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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여성작가들은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서 분노를 표현한다.
침묵의 카르텔, 보이지 않지만 세계 곳곳 구석구석에 자리한 차별들을 없애는 방법은 바로 분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인 릴리 댄시거는 각계 여성 작가로 활동하는 22명의 분노의 목소리를 담았다. 물론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분노심을 느끼고 표현하는 이들도 대부분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오면서 분명하게 겪은 차별과, 무마되곤 하는 폭력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순 없는 일이다.
요즘 시대에 차별이 어디 있느냐고? 법도 있지 않냐고 일견 맞는 말이다. 특히 서양권에서는 그런 듯이 보인다. 처음에 어떤 필드에 뛰어들고 신인으로 있을 때는 차별이 없는 듯 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작가, 글쓰기의 세계에서도 그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여성은 차별을 겪는다.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면 더욱 그 차별이 노골화되기 시작한다.
여성이 자신이 속한 그룹에 차별/성폭력을 호소하면 이는 즉각 ‘사적 private’인 일이라는 수식어를 입는다. 화나서 화를 내는데 ‘감정적’이라고 한다. 화가 감정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데 말이다. 사적, ‘감정적 대응’ 이 두 가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평가하는 전형적인 워딩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구분’하는 단어들이 여전히 잔재한다. 그게 과연 단순한 성별 인지를 위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때가 많다. 여학생, 여교사, 여 의사. 여검사. 언론에서 쓰고 우리들도, 여성들까지도 부지불식간에 차별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직이라고 해서 차별이나 성적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얼마전 뉴스에서 의사공부하는 여성들이 의사가 되기까지, 되고나서도 절반 이상이 성희롱을 당했다는 걸 들었다.
남자답게, 라는 말이 있고, 여자처럼 이란 말이 있다. 남자답다,는 건 강하다, 리더쉽 있다, 능력있다라고 주로 쓰인다. 여자처럼, 이란 약하다, 종속적이다, 변덕스럽다로 여겨지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말부터 언론, 교육 현장, 가정에서부터 바꿔야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분노할 상황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사회가 완전하지 않으며 권력자, 부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휘둘러 약자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분노는 반사회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분노하는 행위는 상대방,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다. (범죄자는 빼고)
남성의 분노에 비할 때 여성의 분노는 평가절하 되어왔다는 게 책의 작가들의 생각이다. 분노 자체가 파괴적인 성격이 있다면 그건 남자, 여자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지 여성의 분노가 더 사회에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아동을 교육하고 가르칠 때도 편견은 작용한다. 남아가 분노했을 때 진정시키려는 것과 여아가 분노했을 때 진정시키려는 어른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남성의 분노 앞에는 ‘강력한’ ‘강렬한’이 주로 붙지만 여성의 그것 앞에는 ‘독살스러운’ ‘적대적인’이 붙는 빈도가 더 많았다고 한다.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은 책에서, 정치 인생 내내 화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압박을 느껴왔다고 고백했다. 실로 그럴 만한 사안이라 해도 화를 낸다면 여성이라 그렇다는 여론을 받을까봐 조심했다. 누구건 예민한 성정의 사람은 있는데 왜 여성 뒤에 유독 ‘히스테리’를 붙이는 것일까. 그것도 의아하다.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분노를 표출하는 메시지들은 남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여성이 그러면 ‘예외적인’ 것이고 그 사람 인품이 저급한 걸로 평가받기 일쑤였다.
백인 여성들이 겪은 차별도 뚜렷하지만 흑인과 유색인종들의 차별 경험은 더욱 밀도가 높았던 것 같다. 그들의 경험과 분노는, 나름대로 페미니즘에 익숙하다는 내게도 낯설은 것이 많았다. 1960년대에 쏘울가수 싱어 송 라이터였던 니나 시몬. 최근 1년 동안 그녀의 노래에 빠졌는데 그 이유를 이 책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니나 시몬은 노래로 미국 주류와 싸웠고,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거침없이 드려냈다. 처음에는 내게도 낯설었고, 심지어는 무서워 보이기도 했던 그 아우라. 그건 적합한 분노였다. 아니 꼭 필요한 분노였던 게 아닐까.
니나 시몬을 비롯한 흑인들, 흑인 여성들의 분노와 ‘싸움’을 통해 미국이 그만큼 발전했던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에 예술작품에서 여성은 흔히 이분법으로 양분되어 오기도 했다. MBTI도 16개가 있는데 단 두 부류의 여성이라니. 참 말이 안 된다.
