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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7 리뷰]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발자크스탕달 공저, 범우사, 199407, #848
"[2021-27 리뷰]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발자크스탕달 공저, 범우사, 199407, #848" 내용보기
천재의 작품을 평론한다는 것은 난감할 수 있는 일이다. 자칫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누군가 서평을 쓰는 일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는데, 하물며 글쓰기에 천재의 작품을 평론을 한다는 것은 작가를, 작품을 해부는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해부하는 일이 되어질 수 있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혹 자신이 이미 엄청난 반열에
"[2021-27 리뷰]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발자크스탕달 공저, 범우사, 199407, #848" 내용보기

천재의 작품을 평론한다는 것은 난감할 수 있는 일이다. 자칫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누군가 서평을 쓰는 일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는데, 하물며 글쓰기에 천재의 작품을 평론을 한다는 것은 작가를, 작품을 해부는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해부하는 일이 되어질 수 있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혹 자신이 이미 엄청난 반열에 오른 대가라고 자신하는 경우에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는 발자크가 스탕달의<파르므의 수도원>이라는 작품을 비평한 것을 스탕달이 비평을 비평하며 각 천재가 서로를 비평하며 예술논쟁을 펼치고 있다. 발자크는 스탕달을 칭찬하며 슬그머니 비평을 했고, 그런 발자크의 비평에 스탕달이 수렴하고 수긍하는 척하지만 반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감히 천재를 누가 비평한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기존의 기득원은 세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무척이나 완고한 모습을 늘 보여주며, 자신들의 가치에 맞게 비평하는 우를 항상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뛰어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성장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다. 발자크의 행위는 결국 스탕달을 도운 셈이다. (이것으로 많은 사회적 의구심을 만들어내지만, 또한 개인적으로 의문점은 둘다 프랑스인으로서 이탈리아인의 정서와 감정, 심리를 이야기하고 있는것에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스탕달의 작품 <파르므의 수도원>을 통해 서로를 칭찬하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결국은 대립을 하게되는) 있었다. 역시나 다양한 비평들 속에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은 다르다는 걸 확실히 지적들하고 있다. 

 

예술논쟁으로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 다가서긴 버겁고, 책을 통해 "소설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문체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의 정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발자크와 스탕달의 심오한 예술논쟁"을 펼쳐놓은 책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무명작였던 스탕달을 지지한다는 발자크는 논평을 발표했다.  발자크는 <파르므의 수도원>의 논평을 통해 스탕달의 심오한 작품을 찬양한다. 한 대가가 이제 막 나타난 신인을 극찬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문학사상 아마도 전례가 없으리라 여겨지는 깊은 존경심과 우정으로써 베일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방법과 문체 속에 자신과 크게 어긋나고 이질적인 정신이 담겨 있음을 의식하고는 대담하고 솔직하게 이를 지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한다. 

 

개인적인 특이점은 논평 내내 프랑스인들이 이탈리아인의 캐릭터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과 비교를 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소설속 인물들이 전부 이탈리아 인이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프랑스인들과는 캐릭터가 많이 다르다 말한다. 그것이 프랑스인 독자가 흥미를 잃게 만들것이란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본 이탈리아인은 "이탈리아 인은 진지하고 선량하며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설직하게 말한다. 허영심에 의해 움직이는 수가 있어도, 그것은 언제나 발작적인 경우뿐이고 그때에는 허영심이 정열이 되며 '엄하고 딱딱한'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빈곤'이 그들 사이에서는 결코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인의 입장에선 몹시도 프랑스인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겠다. 시대적으로 프랑스의 오만하던 시절임을 알겠지만 이탈리아를 하나의 시골 촌놈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동안 영국에게 이래저래 찌그러져 있다가 겨우 숨통이 트인 시기였음에도 그러하다. 

 

앞서 그의 소설에서 이탈리아 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고, 또 하나는 스탕달 스스로의 작가(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소설을 위한 작가의 '변명' 정도라고는 하지만, 역시 자기방적인 면보단 자기과시적인 면이 강한게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각 독자의 몫이다. 작품 전체에 대한 이야기와 발자크와 스탕달의 관계는 추측들이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역시 그 나머지의 나머지를 위한 것도 독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책은 발자크의 '스탕달론', 스탕달의 '발자크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 논쟁에 대하여를 스기야마 히데키가 자신의 비평을 피력해논 수순이다. 비평문답게 확실히 자신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새로운 시도를 바라보는 발자크, 새로운 시도를 위해 애쓰는 스탕달, 시대다운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그들을 고전이라 말한다. 스탕달의 심리묘사를 고전을 통해 배운다. 한 대가의 문학을 고전을 통해 느껴보고 있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한 대가가 자신의 문학관과 작품에 대한 감정들을 알아볼 수 있던 책이었다. 물론 상대적인 또한 대가의 입장도!

 

 

 

 

 

c*********e 2021.05.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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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내용보기
개인적으로는 발자크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많다. 이 문제적 인간,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최초의 근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거대하고 왕성하고 욕망이 가득한 한 인간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한편 나는 츠바이크의 평전 읽기도 좋아하는데,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이 있길래 구입해서 읽었는데, 흥미롭게도 츠바이크는 발자크와 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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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발자크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많다. 이 문제적 인간,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최초의 근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거대하고 왕성하고 욕망이 가득한 한 인간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한편 나는 츠바이크의 평전 읽기도 좋아하는데,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이 있길래 구입해서 읽었는데, 흥미롭게도 츠바이크는 발자크와 스탕달을 묶어서 다루고 있었다. 둘 다 프랑스 근대 소설의 창시자이기도 하지만, 스탕달의<파르므의 수도원>이라는 작품을 발자크가 비평한 것을 계기로 둘 사이에 있었던 소위 '예술 논쟁'이라는 게 있었다고 한다.

츠바이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논쟁'을 다룬 오리지널 원전을 직접 읽어보고 싶어 이 책을 구입했다. 문고판의 얇은 책이지만, 발자크가 비평한 <파르므의 수도원>과 거기에 대한 스탕달의 편지, 그리고 이 둘의 논쟁에 대한 일본 학자의 글, 이렇게 세 편의 글이 실렸으니 꽤나 묵직한 책이다.

그 당시 스탕달은 무명작가에 가까웠는데 대작가인 발자크와 예술에 대해 '논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꽤나 센세이셔널하고, 발자크도 꽤나 호탕한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자크가 스탕달을 알아본 셈이니 말이다. 이 둘 사이에 오갔던 예술논쟁은 일종의 소설 원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설 입문자나 소설 창작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주목해서 봐도 좋을 것 같다.  
s*****n 2025.09.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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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스탕달의 예술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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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 그랑제'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적과 흑'의 스탕달의 예술 논쟁. 주로 문학이란 예술에 대한 대담형식의 책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자크가 스탕달의 작품 파르므의 수도원에 대한 서평을 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스탕달이나 발자크의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워낙에 영문학과 쌍벽을 이루는 불문학이니 만큼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프랑스인의 이름과 같은 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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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 그랑제'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적과 흑'의 스탕달의 예술 논쟁. 주로 문학이란 예술에 대한 대담형식의 책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자크가 스탕달의 작품 파르므의 수도원에 대한 서평을 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

스탕달이나 발자크의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워낙에 영문학과 쌍벽을 이루는 불문학이니 만큼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프랑스인의 이름과 같은 옮긴이 주석들이 미주로 등장하여 읽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 아쉽다. 하이퍼링크가 되지 않은 미주는 종이책보다 더 읽기에 불편한 것 같다.
4*******n 2025.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