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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하루가 가는 것 뿐이지만 12월 31일이 1월 1일로 바뀔 땐 해가 바뀌는 엄청난 일이 되는 것처럼,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나이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스무 살도 서른 살도 그래서 특별했는데. 날짜도 계절도 잊고 사는 듯한 지금, 마흔이라는 나이는 왜 그냥 구렁이 담 넘듯 지나쳤던 걸까?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나의 마흔 앓이도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걸. 마흔이 넘어가면서 늘어가는 흰머리를 볼 때마다 나는 나의 나이듦은 잊고, 그저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잠시 생긴 거라고 착각했다. 체력이 떨어져도 운동 부족이려니 하고 넘어갔었고, 요실금으로 재채기도 마음 놓고 못할 때에도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바닥까지 떨어져 올라올 줄 모르는 자존감, 물귀신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던 우울감의 원인을 살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건 뭘까? 나는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독립해야 한다면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질문 하나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일부러' 뭔가 하면서 살아오질 못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르게 살아가다 보면 덜컥 한 해가 갔고, 그렇게 나이만 먹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고 달라지고 싶어도 나는 늘 주저하기만 했다. 주저하기만 하다가 이제 마흔을 넘어 쉰이 될 판이다. 인생을 80으로 본다면 이제 절반을 살았으니 남은 절반은 정말 '일부러' 생각하고, '일부러' 행동하면서 멋지게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떠날 때가 왔을 때 정말 원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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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만 외딴섬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복잡하고 힘들어하는건지 바보같고 답답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 얘기같아서 얼마나 울컥울컥 했는지 몰라요. 마치 나를 보며 다독여주고 안아주는 것 같아서 감사하고 행복했답니다. 제 마음 알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이제 섬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은 생겨났어요!!!! 일상에 지쳐 육아에 지쳐 앞이 막막하신 모든분들께 추천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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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었지만 마흔 중반을 맞으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고 어떤때는 나의 존재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마져 들때가 있는데.. 이책을 읽으며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만이 오롯이 나자신을 바라볼수 있고 온전히 사랑해줄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말고 나를 내가 사랑하며 챙기며 위로하고 돋아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좋은책 감사합니다. 마흔이 넘었지만 마흔 중반을 맞으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고 어떤때는 나의 존재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마져 들때가 있는데.. 이책을 읽으며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만이 오롯이 나자신을 바라볼수 있고 온전히 사랑해줄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말고 나를 내가 사랑하며 챙기며 위로하고 돋아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좋은책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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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쓰는 편지/ 한혜진 작가님께 지극히 사적인,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저 멀리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당신을 따라서-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나의 유년기로, 방황했던 청소년기로, 일에 미쳤었던 미혼 시절로,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엄마로 태어났던 2016년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세대가 같으면 삶도 비슷한 걸까요. 맞아. 그랬어. 우리 부모님도 그랬는데. 아, 그래서 나도 그랬나봐. 문장마다 공감을 했더랬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섭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기억의 바닥에 침전되어 있던 유년의 감정들이 되살아납니다. 그 감정을 작은 가슴에 안은 채 참고, 또 참고만 있던 작은 아이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안아주었습니다. 말해주었습니다. 작가님이 그랬듯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도 괜찮아. 책으로부터의 여운 때문인지, 책을 덮고서도 울컥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로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주책맞게 떨어지다 옷에 부딪히고 바닥에 부딪혀 더 작은 알갱이가 되어 사방으로 튀는 눈물방울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겠는 것은 이 여행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여행하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습니다. 