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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 : 성리학을 달리 부르는 말. 南宋(남송) 때 朱熹(주희)가 主唱(주창)한 理氣二元論(이기이원론) 및 居敬窮理(거경궁리)의 儒學(유학). 주희의 자는 元晦(원회)이며 李?(이동)에게 修學(수학)하였음. 敬(경)자는 주자학의 근본 요점이고 중요한 생활태도이기도 함. 孔子(공자)의 사상을 주로 하고 있으나 往往(왕왕) 老子(노자) 佛敎(불교)의 所說(소설)과 비슷한 점이 있음. 주자학은 道學(도학)이라고도 하며 또 그 학문이 두 程子[程顥(정호), 程?(정이)]에 淵源(연원)을 가짐으로써 程朱學(정주학)이라고도 함. [네이버 지식백과] * 성리학=주자학 : 중국 송나라ㆍ명나라 때에 주돈이(周敦?), 정호, 정이 등에서 비롯하고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역설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고, 길재ㆍ정도전ㆍ권근ㆍ김종직에 이어 이이ㆍ이황에 이르러 조선 성리학으로 체계화되었다.[표준국어대사전] * 양명학 : 중국 명나라 때에,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했던 새로운 유교 학설. 마음 밖에 사리(事理)가 따로 없으며 사람마다 양지(良知)를 타고났으나 물욕이 있는 탓에 성인과 범인(凡人)이 구별되는 것이므로 물욕의 장애를 물리칠 때 비로소 지행합일이 된다고 하였다.[표준국어대사전] 우리의 전통적 사고와 사유에서 무속, 불교, 도교, 유교를 빼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중 조선 500년을 이어져 오면서 조선은 공자의 유교를 받아들이고 성리학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인·의·예·지·신을 중심으로한, 그 중에서도 유독 충과 효를 강조하는 사회를 만들어갔다.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깊이 흐르고 있는 유교적 전통의 역사적의 의의, 그리고 의미, 그리고 철학 등을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만한 책 <주자학과 양명학>이 새롭게 다듬어져 출간 되었다. 중국의 주자학과 양명학에 관한 책을 일본 사학자 시마다 겐지가 쓴 <주자학과 양명학>은, 이미 50여년전 쓰여진 책으로 저자가 강의용으로 저작되었던 다양한 것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자의 사상이라는 주자학, 우리에겐 성리학으로 더 친근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 등장하는 양명학은 우리나라에선 사대부들에게 유교적 학문으로 친숙했던 사상들이다. 사실 이때부터 우리의 사상이 조금씩 중독되어 병이 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자의 유교적 논리들이 사대주의적 사고에 파묻혀 철학적 사유보단 정신과 삶의 구속에 가까운 것으로 정치적 논리에 의해 천착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할 수있도록 도와 줄 만한 책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 이라는 것이 새삼 기이하다. 본토의 저술가들의 이야기가 아닌 일본인 학자의 사고로 바라본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의 주자학과 양명학도 아닌 것이다. 책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져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1장과 송학의 완성으로 주자학이 형성되어져가는 과정을 그린 제2장,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를 그리고 있는 제3장순으로 쓰여져 있다. 저자 시마다 겐지는 "일번의 중국사학계에 새로운 연구방법을 도입하면서 '사상사'라는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다. 그는 업계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2000년에 사망하였다 한다. 다시말해 일본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선 대가라는 이야기겠다. 책은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 다시 말해서 중국 근세 유학의 흐름을 '내면주의의 전개'라는 견지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주자학은 "불교 및 장자의 도교의 영향 하에 그 부정적인 면을 넘어서길 의도하면서 유교적 인륜의 재정립을 목표로 전인합일의 사상에 기초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천 또는 천지의 이법과의 관계를 근거로 하였다. 그 이론체계는 이기론 또는 이기이원론이라고 하는 존재론에 입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주자학은 천지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학문의 전통을 위해서, 또 만세를 위해서라는 것 같은 규모가 웅대한 정신, 바로 그런 것이 매우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중일 삼국의 주자학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이겠다. 물론 기본적 의미는 같지만 말이다. 책의 전반적으로 흐르는 기저의 내용이 그러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본인 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자학의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조선, 일본 등 널리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있어서 주자학은 중세까지 불교를 대신하는 보편사상으로서 수용되었지만 점차 정치사회를 주도하는 이념으로 정착하게된다. 우리나라만 본다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회자되는 이퇴계(이황)이라든가, 이율곡(이이) 등이 대표되는 인물들이다.