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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자신이 붙인 제목은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입니다. 원서를 번역 또는 옮기는 과정에서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적 관점의 책 내용이고, 하나님과 천국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결말을 짓다 보니 결국 신곡(Divine)이라는 제목이 붙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이 없지만 아무튼 각종 청소년 추천도서에 단테의 신곡은 꼭 들어갔던 거 같은데, 막상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세편을 모두 읽은 지금 이건 청소년이 읽기는 ? 장년이나 학식이 있는 지식인 조차 ?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청소년 필독 도서로 신곡을 지정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받치고 있는 기본이며 핵심 정서와 사상은 기독교적 구원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이라는 구성자체가 이것을 말해주는데,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퍼진 일상언어이지만 이것은 분명 기독교적 용어임에 분명합니다. 더구나 지옥편의 시작은 부활절 주간이며, 지옥의 여행으로 시작해 3일을 지옥에 머물다 다음으로 연옥에 3일 마지막으로 단테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가 이끄는 천국에서의 하루를 보내며 총 7일 신곡의 여행은 이어집니다. 창세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7일의 기적과 분명히 일치하는 구성이며, 천국편에서 마치 성경의 시편과 흡사한 천국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단테의 신앙적 자세를 분명히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전혀 느낄 수 있는 능력과 자세가 아니지만, 신곡의 문학적 역사적 가치는 상상이상인 듯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단테는 당시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주요한 사용 언어인 ? 특히나 이책은 신앙적 고백, 찬양이 많은 책인데도 ?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피렌체어로 썼다는 것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고, 더구나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둘러보는 지옥편에 등장하는 역사적, 신화적 등장인물들로 판단해 볼 때 이책은 신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당시의 사상적, 지리적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나 지옥편의 등장인물과 주변 배경을 묘사하는 부분은 단테의 탁월한 역사, 인문적 소양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데 많은 영화에서 이러한 지옥편의 생생함을 차용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엔 댄 브라운의 원작 인페르노를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로 옮긴 동명의 영화 인페르노가 그렇습니다. 톰 행크스가 기억을 잃고 몇가지 사물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가끔 환상처럼 등장하는 지옥의 형상을 현대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고, 지옥편을 묘사한 지옥의 고리를 보여주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책이나 영화의 제목인 인페르노(inferno)라는 것이 지옥불을 상징하니 더 얘기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그리고 유럽 역사의 사실적 인물들, 단테 동시대의 주변인물들도 등장하는 지옥편은 조금은 섬뜩할 수 있겠지만, 가장 책을 읽는 재미를 주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묘사와 설명이 살아 있으면 내용과 상징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책을 전개하는 데 그나마 덜 지루했던 거 같습니다. 각주를 인물, 상황 등에 번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만, 너무 많고 내용도 길어 각주를 읽고 다시 본편으로 넘어와 읽다보니 전개도 더디도 내용도 뒤죽박죽 연결이 안되어 어느순간엔가 각주는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연옥편은 가장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입니다. 지옥과 천국을 연결하는 내용이어 지옥편의 사실적 묘사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비해 긴장도 떨어지게 되고, 천국편의 화려한 어구나 찬사, 상징 등도 등장하는 상황이 아니므로 딱히 독자에게 다가서는 부분은 약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을 찾아 댓글이나 감상을 찾아보니 지옥편에서 책을 마치는 독자도 상당한 거 같습니다. 