온화하거나 화를 내거나, 정숙하거나 헤프거나.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거나. 등.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잔 다르크 숭배는 이분법의 전형이면서 끔찍한 역사이기도 했다. 현재는 그런 일이 전혀 없을까. 물리적으로 누구를 죽인다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사회 구조적으로, 기득권의 아래에서 자행되는 일들이 있다.
책을 통해, 스물 두 명의 여성이면서 작가로 살아온 이들의 고백과 메시지로 이를 알수 있다.
불태우다니 무서운가. 몰랐던 이야기들에서는 언틋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점진적이고, 젊잖기만 해서는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나와 무관한 일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여기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야말로 기만일지 모른다.
책 중에서 '불태워라’에 글을 실은 여성들은 ‘나’에서 시작해 분노라는 화두를 풀어간다. 경제적 계급, 가족사, 피부색, 성정체성, 문화적 배경, 직업, 폭력의 경험 등 자신의 삶을 걸고 경험을 나눈다.
세상이 여성에게 허락하는 좁은 범주 내에서 분노를 억누르는 일이 어떻게 신체 건강을 망치고 커리어를 망치고 정신 건강을 망치고 관계를 망치는지, 결국은 나라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기에 이르는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어떤 글은 뜨겁게 분노하고, 어떤 글은 차갑게 논증한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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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나는 나이, 나라, 문화, 인종도 다르지만 여자라는 공통점 하나 뿐인데,
너무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많아 놀라왔다.
<특히 살얼음판에서 자란 여성들에게, 민다허니> 는 공감을 넘어서 내가 눌러오고 눌러왔던 깊은 감정의 판도라 상자에 닿아 글을 읽기만 하는 건데도 심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 아빠는 방에서 나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기도 했다. 사과를 받은 적은 없었고, 어던 때는 아빠의 행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선물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내가 그런 식의 상호작용에 대해 어떤 감저을 느꼇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249p
민다 허니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 또한 나에겐 표면적으론 '좋은 아빠' 였다. '딸바보' 라는 말이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에도 외가댁에 가면 외가 어른들은 으레 나에게 '아빠 껌딱지' 라는 식의 말을 해주시곤 하셨으니까.
하지만 커갈 수록 나와 아빠의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생겼다. 아빠는 '좋은 남편'이 아니였고, 커갈수록 더이상 귀엽지 않은 아이가 아니였던 자식인 나에게도 가끔은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로 자신의 말만 옳고, 따를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분노와 폭력을 표출했으니까,
물론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아빠가 화난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아빠는 1만 가지고도 해결 할것을 10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듯 굴었다.
한참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민감했던 사춘기 시절, 학원에서 남자아이들이 말을 걸어오는게 부담스러워 한번은 학원 가기 싫다고 때를 부렸는데, 그날 아빤 골프체로 거울을 부시며 욕하며 왜 가기 싫냐고 화를 내었다.
분노.
그렇게 한번 화를 내고 나면, 나는 입을 닫았고. 아빠는 이미 그런 태도로 엄마와, 언니와 거리를 둔 채 살았기 때문에, 막내딸인 나만은 자신에게 애착을 가졌으면 한건지, 그럴때면 돈이나 물건 같은, 어린아이가 혹은 사춘기의 아이가 혹 할만한 물건을 주며 나의 화를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아빠가 사과하는데 서툴어서 그런 식으로 화해하려고 했다는걸 이해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의 감정이나 자존심 따위는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굴복하는 걸 훈련받은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 창녀가 된느낌이랄까....
나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면 폭력이나 분노가 돌아온다. 그건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고, 그런 학습 때문에, 나는 여러번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반항한번 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 말고도, 이 책에는 나의 경험과 너무나 비슷한 다른 여성들이야기에 나는 위로를 받았고, 분노할 용기를 얻었으며 내가 그동안 모두 내탓으로 돌렸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전적으로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안도감 또한 얻었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분노에 미친 여자들이 일으킨 운동이 아니다. 더이상 불합리를 참으면 안된다는 용기이고 외침이다.
제발 분노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관심가져 주길...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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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나는 동생들 땜에 항상 분노가 많은 아이였다. 내 물건에 손대고 하지마라는 건 꼭 하는 동생들은 나의 분노를 일으켰다. 이책은 여러명의 다양한 인종의 지은이들의 분노한 일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아직 한국사회는 남아선호사상이 뿌리박혀 있어서 할머니께서는 항상 내가 하는 일에"기집애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역정을 내셨다. 내가 여자라서 모든게 불만이셨을까? 지금 할머니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땐 내가 많이 기죽어 살던 때라 섣불리 말을 건낼수가 없었다. "왜 나에게만 화를 내시냐고?" 내 분노도 언젠가부터 머리사 코블처럼 눈물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 내가 불리한 분위기이면 눈물부터 짜내기 시작했다. 흔히 입만 운다고 한다. 내 기술은 정교하지 않았기에 많은 지적을 받으며 자랐다.