이상하지요.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는 집부터 정리하고 싶으니 말입니다. 책상 위에 언제 놓였는지도 모를, 콧물이 말라비틀어진 물티슈와 마스크 비닐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인형의 집 부자재와 공주치마, 색연필, 물감이 칠해진 도화지, 색종이 등등을 버리거나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치우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아이의 흔적이라는 것을요. 더불어 또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아이에게 자기 물건을 사용 후 제자리에 놓는 습관을 들인다면 내 일과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겠구나. 퇴근 후 정신없이 치울 때는 몰랐는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아이의 입장에서 정리하기 쉽게 아이 물건의 위치를 재배치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 역할의 우선순위 또한 재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삼십대 중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방감을 맛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의 통해 인정받으려 했던 과거의 제 자신을 버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던 적이요. 그런데 이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를 읽으면서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인정을 구하는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다짐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한 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채 살고 있는 마흔의 나를 발견했습니다.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내면의 아이의 여전히 인정을 바라고 있었나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일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마치 거울에 비친 저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일을 하는 제 자신의 즐거움보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에 비친 제 모습이 어떨지를 우선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마흔앓이 여정에 동참한 덕분에 이제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것을 찾는 여행이요. '다음에' 가 아닌 바로 '지금부터'요. 추신: 도브 캠페인 광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을 찾아보고 소리내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광고 자체보다, 이 광고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작가님의 메시지가, 그 마음이 감사해서요.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합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 '온리원'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쓰면 됩니다. " <공감구절> 77 마흔이 되고보니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은 나이와 노화뿐인 것 같다. 일부러 살아야 한다. 111 나를 지키려면 간절함을 조절하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간절함을 비롯한 모든 감정 조절은 나를 지켜주는 백신이다. 그 방법에 밖에 없을 것 같을 때 다른 방법이 있고, 지금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것 같을 때 또 다른 길이 열린다. 144 타인은 피하면 피할 수 있지만, 나는 피할 수가 없다. 한여름에 피서는 가능하지만, 생에서 피아는 불가능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 떠날 수도 도망갈 수도 못 본척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다. 152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자기 존재를 확인받지 못했을 경우 그 상처로 인해 어른이 되면 가만히 쉬는 일을 못 하게 된다고 한다. 가만히 쉬는 순간 자신이 무기력하고 게으르고 한심한 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일할 때만 자기 존재가 가치 있다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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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소설에 대한 추천사에서 정혜윤 작가님이 이런 표현을 썼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이하 마앓나알)>를 읽으며, 자꾸 눈을 꾸욱 감고 잠시 멈추어서곤 했다. 전화를 끊고 봇짐처럼 뒤에 아기를 업은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서. 이제 손아귀 힘도 제대로 못쓰게 된 몸뚱이라, 식당 설거지 알바조차 못할 거라는 위기감으로 덜컥 겁이 났던 내 설움도 떠올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경력을 쌓았고, 인정과 경제적 자립을 누리며 살아왔어도 소용이 없다. 안에서는 궤도에서 이탈된 무력감에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위태롭기만 한데, 밖에서 찌르는 가시에 더욱 아프다. 싫든 좋든 엄마의 외피를 쓰고 속절없이 나이들어가는 여성의 삶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여성작가가 쓴,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 엄마인 작가'가 쓴 '여자의 마흔 책'이 나왔다. 목이 빠질 뻔 했다. 왜 이제야 나왔냐고 엄한 작가님에게 징징댈 뻔 했다. 실은 재작년 겨울 나는 마흔을 앞두고, 마음의 의식 차원(?)에서 마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한 권 읽어보았지만, 해갈되지 않는 허기가 남았었다. 책에는 내 삶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나를 위한 지침으로 깊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나는 여전히 고막이 찢어지게 악을 쓰는 꼬맹이를 폭풍육아 중이었기에, 내 나이를 셈할 여력보다는 내 자식 개월수를 셈하느라 절박했다. 