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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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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생이시다. 안창호 선생의 강의를 두 번 들으셨다고 한다. 살아있는 화석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역사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백세가 넘으셨음에도 강연과 저작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면 대단함을 느낀다. 자신의 건강과 인생을 걱정하기 보다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신다. 시대의 지식인이라 부를만 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대단하게 느껴진다.예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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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생이시다. 안창호 선생의 강의를 두 번 들으셨다고 한다. 살아있는 화석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역사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백세가 넘으셨음에도 강연과 저작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면 대단함을 느낀다. 자신의 건강과 인생을 걱정하기 보다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신다. 시대의 지식인이라 부를만 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사회에 그만한 헌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중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독립운동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성경에는 자기희생을 당연시 한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세상의 희망이 되려면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자기의 성을 쌓고 싶어한다. 점점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100세의 살아있는 역사이신 김형석 교수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세상을 더럽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한다.

 

a*****1 2020.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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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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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양심적인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고 신앙인도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연결점은 없는 것일까?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면 좋을 것 같다. 내 양심적 판단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이웃을 사랑하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란 위하는 마음과 행 동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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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양심적인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고 신앙인도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연결점은 없는 것일까?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면 좋을 것 같다. 내 양심적 판단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이웃을 사랑하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란 위하는 마음과 행 동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양심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기에 있다.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호소해도 다른 사람을 수단과 방편의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이웃에게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양심적일 수 없다. 이기적인 욕망을 양심으로 둔갑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믿는 신앙이 귀하고 최선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불행으로 이끌며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그런 신앙은 양심을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 지성인과 인도주의자가 종교를 경원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중 발췌

 

크리스천들은 양심적 신앙과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가르침을 교훈 삼아 사회악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아들들도 양심과 지혜를 갖고 용감하게 사회악에 항거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더 굳건한 신앙과 하나님 사랑의 은총으로 역사악에 대항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세상의 아들들은 외로운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의 역사에 뛰어들고 있다. 주께서 주신 사랑을 그들에게 나누어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k*****9 2021.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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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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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주의를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것은 교회주의에 빠져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도 건설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망각하거나 멀리할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야 어떻게 되든지 우리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민족과 국가는 정치인들의 책임이고 우리는 교회만 부흥시키면 된다는 주장이 용납될 수 있는가 사회와 역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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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주의를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것은 교회주의에 빠져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도 건설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망각하거나 멀리할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야 어떻게 되든지 우리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민족과 국가는 정치인들의 책임이고 우리는 교회만 부흥시키면 된다는 주장이 용납될 수 있는가 사회와 역사의 흐름이 기독교 정신과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큰 교회당을 짓고 많은 수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풍부한 재정을 운영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관념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부합될 수 있겠는가 교회주의를 탈바꿈하자는 것은 교회를 떠나거나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교회의 목적을 높이며 세계와 인류에 희망을 주자는 요청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이다 빛은 암흑을 이겨야 하며 누룩은 밀가루를 빵으로 바꾸는 데 쓰여야 한다 소금은 음식물의 부패를 막으면서 맛까지 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도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죽어가는 한 알의 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리주의를 우려하는 것은 편협성과 폐쇄성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 즉 진리를 소홀히 여기거나 배제할까 염려되는 까닭이다 교리는 우리의 것이지만 진리는 만인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진리라면 그것은 다른 종교의 교리를 넘어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학도 그렇다 신학은 만인이 따를 수 있는 진리의 학문이 되어야 한다 교리와 교권을 위한 신학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없이 넓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기독교의 진리를 교리라는 좁은 그릇에 담는 것 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런 현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고 있다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중 발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삶을 살아감에 대한 깊이 있는 숙고를 하게 하는 도서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실상은 예수 없는 삶과 교회 생활에 익숙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교회만의 성곽을 두껍게 쌓아 올려 도리어 예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YES마니아 : 골드 l******g 2020.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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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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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 고칠 것이 있으면 개선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숨김 없이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과감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 우선 성직자와 지도층 인사들이 새로워져야 하며 다음에는 일반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무엇보다도 성직자가 교인을 대할 때 권위의식을 버리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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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 고칠 것이 있으면 개선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숨김 없이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과감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 우선 성직자와 지도층 인사들이 새로워져야 하며 다음에는 일반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직자가 교인을 대할 때 권위의식을 버리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인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사회인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비판하는 권위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세상사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권위주의가 사라진 곳에는 선한 질서가 그 공백을 채우게 되어 있다. 권위의식은 상하의식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 권위의식이 질서의식으로 변화되면 공존과 평등의식을 동반한다. 천주교에서도 마더 테레사가 숭앙의 대상이 되고, 평신도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현실사회에서 은총과 사랑의 질서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중 발췌

 

한국교회느 코로나19로 인해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함에 있어서 얼마나 무지하고 이기적인가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욱 비호감으로 전락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행함에 있어서도 자신들만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을 사랑하기 보다는 고통스럽게 함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 김형석 교수는 한국 개신교를 향해 손봉호 교수와 함께 질책과 함께 권면을 해왔다. 이 책은 더욱 교회됨이 무엇인지를 제고해주고 있기에 깊은 여운과 그리스도인다움을 반추케 한다.

w***1 2020.1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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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개신교인이 바라보는 개신교 그리고 신앙
"오랜 개신교인이 바라보는 개신교 그리고 신앙" 내용보기
워낙 오랜 세월 살아온 교수이자 개신교인이라 관심있게 지켜본 책이다. 이전 책들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개신교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책 곳곳에 느껴진다. 좌도 우도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나아오길 바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를 희망하는 이야기 등이 담겨져 있다. 양적 팽창에 치우친 나머지 기독교의 기본원리를 놓치고 있는 교회 그리고 교인들이 주께 회
"오랜 개신교인이 바라보는 개신교 그리고 신앙" 내용보기
워낙 오랜 세월 살아온 교수이자 개신교인이라 관심있게 지켜본 책이다. 이전 책들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개신교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책 곳곳에 느껴진다. 좌도 우도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나아오길 바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를 희망하는 이야기 등이 담겨져 있다. 양적 팽창에 치우친 나머지 기독교의 기본원리를 놓치고 있는 교회 그리고 교인들이 주께 회개하고 날마다 개혁하며 나아가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며, 신앙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지,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기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골드 b******3 2020.1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