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선승들에 의해 주로 계승되었다하며 독창적인 사유로 발전되었으며 다양하고 넓은 계층의 사람들의 정신형성에 기여하였지만 관념적이고 표층적인 수용에 그친 면도 있다 한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의 사상세계는 주자학을 기축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다(21세기정치학대사전). 저자와 공감이 형성되는 이야기이다. 주자가 죽고 난 이후 원나라에 의해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과거시험이 부활하며 중국의 주자학은 다시금 위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주자학을 기반으로 양명학이 왕양명에 의해 새롭게 새로운 유교의 모습을 선보이게된다. 주자학이 대세이던 시기에 주자학으로부터 사유하던 왕양명이 주자학의 한계에 부딪혀서 죽음을 무릅쓴 사색 끝에 난관을 뚫고 나가서 '심즉리'라는 원리를 끄집어 낸 것, 그것이 양명학의 시초가 되겠다. 주자의 '격물치지'에 '격물'-'사물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것' 다시말해 '격물'이란 사물의 리(理)를 (온전히) 궁구하여 언제나 그 지극한 데에까지 이르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두 학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라는 '리'의 개념 파악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조선은 양명학을 그리 대접받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급진적인 사상과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알듯도 하다. 기득권에의 도전과 기득권의 상실이 싫었던 것일게다. 책 <주자학과 양명학>은 한중일 삼국의 사상사에서도 비교해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그 영향으로 한중일 삼국이 어떠한 변모를 해왔는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의 피를 타고 흐르는 유교적 사고의 흐름이 어떠한 흐름인지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책을 통해 동아시아의 주자학의 비교 연구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저자 역시 동아시아의 주자학연구를 먼저 해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있기도 하다. 책은 개인적 지식의 축적을 위한다기보단 학문의 역사적 접근으로 다가서는게 옳을 것이다. 이 책은 주자학과 양명학을 사상적 학문적으로 다가서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더나아가 한중일, 혹은 동아시아의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 깊이를 더하여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여 본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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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증오, 현대적 관점에서 이 같은 사상이나 이념이 준 부정적인 요소의 부각으로 인해 저평가 받거나 예전의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 같은 사상이 당시에는 어떤 영향력을 제공했으며 관련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사회는 어떻게 변했는지, 종합적인 관점에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도 주자학과 양명학을 소개한다. 사상의 본질이나 의미에 대해 무조건 알아야 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국의 세상의 전부이자 중심이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그들의 사상과 문화를 배우며 국가관이나 사회의 질서 및 사람들의 모습을 구현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유교가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나 영향도 우리는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유교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사대의 나라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재평가, 이는 조선의 멸망과 바다를 버리는 해금정책으로 인해 명과 함께 나란히 몰락의 길을 걸었던 부끄러운 우리의 마지막 왕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서 그럴 것이다. 물론 기득권의 횡포와 이런 철학과 사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하며 백성을 탄압했기에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분명 현대적 관점에선 맞지 않고 오히려 융통성이 없다고 멸시받는 학문인지 모른다. 중국도 현대화 과정에서 이런 문화적 갈등과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은 유교철학이 주는 본질적 가치에 대해 다시 배우려 한다. 