나의 ' 마흔앓이'는 일년이 지나 마흔 한살을 코앞에 두었을 때, 잠복기를 깨고 실체를 드러냈다. 11개월 간격으로 무려 두번의 지독한 독감과 후유증으로 생전 모르던 식도염까지 앓으면서 나는 땅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아둥바둥 더 살아가야할 날도 벌써 지긋지긋해서 이대로 증발해도 미련이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한 두번 아파본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유난히 우울해 죽을 것만 같지. 나중에야 '명료한 언어'를 통해 깨달았다. 그동안 깡으로 자만했던 내 몸도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니구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직시하고서야 말이다. "'나이 든다'는 그 느낌을 자세히 말해보자면,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일정 기간에 이르러서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순간이 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비교가 될 정도로 나이가 든 느낌이 든다(21p)" <마앓나알>에는 노산후유증이 노화와 조우했을 때,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머뭇거리지 않고는 하기 힘들었을 고백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다(케이트 윈슬렛 진짜 감사하고 멋지네요. 저도 사랑해도 될까요?). 나 역시 작가님과 유사한 고충은 물론, 더는 족집게 뽑기로 따라갈 수가 없는 흰 머리 자괴감, 비비크림을 발라도 푸석하기만 한 피부, 상냥한 눈웃음보다 더 먼저 눈에 띄는 눈주름, 만성으로 시큰거리는 손목, 어깨죽지마저 어긋난 것 같은 통증, 아랫니가 점점 비뚤게 돌아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충격, 세상 모르고 살았던 두통의 빈번함까지.. 모든 노화가 아주 신나게 현재진행형 중이다. 이 모든 게 정말 마흔을 기점으로 심화되었다.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노화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나도 그래요. "나도 그래요"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게 해준다. 하루 차이로 새해가 왔을 뿐인데 마흔이라고 유별나겠나 싶지만, 이 정의를 대입해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흔이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수가 비슷해지는 나이(4p), 무엇을 하기에도, 멈추기에도 애매한 나이(6p)" 정말 그렇다. 이십대에서 삼심대로 넘어가는 것과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말이야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마흔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는 분기점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아. 당혹감을 분명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육아와 가사 과업을 완수하느라 막상 진지하게 현 시점에 대해 사유해볼 기회를 갖지 못해왔다. 그런데, 책이 내게로 왔다. 마흔이 되고 보니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나이와 노화뿐인 것 같다. 일부러 살아야 한다.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78p 중에서- 한혜진 작가님은 그동안 자신의 내면아이를 보듬으며 쏟아낸 눈물들을 거두어, 또 다른 마흔들에게 씨앗을 건넨다. 자기학대, 자기비하, 자기혐오의 고통에서도 끝내 생존해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가 보인다. 글을 쓰면서도 울고,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도 울고, 책을 내고서도 떨고 있는 작가님.. 그런 그이기에, 그가 전하는 '일부러 살기' 미션이 겸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일부러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다름아닌 '가장 나다움'을 되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부정확하게 규정한다(87p)"는 말이 참 와닿았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씌어진 잘못된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불혹은 무슨, 마흔은 흔들릴 일투성이지만, 흔들리지 않기 위한 내공 기르기에 열중해야 한다(18p)고 알려주었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안되고 일부러 살아야만 쌓을 수 있는 내공 말이다. 나는 이제사 좀 앞으로 보람있고 즐겁게 임할 수 있을 나다운 평생업을 탐구해가고 있는 터라, 이 문장을 믿고 계속 용기내어 나아가고 싶다. "엄마의 일은 내가 눈높이를 낮춘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로또처럼 한방에 인생역전하듯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남을 따라서 한다고 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를 제대로 알면 일이 생긴다.(112p)" 책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은 3장. 마흔, 자식이니까, 즉 자식으로서의 나를 알게 된 이야기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텐데.. 나는 이런 마흔답게 성숙한 따님을 가진 어머니, 이주연 여사님이 무척 부러웠다(?). 한없이 내가 부끄러웠다. 실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열정과 불안>이라는 소설 중에 나오는 이런 대사를 메모해 두었었다."마흔 넘으면 성장기 트라우마를 졸업해야해. 부모에 대해서나 성장기의 좋고 나쁜 경험에 대해서나. 더 이상 그걸 끌고 갈 수 없는 나이야" 엄마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 못미더움, 답답함.. 모든 부정적 감정이 터져 나올라치면, 나는 이 구절을 들이대며 내 마음을 애써 묶곤 했다. 양심적으로 마흔은 정말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그동안은 의식적으로 애써왔다면, <마앓나알> 책에서 한혜진 작가님의 어머님에 대한 마음가짐을 엿보며 가슴으로 동하게 되었다. 