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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의 부활
1963년에 출간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이 뉴딜 이후 세계의 최강자로 부상하여 대량생산과 대중 소비사회에 진입했던 때로, 매카시즘이라는 비이성적인 광풍을 겪고, 한편으로 노동운동도 사회주의에 등을 돌리던 시대의 한복판이었다. 지은이 수전 제이코비는 호프스태터가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결론으로 과거의 자유로운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지적인 삶을 인정한 점이다. 그 덕분에 다양한 유형의 지식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장점을 이해하려면 솔직함과 관대한 정신이 필요하다. 단선적이고 편협한 사회에서도 이런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이 유럽식 귀족주의와 단절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려 했을 때부터 이미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실용주의는 유럽의 신분 위계 사회,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저항의 산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미국인들로서는 미래의 성취, 특히 자수성가형 인간, 경제적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반지성주의
이게 1960년대의 풍경이다. 지금, 미국인의 삶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는 반지성주의의 중요 요소 하나는 대중이 지성주의를,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자유주의와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 전반은 우파가 만든 기준 ‘엘리트’로 요약되는데, 이는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유력한 엘리트인 저명한 우파 지식인들은 특권층으로서 자신들의 지위는 숨기고 자유주의자들에게만 엘리트라는 딱지를 붙여왔다. 우파 지식인들 모든 지식인을 좌파로 공격하는 음험한 논리를 오랫동안 피할 수 있었는데, 트럼프라는 괴물, 지식인들 비웃는 국민후보, 대통령에 당선됐다. 신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에게도 이는 충격이었다.
미국 시민사회의 무관심, 둔감
왜 이렇게 됐을까? 지은이는 지식인이건 비지식인이건 모두가 똑같이, 좌파건, 우파건, 자신의 주장에 공명하지 않는 목소리는 듣지 않으려는 경향(메아리 방 효과, 유유상종)이 있다. 게으른 정신과 반지성주의 본질을 드러내는 징후다. 미국인의 다수는 어떤 정치적 견해와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굳이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무지, 반합리주의, 반지성주의가 뒤섞인 것이 과학기술과 더불어 전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돌연변이 한 것이다.
이 책은 11장에 걸쳐 미국의 건국기에서 트럼프까지, 반지성주의를 살핀다. 1장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서민들 이야기-, 2장에서는 신생국가의 지성과 무지를, 3장 미국의 문화 전쟁 초기에 발생한 사회적 사이비 과학, 4장 빨갱이, 좌경분자, 동조자, 5장 미들브라우문화, 전성기에서 쇠퇴기까지, 6장 그 60년대를 탓하다, 7장 유산들, 청년문화와 유명인 문화, 8장 새롭게 나타난 오래된 종교, 9장 정크사상과 정크종교, 10장 주의 산만 문학, 11장 공공생활:우둔함의 기준을 점점 더 낮게 규정하다. 각 장의 제목처럼, 무지, 반합리주의에 더해 기억상실과 탈진실의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현상은 단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가 이 책을 깊이 읽어봐야 한다. 한국은 어떠한가? 맨 위에서 소개한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함께.
지은이의 제기하는 문제는 보편적이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정치, 경제, 역사, 종교, 문화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세례를 받아 온 나라라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에 만연한 반 합리(비합리)성과 반과학성을 추적하는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때, 미국대신 한국이라고 바꿔 읽어본다면 어떨까, 지은이가 소중하게 돌아보는 미들브라우(middlebrow)문화는 평범한 교양을 갖춘 지성인의 문화, 즉 새로운 지식과 과학을 배우려는 욕구, 책에 대한 사랑, 합리주의적 태도 등이다.
합리주의, 실용주의, 사실주의가 바탕일 것이라 이미지 해 온 미국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함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현상이 어떠한지, 지은이는 이 책 첫 페이지에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자 핵심이다.
