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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은 왜, 한유주 작가에게 빠져야 하는가?
"글 쓰는 사람은 왜, 한유주 작가에게 빠져야 하는가?" 내용보기
책의 외관.   겉지를 벗긴 상태.     글을 쓰는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일반 독자들과 독서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서술 구조를 뜯어보기도 하고 행간을 오가며 비판을 가했다가도 등장인물을 들었다 놓는 기법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건 마치 기타를 배운 사람이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노래보다는 기타 연주에 눈길이 더 가는 것과 같다.   한유주 작가의
"글 쓰는 사람은 왜, 한유주 작가에게 빠져야 하는가?" 내용보기

 

 

책의 외관.


 

겉지를 벗긴 상태.

 

 

글을 쓰는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일반 독자들과 독서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서술 구조를 뜯어보기도 하고 행간을 오가며 비판을 가했다가도 등장인물을 들었다 놓는 기법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건 마치 기타를 배운 사람이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노래보다는 기타 연주에 눈길이 더 가는 것과 같다.

 

한유주 작가의 이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독서 행위를 해야 할 책이다. 작가는 문장을 파괴해서 이해를 어렵게 한다. 목적어를 목적어라 부르지 못하고 동사는 간데없다. 과도한 쉼표와 접속사의 남발로 숨을 헐떡이고 의식의 단절을 불러일으키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책 뒷부분의 해설은 어려운 말로 늘여놓았는데 백독이 불여일필이다. 직접 한유주의 글을 따라 써보면 된다. 맨 처음엔 소설 같지도 않았던 글이지만 따라 써보는 과정에서 흥미도 느끼고 새롭다. 글은 약속이자 경험의 연속이다. 자신이 거기에 익숙하면 되는 거다. 그러다보면 한유주 글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읽는 내내 그런 충동을 느꼈다. 혹시라도,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유주 글 스타일로 인터넷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늘 지도 모를 일이다.


 

이 페이지에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p.140)


 

작가의 의도는 단편들 각각에 잘 나타나있다. 남들이 쓰는 글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반 독서법으로는 이해 불가능하게 여기저기 글의 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나는 필경’은 이 책의 프롤로그 성격을 띠며 책의 맨 끝 단편인 ‘불가능한 동화’를 언급하기도 한다. ‘불가능한 동화’는 시간적 흐름으로 따져서 ‘머리에 총을’ 단편과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돼지가 거미를 만나지 않다’는 맨 끝으로 가야 시간 순으로 맞다. 프롤로그에 걸맞게 에필로그로 사용하려 한 것 같다.

 

 

수록 작품 순서와 발표 연도.

 

 

(내 자신이) 웃겼던 것은 ‘도둑맞을 편지’에서다. 최대한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고 단문장으로만 구성했기 때문에 불편했던 읽기가 편하게 바뀌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글들이 많다보니 머릿속에도 잘 그려졌다. 작중 화자가 집에서 소변보는 대목에 이르렀는데 화자는 남자다. 글에서는 변기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 뒤 바지를 벗는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허리 단추를 풀지도 않고 지퍼만 내린다. 바지를 벗는 행위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대체로 여자들의 행위와 비슷하다. 내가 너무 분석적이 되어 버렸나? 이 남자는 그런가 보지, 뭐. 단순히 넘어가질 못하는 내 성격을 비판했다.

 

그 다음 문장이 속옷을 내리고 성기를 왼손으로 잡는다, 이었다. 나는 여기서도 멈췄다. 보통, 오른손으로 잡지 않나? 여성인 작가가 남성으로 이입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느꼈다. 김탁환 작가는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집필한 후, 테스트 판을 여성들에게 읽혔다고 한다. 제대로 표현하질 못한 걸 깨달은 나머지, 눈물을 머금고 소설의 3분의2를 뜯어 고쳤다고 하질 않는가. 그러고 보면 토마스 하디가 ‘알리샤의 일기’에서 보여준 탁월한 여성적 감성 표현에 탄복을 금치 못했던 기억도 있다. 그 만큼 다른 성을 화자로 내세워 집필하는 것이 어렵고 실수하기도 쉽다.

 

맨 앞의 단편이 생각났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아, 왼손잡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왼손잡이라도 성기는 오른손으로 잡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왼손잡이 남성이 있다면 성기를 잡을 때, 어느 손으로 잡는지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고맙겠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단편에 이르러선 더욱 문장이 담백하다. 기름기를 뺀 육질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에서는 다시 원래 스타일로 돌아선다. 맨 끝의 ‘불가능한 동화’는 맨 앞의 ‘나의 필경’과 연결된다. 그래서 ‘불가능한 동화’를 읽고 곧이어 ‘나의 필경’을 읽어도 말이 된다. 이걸 순환 구조라고 해야 하나. 단편 배치 잘 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개가 멍멍 소리 내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멍멍 소리를 낼까? 언어적 표현일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진실이 아닐 수가 있고 사물을 왜곡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언어를 기술하는 문장 역시 그렇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글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이는 작가의 문장 파괴 행위를 그냥 생각의 찌끄레기를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문학계에서 조차도 ‘연구 대상이지 독서 대상이 아니다’, ‘독자에게 불친절하다’,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주목받기 위한 연기’라는 혹평을 듣는다고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자. 그렇지 않으면 한유주의 소설은 한낱 말장난으로 격이 떨어질 것이다.