직장생활을 하며 화장실에서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왠지 모든 이야이가 나에게 공감이 갔다. 운걸 들키고 싶지 않아 눈에 손바람을 넣어가며 눈을 식혀도 빨개져있는 내 눈을 보며 고개 숙이고 다닌 적도 많다. 이놈의 눈물이 샘솟아 싸움을 밀린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눈물도 어찌나 많은지 드라마 보면서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나도 아직도 자주 운다. 나조차도 원래가 분노가 많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분노와 화가 많아지는 것 같다. 세상에 분노할 일은 왜이렇게 많은 것인가? 요즘 나의 분노는 직장, 육아, 집, 하다 못해 뉴스를 보면서도 분노를 하게 된다. 이책은 많은 여성 지은이들의 살아오면서의 분노와 그 분노를 풀어간다. 무엇보다 '내 분노는 나를 치유하는 연고다' 분노를 하고 그 분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걸 풀어감으로써 나는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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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20. 인문책시렁 426 《불태워라》 릴리 댄시거 엮음 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10.19. 외롭다고 여기는 마음은 안 나쁩니다. 외곬이 나쁘지 않습니다. ‘외롭다·외곬·외눈’은 모두 ‘왼’을 나타내는 여러 낱말입니다. 오른쪽이라서 좋지 않으며, 왼쪽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외·왼’으로 나아가기에 ‘오롯’이 설 수 있고, 배운 바를 ‘욀(외울)’ 수 있고, 이렇게 ‘외’라는 ‘하나’로 설 때에, 외하고 마주하는 오른을 느끼고 알아보면서 ‘왼오른’을 하나로 모으는 ‘온’으로 닿습니다. 저는 하루를 으레 01∼02시 사이에 엽니다. 시골에서 살기 앞서 몸에 익힌 살림길입니다. 이미 서른 해 남짓 이러한 살림길이고, 열네 살 무렵에는 04시에, 여덟 살 무렵에는 05시에 하루를 열었습니다. 마흔 해 남짓 한결같이 ‘새벽사람’으로 살며 돌아보노라면, 새벽이슬을 훑고 새벽바람을 쐬고 새벽별을 보는 무렵에 머리와 마음이 가장 맑더군요. 그래서 아직 서울에서 살던 스물다섯 살 무렵까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지냈습니다. 오늘도 한밤이라 여길 깊새벽에 일어나서 새벽별과 새벽바람을 쐬며 날씨가 어떻게 흐를는지 읽습니다. 이윽고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합니다. 어제는 온몸이 찌뿌둥해서 집일을 놓았습니다. 어제는 모처럼 곁님이 국을 맡고 작은아이가 국수를 삶더군요. 마을 할매 한 분이 돌아가서셔 주검길(장례)을 마을에서 치렀는데, 이 주검길에 함께하노라니 집에서는 힘이 다해서 곁님과 작은아이가 부엌일을 도왔습니다. 다만, 두 분이 설거지는 안 하셨어요. 그러려니 지나간 뒤, 오늘 새벽에 기운을 차려서 즐겁게 마칩니다. 왼이 나쁘지 않고 오른이 좋지 않습니다. 왼은 왼이요 오른은 오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두 손을 모아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아기는 두 손을 모아서 엄마를 안고 아빠한테 기댑니다. 아이는 두 손을 모아서 모래놀이를 하고 나무를 탑니다. 어른은 두 손을 모아서 ‘빚고 짓고 일구고 가꾸고 돌보고 보듬고 열고 틔우고 나누고 펴고 날갯짓을 하는’ 길입니다. ‘왼 + 오른’이란 ‘암 + 수’하고 같습니다. 왼오른을 하나로 모으는 몸짓이란, 암수가 한빛으로 깨어나서 눈뜨는 마음길입니다. 왼오른과 암수·순이돌이·엄마아빠가 맡는 사랑이란, 언제나 서로 다른 줄 알아보면서 함께 나란한 줄 깨닫는 보금자리에서 싹트고 일굽니다. 《불태워라》는 여러모로 뜻있는 글을 잔뜩 모았습니다. 다만, 길을 잘못 틀었어요. 이 별은 ‘돌이나라(남성가부장)’여도 나쁘지만, ‘순이나라(여성가녀장)’여도 나쁩니다. 외로 기울면 그저 나쁠 뿐입니다. 이 별은 어떤 나라로도 갈 까닭이 없습니다. 푸른별은 푸르게 빛나는 별일 뿐입니다. ‘푸르다’에는 암빛도 수빛도 어울리면서 흐를 뿐, 암빛만이어야 하거나 수빛만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멍청한 돌이나라(남성가부장)가 제법 길었지만, ‘나라없이’ 어울리던 ‘슬기사람’이던 나날은 엄청나게 까마득하도록 길고 오랩니다. 푸른별에서 사람은 아름답게 어울리는 사랑으로 아주아주 오래오래 잘살았어요. 이러다가 다른 별사람(우주인)한테서 잘못 배우기라도 했는지, 뜬금없이 멍청돌이가 나타나서 ‘나라(국가·정부)’를 세우기로 했고, 나라를 세우려니 칼을 들어서 이웃을 마구 잡아죽이며 땅뺏기·집뺏기·돈뺏기·추레질(성폭력)을 일삼더군요. 