나도 한혜진 작가님처럼 엄마의 여생을 그저 응원하기만 하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노력을 하고 있긴 했지만, 더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부족했던 것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정면교사 172p)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한편, 책에서 인용한 '인에이블러'는 나의 아버지와 같다. 이 문제도 나는 조금씩 해결할 것이다) 보통 마흔무렵의 엄마는 사춘기에 진입하는 자식을 양육하는 시기다. 내 아이는 이제 다섯살인 마당이라 당장 시급하진 않지만, 5년 뒤면 반드시 닥칠 일이다. 한혜진 작가님은 양육서 베스트셀러인 <극한육아 상담소>, <무조건 엄마편>, <위대한 유산>을 집필하신 분 답게 특유의 명민한 통찰이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점점 떠나가는 큰 딸아이를 바라보는 변함없는 사랑과 마음의 준비, 중심을 단단히 세우는 양육철학은 작가님의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함께 지혜로운 엄마가 되자고 손을 내미는 공언이다. 나는 청소년은 무조건 반드시 기필코 "반항하는 망나니"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두려웠는데, "아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일부 행동이나 성격, 습관 같은 것이 문제(194p)"임을 깨닫고 "인간 존재로서 10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195p)"는 참지식을 얻었다. 인용된 기질 영어 전문가 김세희 님의 이야기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밖에 나가는 것만이 경험이 아니예요. 소통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느냐가 진짜 아이의 경험이죠. 아이와의 대화가 어디까지 쭉쭉 뻗어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201p)" 내가 필요로 했던 실질적인 마흔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를 읽으면서, 딱 이 생각이 든다. 같이 늙어가는 언니가 있어서 너무 좋다. 같이 늙어가는 마흔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마흔의 고비를 넘어선 내가 좋다. 내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는 이 책이 좋다. |
나만의 멘토. 작가님의 글이라면 책이라면 덮어놓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 그만큼 애정하고 아끼는 작가님의 책이 나왔다. 게다가 첫 에세이라니. 그동안 육아와 엄마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다 '한 사람'으로써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나왔다. 눈물로 쓰고, 위로로 마무리를 짓는 작지만 강한 책이다. 우연찮게 이벤트로 저자 싸인본을 손에 넣는 귀한 경험도 했지만, 인터넷 서점에 뜨자마자 구매하기도 했다. 첫 판매일에 바로 2쇄에 돌입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괜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내 손에 들어온 작디 작은 책. 하지만 안의 내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 많은 이야기를 이 책이 품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금방 읽겠다'라고 생각하며 읽기도 전에 서평 쓸 생각부터 했는데 완전히 엇나갔다. 나는 나름 속독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렇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천천히 곱씹으면서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며 뼈에 새겨넣으며 읽었다. 일주일 걸렸다. 완독까지.
솔직한 여자 한혜진. 저자의 솔직함은 늘 부럽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늘 내 감정을 누르면서 산다. 본 감정을 숨기고 가짜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솔직함이 부럽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직접 대면했고, 저자의 장점인 솔직함을 앞세워 고스란히 적어내려갔다. 글이 촉촉하다. 군데군데 눈물이 서려 있다. 이 책을 쓰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눈물이 차고 넘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흘린 눈물만큼 깨달음도 많았을 것이고, 그것을 독자에게도 전해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다. 내면아이와 마주보며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그리고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제 진짜 자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을까. 진짜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내면아이와 마주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거듭 읽을수록 내면아이를 만나고 싶어졌다. 진짜 제대로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나도 진짜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내면아이를 꼭 만나고 싶어졌다.
나의 불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늘 참아왔다. 동생의 몫까지 다 해내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나로 20대초반까지 살아왔다. 결혼 후에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나의 마음은 많이 쭈글쭈글해졌다. 얼굴의 주름살도 펼 수 없는데 마음의 주름살이라고 펼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마음의 주름살'이라는 단어가 너무 와닿는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나만 알고 있던 나의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민폐고,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쌓아오기만 하니 마음의 주름살은 깊어져만 갔다.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마음의 상처는 반드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치유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제대로 된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알아야 나로 존재할 수 있음을.
