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는 카뮈의 스승이다. 스승이 제자를 추억하는 내용, 흠, 예사롭지 않다. 어떤 제자였기에, 얼마나 깊은 교류를 했기에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를 추억하며 글로 써 낸단 말인가. 제자가 스승을 추모하는 글은 종종 봤지만 스승이 제자를? 이 정도라면 스승도 제자도 서로에게 퍽 고마운 존재였음에 틀림없으리라 여겨지는데.
자꾸만 잊는다. 그르니에가 카뮈의 스승이라는 것을. 이건 내가 아직 두 사람 모두에게 짙은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뜻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내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쉽게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을, 그저 스치듯 흘러넘겼을 것이다. 그르니에의 글에서도 카뮈의 글에서도. 그래서 읽는 그 순간 그 글에는 호감을 가졌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언급되고 있음을 보았더라도 곧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딱 그만큼의 독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카뮈도 그르니에도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두 사람의 작품도 읽은 책 이름만 기억할 뿐, 책 밖으로는 조금 더 탐구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는 이 책을 읽는 데 한계를 느꼈다는 뜻이다. 그르니에는 몰라도 카뮈에 대해서는, 이방인이나 페스트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이 책에서 작가가 추억하는 바를 제대로 전해 받기 어려웠다. 카뮈의 생애를 정리해 둔 자료를 찾아본 뒤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카뮈라는 작가가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고 어떤 공부를 하였으며 누구와 정신적 교류를 나누었는지, 생의 최소한의 경로를 알고 있는 채로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먼저 떠난 이의 추억을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나눈다는 건 이런 일일 것이다. 그 대상을 향하여 서로 알고 있는 바에 대해, 또 각자가 알고 있는 바에 대해 같은 생각과 다른 생각을 주고받는 일. 비난이나 비판보다는 호감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르는, 그래서 이제는 그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쉬운, 그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그러했을수록 더더욱. 그르니에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글 곳곳에서 보여 주고 있는데. 아마도 못 알아듣고 있는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나는 또 얼마나 답답했던지.
카뮈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아직 이 단계가 아니라 책의 가치를 못 느꼈다. 두고 보기는 해야겠다. 언젠가 카뮈에 빠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