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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변주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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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언어학자, 작사가, 갈리마르출판사 편집자, 수학자, 영화인, 번역가, 소설가이자 시인,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거장 크노는 문학실험과 정치변혁의 현장에 양발을 딛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창작세계를 폭넓게 일궈나간 보기 드문 인물이다.” 지은이 약력의 첫머리에 적힌 글이다.           “언어실험의 극단적 예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유례없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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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언어학자작사가갈리마르출판사 편집자수학자영화인번역가소설가이자 시인,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거장 크노는 문학실험과 정치변혁의 현장에 양발을 딛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창작세계를 폭넓게 일궈나간 보기 드문 인물이다.” 지은이 약력의 첫머리에 적힌 글이다.      

 


 

언어실험의 극단적 예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유례없는 작품들로 이름을 남겼는데일례로 바흐의 푸가에서 영감받아 동일한 일화를 99가지 문체로 변주해낸 문체연습(1947), 단 10편의 소네트만으로 시 100조 편의 제작 가능성을 제시한 시집 시 100조 편(1961) 등은 오늘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이 책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2002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재룡 평론가가 옮긴 책이다. 현재 고려대 불문과 교수이며 시학과 번역학, 프랑스와 한국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평론을 집필했으며 2015년 시와사상문학상과 2018년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하며 자타공인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최고와 최고가 만나, 최고의 책을 만들지 않았을까? 『문체 연습』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한 가지 상황을 아흔아홉 가지의 변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문체 연습이라고 쓰여 있지만, 세밀한 관찰력과 쓰기 연습에 의한 새로운 기법의 창작물이다.      

 


 

목차의 제목만을 따로 적어서 그 방법을 배우면 좋을 것도 같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참기로 한다. 아흔아홉 가지 기법으로 꼬고 비틀고 뒤집는 등 각각의 기법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발상의 글쓰기 연습을 나는 처음 보는 특별한 책 읽기 경험이었다. 에세이 쓰기를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놀라움 그 그 자체였다.   

 


   

「약기略記」에서 (11P)

출근 시간, S선 버스스물여섯 언저리의 남자 하나리본 대신 끈이 둘인 말랑말랑한 모자누군가 길게 잡아 늘인것처럼 아주 긴 목사람들 내림문제의 남자 옆 사람에게 분노 폭발누군가 지날 때마다 자기를 떠민다고 옆 사람을 비난못돼먹은 투로 투덜거림공석을 바라보자거기로 튀어감.

두 시간 후생라자르역 앞로마광장에서 나는 그를 다시 만남그는 이렇게 말하는 친구와 함께 있음 : “자네외투에 단추 하나 더 다는 게 좋겠어.” 친구는 그에게 자리(앞섶)와 이유를 알려줌.”     

 


 

첫 번째 이야기인 약기는 메모나 노트 등 잊지 않기 위해 급하게 적어 두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위의 상황의 설정으로 변주되는 아흔아홉 가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로 시제가 바뀌기도 하고 어절 단위로 낱말 단위로 빼기도 놓기도 하는 등 상상 초월의 방법이 동원된다.      

 


 

한 장면을 축소하거나 확대하고 빼거나 넣는 등이 연속되었다. 그 변주는 반 페이지가 되기도 하고, 세 페이지가 넘기도 했다. 현장 상황의 서너 가지는 변하지 않는 상황으로 고정되어 있으면서 그 표현 방식만 아흔아홉 가지로 바뀐다. 335P의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변화무쌍한 변주에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해서 읽고 싶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한 가지만 예시로 적고자 한다.      

 


 

「책이 나왔습니다」(36P)에서

일찍이 수많은 걸작을 선보여 그 명성이 자자한 소설가 모씨는 유니크한 재능으로 한껏 빛나는 이번 신작 소설에서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들 너 나 할 것 없이 수긍할 만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맹활약을 펼치는 인물들로만 모든 장면을 연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어느 날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거는 제법 수수께끼 같은 한 인물을 자기가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 공교롭게 맞닥뜨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사연이 소설 전반을 가득 수놓는다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멋쟁이 중 단연코 최고인 어느 친구의 조언을 매우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고 있는 이 신비로운 인물과 다시 조우하게 될 것이다고귀한 행복감에 젖어 소설가 모씨가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넣은 힘찬 필치에서 뿜어나오는 매력과 감동이 작품 전반에 흘러넘친다."