이윽고 칼부름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총을 만들어내어 더 쉽게 이웃을 마구 잡아죽이는 뺏음질을 키웠고, ‘세계사’라고 하는 멍청길(역사·history)을 잔뜩 벌입니다. 모든 쌈박질은 멍청한 길입니다. 요사이는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고추 좀 보자!”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추레질(아동성폭력)이 버젓하던 이 나라입니다. 어린순이도 추레질에 시달리던 나라요, 어린돌이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모든 ‘어른’이라 일컫는 할매할배에 아지매아재가 나란히 추레질(아동성폭력)을 끝없이 해댔습니다. 순이도 밤길이 무섭던 나라이지만, 돌이는 밤길뿐 아니라 낮길조차 무섭던 나라입니다. 낯선 어른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고추 좀 보자!”라고 하면서 벌건 대낮에조차 어디에서나 추레질을 해댔거든요. ‘나라’가 서면서 힘(돈힘·이름힘·글힘)으로 찍어누르기에 순이돌이가 함께 억눌리면서 고달프게 마련입니다. 순이는 순이대로 돌이는 돌이대로 다르면서 나란히 어릴적부터 온갖 추레질로 시달립니다. 모든 부스러기(사회폭력·차별·유리천장)는 ‘나라(국가폭력)’가 찍어누르는 굴레질과 차꼬질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굴레나라와 차꼬나라에서는 “불태워라!” 하고 외칠수록 오히려 굴레질과 차꼬질이 춤춥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태움’이 아닌 ‘살림’입니다. 뜻을 알아가려면, 품이 들더라도 차분히 들여다보고, 다시 살피고, 또 헤아리면, 어느새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불태우거나 태워서는 겉훑기조차 못 하고서 헤맵니다. 돌봄터(병원)에서만 ‘태움’이 버젓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즘’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만, ‘-이즘(-주의)’으로 기울 적에는 왼켠에 설 수는 있되 외곬로 기울다가 쓰러집니다. 외곬로 기울다가 쓰러지면 함께 죽는 ‘태움·불태움’입니다. ‘태움’은 ‘불태움’을 줄인 낱말입니다. 불(분노)은 ‘얼뜬짓(비이성적 행동)’입니다. 다 불지르고 불사르면서 ‘나(우리)’부터 죽이거든요. 잘잘못을 짚고 따질 노릇이되, 잘잘못에 얽매이지 않을 노릇입니다. 잘잘못을 짚고 따지는 뜻이란, 잘잘못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일구고 일으켜’서 온누리를 ‘푸른별’로 돌려놓으려는 몸짓과 마음일 노릇이지 않을까요? 페미니즘이어야 옳지 않습니다. ‘-이즘(-주의)’이 아닌 ‘함께’ 살림하는 길을 찾을 노릇입니다. ‘옳다 = 오른쪽’이라는 밑뜻입니다. 우리말뿐 아니라 영어도 똑같습니다. 오른쪽(옳다)이어야 맞거나 좋을 수 없습니다. 왼쪽만 있어도 못 걷고 못 날고 못 짓는데, 오른쪽만 있어도 못 걷고 못 날고 못 짓습니다. 우리는 ‘손’을 쓸 노릇이고, ‘다리’로 설 노릇이고, ‘눈’으로 볼 노릇이고 ‘골(뇌)’로 생각을 일으킬 노릇입니다. 한쪽으로 기우느라 쓰러지거나 싸우지 말고, ‘함께 하늘빛으로 하나인 나와 너를 아우르는 숨결’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부디 태움질(불태움질)을 멈춰야지요. 지음빛으로 가야지요. “짓고서 지내는 곳”이라서 ‘집’입니다. 우리말에서 순이를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계집’입니다. ‘계집 = 계시다(존재) + 짓다(창조)’로 엮은 이름인데, 이 놀라운 이름인데, 놀랍게 지은 아름사랑인 이름인 ‘계집’을 시샘하고 부러워하는 멍청한 꼰대들이 마치 ‘계집’이 낮춤말이나 놀림말이나 나쁜말인 듯 잘못 길들입니다. 이처럼 잘못 길들이는 멍청한 짓도 잘잘못으로 짚어야 하지 않을까요? 계집(계시며 짓는 님)이기에 낳습니다. ‘낳다’는 “아기를 내놓다”만 뜻하지 않습니다. ‘낳다’는 “몸소 새롭게 지어서 내놓다”를 뜻합니다. 이 푸른별에는 계집이 계시면서 지어왔기에 여태까지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계시면서 짓는 계집 곁에서 집안일과 밭일을 도맡아서 살림길을 일구는 사내가 나란하기에, 둘은 한결같이 사랑을 한빛으로 모아서 씨앗(아기)을 낳고 열매를 함께 누렸습니다. ‘국사·세계사’라는 허울에는 멍청길(쌈박질뿐인 역사·history)만 그득하지만, 글로 안 남은 ‘계집·사내 살림자취’에는 언제나 아름답게 사랑만 흘러온 나날입니다. ㅍㄹㄴ 세리나 윌리엄스는 뚱뚱하지 않은 근육질 신체를 지녔음에도 선수 생활 내내 정당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출했다는 이유로 처벌과 비난을 받았다. 