또한 이 같은 사상을 창립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회와 사람, 국가 등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독자들이 읽기 어렵고 난해한 학문인 주자학과 양명학, 역사공부를 해도 간략하게만 언급될 뿐 크게 부각되지도 않지만 역사적 의미에서나 현대적 관점에서나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철학의 본질적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향한 기존 세력의 거부, 하지만 새로운 것을 통해 세상과 사회를 바꾸려 한 또 다른 세력들의 존재, 역사적 의미가 강하지만 학문적 관점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사상적 이론이나 논리가 무엇인지 책을 통해 쉽게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자학과 양명학, 가볍게 읽어 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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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는 인기가 없는 죽은 언어지만 소수 먹물에게는 여전히 즐거운 언어다. 마찬가지로 주자학과 양명학은 인기가 없는 죽은 학문이지만 소수 교양인에게는 여전히 즐거운 학문이다. 적어도 내겐 그러하다. 주자학은 지금이야 대중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고루한 학문이겠지만, 조선 시대만 해도 주자는 오늘날의 방탄소년단보다 더한 우상 중의 우상이었다. 대담하게 주자의 말씀에 악플을 달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주리를 틀리고 참수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조선 선비에게 주자는 기독교 신자의 예수, 이슬람 신자의 마호멧과도 같은 신성불가침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반면에 양명학은 주자학을 신봉하던 조선 시대에 마치 오늘날의 이적단체나 국방부 검증 불온서적과 같은 이단이었다. 거경궁리, 양지, 지행합일처럼 윤리학에 집중된 주자와 양명의 담론은 바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자의 걱정과 양명의 고민이 인간다운 삶을 중시하는 나의 걱정과 당신의 고민과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 현대 중국 철학은 유물론을 유심론보다 높이 평가했다. 송명 신유학에 대한 평가도 그런 편견을 보인다. 기(氣)의 철학을 이(理)의 철학보다 높이 평가하는 셈이다. 지금까지도 대륙에서 출판된 송명이학 관련서보다 대만과 일본, 미국에서 출판된 텍스트가 보다 더 객관적이고 수준이 높다. 동양사학자 시마다 겐지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내면주의의 전개'라는 견지에서 파악하고, 성즉리(性卽理)의 주자학과 심즉리(心卽理)의 양명학을 송학의 양대 유심론으로 본다. "현대 중국 학계에서는 중국철학 역사에서 크게 세 갈래의 흐름을 인정하며, 이천과 주자의 '성즉리'의 철학을 객관유심론, 육상산과 왕양명의 '심즉리'의 철학을 주관유심론, 그리고 장횡거와 그의 사상을 훨씬 이후에 계승했던 명말청초의 왕부지의 '기'의 철학을 유물론이라 하고, 그중에서 유물론 철학이야말로 최고의 것이라며 장횡거의 철학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112쪽) 그런데 저자는 흥미롭게도 이런 일반 통념과는 달리 양명학이 주자학보다 더 객관유심론에 가까운 것이 아닌지 살며시 반문한다. 우선 송학의 특징으로 정통주의의 확립, 도덕과 정치의 일치(수신·제가·치국·평천하), 사변주의를 꼽고, 주자학의 선구자인 '북송오자'의 철학을 간략히 소개한다. 북송오자란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 장횡거, 소강절을 말한다. 물론 신유학의 한참 대선배라 할 수 있는 한유의 노장 비판과 불교 비판을 언급하면서, 유학의 문명주의와 정치주의 혹은 인륜주의적 특성을 강조한다. 하기사, 유불선의 애증 관계는 언제나 신유학 관련서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테마다. 한편, 태주학파와 이탁오를 대표로 하는 양명학 좌파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현대(1960년대) 중국 학계에서는 양명학 좌파가 유물론을 주장했다고 보고 왕양명의 주관유심론과 철저히 분리하려 들지만, 저자는 이탁오야말로 왕양명의 적자라고 주장한다. 이탁오의 대표적인 문학론인 '동심설'은 양명의 '양지'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아울러 자세한 논증의 과정은 생략되었지만, 청대의 고증학이 양명학과의 인식론적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명나라 심학의 연속이며 전개였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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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이 책은
이 책 『주자학과 양명학』은 이 책 표지에 적힌 소개글 ‘시대의 요청과 새로운 질서,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시선!’이라는 말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두 사조인 주자학과 양명학을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인 시마다 겐지, <1917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전공은 중국사상이며, 동양사학자,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사학과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기도 했다. 1940년대 중국 근세 · 근대사상사 연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의 중국 근세 · 근대사상사 분야를 이끌어왔다. 2000년에 별세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 송나라 이후 중국은 사대부들의 천하가 되었다. 사대부들의 철학과 사상 이데올로기를 넓은 의미의 송학이라 할 수 있는데, 송학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274쪽)
첫째는 장재(張載, 張橫渠)가 세운 유물론, 즉 기의 철학이다. 둘째는 정이가 시작해서 주희가 완성한 객관유심론 즉 성즉리의 철학이다. 이를 주자학이라 부른다. 셋째는 육구연에서 시작하여 왕양명이 계승한 주관유심론, 즉 심즉리의 철학이다. 이를 양명학이라 부른다.