 


   

위의 이야기 변주에 대한 해설은 (197P)에서 읽을 수 있다. 「42. 책이 나왔습니다」에서

원제는 출판 광고 문안이다이는 책의 발간을 선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구이며 간혹 책 띠지에 실릴 문구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도 한다또한 프랑스의 경우출판사에서 직접 작성해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대부분 작가가 직접 작성해 출판사에 보낸다이 문체는 1956년 피에를 포셰의 제작으로 발간된  문체 연습 에서 별도의 종이에 인쇄되어 책에 삽입된 바 있다각주  주석-전집 ,1568,1572 이렇게 변주의 기법마다 설명이 자세하게 달려 있으며 프랑스어 원문도 실려 있으며 바뀐 부분을 비교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앞부분은 아흔아홉가지의 다른 표현의 이야기가 있고, 뒷부분은 앞의 목차에 따라 원어가 나오고 조재룡 평론가의 해설이 덧붙여졌다. 바뀐 부분을 설명해주고 그 기법도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앞부분과 뒷부분을 함께 펼쳐서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표현기법이 쓰였는지를 밑줄 그으며 공들여 읽었다. 문체 연습의 기법에 대해 공부도 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꼼꼼한 설명이 좋았다.      

 


 

그가 1,000편에 가까운 시와 16편의 소설, 그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글과 영상 작업을 남겼다고 한 그의 약력을 보고 실험적 글쓰기 책인 『문체 연습』을 낸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한꺼번에 쭉 훑어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나는 시간을 갖고 매일 적정한 분량을 정해서 음미하며 읽었다. 새로운 시도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큰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작가님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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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 아흔아홉 개의 놀이,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서평]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 아흔아홉 개의 놀이,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내용보기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은 연주회에서 들었던 바흐의 “푸가”가 주요 집필 동기로 작용해 1947년 초판 발행 후 음악, 연극,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하게 변신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152p) 대중 뿐 아니라 명사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며 ‘전무후무한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로 저자와 제목이 단순하게 표지를 채우는데 반해 띠지는 시
"[서평]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 아흔아홉 개의 놀이,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내용보기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문학동네은 연주회에서 들었던 바흐의 푸가가 주요 집필 동기로 작용해 1947년 초판 발행 후 음악, 연극,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하게 변신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152p) 대중 뿐 아니라 명사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며 전무후무한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로 저자와 제목이 단순하게 표지를 채우는데 반해 띠지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1928년에 찍은 레몽 크노의 연속사진이라는 설명을 본 후, 그보다는 뒤쪽의 사람은 글을 쓸수록 달필가가 된다.”는 인용문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격려로 다가오면서 용감하게 책장을 넘긴다.

 

문체 연습은 본문과 해제가 거의 동일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해제가 탄탄하게 실려있다. 늘 차례를 주의 깊게 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첫 번째 글 약기부터 읽기 시작했다. 세 네 편이 넘어가니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주가 없음에 불안해하며 사전을 찾아 빈 공간에 용어설명을 적어 넣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읽던 도중에 해제를 발견했다. 이제 치밀한 해제가 있으니 안심하고 읽어나가도 된다.

 

기시감은 스토리텔링 연습(매트 매든/클라우드 나인)”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읽고 이렇게 매력적인 책이 있다니 감탄하면서 중학생 친구들 논술에 활용했었다. 친구들아, 마법같지 않니? 제목을 줄테니 내용을 각자 만들어보자. 여덟 컷 만화 형식이라 그림이 많잖아? 하며 함께 탁월한 발상과 표현을 신기해 했었다. 다시 펴보니 이 책은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에서 영감을 받았다.(스토리텔링 연습, 4p)”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아, 레몽 크노라는 훌륭한 분이 계셨었구나 하고는 지나간 것이 기억난다.

 

스토리텔링 연습에서는 조작되지 않은 기준점이 되는 버전을 템플릿이라 지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기준글을 찾아야 한다 생각했고 당연히 첫 글 약기라 여겼다. 해제를 보니 반은 맞았다. “약기와 더불어 객관적 이야기가 토대이야기이자 저본이라 밝히고 있다.(183p) 토대 글을 가지고 주어진 각 제목에 최대한 근접하게 써보고 작가의 글과 비교하는 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고 시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속출했다. 일단 주어진 글을 이해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계속 도전할 수는 있겠다.