천국편은 지옥과 연옥을 거친 단테가 환희와 환상 사랑과 성령으로 충문한 상태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야 했기 때문인지 황홀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상징과 환상을 쫓다보면 어느새 책을 다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테가 신곡을 구상해 문자로 옮기게된 배경과 느낌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사는 내가 700여년전 이탈리아 피렌체 또는 유럽의 사상과 철학을 감지하는 것은 나의 인문학적 철학적 깊이가 어느정도 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그저 스스로의 느낌으로 생각건대 나는 단테의 지옥의 묘사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었던 부분인데, 현재를 사는 내게도 현재는 어쩌면 지옥과 같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피렌체에서 추방된 당시 단테의 마음과 주변을 떠돌며 보게되는 경험과 상황은 지옥을 당시 상황을 반영해 그려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적절한 상황에 과거와 신화속 등장인물을 매칭하며 배치하면 되는 상황일 것이므로 이 정도 글을 써내려 가는 작가적 역량에 비추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천국편은 그의 신앙적 믿음과 베아트리체에 대한 환상적 사랑을 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란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각주를 빼고, 줄간격을 조정하면 신곡은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포함된 많은 상징과 등장인물, 역사, 철학, 인문적 사상이 반영되어 있어 그것을 잡아내 온전히 작자의 느낌을 전달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접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덮은 지금의 내게 남은 것은 저자가 단테라는 것 지옥, 연옥, 천국편 3편으로 7일간의 여행을 옮겼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독후감을 포기하려 했습니다만, 며칠간 생각을 정리하다 그냥 막 끄적거려 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신곡(아 코메디아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을 써낸 심적 느낌을 써낸 거의 유일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옮기며 마칩니다. 천국편 25곡 첫 번째 부분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손을 잡는 내용을 담은 이 거룩한 책을 쓰는 오랜 작업에 나는 몸이 상하고 야위었다.
한 마리 양으로 자라는 동안 나를 감싸 준 포근한 우리 밖으로 추방한 저 잔악한 마음들, 내게 싸움을 거는 늑대들에 이 시로써 승리를 거둔다면,
나는 변한 목소리와 도 다른 양털을 지닌 시인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례를 받은 샘에서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영혼들이 하느님을 헤아리는 믿음의 길로 들어섰고, 이제 그 믿음으로 베드로께서 내 머리 위를 맴돌며 관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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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고전 읽기지만 그걸 해낸 사람들에겐 분명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단테의 <신곡>은 어디에선가 봤던 딱 이 한 구절이 그 계기였다. Follow your own courses, and let people talk. 어디에선가라고 했지만 기억이 아마 맞을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참고서에 써져 있었다. (어떤 참고서였는지까지는 기억할 재간이 없고;;) 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구절 밑에 쓰인 번역. 너의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저 구절이 짚는 함의까지 정확한 번역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 한 자리에 남아 있었고 작년 2월 단테의 700주기일을 맞아 기념으로 구입했다. 지옥편을 먼저 읽다 보면 서두에서부터 서늘함을 맞닥뜨린다. 3곡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한다. 이어서 "하느님께 반항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저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도 섞여 있다"고 한다. '저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힌다. 이보다 서늘한 역설이 또 있을까. ㅡ 그리고는 확인 사살까지 한다. "이들에겐 죽음의 희망조차 없다"고. 고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 주는 역할도 하는데 <신곡>은 거기에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맨 먼저 인용한 "남이야 뭐라든 너의 길을 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또한 느낄 수 있다. 우선은 연초인 이번 한 달부터 첫 단추를 잘 꿰어 결과적으로는 올 한 해를 남이야 뭐라든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을 삶을 보낼 수 있기를 새삼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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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서적을 접해본 이는 드물것이다. 그중 단테의 신곡(영어 원제 Comedia)는 단체의 대표적인 문학이며 동시에 최고의 철학 저서로 자리잡았다. 번역가에 말에 따르면 '코메디아'는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단어라고 한다. 사실 코메디아의 뜻은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희극'을 의미한다. 단테가 코메디아라고 부른것은 그가 밝혔든 '코메디아'는 슬픈 시작에서 시작하여 행복에 결말에 이르기 때문이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부활절 주간에 숲속을 해매던 단테는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앞에 나타나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와 죽음 이후에 세계로 순례를 떠난다. 