나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어느 책에나 쓰여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미 '엄마'라는 위치에 있다. 아이들이 있다. 아들도 있지만 나와 같은 딸이 둘이다. 나의 말이, 나의 행동이, 나의 인생이 두 딸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의 인생'이 나에게 크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럼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내가 보여주면 된다.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하루 아침에 아이들을 위해 나도 변할 수 없다. 나도 이렇게 30년을 훌쩍 넘게 살아와서 꽤나 어렵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마흔을 목표로 차근차근 나아가 보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었으니까. 이 책을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읽었기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기에 나는 우아하고 당당하게 나아갈 것이다. 7쪽. 나이가 들면 나를 그대로인데도 나의 가치는 내가 품은 이상과 실천에 의해 달라진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면 움직여야 한다. 8쪽. 내가 왜 자발적으로 이 책을 선택했는지 나만의 이유를 기억하길 바란다. 그것이 독서의 질을 결정하게 될테니까. 23쪽. 마음의 주름살은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른다. 공유해야 치유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자꾸만 숨기게 된다. 69쪽. 나는 타인의 사적인 것을 챙겨주며 나의 사적인 것은 포기하고 공적인 임무에만 충실해야 하는 사람인건가. 70쪽. 나조차도 내 삶을 공공자산으로 당연하게 삼고 용인해온 지난 날을 반성하며, 이제부터 나는 사적인 삶을 늘려가기로 했다. 73쪽. 주어진대로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지 마음을 먹어야 하는 때가 온 모양이다. 85쪽.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삶이 흔들린다. 133쪽. 엄마의 말 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딸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46쪽. 내 안에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었구나.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네모난 상자안에 숨긴 그 순간에 머물러 있구나. 154쪽.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195쪽. 아이 자체를 문제로 만드는 그 순간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255쪽. 특별해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면 특별해진다. 271쪽.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언제인 것 같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그 순간'이라고. 283쪽.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온리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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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40대가 된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갓 직장인이 된 20대때에는 의미 생각 이전에 펑퍼짐한 아줌마이자 꼰대이자 남의 얘기였다. 직장에서 어느정도 자리잡고 연애도 하며 결혼을 생각할 30대에서 비로소 40대 얘기가 들려온다. 주로 엄마가 된 언니들의 이야기인데 40대가 되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30대인 나보다도 건강하고 잘 놀고 유쾌하고 강하게 사는 그들이 아픈 시기를 겪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나도 39살에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40대를 목전에 둔 나는 그녀들이 그 누구보다 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픔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겪어내었기 때문임을. 아픔이라는 허물을 벗고 더 단단해졌을 것이라고.
올 해 나는 둘째를 낳았고 39살이 되었다. 나 역시 40대 직전이 되자 몸이 여기저기 말썽이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 교육, 편찮으신 부모님까지 얽히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얻어맞고 있다. 그러던 때 나와같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 나와주었으니 보물과 같은 이 책을 어찌 어루만지지 않을 수 있으랴.
저자는 마흔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먼저 지나치며 이 구간은 이렇게 조심하라 알려주려 본인이 겪은 감추고 싶은 상황까지도 꺼내어준다. 다사다난했던 어린 시절, 두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바닥. 그 곳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려한 그녀의 몸부림은 비록 여자이자 엄마의 생존본능이었더라도 그것을 대중에게 꺼내어 보임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용기에 기대어 비슷한 우리 세대 엄마들은 자신 안에 꽁꽁 감추었던 부끄러운 일들에 빛을 비춰줄 수 있었다. 너만 그런 것 아니라고. 나도 그리고 또 다른 여자들도 그렇게 힘든 시간과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을테지만 우리는 아직 40일 뿐이라고. 더이상 어리지도 않고 공식적인 청년도 아니고 꼰대중년과 젊은이 사이에 있는 애매한 나이이지만 아직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하는 정 중앙쯤 되는 나이대라고. 그런 우리 나이에 아이 키우랴, 부모님 노후 챙기랴,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도 챙기랴 바쁘지만 그 사이에 나를 잃으면 안된다고 그녀는 말해준다. 무조건적으로 내 편에 서서 말이다.
이 책에서는 1장 2장 3장은 자식으로 살다 여자로 살다 엄마로 살며 겪게 된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4장은 자식 교육에 대한 부분, 5장은 나를 찾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이 책은 그녀가 삶의 철학을 찾기까지 도움을 준 책과 현 상황에 도움이 될 자료들도 수록되어 설명해주고 있다.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40대를 위한 에세이라하면 그녀의 인생과 앞으로의 다짐을 에세이로 말하고 끝일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그러하지 않다. 그녀는 육아가 어려우면 수백권의 육아서를 읽고 방법을 찾는, 어려움을 발전의 계기로 삶기 때문에 그녀의 책에도 그러한 모습이 담길 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그녀의 말에 더 설득력이 있으며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게 되어 있다.
