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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개화기, 서양인 호텔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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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면 막힐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괴이한 생김새의 서양인들이 몰아닥칠 때, 그래서 흥선대원군을 위시한 지배 계층은 쇄국정책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이미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강화도를 시작으로 바다가 열렸다. 불과 20년 만에 서울 시내에 서양인이 관여한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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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면 막힐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괴이한 생김새의 서양인들이 몰아닥칠 때, 그래서 흥선대원군을 위시한 지배 계층은 쇄국정책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이미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강화도를 시작으로 바다가 열렸다. 불과 20년 만에 서울 시내에 서양인이 관여한 근대식 숙박시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팔레호텔과 임페리얼호텔, 스테이션호텔 그리고 손탁호텔까지. 이국적인 이름의 호텔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개업했다. 그 중 손탁호텔을 저자는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손탁호텔만이 아니었다. 최초의 서양인 호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탁호텔이라 했을 때 사람들은 근대시기 서울의 서양인 호텔을 다들 떠올린다. 따라서 손탁호텔은 변화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손탁은 사람이름이다. 손탁호텔의 상징성은 손탁이라는 인물의 삶을 살펴보면 대강의 이해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그녀는 러시아공사 웨베르의 처형으로 알려져 있다. ‘윤치호일기’는 그녀를 “웨베르 공사 부인의 남동생인 미스터 막크의 부인되는 사람이 미스 손탁의 여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데, 어찌 되었건 그녀가 러시아와 결코 얕지 않은 관계를 맺었으라는 점의 유추가 가능하다. 그녀의 호텔은 정동구락부의 배경으로 쏠쏠히 사용되었다. 정동구락부가 어떤 집단인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이완용, 이상재, 윤치호, 민영환 등 당대의 쟁쟁했던 인물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외국인의 면모도 화려하다. 웨베르, 알렌, 아펜젤러, 헐버트, 언더우드까지. 친일파 내각과 한때 대립을 이루었던 이들 대다수가 포함된 집단이다. 나름 앞선 사고를 했던 이들에게 호텔만큼 회합에 적절한 공간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집은 영속적이지 못했다. 일례로 이완용이나 윤치호는 알다시피 머지 않아 친일의 행보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개개인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 마냥 손탁호텔도 빠르게 와해되어버렸다. 이는 꼭 정동구락부의 모호한 정체성이 손탁호텔의 운명을 결정지은 게 아닌가란 생각을 낳는다. 비단 호텔만이 아니었다. 손탁 역시 본인이 원하던 삶을 살지 못했다. 귀국 후 러시아 어딘가에서 객사하는 모진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손탁호텔이 그러했듯 당시 운영 중이던 많은 호텔들은 손탁호텔처럼 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국채보상운동에 깊이 발을 담갔던 베델이 사망한 곳이 서대문 밖 애스터 하우스 호텔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한반도가 더 이상의 시장성을 지니지 못하는 일, 즉 일본의 시장으로 전락하는 경술국치가 발생할 무렵 호텔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아마도 식민지로 전락한 국가를 찾는 극소수의 외국인들만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씁쓸한 호텔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했다.


호텔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내용은 책의 뒷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개화기의 이모저모를 다룬 부분이었다. 커피, 카메라, 당구, 신식결혼 등은 지금은 너도나도 중독 증세를 보이고 누구나 하나 즈음 보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허나 호텔이 막 이 땅에서 부흥하기 시작하던 무렵에는 하나같이 이들로부터 낯섦을 느꼈을 것이다. 불과 100여년만에 낯섦이 익숙함으로 뒤바뀌었다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q*****2 2012.08.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