 

뒤가 사라졌다’, ‘고유명사’, ‘고문투로’, ‘집합론’, ‘수학적으로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웃음을 참으며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낭독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번역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자의 주관적 해석이 많은 부분 스며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내내 들었는데 해제에서 궁금증은 대부분 풀린다. 원제와 원제의 의미, 번역어 선택 이유 뿐 아니라 번역의 의도와 착안, 진행방식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특별한 주제는 특별한 전문가의 검증도 있었기에 신뢰를 더한다. 어쩔 수 없이 원어로 읽을 독자가 마냥 부러웠다. 그래도 가장 즐겁게 읽은 곳은 역자 후기격인 번역가와 편집자였다. “문체 연습의 어투를 살려 , , 눈물, 으쓱함가득한 번역의 시간’, 몰입의 지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책을 한 번 본 후 과연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계속되는 질문, 해야 할 연습에 내내 적응해 나가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한 번을 살펴보고 나니 띠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음악으로 접한 변주의 힌트를 그는 글은 물론이고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떨지 말고 이렇게 해봐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크노가 펼쳐 낸 저 소박하고 수공업적이며 재미난아흔아홉 개의 놀이가 문체 연습에 바글거린다.(159p)” 유일한 정답은 없고 모든 시도는 가능하다. 아마도 뜻밖에 만난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

 

 

 

 

 

 

 

 

 

 

 

 

 

 

 

k*******n 2020.11.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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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푸가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는, 언어 실험의 극단으로서의 『문체 연습』
"바흐의 푸가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는, 언어 실험의 극단으로서의 『문체 연습』" 내용보기
레몽 크노가 1947년에 발표한 『문체연습』은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다. 왜냐하면 바흐의 푸가 기법(단일주제와 그 다양한 변형으로 완성시킨 작품)에 영감을 받아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를 아흔아홉 개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문체로 변주하는 언어적 실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한국어판에는 아흔아홉 개의 문체에 플레이아드판 연작에서 뽑아낸 열 편을 추가
"바흐의 푸가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는, 언어 실험의 극단으로서의 『문체 연습』" 내용보기

레몽 크노가 1947년에 발표한 『문체연습』은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다. 왜냐하면 바흐의 푸가 기법(단일주제와 그 다양한 변형으로 완성시킨 작품)에 영감을 받아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를 아흔아홉 개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문체로 변주하는 언어적 실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한국어판에는 아흔아홉 개의 문체에 플레이아드판 연작에서 뽑아낸 열 편을 추가해서 수록했다).

다양하게 변주가 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출근 시간, S선 버스. 스물여섯 언저리의 남자 하나, 리본 대신 끈이 둘린 말랑말랑한 모자, 누군가 길게 잡아 늘인 것처럼 아주 긴 목. 사람들 내림. 문제의 남자 옆 사람에게 분노 폭발. 누군가 지날 때마다 자기를 떠민다고 옆 사람을비난. 못돼먹은 투로 투덜거림. 공석을 보자마자, 거기로 튀어감.
두 시간 후, 생라자르역 앞, 로마광장에서 나는 그를 다시 만남. 그는 이렇게 말하는 친구와 함께 있음: "자네, 외투에 단추 하나 더 다는 게 좋겠어." 친구는 그에게 자리(앞섶)와 이유를 알려줌. (p.11)

 

이 서술을 명확하게 기록하면 다음과 같이 달라질 수 있다.