“문명국가의 국민이 무지하면서도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어지길 바라는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태그#반지성주의시대#수전제이코비#박광호#오월의봄#거짓문화에빠진미국건국기에서트럼까지#미국의반지성주의#사회적사이비과학#미들브라우문화의쇠퇴#기억상실과탈진실시대#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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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라고도 불리는 반지성주의는 지성, 지식인,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말하며, 주로 교육, 철학, 문학, 예술, 과학이 쓸데없고 경멸스럽다는 조롱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근본주의 기반 종교에서 주장하는 창조론, 편평한 지구론과 같은 유사 과학 등이 대표적이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종교재판,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 집단, 미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공화당 당원 집회에서 “미국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된 매카시즘의 광풍, 지지기반 확충을 위해 숱한 숙청을 진행하였던 스탈린주의, 문화재를 파괴하고 지식인들을 핍박하는 등, 홍위병들의 문화대혁명으로 마오쩌둥의 우상화를 끌어낸 마오주의,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고등교육을 받은 캄보디아인을 학살한 폴 포트 정권, 그리고 나치즘의 히틀러, 파시즘의 무솔리니를 비롯한 숱한 독재 권력 하에서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을 “유대인”, “나약한 엘리트”로 규정하여 탄압한 사례들도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로부터 시작되어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권력에 의한 지식인 탄압도 그 예시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 도래 이전의 수많은 불교 역사 유적을 파괴한 탈레반, 이라크 모술 지역을 점령한 후 공공 도서관에서 6,000여 권의 과학, 기술, 철학, 역사, 종교 관련 서적을 불태운 이슬람국가(IS), 그리고 종교가 이데올로기화되어버린 근본주의, 극단주의 종파들도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에 만연한 지식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신앙 자세와 종교적 온건파를 이른바 ‘먹물’이라 매도하는 자세 역시 대표적 반지성주의적 행위에 해당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2017.01.~2021.01.)으로 선출되기 전후부터 미국 내 반지성주의의 물결을 비판한 책들은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부제에서도 밝혔듯이 반지성주의와 반합리주의 형성 과정과 그 변천사를 저자의 높은 지적 감성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세속주의, 종교의 자유를 주제로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무신론 저널리스트이자 학자이다. 2010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상을 수상하며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았고 〈워싱턴 포스트〉 기자로 일하며 미국 사회 내 여러 모순을 고발해냈다. 그녀는 이 책을 2008년 처음 발간하여 부시 행정부의 반지성주의를 분석하였는데 트럼프의 당선 이후 2018년 이를 개정하여 출판하였다. 지금이야 반지성적 대통령으로 트럼프에 대적할만한 인물은 앞으로도 전무후무할 것 같지만 조지 W. 부시 집권 당시는 그에 버금갈 인물이 앞으로도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지식인들은 저자를 포함해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어설픈 소망에 불과한 것임이 2016년 현실로 입증되었지만, 가문의 이름과 연줄(그의 예일대, 하버드 경영대학원, 야구팀 소유권, 대통령직까지)이 없었다면 부시는 그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저자는 하소연한다. 그녀의 이 안타까운 감정과 분노가 보태져 저술된 책인 2008년 초판이었다면 2018년 개정판에서 부시는 비교도 할 수 없는(부시는 재선에 성공하여 2001년에서 2009년까지 총 8년의 재임 기간을 보냈지만) 트럼프라는 인물의 당선을 계기로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반합리주의 문화를 분석해낸다.
