ‘종북’ ‘빨갱이’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안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는 언제 다시 ‘전쟁’이라는 단어를 져버리고, ‘평화’라는 이름을 영원히 정착시킬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는 상당히 불안하고, 어려운 미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유미리, 그녀가 책 속에서 담담히 이야기 한 모습들, 그것이 바로 평화이건만,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처음 떠올린 모습들, 그것이 바로 통일이건만, 이 당연하고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길을 돌고 돌아 우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 암담하기만 한 요즘, 다시 간절히 평화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통일을 생각한다. 유미리, 그녀가 이야기한 일상들, 명태포 씹어 먹으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고,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강변을 거니는 일,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더운 땀을 식히고, 손잡고 한강 강변을 거닐며 맥주 한 캔 나눠 마시며,경의선 열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서울을 지나 저 남쪽까지 여행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일. 우리 모두의 삶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평화. 그것이 바로 통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 모두의 행복.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유미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미가 날아갔다’ 일본에서 요소모노(아웃사이더)인 본인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조국에서의 매미소리, 그것은 그녀를 더 이상 요소모노(아웃사이더)가 아닌, 다시 ‘유미리’라는 사람, 그 자체의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올해 여름, 7월이 오면 나 또한 창문을 가만히 열고, 매미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그리고 나지막이 소리쳐 봐야지. ‘매미가 날아갔다.’ 그리고, 매미소리에 유독 귀를 기울리던 유미리, 그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내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그날은 바람이 좀 더 살랑이면 좋겠고, 매미소리가 내 방안 가득 울려 퍼졌으면 좋겠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진정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