이 책은 위의 세 가지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주자학과 양명학을 다루고 있다.
그럼 주자학(朱子學)은 무엇인가
주자학은 송나라의 유학자로, 그 이름을 떨친 주희(朱熹, 朱子, 1130-1200)가 수립한 학문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주자가 말하는 존재론부터 윤리학을 거쳐 고전 주석학에 이르기까지 주자학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다.
주자학(朱子學)은 그 영향을 미친 곳이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우리나라 조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자가 죽은 것은 1200년, 그때까지만 해도 주자학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지 못했다.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가 중국의 지배자가 된 후, 1314년 원나라가 오랫동안 중단했던 과거를 다시 시행했을 때, 사서(四書)를 채택하고 또한 그 주(注)를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그 밖의 오경(五經)에 대하여도 종래의 학설이었던 한나라와 당나라의 주석 대신 주자와 그의 제자들이 만든 새로운 주(注)를 지정 사용하도록 하였다.(203쪽)
사서 오경을 해석함에 있어, 그 때부터 주자의 해석을 통설로 하였다는 말이다. 주자의 해석을 제일 권위있는 학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당시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는데 주자의 학설을 위주로 공부하게 되었고, 이 말은 주자학이 과거의 시험이 됨으로써 압도적인 권위를 가진 학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자학,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 주자학이 대체 무엇이기에, 조선 시대 선비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었을까 왜 송시열은 주자의 견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윤휴를 사문난적이라 해서 죽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주자와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윤휴는 주자(朱子)에 대해서 반대하고 거슬려서 장구(章句)를 마구 뜯어 고쳤으며, 《중용(中庸)》에 이르러서는 주(註)를 고친 것이 더욱 많았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자사(子思)의 뜻을 주자가 혼자 알았는데, 내가 혼자 모르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의 반적(叛賊)이며 (……) (숙종실록 3년 10월 17일, 조선왕조실록)
결국 주자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했다고, 윤휴는 사문난적으로 몰린 것이다.
유학에 대한 주자의 견해인 주자학이 대체 무엇이기에 나의 의문은 거기에 있었다. 공자의 말씀을 나름 자기 식으로 해석한 것이 주자학이라면, 주자가 신이 아닐진대 주자의 의견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자연 주자학과는 다른 편에 선 양명학에 관심이 가게 되고, 그의 생각을 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조선시대, 학설이 다르다고 사람 목숨를 뺏을 정도로 다른 것이었나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는 성즉리와 심즉리로 그 차이점을 말할 수 있겠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성즉리(性卽理)란 다음과 같다.
