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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기는 사라져 버려야 하니까. 난 이 세기가 죽어 없어지는 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에 조금이라도 복수하는 것이 될 테니까. 죽지 않고 버텨 내서 그것을 직접 묻어주고 싶어" …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 때문에 허기가 질 정도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종착이 있다. 그러나 어떤 종착이든 그 종착이 완전한 종착은 아니다. 인생은 열차 레일처럼 더 이상 갈 수 없는 레일의 끝이 명확하게 보이는 사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호프만의 마지막 기도 역시 지나간 과거를 종결짓는 것으로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소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 호프만은 그렇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분할한 시간의 단위인 20세기라는 한 세기가 그에게 잊고 싶은 참혹한 기억의 수렁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과연 그가 묻으려는 한 세기가 그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기와 허무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지 그것은 소망일 따름이다.
전쟁, 부모의 가스실 죽음, 고아됨, 돼지농장에서의 빈한은 호프만의 허기를 유발했던 원인의 일부였다. 아름다운 여인과의 결혼과 천사같은 쌍둥이 딸의 성장과 함께 보낸 짧은 10여 년의 기간이 그의 인생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1968년 딸 에스터가 백혈병으로 죽고 그는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한다. 딸의 죽음은 가족 모두를 병들게 했다. 남은 딸 미리암은 끝없는 방황 끝에 마약중독으로 10대에 죽고 만다. 부부는 부부가 아니다. 그는 채울 수 없는 공허는 허기가 되고, 그 허기는 대식증을 유발한다. 허기가 허기를 낳고, 허기가 허기를 낳고... 원인과 결과의 대혼돈이 온 것이다. 이런 그를 허기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것처럼 보였던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가 그가 20년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그는 국가의 반역자가 된다. 그는 한 나라의 대사였지만, 조국도 없고, 사랑도 없는 영원한 도망자일 뿐이었다. 운명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이미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정확히 5년 전 이맘때 이 책을 읽었다. 네덜란드에서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90년, 그러니까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지고 유럽이 일대 격변을 체험하던 시기이다. 역시 1989년 격변기의 체코와 주인공을 대사로 체코에 파견한 나라 네덜란드가 무대이며 배경이다. 각 장은 '1989년 6월 21일 밤'이라는 제목을 가진 제 1장으로 시작해서 '1989년 12월 31일 저녁'이라는 제 18장까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단지 6개월의 기간만이 소설을 구성하는 시간의 배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간은 2차 세계대전의 폭발음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흔과 후유증이 1989년과 그 이후 상상 속의 2000년까지 이어지는 오랜 기간을 포함한다. 이 시기는 20세기 격변의 한 가운데 서서 가장 극심한 비극을 맛보았던 유대인의 정체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작가 드 빈터가 일부 자전적 요소를 내세워 창조한 인물 호프만이 작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며, 또한 소설 속에서 호프만을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부터 구출하는 사상적 메시야 역할을 하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 역시 네덜란드의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호프만이 경험하는 허기는 모든 보편적 인류의 것이기도 하다. 모든 세기를 살았던 모든 인류, 그러나 특히 20세기를 살고 경험한 세대가 짊어져야 했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치밀한 조직력을 갖고 있다. 과거와 현재 어느 시간을 종횡무진 거슬러 올라가도 조금도 무리가 없다. 주인공 호프만의 이야기이지만,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도 예상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호프만을 둘러싸고 그의 이야기를 부각시켜 주는, 맞물림이 정확한 톱니바퀴와 같다. 스피노자의 『지성의 개선에 관한 논고와 사물에 대한 진정한 자각으로 가장 잘 인도해 주는 과정에 대한 논고』는 호프만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전개된다. 소설 초두에는 이 근대 철학자의 등장이 소설의 흐름과 어떤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흘러감과 논리의 전개 속에서 스피노자의 논조가 호프만이 살았고, 또 살고 있는 삶의 현실을 300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 드 빈터는 철학자의 매 문장들마다 친절한 해설을 달아놓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 호프만의 생각을 빌어서 말이다. 작가 드 빈터의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 역시 많다.
책이 출판되고 네덜란드와 전 유럽에서 받은 격찬이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와 비견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996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을 때에도 기대와 관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이 상용되지 않던 시대의 유품 이어서인지, 지금은 활기찬 인터넷 서점들의 관심에서 확연히 멀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상깊은구절] 이 세기는 사라져 버려야 하니까. 난 이 세기가 죽어 없어지는 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에 조금이라도 복수하는 것이 될 테니까. 죽지 않고 버텨 내서 그것을 직접 묻어주고 싶어" …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 때문에 허기가 질 정도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