그녀는 미국 독립혁명 세대에 진정한 지식인이 참 많았고 영향력도 강했으며, 독립 선언문과 헌법 작성 과정에서 증명되듯 그들의 비범한 철학과 지성을 찬양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미국 국민의 존중과 지지도도 탁월하였다 말한다. 이 전통은 1960년대까지 이어져 베이비 붐 세대의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매카시즘으로 대변되는 반공, 반지성주의라는 내적 고통기를 지나, 히피, 민권운동, 반전으로 대변되는 대격변의 저항문화를 이끌었다 저자는 자평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1980년 이전 대통령의 연설은 항상 국민, 인민(people)을 그 대상으로 삼았으며 연설 내용도 국가와 시민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표였지만 80년 이후 그 대상은 서민(folks)으로 바뀌며 내용 역시 정책의 정당성이나 수준 낮은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였으며 품위 있는 대중 연설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미국 내 반지성주의와 반합리주의는 종교와 교육에서 보이는 미국의 민주주의적 충동의 이면을 나타낸다고 저자는 지적하는데 정통 교회의 위계질서를 거부하는 근본주의적 종교가 세속화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보이다가 점점 그 규모와 세를 불리는데, 이는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것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대중과 괴리되는 부유 엘리트층, 또는 그들의 엘리트 의식과 주의가 만연해졌기 때문이다. 신약과 예수의 메시지는 오직 이성, 말씀, 로고스에 기반한 것인데 이보다 개인적, 체험적 신앙을 중시하는 작금의 기독교 신앙 자세는 더더욱 교회 내 반지성주의를 부채질한다. 교리와 신학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저 불온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거나 ‘믿음’이 부족한 교인이라는 비난을 받기가 일쑤다. 회의주의와 의문은 인류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원동력임에도 이런 반지성주의는 비판과 지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의 미사에서도 성경을 펼친 신도들보다 스마트폰 게임이나 SNS에 빠져 스크롤을 올리기에만 바쁜 신도들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 그저 내가 주일날 교회나 예배당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신앙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 행동들은 전형적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이 반지성주의 신앙 배경에 우파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집단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언행과 주장이 더 보태어져 집단적, 실천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빨갱이는 죽여도 되!”라는 글을 자작 방패에 새겨서 들고 다니던 한 땡중도, 보수 우익 시위에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등장하는 모습도 반주지주의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미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본주의 개신교와 복음주의로 대변되는 바이블벨트의 투표 성향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보수 기독교가 광화문까지 진출하여 각종 보수우익단체와 연합, 정당 활동과 적극적 정치 선동까지 이끌고 투표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은 실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불순한 반이성적 책동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반지성주의의 배경에는 독재 권력이 미약한 권력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칭 우익이라 부르짖는 자들의 주장은 사실 ‘반공’이라는 슬로건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반공 앞에 인권도, 민주도, 평등도, 통일도, 종교도, 헌법도, 그들에겐 불필요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사회의 모든 재원을 오직 반공과 빨갱이 척결에만 써야 한다 생각하지만 정작 빨갱이는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견(異見)은 모두 빨갱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반공 레이더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평등,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양심적 시민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반공 프레임은 생각보다 악랄하고 집요하다. 때로는 죽음마저 강요하고 가족의 해체는 물론,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것도 감수하여야 한다. 물론 엘리트층의 사익 추구로 인해 발생하는 반지성주의 역시 존재하긴 하지만 미국 사회만큼 심각하기 전에 민주 세력이 법률적으로 정착시킨 여러 제도가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특별히 의료보험, 국민연금, 코로나로 인한 기본수당이 정착화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요즘 정치적 영역에서의 반지성주의는 포퓰리즘과 동의어라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일 것이다. 극단적 혐오,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오리엔탈리즘, 엘리트주의 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정치 포퓰리즘의 민낯이다. 인류 발전을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 올린 것도, 사람 종(Homo) 중에서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최종 적자(適者)가 된 배경도, “공감에 기반한 협력과 연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인류의 기본 속성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야누스의 얼굴처럼, 내집단과 달리 외집단을 비인간화시키고,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을 단결시키는 것은 사랑, 우정, 존경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공통된 증오다. (Love, friendship and respect do not unite people as much as common hatred for something)” 그러하기에, 어찌 보면 반지성주의, 즉 지성에 대한 혐오는 인간의 본성적 측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력과 연대는 곧 타 집단에 대한 차별과 억압과 동의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그 혐오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스스로 초강대국이라 지칭하며,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강, 극강을 자랑하고 있다. 국방비로만 천조를 쓴다고 해서 천조국이라 네티즌 사이에서는 불리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연합해도 공군, 육군을 제외한, 미 해군의 전투력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전 세계 군사력 1, 2, 3위가 미국의 해군, 공군, 육군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소비문화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또한 미국이다. 아마존,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아! 참! 리먼 브러더스도 빼먹을 수는 없겠다. 하지만 실상 미국 국민이 경험하고 있는 그 위대한 조국인 미합중국은 어떤가?-여담이지만 미국 국민에게 알파벳 U로 시작하는 국가명을 하나만 이야기해달라고 길거리에서 질문을 던졌는데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유타(?), 유토피아(?)는 등장했지만 정작 United States of America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선진국이라 분류되기에 부끄러울 정도의 낮은 치안 상태, 인종차별 문제,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 심각한 도농 차이, 교육적 불평등, 공교육의 질 하락, 대학 입시의 불공정성,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간 해소 불가능한 불평등, 연일 터지고 있는 총기 사고와 마약 문제, 근본주의적 기독교로 인한 시대 회귀적 보수주의, 부실한 대중교통, 불친절한 공무원, 경찰의 공권력 남용, 부실한 의료보험, 낮은 경제성장률, 낮은 GDP, 후퇴하고 있는 기대수명, 60만 명이 넘는 코로나 사망 사례, 극단적 양당정치로 인해 정치적으로 소외된 국민,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데도 장시간이 걸릴 정도다.