책 뒷표지에 '소설 속 김지영의 현실판 이야기'라고 되어 있어서, 이 건 좀 82년생 김지영의 후광을 얻고자 하는거 아냐?라고 생각했으나 그 말이 진짜임은 초반 에피소드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보며 공감을 한 많은 또래 여성이자 엄마들에게는 이 책 역시 공감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라서 한 겹 너머의 인생을 지켜보겠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라 날 것 그자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더 내 이야기 같았을 것이다.
육아로 자의반 타의반 일을 그만둔 엄마들이 알바를 구한다는 모집광고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러했지만, 특히 요실금 이야기에서 이 책이 확 내 삶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엄마들은 아이 출산 후 탄력 잃은 피부와 신체 여기저기 삐그덕 거린다. 늘어진 피부와 괄약근은 엄마가 되어 스스로가 늙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만들어버린다. 몸의 그러한 문제는 삶의 질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가을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부분은 소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말초적인 부분이니까. 그러나 여성들의 40프로는 요실금을 느껴봤다하니 소설 속 한 겹을 아우른 꾸민 세상 속 이야기보다 현실은 더더욱 적나라하다. 드라마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을 보면 땀을 뻘뻘 흘리고 얼굴에는 붓기라고는 없는 예쁜 여자가 소리 지르다가 아이를 낳고 아이는 예쁜 얼굴로 울며 엄마는 미소 짓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굳이 현실을 상기시키지는 않으려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 읽을 독자라면 그 현실이 어떠한지 잘 알 것이기에. 그런면에서 내 또래 엄마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우아하고 당당하게 겉으로 꾸미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수없이 발을 버둥거려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겉으로 보이는 우아함과 당당함이 내면까지 스미기 위해서 특히나 이 책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고, 내 꿈을 찾는 길을 알아가길 바란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만큼 나 역시도 내 보습 그대로 예쁘고 사랑을 받았음을 말해주는 것. 그녀가 대신 전해준다. 너도 본 모습 그대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돈을 벌고, 엄마로서 잘해야 하고, 아내로서 잘해야 하는 이 관계를 벗어나서 네가 실수투성이에 못난 짓을 하더라도 너의 본 모습 그 자체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노라고.
그녀는 엄마 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나, 여자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해준다. 처음은 그녀가 겪은 여자로서의 불합리함, 엄마가 됨으로서 겪는 약자라는 위치와 그를 강제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 겪는 생물학적인 어려움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위로를 해주고 있다. 위로로 끝났다면 왜 굳이 없는 시간을 쪼개 엄마 독자들이 이책을 읽고 눈물을 지었겠는가. 이 책을 쓰며 눈물을 수 없이 흘렸을 그녀와 더불어 우리 역시 눈물을 수 없이 흘렸을 것이니 그녀는 그녀가 스스로 몸부림치며 체득한 '시크릿'을 전달해준다. 정말 '시크릿'에 버금가는데 이는 해보지 않음 알 수 없으니 더더욱 숨겨진 보물이다. 나와 내 꿈을 찾는 '시크릿'
나를 찾고 꿈을 찾는 시크릿이란 읽고, 쓰고, 실천하는, 그녀가 직접 지은 이름인 '책쓰천'을 실천하는 것이다. 엄마로서, 여자로서, 나로서의 인생이 흔들림을 감지한 분들이 이 책을 손에 잡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흔들림을 들여다 볼 방편으로서 책을 추천하며, 객관화와 더 세밀하게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쓰기를 추천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실천을 해야한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 질문하고 찾으며 읽고 쓰다 보면 꽁꽁 숨어 있던 '나'의 본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 것이 첫 번째다.