 

오후 12시 17분에, 길이 10미터에 폭 2.1미터에, 높이 3.5미터인, 출발지에서 3.6킬로미터쯤 떠나와서, 48명을 태우고 있는, S선 버스 안에서, 키 1미터 72센티에 몸무게 65킬로그램이 나가고, 35센티 길이의 리본이 둘린 17센티 높이의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던, 27년 3개월 하고도 8일을 산, 성별 남성인 어떤 자라, 키 1미터 68센티에 몸무게 77킬로그램이 나가고, 48년 4개월 하고도 3일을 산 어떤 남성더러 15에서 20밀리미터를 비자발적으로 확산될 것을 암시하며 발화하기까지 5초가 지속적으로 걸리게 될 열 네 개의 낱말을 사용해서 그를 불러세운다. 곧이어 그자는 2미터 10센티 정도 떨러진 데서 착석하게 될 것이다.
118분이 지나, 그는생라자르역에서 교외로 향하는 입구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모습을 보였고, 키 1미터 70센티에 몸무게 71킬로그램이 나가는 동료와 함께 30미터 정도를 왔다갔다 산책하고 있었는데, 그 동료는 그에게 지름 3센티미터의 단추 하나를, 천정점 방향으로 5센티미터 이동시키라고 열다섯 개의 낱말을 사용하여 조언했다. (p.24)



한 젊은이를 버스와 광장에서 우연하게 두 번 마주친다는 '단일주제'가 '약기'(略記, Notations)와 '명기'(明記, Precisions)라는 제목 하에 이렇게 변주된 셈이다.

독자는 이 두 글을 통해 문체의 차이와, 그 차이에 의해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음악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러한 시도를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시도했다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프랑스어의 세밀함이나 뉘앙스의 차이, 문체의 다양함을 보여주었다는 데서도 이러한 시도는 매우 의미 있다.


물론 바로 이 지점이 번역한 책을 읽어야만 하는 독자로서의 아쉬움과 한계이기도 하다. 언어나 국경을 초월하는 음악과는 달리, 언어는 국경과 민족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레몽 크노의  이 파격적인 실험을 오롯이 느끼거나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장선상에서 말하자면, 이 책을 번역한다는 행위 자체도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체험을 불가능할 지언정, 문학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시도와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신선하고 파격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들에선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과 함께 원래의 프랑스어 제목들이 병기되었는데, 이것만 꼼꼼히 보더라도, 각각의 문체를 통해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문체들이 있고, 이렇게 다양한 문체들을 통해 문학작품의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미시적으로는 각 작가들이 선호하는 것, 추구하는 것, 높이 평가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거시적으로 보자면 각 국가별 스타일 같은 것들, 혹은 문학사조 별 스타일들이나 시대별 트렌드들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지적인 즐거움을 저자와 더불어 누리고 향유할 수 있이 이런 실험적인 작품들을 읽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작품이 근사하고 멋지게 느껴졌다면, 서준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처드 파워스의 『Gold Bug Variations』(안타깝게도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를 추천한다.
훨씬 더 바흐의 작업에 가깝게, 언어로 다양한 음악적 변주 작업이 가능하다는 '전율적인' 체험을 몸소 할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1.1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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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연습: 화자(話者)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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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부쩍 글쓰기 책을 읽는 중이다. 글쓰기 책을 검색하다보니, <문체연습>이 알고리즘에 올라온 셈인데, 여느 글쓰기와는 다른 느낌인 거 같아서 냉큼 주문했다.   '버스에서 만난 남자를 광장에서 다시 만났는데, 버스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시비 걸다가 빈 좌석에 냉큼 가서 앉고, 광장에서는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남자 외투에 단추를 하나 더 달라고 말하고 있다'는,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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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부쩍 글쓰기 책을 읽는 중이다. 글쓰기 책을 검색하다보니, <문체연습>이 알고리즘에 올라온 셈인데, 여느 글쓰기와는 다른 느낌인 거 같아서 냉큼 주문했다. 

  '버스에서 만난 남자를 광장에서 다시 만났는데, 버스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시비 걸다가 빈 좌석에 냉큼 가서 앉고, 광장에서는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남자 외투에 단추를 하나 더 달라고 말하고 있다'는, 비교적 간략한 내용을 108가지로 변형한다.  반 페이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토리를 100가지 이상으로 바꿨다는 데에, 책 내용 자체가 신박하고, (솔직히) 괴상하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지하철 출퇴근으로 아침, 저녁을 보내다보면, 지하철에서 온갖 사람과 마주치기 마련인데(아, 물론 나도 남들에게 온갖 사람 중 하나이다)-대놓고 화장하는 여자, 큰소리로 통화하는 남자, 꼭 붙어 앉은 커플, 드레스를 끌고 있는 여성, 몸집보다 큰 첼로통을 든 학생 등등-이들 중 눈에 띄는 사람을 <문체연습>처럼 써볼까, 하는 상상도 든다.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문체'에 대한 연습보다는, 다양한  '화자(話者)', '화자(話者)'에 의해 달라지는 내용의 변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자체가 '문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체'보다는 '화자'를 생각했다.  공무원, 의사, 수학자, 온갖 지방 사투리(번역도 매우 놀랍다), 희곡 작가, 식물학자 등등에서 화자의 다양성이 얼마나 내용을 변형하고 느낌을 다르게 전달하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소소한 에피소드가 얼마나 변형될 수 있을지, 사소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지, <문체연습>에서 생경할 정도로, 동시에 재미있을 정도로 표현된다. 