국가는 강하고 부유한데 국민은 배고프고 병원마저 제때 가지 못하는 나라가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일 수는 없다.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국가, 하버드, 예일, MIT와 같은 세계적 명문 대학을 가지고 있는 국가, 전 세계 군사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 세계 10대 기업 대부분이 있는 국가가 지금의 초라하고 왜소한 국민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 어느 나라보다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유사 과학이 국민을 현혹하게 된 배경에는, 엘리트들의 극단적 자기 이윤 추구가 있다. 그 뛰어난 엘리트들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공권력을 통해 더 나은 지역 사회, 더 평등한 사회, 더 협력하는 사회, 더 안전한 사회, 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누가 대학 가지 말라고 했니?, 누가 못 살라고 했니?, 누가 대책도 없이 아이 놓으라고 했니?, 누가 피부색이 그렇게 태어나라고 했니?”라는 말로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며 자기 이윤만을 추구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를 더 공고히 하려 한 것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공유하여야 할 사회적 체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개인적 지위와 이윤을 높이고서도 정작 그 결과를 공적 가치를 위해 사용할 줄은 모르는 이기적 행위는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진정 미국 사회의 일원이라 스스로 느끼고 그 시스템으로 인해 이윤을 획득하였다면, “위대한 미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 정작 자신의 그 부를 개인적 용도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문제 중 단 하나만이라도 해결하는데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였어야 했다.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이 철저히 “위대한 미국”에서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상태에서 트럼프의 혐오에 기반한 온갖 쓰레기 발언들은 그들에게 대체할 수 없는 희열과 희망을 주었을 것이고 이는 곧 그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 역시 반지성주의에 박차를 박아 주었다. 세계화와 기술혁신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오바마 행정부는 ‘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기본수당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점검하는 대신, 고등교육 이수 기회를 넓혔다. “너도 대학 가!”라고 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갔고 이는 엘리트층을 포함한 기득권층, 기존 체제에 대한 강력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반지성주의에는 마땅한 사유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 제도의 정비 없이, 총기 규제에 대한 혁신적 조치 없이, 기득권층의 혁명적 양보 없이, 미국 사회가 개선될 가능성은 없으며 미국이라는 욕망의 폭주 기관차의 질주를 멈출 제동장치가 작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그 열차는 인간의 힘으로는 멈춰 세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저들이 그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간절히 외치는 것이다. God Bless America! 이젠 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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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더 이상 권위 있는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과학을 대신해서 유투버와 교회 목사의 말을 더 믿고, 인류가 그토록 힘들게 쌓아 온 합리와 이성의 힘을 쓰레기장에 보내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강제로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뜯어 고치겠지만, 민주주의와 SNS가 결합한 현 시대에는 거짓과 가벼움이 지성을 압도한다. 제이코비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미국이 반지성주의를 향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결국 평범한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우리의 사례라고 다르겠는가? 진지한 토론은 실종된 지 오래이고, 사람들은 갈수록 양극화되어 서로 귀를 막고 반대 진영을 향해 악을 쓰고 있다. 해결책은 없다.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실을 추구하고 배우지 않는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