오사카 나오미와 맞붙은 2018년 US오픈 테니스대회 결승전에서 주심 카를로스 라모스는 계속해서 윌리엄스를 표적으로 삼았다. (107쪽) 내가 아들을 분노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분노 없이 지낸 날이 단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176쪽) 나는 태평양 북서부를, 다시 보스턴을, 또 뉴욕을 향했고, 자유사상을 꽃피운 곳으로 이름 높은 근사한 대도시들을 거치며 또 다른 형태의 편협함을 경험했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226쪽) 그 간호사는 미스젠더링을 통해 내 여성성을 빼앗음으로써 나를 성추행할 권한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237쪽)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던 아침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뒤로 나는 매일 나한테서 마음에 드는 점 네 가지를 큰 소리로 말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 1년째 매일 이렇게 했더니 상상 이상으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278쪽)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느꼈다.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말재주를 부리는 것 같았다. (290쪽) 나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라 할지라도, 변하고 성장하고 나아질 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세계를 보는 시선은 전적으로 그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를 해친 그 사람 개인을 갱생시키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295쪽) #BurnItDown #WomenWritingaboutAnger #LillyDancyger + 《불태워라》(릴리 댄시거 엮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 헝그리hungry와 앵그리angry의 합성어인 행그리hangry라는 단어는 → 고프다와 타다를 더한 타프다라는 낱말은 → 배고프다와 불타다를 더한 배타다라는 말은 128쪽 누군가가 자꾸만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고 → 누가 자꾸 나한테서 빼앗아 가고 → 저들이 자꾸 나한테서 빼앗아 가고 → 저들은 자꾸 나한테서 빼앗고 144쪽 분노의 가마로부터 → 불가마에서 221쪽 나 자신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연결되지 않는, 일종의 해리를 겪었던 것이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나 같지 않아서 어긋났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가 아닌 듯해서 비틀댔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나로 못 느껴 기우뚱했다 235쪽 몇 달이나 데드네임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 몇 달이나 옛이름을 쓰라고 몰아세웠다 → 몇 달이나 죽은이름을 쓰라고 시켰다 239쪽 어떤 사람은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난다 → 어떤 사람은 입하늘갈림으로 태어난다 244쪽 누군가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보냈다 → 누가 나한테 이렇게 묻는다 → 나한테 이렇게 묻는 분이 있다 274쪽 진짜 원했던 건, 세상으로부터 모자란 존재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고통과 상처에서 놓여나는 것이었다 → 모자라다는 말을 들을 때 더는 앓거나 괴롭지 않기를 몹시 바랐다 → 모자라다는 말을 들을 때 아프거나 다치지 않기를 애타게 바랐다 276쪽 마치 누군가를 교정 시설로 보내는 것이 정의 구현이라도 되는 양 응당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가두어야 올바르기도 한 듯 마땅히 그 사람도 → 마치 누구를 차꼬로 보내야 마땅하다는 듯 다들 그 사람도 29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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