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하나의 전체로서 순간을 느끼게 된다(『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열화당, 2005년). 모든 감각이 최대한으로 예민하게 가동한 상태, 다시 말하면 제 3의 눈이 대상과 마주쳐 만드는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가 딱 들어맞을 때 사진가는 사진만으로 충만하다.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사진에 어떠한 말도 덧붙일 수 없다. 화려한 수사도 군더더기가 될 뿐이다. 그러나 어찌 사진가와 대상이 딱 들어맞기만 할까.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사진가는 사진에 말을 덧붙이고 싶어 한다. 그것이 군더더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을 덧붙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 사진가 이옥동 선생님은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사진에 흔한 제목조차 붙이지 않는다. 말을 글쓴이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이옥동 선생님은 글쓴이를 35년 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지켜왔다. 글쓴이가 퇴직한 뒤에는 24시간 같이 붙어 있다. 글쓴이가 미쳐 하지 않은 속말을 알아듣고 글쓴이의 욕망보다 먼저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글쓴이를 빛나게 하는 이옥동 선생님의 삶의 자세는 사진을 찍을 때도, 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이다. 빛과 그림자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어둠이고 그림자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는 한 몸 같은 짝이고 서로에게 스미어 경계조차 분명찮은 아름다운 짝이다. 따라서 이옥동 선생님은 카메라를 들기 이전부터 사진가의 본질을 살아온 사람이다. 스스로 어둠으로 그림자로 살아오며 빛을 만든 사람이다. 대상이 남편에서 사진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빛으로 전화한 사람이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살아갈 만하다. 이옥동 선생님 곁에는 언제나 당신의 적업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의 사진 작업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남편이 있다. 그때는 당신이 빛이고 글쓴이는 스스로 어둠과 그림자가 되려고 한다. 당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두 분의 작업은 서로에게 스미어 빛과 그림자처럼 한 몸이 되어 경계조차 분명치 않게 되었다. 그러한 작품들을 수록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아껴가며 볼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