그의 순례는 지옥부터시작하여 연옥 천국을 순차적으로 머물게 된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사이클에 맞춰 단테의 구원여정이 시작되는것인데 단체의 신곡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또한 이탈리아에 교황청이 자리잡듯이 당시 천주교가 그들에게 미쳤던 영향들을 조금이나마 사회의 모습을 추스려 볼수 있다. 지옥은 죄와 벌 인과성이 비정할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되는 곳이었다. 단테의 지옥 묘사는 더 할 수 없이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마치 글을 읽는 동시에 내 자신이 여지껏 살아오며의 악행들을 되돌아볼 정도로 비명소리를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옥이 형벌의 영원성을 상징하듯 깔대기 모양으로 내리꽂힌 모양임에 비해, 연옥은 바다 위로 솟아오른 하나의 산으로 묘사가된다. 끊임없이 오르고 또 오르면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도전의 장소이다. 연옥에서는 자신의 과거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서는 회개와 기도를 드리는데 수십년간 끊임없이 해야지만 이룰 수 있는 구원처럼 연옥이 산으로 표현되는 것은 굉장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연옥의 망령들이 형벌을 받는 기간을 단축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현실 세계에서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빌어 주는 기도다. 그렇기때문에 연옥도 죽음 이후 세계이지만, 지옥과 천국에 비해 현실 세계에 더 직접적으로 연결 되면서 이승과 저승의 관계가 그리 멀지 않음도 암시한다. 단테는 연옥의 정상에서 베아트리체를 새로운 길잡이로 삼는다. 여기서 베아트리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단테의 실제 사랑을 했던 여인이기도 하며, 단테의 문학에 있어 창작의 근원이자 시혼과 사랑의 원천이다. 단체는 베아트리체를 천사와 같이 순진한 처녀로서 숭고한 정신의 상징으로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레테 강과 에우노의 강에서 몸을 씻은 단테를 데리고 천국으로 향한다. 천국에서 단체는 신학과 철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과 그 밖에 역사와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수행한다. 그렇게 순례를 마친 단테는 작가로서 단체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글이 '코메디아'이다. 단테의 '신곡'을 읽게 되면 우리는 순례를 떠난 여행자의 단테와, 글을 기록하는 단테를 동시에 만나는데 이러한 지점들을 찾는 것도 어쩌면 이 책의 재미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방대한 어려운 용어로 뒤덥혀 있으니,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책에는 여러 그림의 삽화도 동시에 삽입 되어있다. 사실 신곡은 시간이 흐르면 '희곡'이든 무엇이든 '코메디아'의 적절한 번역어가 스며들기 위해 삽입했다고 하는데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런 뜻에서 그림을 삽입한 이유는 새롭게 다가서게 하려는 의도의 하나로 보인다. 이 그림은 '코메디아'의 세계를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해석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단테의 신곡은 작가 단테의 자전적인 경험과 고뇌가 곳곳에 가지런히 박혀서 반짝인다. 마치 고대와 중세의 지식들을 웅장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여러편의 번역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코메디아를 읽는다는 것, 그것도 단테와 만나는 과정으로 읽기가 참으로 어려울것이다. 정교한 규칙과 세밀한 장치들로 이루어진 원문 자체의 해독이 어렵기도하고 그 내포하고 있는 뜻의 해석도 아직도 연구를 하는 단테연구학자도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번역하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단테의 신곡이야기를 왠만한 지식인들이 언급하는 이유는 아무나 읽을 수 없는 특별한 지식을 갖춘 독자라야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와 메타포가 존재하기에 단테으 문학은 여러면에서 방대하다. 또한 단테의 지옥,연옥,천국을 읽는동안 머리는 복잡해진다. 단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방면에 수많은 상상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우리가 흔히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인물들이 지옥과 연옥 천국에서 등장한다. 지옥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적질에도 여러종류의 망령들을 내세움으로써 보편적이면서도 세밀하게 틀린 죄의 질을 평가한다. 읽다보면서 이 얘기가 그 얘기 아니였나 하면서 다시 되돌아가서 읽고 했지만 미묘하게 틀린 지점들이 많다. 악의 죄질 차이에서도 마음가짐과 우발적임에 따라 죄의 무게가 달라지며 또한 가장 중요한것은 반성하는 태도를 지녔느냐에 따라 죄의 형벌이 달라진다. 단테의 신곡은 어렵다. 어렵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무슨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할 수 있지만, 머리로도 이해되지 않은 이서적이 완독을 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게 단테가 빛으로 해체되는 절대적 구원의 경지처럼 나또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며 생각이 많아 질 수 밖에 없다. 