리(理)는 개인의 내적인 리(理)인 동시에 외적인 여러 사물의 리(理)이기도 하다. 사물을 지극히 궁구함으로써 앎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적인 리(理)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외적인 리(理)도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213쪽)
여기서 ‘외적인 리(理)’라는 것은 ‘사물에 대한 리(理)’를 말한다. 그래서 역시 주자학에서 출발한 왕양명 역시 천하의 사물을 격물(格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격물(格物)이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끝까지 따지고 파고들어 궁극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우선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격물한 것인데, 그는 그렇게 격물한지 7일만에 병이 나고 말았다. (213쪽)
주자는 격물을 해석하기를 천하의 모든 사물을 궁구한다, 즉 격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천하의 모든 사물을 하나하나씩 따지고 파고들 수 있겠는가? (215쪽) 왕양명이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따지고 파고 들다가 병이 난 것,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주자의 학설은 ‘밖’으로 ‘안’을 보충하는 것이 불과한 것이다. 결국 왕양명은 그러한 주자의 격물에 대하여, ‘심즉리(心卽理)’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18쪽)
그래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주자학과 양명학은 목숨을 걸고 다툴만한 차이점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양명학을 주자학과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형이상학을으로 보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오히려 주자학이 전개되는 연장선 위에서 양명학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343쪽)
이런 저장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나라 선비들은 본질을 보지 않고 말단 지엽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싸운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이 책은
나의 관심은 주자학, 양명학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단지 그런 사상이 당시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더하여 그 두 사상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 윤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문난적 사건에 대하여 궁금증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의문에 이 책은 훌륭하게 답을 주고 있다. 그것으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또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하여 깊은 논의 또한 전개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독자들의 궁금증도 충분히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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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동양철학이라 분류하는 '성리학'에 대하여 어쩌면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이에 고루하고 또 낮선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다르게 표현하자면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의 성리학이란 어떠한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면... 결국 이를 어렵고 또 '잘 모르겠다' 할 현대인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동양(또는 대한민국 속의)의 사회와 또 개인의 품성에 영향을미치는 도적적 관점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큰 역활을 하는 것이 바로 유학이라 불리우는 이 책 속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능력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일반적인 인식에서도 이 유가의 철학은 이후 (제목의) 주자학과 양명학 등으로 구분되어, 하늘의 도리와 인간의 근본을 연구하고, 정의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세분화가 진행되어 왔다(또는 발전되어 왔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감상 중 하나다.
이처럼 신 유학으로 분류되는 주자학이 그 발상지인 중국을 넘어, 저자의 조국인 일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하였는가? 에 대하여, 저자는 나름의 연구와 해석을 드러냄과 동시에, 특히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세분화되어가는 와중에서 그 차이점은 어떠한 것에서 드러나게 되는가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도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일까? 때문에 나는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다만! 유학의 발전사에 있어서, 초기 자연철학의 발전과정과 함께, 이 유학 또한 세상의 본질을 파악함과 동시에, 이후 등장하는 불교와 같은 다른 형태의 철학적 개념과도 충돌함으로서, 결국 이에 어떠한 것을 배척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서 발전한 것이 바로 위 두개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데는 나름 이해를 했다고 본다. 이때 나는 이 내용을 바라보면서 그 두개의 차이점을 느낀다. 예를 들어 하늘과 땅. 