 

신문에 ‘철의 여인’ 영화에 대한 기고문이 있었다. 저조한 관람객 수를 꼬집었다. 그나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바람에 관심 좀 끌고 개봉 기간이 연장되었을 뿐이지 관람객 수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정치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한번 봤어야 하는 영화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정부 관료, 정치지망생, 심지어는 각 대학의 정치학과 학생들까지 합치면 수백만 명이 될 텐데 이런 영화 하나 제대로 보지 않고 뭘 하겠다는 것인지 개탄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나라 글 쓰는 사람들, 전문인이든 비전문인이든 많은 수가 존재할 텐데 이런 책 하나 사서 읽지 않는다면 위의 개탄스러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2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에 올랐다고 하니 좀 더 주목받길 바란다.


 

회색톤 바탕에 빨간 네모. 단순하지만 예쁘다.

v*****r 2012.04.10. 신고 공감 7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언어유희의 절정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언어유희의 절정" 내용보기
솔직히 말하자면 구입한지 몇 년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그동안은 너무 불친절해서 가독성이 낮다고 생각해왔는데,몇 년 간 고전도 읽고 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었을 뿐.어쨌든 처음 접한 그 순간에도 그렇고, 다 읽은 지금도 한유주의 말장난스런 글솜씨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렇게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언어유희의 절정" 내용보기
솔직히 말하자면 구입한지 몇 년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너무 불친절해서 가독성이 낮다고 생각해왔는데,
몇 년 간 고전도 읽고 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었을 뿐.
어쨌든 처음 접한 그 순간에도 그렇고, 다 읽은 지금도 한유주의 말장난스런 글솜씨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언어표현은 깊은 사유와 진지한 고찰이 없으면 그냥 말장난일 뿐일 텐데, 작품들에선 가벼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겁다.
한유주를 언어유희의 마술사라고만 부른다면 부족한 표현이 될 것이다.
n***o 2023.01.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유주 -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곱씹어야.)
"한유주 -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곱씹어야.)" 내용보기
철학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가끔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단어들만을 나열할 때도 있다. 혹은,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말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가의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그들의 말을 그저 ‘헛소리’나 ‘개소리’나 ‘잡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 물론 그 ‘헛, 개, 잡’
"한유주 -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곱씹어야.)" 내용보기

철학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가끔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단어들만을 나열할 때도 있다. 혹은,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말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가의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그들의 말을 그저 헛소리개소리잡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 물론 그 , , 소리들은 그들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하는 생각이다. 그들의 말은 곱씹어보아야 한다.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니. 나와 스피노자가 친구라면(머리가 터져버리겠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ㅁㅊㄴ하지만, 그의 말을 계속 곱씹다보면 나의 비루한 상상력과 논리력으로 그의 말을 내 맘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의 생명만을 생각하겠다. 라는 이야기일까.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는 재앙보다 그 재앙에 맞서려는 하나의 생명이 중요하다. 는 이야기일까. 이렇게 내 머릿속은 꼬여간다. 하지만, 분명 뭔가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개소리다.)는다.



나는 한유주의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이하, 필경사)를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읽다가 농담에서 끊겼고, 그래도 인내력을 가지고 두 번째 시도했을 때는 비로소 다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맨 처음 필경사를 읽었을 때에 끝까지 읽지 못했던 것은 그녀의 난해한문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필경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농담은 대체 어떤 종류의 농담인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나는(두 번을 읽었음에도 이에 관한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나는) 결국 그 책을 접었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작가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필체에 확실히 개성이 넘친다. 그 넘치는 개성은 머리의 총을에서 가장 잘 들어난다고 생각한다. 걷고 있는 화자는 생각을 한다. 평소 우리의 정리되지 않는 부분부분의 생각을 한다. 특이한 점은, 작가는 이 화자의 생각을 아무런 정리 없이 나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 실제로 내가 저 화자의 머릿속을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다른 작가의 개성은 글의 화자에 있다. 이 화자는 1인칭 주인공 시점 같지만, 위 책의 해설을 써준 강동호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비인칭 시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왜냐하면, 화자에 대한 상황이 세부적으로 전혀 드러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화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으며,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다만 사건이 벌어지면서 나타나는 비인칭적인 화자의 생각만이 초반의 글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이 아주 잘 나타나는 머리의 총을을 읽고, 정말로 나는 머리에 총을 맞은 듯 했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대중성을(아주 약간) 띌 수 있는, 그러니까 머리를 쥐어 싸매지 않고서도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는 그런 단편이 있으니, 바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라는 연작소설이다. 대재앙 이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상태, 그 결과로 물이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 연작소설에서 우리는 인류에게 닥칠 재앙을 그리는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조금은 밀려온다. 물론, 그 이후의 불가능한 동화는 다시 이해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3개의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 뿐, 남은 5(더하기 나는 필경’)이 난해해서 머리를 싸매면서 읽었을 뿐, 이 소설집은 한유주라는 작가가 얼마나 개성 있는지, 기존 문학에서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고 빛을 내는지 여과 없이 드러내주는 소설집임은 확실하다. 다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서(읽기는 조금 불편하고 난해해서) 나 또한 다시 한 번 읽어볼 테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 더 한유주의 세계에 빠져들게 될 것 같다. 그 때 즈음이면 이 글에 대해서 나의 생각과 해석을 덧 붙일 수 있겠지.


 (p.s. 일례도 엉망, 리뷰도 엉망, 이 글을 읽은 뒤의 나의 머리도 엉망이었다. 나도 의식에 따라 글을 썻다고 해두자.)

(p.s. 해설을 읽어도 알아듣기 힘든 이 글,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밉다.)

c**********g 2013.06.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