마치 얼어붙어 있던 나의 내면이 도끼로 내려친 것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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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민음사에서 출간한 신곡 천국편을 읽고 책장에 넣어두고 이사한 이후에 책이 사라져버렸다. 프린트 박스도 동시에 없어졌다. 이사는 버리기도 하지만 없어지기도 한다. 없어진 책, 이 신곡 천국편 외에 지옥편, 연옥편이 있는데 몇 번을 더 읽어야 할 것만 같다. 천국편보다는 지옥/연옥편이 어렵게 읽어진다. 지금 읽는 중인데, 앞 페이지를 되넘겨 일부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쉬엄쉬엄 읽어나가며 인내를 발휘해본다. 책을 읽은 뒤의 리뷰는 아닌 것이라...어슬프다. 천천히 읽는다. 요즘 재택근무 중에 읽지는 못하지만 집콕 일상이 대부분이니 '신곡' 시리즈 책 3권을 읽으며 지옥같은 코로나를 잠시나마 잊어야 심사가 편안해지리라. 아마도 신곡의 독후감은 못할 것만 같다. #단테 가 #신곡 을 썼다...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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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독서모임으로 단테의 신곡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민음사의 도서가 무난하게 읽힌다고 해서 민음사 본을 선택했다. 단테의 신곡은 행렬을 정확하게 쓴것으로 유명하다. 글자수가 잘 맞춰진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생각보다 아주 잘 읽힌다.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나가기 보단 하루에 2곡 씩 곱씹어 읽기로 했다. 필사, 문장수집을 하며 열심히 읽는 중이다. ‘두려움은 남에게 해를 입힐 힘을 지닌 것들에게만 나오는 법입니다 다른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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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형님은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와 함께 서양문학사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해서 읽어봤다. 한때 본인도 소설가를 꿈꿨지만 단테형님의 필력을 보고 작가의 꿈을 접었습니다. 단테형님의 필력은 대중에게 글로 감동과 여운을 주는데 저의 글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전문학은 지루할것이다라는 편견이 있을수도 있는데 다음이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됩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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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있는 서적들을 즐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작가의 신곡 세트를 구매 및 주문을 해서 보게 되었다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작가의 신곡이라는 이 책에서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작가의 신곡이라는 이 책을 가끔 꺼내어 읽어 보고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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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듣는 팟캐스트인 지대넓얕에서 신곡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때 굉장히 재미있게 들어서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책을 주문했다. 민음사의 제본방식과 자간 여백을 굉장히 좋아해서 역시나 잘 읽혔다. 평소 사후세계란 주제를 좋아해서 영화, 만화, 소설을 많이 접해서 그런지 신곡에서 나타난 세계관이 낯설지 않았다. 팟캐스트에서 다뤄주었던 애니그램을 적용해보려고 내가 속했던 층을 선택적으로 먼저 읽어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최초의 세계관이니 그것만으로도 소장가치는 충분한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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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하면 신곡이라는 답이 튀어나올 정도로 연상단어 외우듯이 입력되어버린 단테와 신곡. 도대체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도서관 서고에 기대어 쭈욱 읽던 기억이 난다. 누가 번역했는지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지 기억도 안나지만 당시에 처음 접한 나로서도 어설픈 번역과 억지스러움이 묻어난다고 느낄만한 책이었고 그만큼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어쩌면 한두번 읽어봄직도 할텐데 어설펐던 당시 책에 대한 후유증 탓인지 두번 다시 읽지를 않았고 민음사에서 제대로 번역한 이 책이 몇 해전 소개되었음에도 멀리하다가 이번에 새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종교적 기념물이 남아있는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과 유적지를 다니면서 인간과 신, 이승과 저승, 사후세계와 윤회, 죄와 벌 등등 검증하지 못하지만 무언가 숙명같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깊어졌고 아마도 그 결과로서 단테의 신곡이 손에 잡힌 건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지고 밤이 깊어진 요즘 책읽기 좋은 철인것 같다. 단테의 신곡부터 채워 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