이에 만물의 근원과 인간 내면의 원리를 추구하는 접근에 있어서, 분명 이 두개의 학문은 (전통적) 유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끝없는 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과, 양심과 도덕성에 기초해 실질적 실현을 이루려는 노력의 차이는 결국 최고와 최선에서 출발하려는 (다른) 시각차를 보여주면서, 이에 서로의 한계(논리의 모순점)에 대한 비판과 보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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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겐지는 1941년 교토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도카이대학 교수를 거쳐 교토대학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1년 퇴임, 2000년 사망하였다. 그는 중국 근세와 근현대 사상사를 연구하는 일본의 대표적 학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 방치되어 잊혀가던 책을 새로 다듬고 번역하여 출간해준 김석근은 일본의 주요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긴 분이다. 덕분에 2020년에 새로이 <주자학과 양명학>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1장에서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 송학의 형성, 리의 철학과 기의 철학과 같은 새로운 철학의 출발을 다룬다. 2장에서는 송학의 완성 주자학에 대해서 논하고 3장에서는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에 대해서 말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선이 갈린다. 궁극적으로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학문을 연구하지만 주자학의 기본명제는 "본성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성즉리'이고, 양명학의 기본명제는 "마음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심즉리'이다. 주자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각각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엄격한 도덕주의로서 이치를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격렬할 것 같으나 오히려 악에 대한 정의는 덤덤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양명학은 모든 이치가 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으로 봤다. 내면주의의 절정을 양명학으로 보기도 하였는데 때문에 주자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인 사사로운 감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는데 그 후에 비로소 본연의 감정이 나타난다고 보아 천리인욕설이 무의미해지기도 했다. 악에 대해서도 주자학과 달리 어떤 하나의 계기로 긍정적인 의미로 품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심즉리의 이치에 따라갈 수록 너무나 권위에 대한 경시, 이단에 대한 포용적 태도가 문제가 되었고 위험성이 높다고 보여졌다. 주자학과 양명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변질되어왔는가를 역사적 시점에 서서 정리하는 작업을 보면서도 완벽히 이해하리란 쉽지 않았다. 다만, 두 사상적 유산이 오늘날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한계점이나 풀리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오래된 번역을 검토하고 다시 확인하여 책을 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역사적으로 의미깊은 학문에 대한 공부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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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살아오면서 주자학이나 양명학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하였고,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읽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훌륭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 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주자학과 양명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일본 학자의 시선에서 보는 주자학과 양명학은 어떤지도 알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책에서는 새로운 철학의 출발, 송학의 완성 주자학,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의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송학은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송학의 완성이 주자학이 됩니다. 책의 시작부분에서 중국 주자학과 일본의 주자학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본 주자학에서는 천지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학문의 전통을 위해서, 또 만세를 위해서라는 것 같은 규모가 웅대한 정식이 매우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중국 최대의 사상가인 주희는 송나라가 남방으로 천도하여 남송이 되었을 무렵에 사대부들 사이에서 많은 신봉자가 생긴 도학을 수미일관된 체계를 갖추게 하여 주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사상가 주희를 존칭하여 주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자학의 내용은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리기’설이라는 존재론, 주자학의 중심이기도 한 ‘성즉리’의 설이라는 윤리학, ‘거경, 궁리’설인 방법론, 고전주석학 및 역사책과 같은 저술, 과거에 대한 의견이나 사창법, 권농문, 기타 구체적인 정책론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책에서는 이 다섯 가지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일기, 음양, 오행, 만물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200년에 주자가 죽고 1427년에 왕양명이란 자가 태어납니다. 그는 어린시절에는 학문 보다는 전쟁놀이를 좋아했다고 하며, 나중에 문관이 된 뒤에도 수 많은 반란을 진할 할 정도의 무공도 지녔다고 합니다. 