  책의 반 정도 미치지 못하는 분량에서 <문체연습>이 마무리되고, 나머지 반 이상은 '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해제' 부분은 읽혀지지 않았다(원문이 프랑스어라서 그런지, 더욱 낯설다). 읽혀지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한동안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마다, '목이 길고 이상한 모자 쓰고, 불쾌감을 드러내고, 빈자리에 몸을 날리는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사람을 근처 시장에서 다시 만나지 않을까, 두리번두리번 거리기도 했음을 밝혀둔다. 아, 이 책은 재미있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a 2026.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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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한 제약은 이후 어떻게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인지... 레몽 크노, 문체 연습
"우리가 경험한 제약은 이후 어떻게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인지... 레몽 크노, 문체 연습" 내용보기
레몽 크노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0년 11월 24일, 수학자인 프랑수아 르 리오네와 함께 주도하여 ’울리포‘ (잠재문학작업실, Ouvroir de Litterature Potentielle)라는 이름의 모임을 첫 번째로 갖는다. 각종 초현실주의를 집대성한 듯한 울리포에는 조르주 페렉, 이탈로 칼비노, 마르셀 뒤상 등이 가담하였다. 조르주 페렉과 레몽 크노는 하나의 철자(그러니까 가장 흔히 사용
"우리가 경험한 제약은 이후 어떻게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인지... 레몽 크노, 문체 연습" 내용보기

  레몽 크노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0년 11월 24일, 수학자인 프랑수아 르 리오네와 함께 주도하여 ’울리포‘ (잠재문학작업실, Ouvroir de Litterature Potentielle)라는 이름의 모임을 첫 번째로 갖는다. 각종 초현실주의를 집대성한 듯한 울리포에는 조르주 페렉, 이탈로 칼비노, 마르셀 뒤상 등이 가담하였다. 조르주 페렉과 레몽 크노는 하나의 철자(그러니까 가장 흔히 사용되는 e)를 사용하지 않는 글을 썼다. 이러한 글쓰기를 리포그램이라고 부른다.

 

  『출근 시간, S선 버스. 스물여섯 언저리의 남자 하나, 리본 대신 끈이 둘린 말랑말랑한 모자, 누군가 길게 잡아 늘인 것처럼 아주 긴 목. 사람들 내림. 문제의 남자 옆 사람에게 분노 폭발. 누군가 지날 때마다 자기를 떠민다고 옆 사람을 비난. 못돼먹은 투로 투덜거림. 공석을 보자마자, 거기로 튀어감.
  두 시간 후, 생라자르역 앞, 로마광장에서 나는 그를 다시 만남. 그는 이렇게 말하는 친구와 함께 있음 : “자네, 외투에 단추 하나 더 다는 게 좋겠어.” 친구는 그에게 자리(앞섶)와 이유를 알려줌.』 (p.11, <약기 略記>)

 

  나는 2020년이 새로운 세기에 찾아든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2021년도 만만치 않을 것이나 (아직 현실의 백신 주사는 요원한 상태이지만) 초현실주의적인 현실에는 면역이 된 탓에 올해보다 그 느낌은 덜할 것이다. 나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레몽 크노의 글을 잠시 다시 살피고, 그걸 정리하고 있다. 위의 글은 작가가 《문체 연습》이라는 책을 통해 계속해서 변주해갈 장면을 대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첫 번째 챕터이다.