이 문장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성장한다고는 느꼈으나 그 뿐. 아이 키우듯 나도, 내 꿈도 키워야겠다는 왜 당연한 부분을 깨닫지 못했을까. 엄마라는 사회가 정한 틀에 나를 맞추어 내 모든 것을 포기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 생각은 세뇌가 아닐지. 그로 인해 많은 엄마들이 정작 이유도 모른체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지... 아이를 키우듯, 나도 키워야 한다는 것. 이 당연한 명제를 잊고 있었다. 내가 살지 않으면 아이도 내 가정도 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버려두었다. 그 거짓된, 만들어진 행복을 아이가 진정 바라고 있을까? 아이도 엄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조건 없이 엄마라서 사랑한다. 그렇다면 아이도 엄마가 나를 찾고 꿈을 찾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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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천천히 가도 한 달은 금방 지나가듯이 2020년도 이제 2달 남는 걸 보면.. 4년 남은 나의 두 번째 스무 살도 금방 올 것만 같다. 그전에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 마흔이 되면서 겪었던 일들. 여자로서, 자식으로, 엄마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온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p142- 육아는 나도 몰랐던 내 밑바닥을 보게 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과없이 알아챌 수 있었다. 나를 직시하는 순간들은 모두 고통스러웠다. 멋지고 근사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p151-아이는 부족한 나라도 사랑했다. 아이는 보잘 것 없는 나라도 사랑했다. 아이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사랑받을 자격을 줬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전한 사랑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엄마니까 나를 사랑했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올해 여름. 코로나는 여전했고,, 남편은 지방으로 출장 중이었고, 아이는 말로만 듣던 마의 18개월... 엄마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감정의 바닥을 찍는 나날들이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나만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더... 그동안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아이가 아빠한테만 가서 질투(?)를 했는데, 요즘 다시 아이를 관찰해보니 아이는 매 순간순간 내 옆에서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되었다. 이 책을 읽고 이번 여름에 많이 들었던 ‘하늘바라기’ 노래를 다시 들어보았다. 저자도 그동안 엄마로써 여자로서, 자식으로서, 나로서 잘 살아온 우리들을 위로해 준다. p125- “지금, 마음이 어때? 너 괜찮니?” 그리고 말해준다. p277- “아이 키우듯 꿈을 키우세요. 좋든 싫든 기분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우리는 당연히 아이를 키웁니다. 그 마음으로 꿈을 키우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운 마음이라면 엄마들도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앞으로 남은 30대 후반.. 언제 가장 나다운지를 알아가고, 내가 설레는 일이 뭔지 하나씩 찾아보려고 한다. 그 안에서 내 꿈이 될 수 있는 일,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 진솔한 이야기를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마흔살의 내모습도 상상해보았다. 나의 마흔은 어떤 모습일까?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받았습니다. 네이버 카페, ‘엄마의 꿈방’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이 리뷰를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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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마흔 살 엄마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아이 키우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백일 지나면 괜찮다, 돌 지나면 괜찮다는 위로를 받으며 참고 버텼다. 그런데 왜 나는 두 돌이 지나도 계속 힘들까. 몸도 힘들지만 가슴도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흘렀다. 뭐가 그리 힘든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센터에도 가봤지만 도움은 커녕 상처만 받고 돈만 날렸다. 그러던 중 지인의 선물로 저자의 예전 책들을 읽게 되었고,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그렇다는 것도.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았고, 남들 사는 모습대로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대충 껴맞추며 사느라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마흔이 돼서야 이제 나를 알아가고 있다. 저자의 책들을 보며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았기에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책크기가 작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읽으면서 꽉찬 느낌을 받았다. 삼사십대에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의 고민들, 같이 나누고픈 것들, 전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내용 모두 꽉차있다. 책을 읽으며 종종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고, ‘어머, 내 얘기야.’ ‘나도 그래요!!’를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요즘 조금만 속상해도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바로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부럽다. 나는 나이가 드니까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오네. 요즘 눈이 왜이리 뻑뻑하지. 안구건조증인가. 눈물 좀 흘리고 싶다.’ 생각하며 지냈는데 이 책을 보며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슬픈 내용도 아닌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공감되고, 내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까. 저자는 나보다 인생도, 육아도 몇 년 빠른 인생선배, 육아선배다. 몇 년 전에 저자가 경험하고 알려주는 이야기가 딱 지금 내 모습이라 많이 와닿았다. 경험한지 얼마 안되어 따끈따끈하고, 이미 지나간 길을 되돌아보는 저자의 시야로 보니 내가 가야할 길이 한결 쉽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며 곧 겪게 될 내 육아와 미래, 노후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힘이 난다. 내 사십대가 기다려진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 받았습니다. 네이버 카페, '엄마의 꿈방'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이 리뷰를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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