그의 학문도 주자학에서 시작하였지만 그 한계에 부딪친 후에 죽음을 무릅쓴 사색 끝에 ‘심즉리’라는 원리를 끄집어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양명학의 다양한 사상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서 만들어졌고, 그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주자학과 양명학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생각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생을 바쳐도 터득하기 힘든 학문을 책 한 권으로는 힘들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주자학, 양명학이란 것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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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은 책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중요한 사상인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 수 있는지, 생활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철학' 이고, 특히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사상이 바로 '주자학' 과 '양명학' 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자학과 양명학' 은 새로운 철학의 출발, 송학의 완성- 주자학,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로 나누어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같은 유학이면서 주자학과 양명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과 견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성즉리와 심즉리라고 하는 것은 리학과 심학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주자는 '성은 리이다. 심에 있는 것을 '성' 이라하고, 모든 사람과 상태에 있는 것을 '리' 라고 한다' 고 하였다. 주자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성, 즉 본체로서의 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것이 곧 본연의 성이고, 성의 본래 상태를 말한 '성은 사람이 태어나면 품수받은 천리이다' 라는 말에 따를 때 인간의 성은 다름 아닌 하늘의 '리' 라는점과 주자는 사람과 사물이 형성될 때 거기에 리가 천으로부터 부여 되어 깃들인다고 생각하였고, 사람의 경우 그것이 사럼의 본성이라는 것에서 성즉리는 성이 심에 내재한 '리' 이고, 본래 성의 본체인 리는 인, 의, 예, 지, 신으로 각각의 경계가 있고 성정, 체용의 구별도 인으며 인과 의라는 경게가 있다는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왕양명은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마음을 둘로 나누는데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만의 이론체계를 확립하면서 도덕원리르 마음 밖에서 찾는 것을 반대하고 격믈에 대한 해석을 주희와 다르게 했다는점을 알 수 있었다. 성만을 '리' 로 보고 마음을 인식주체로 보는 주자와는 달리 양명은 마음이 곧 '리' 이며 마음이 곧 성이라하여 마음과 리와 성을 한가지로 보았다는점에서 양명학에서는 주자학과 달리 대상 사물에 있는 것이 '리' 가 아니라 마음이 사물에 있는 '리' 가 된다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 본심이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해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성찰을 통해서 사사로운 욕망을 제거하고 본심을 회복하고 이러한 본심이 실현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정진해야 한다는점을 배울 수 있었다. '주자학과 양명학' 을 통해 주자학과 양명학이 성립되는 과정과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같으면서도 어떻게 달랐는지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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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제목만 들어도 고리타분한가요. 이책은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쓴 중국사상사입니다. 1900~1940경에 일본학자들의 엄청난 작업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이 당시의 학계의 활약이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과 맞짱을 뜰수있게 만든 저력이 생겼습니다. 일본의 학문적 영향력에서 저자는 1967년 초판을 이와나미시리즈로 출판했죠. 주자학과 양명학은 소위 한족들이 득세를 했던, 송명시대에 확립된 사상입니다. 주자학은 송대, 양명학은 명대죠 두사상은 정반대의 논리가 있죠. 양명학의 등장부터가 주자학의 논리를 반대하면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두학문의 연속성을 부각시키려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600년이나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 한편에는 주자학의 영향하에 있습니다만 주자학과 양명학 참 딴나라이야기같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흥미란 우리를 휴식하게 합니다. 저자가 주자학과 양명학의 원리뿐아니라 성립배경부터 정리해 두었기에 원류를 살피는데는 좋은 입문서라고 봅니다. 저자는 시마다 겐지(1917-2000)는 중국사상사전공입니다. 교토대 사학과교수였고 일본 학사원회원이었습니다. 일본학사원은 일본의 관청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로 말하면 한림원같은 곳 아닌가싶네요. <삼민주의><중국 혁명의 선구자들>등 일본에서 중국사상의 대가이십니다. 다만 구글에 '시마다겐지'로 검색을 하면, 오바워치의 겐지가 나오긴 합니다만 일본 근세중국사상을 이끈 분이라 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대표작중 한권<주자학과 양명학>인듯합니다. 주자학을 완성시킨사람은 말그대로 주자입니다. 이름은 '주희'입니다. 주자학의 출발은 도학이었고 주자가 여기에 체계를 세우면서 주자학은 성립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주자학보다는 성리학이 훨씬 낮익죠. 그래서 주자학의 핵심은 '성즉리'입니다. 그래서 성리학인거겠죠. 주자가 성리학을 완성했다고 해서 주자는 단순 철학자는 아니죠. 고위관직은 아니지만 행정관으로 일을 했다합니다.주자학은 5가지로 나눌수있다합니다. 존재론, 윤리학, 방법론, 고전주석학, 사창법 등입니다. 저자는 주자를 중국역사상 최고의 사상가라고 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기가 운동이 많으면 양이고 움직임이 적으면 음이라 합니다. 양의기가 응집을하면 목,화, 음의기가 응집을 하면, 금,수 여기에 토으를 더하면 우리가 잘하는 오행됩니다. 그리고 '리'는 형태이고 법칙이라고 합니다. 설계도같은 거겠죠. 그럼 기와 리의 관계에 대해 주자는 누가먼저라고 할수없다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주자의 호적수 논객 육상산이 나오고 심즉리를 표방합니다. 주자는 1200년에 사망하셨습니다. 그 당시도 주자학은 주류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원나라가 들어서고 1314년 다시 과거를 시작할 당시 과거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할 정도로 주류로 발돋음합니다. 그런데 주자학자체가 너무나 완벽한 존재적 사유를 지니고 있어 실천적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것이 원나라를 이어서 등장한 명에서 확대된 정서입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왕양명(1472~1528)입니다. 왕양명은 주자학에 심취했다가 여러난관을 거치며 '심즉리'라는 양명학의 핵심토대를 확고히 합니다. 왕양명이 죽은후에 양명학은 우파와 좌파로 나뉩니다. 우파는 정통적인 사대부쪽이어서 시간이 지난후 주자학쪽으로 기울어져갔고, 좌파는 왕용계로 이어져갑니다. 마지막 장에는 '유교의 반역자'라는 제목으로 이탁오를 다룹니다. 명나라의 사상가이고,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이슬람교집안출신으로 그는 불교를 신봉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를 양명한 좌파에 위치시킵니다. 노장사상이 이탁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인데 저자는 이도 과하다고 부정합니다. 그는 삼교합일을 담고 있다합니다. 유교를 반하는 것이 아닌 유교를 넘어 중국의학을 세우려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전문서가 아닌 일반서, 개론서로 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짧기는 합니다만 쉽지는 않네요. 역시 철학은 개론서라고 하지만 쉽지 안습니다. 더우기 관념론이라 할수있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을 거쳐 청조의 실증 고증학인 양명학으로 이전은 형이상학으로만 따지다보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허해지는 정신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볼수있습니다. 학문적 어러움으로 마무리하기 보다, 양명학은 메이지유신이후 일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걸 이야기하고 싶네요. 원래는 왕학, 육왕학이라했답니다. 학문에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되면 후대에 주도적으로 쓰는 이름이 되는 점도 기억해볼만합니다. 물론 우리는 양명학은 배척하고 성리학에서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걸 생각하면 한국의 주류학문으로 들어오진 못했죠. 일본학자들은 오타쿠기질이 많죠. 그래서 노벨상이 많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한국은 뭐든 좀 쏠리는 경향이 있죠. 트로트가 요즘도 대세인데, 원래 KBS아침마당에서 시작한 트로트의 심지가 미스트롯을 거쳐 유산슬로 예능으로풀었고, 미스터트롯으로 개화를 시키고 유사한 트로트프로들이 MBN, MBC,SBS를 거쳐 KBS가 트로트전국체전이라는 오디션프로그램을 한다고 합니다. 양명학의 핵심인 지행합일을 한덕아닐까합니다. 생각난걸 바로 행했다고 할수있습니다. ^^2020년 11월중순에 뜬금없는 주자학과 양명학일수는 있지만 그리고 상상외로 어렵지만 과거지만 매우 새로운 세상을 머리를 여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즉리, 심즉리 만이라도 기억하면 성공일겁니다. 어디서 사용할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인간에 대한 철학적 논리를 곱찝다 보니 머리가 좀 복잡합니다. 다시 읽어봐야 할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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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27년부터 출간된 정평이 있는 일본의 이와나미문고의 시리즈 중 하나로, 동양사학자,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사학과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일본 최고의 권위자가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또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입장과 역사적 역할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불교의 범신론적 사상을 받아들여 송대에 확립한 주자학, 심즉리·치양지·지행합일을 설하는 시대에 태어난 양명학. 두 학설 모두 중국 근세를 지배했던 유교철학이자 유심론적 실천철학이었죠. 저자는 먼저 중국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여 주자학과 양명학의 성립 과정과 역사적 역할을 밝히면서, 양명학을 육상산 학문의 계승 정도로 생각하여 주자학과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형이상학으로 보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즉 왕양명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바탕으로 출발했고 그 한계에 부딪쳐 죽음을 무릅쓴 사색 끝에 난관을 뚫고 나가서 마침내 ‘심즉리’라는 원리를 끄집어냈다고 지적합니다. 즉 주자학이 전개되는 연장선 위에서 양명학의 등장이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아가 과연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사상의 본질을 살피고 있습니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한국사 시험에서도 조선시대 문화의 중요 주제로 출제가 자주되는 파트기도 합니다. 단순히 암기를 넘어 철학적인 부분을 이해해야해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파트이기도 하죠. 이 책은 이처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관념적인 유학을 상당히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권위 있는 이와나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한 보기 드문 책이라 하겠습니다. 유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정치와 사상을 지배했던 핵심원리로서 또 철학이자 종교로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본 서평은 리앤프리 카페를 통하여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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