 

  『자네 외투에 단추 하나 더 다는 게 좋겠네, 그의 친구가 그에게 말하고 있다. 나는 로마광장 한복판에서 그를 만나게 될 터였는데, 어떤 좌석 하나를 향해 탐욕스럽게 돌진하던 그를 떠나온 후의 일이다. 방금 어떤 승객의 밀치기에 항의하고 있던 그에 따르면, 누군가 내릴 때마다 이 승객이 그를 떠밀곤 했다는 것이다. 삐쩍 곯은 이 젊은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자 하나를 쓰고 있던 바로 그 작자였다. 승강대 위, 어떤 S선 만원버스에서, 오늘 정오에 있었던 일이다.』 (p.15, <거꾸로 되감기>)

 

  자가는 이어서 중복하여 말하기, 조심스레, 은유적으로, 거꾸로 되감기 등 스스로 이름을 붙인 그 형태에 따라 같은 장면을 무수히 반복한다. 이러한 변주가 아흔 아홉 번 이어지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추가편이 있을 정도이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라고 쓴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변주도 있는데, 이를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의 노고에 저절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하는 시각, 나는 S선 저 구불구불한 노선에 맞서고 있는 암소 눈의 위풍당당한 어느 버스에 쏜살같이 빠른 화살 모양으로 잽싸게 올라타고야 말았다. 전투의 길목 위로 드리운 인디언 전사의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는 어떤 젊은이의 출현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목은 다리가 날렵한 기린의 것보다 길었고, 문체 연습 한 편의 주인공이라도 된다는 듯이, 배배 꼰 장식줄을 두른 말랑말랑한 중절몰르 쓰고 있었다. 한가득 그을음에 둘러싸인 불화가 치약의 소멸로 인해 야기된 악취를 팍팍 풍기며 그의 입에서 죽음의 냄새를 연신 풍겼는데, 나는, 저 불화가, 모자 주위로 줄을 두른 기린 모자기의 그 젊은이와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결단력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낯빛의 어떤 승객 사이로 사악한 병균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젊은이는 승객에게 이런 어휘를 써가며 말을 건넸다. “어이, 못돼먹은 양반, 내 발 일부러 밟은 거 아니라고 어디 한번 씨불여보시기.” 이렇게 말하고는, 기린 목에 모자 주위로 줄을 두른 이 젊은이는 잽싸게 자리에 앉으러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장중한 위엄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로마광장에서, 나는 기린 모가지에 모자 주위로 줄을 두른 젊은이를 다시 알아보았는데, 기린 모가지에 모자 주위로 줄을 두른 이 젊은이는 그가 입고 있는 의복, 저 극단의 외면에다 대고서 “외곽을 원형으로 빙 두른 단추 하나를 추가하거나 상향을 하든지 해서, 앞섶의 각도를 다소 줄이는 게 좋을 걸세”라며, 귀를 쫑긋 세워야만 내게 들려올 수 있었을 비판을 또박또박 발설하던, 그렇게 우아함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동료와 동행하고 있었다.』 (pp.56~57, <허세를 떨며>)

 

  그건 그렇고, 다시 한 번 떠올리건대 2020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선명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지불식간에 찾아든 코로나의 형국은 사람들 간의 거리두기를 그야말로 선한 보편의 가치로 만들었다. 우리는 함부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고, 숱한 접촉은 피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이 되었다. 어느 순간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20년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갈 때 우리는 가장 이상한 우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나는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크노의 작품은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며, 단편 모음집이라고도 할 수 없고, 또한 콩트라고 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문학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것도 아니며, 흔히 말하듯, 누보로망의 ‘실험적’ 글쓰기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거나 과도하다고 느껴지며, 아방가르드의 작렬하는 저 파격을 따른다거나 초현실주의자가 쏘아 올린 불꽃을 따라 질주하며 그 화려한 트임을 쫓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에서 아흔아홉까지 단순하고 질서정연하게 하나씩 늘어선 모양이, 흡사 매번 바뀌는 놀이, 그러니까 매번 다른 규칙을 부여받아 하나씩 풀어내고 푼 다음에, 이어 다음 단계별로 나아가야 하는 놀이와도 일면 닮았다...” (pp.156~157, 역자의 <해제> 중)

 

  2020년은 각종의 제약으로 가득한 한 해였다. 나라 바깥으로 향하는 길은 철저히 막혔고, 이제는 나라 안에서의 이동도 죄악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울리포의 작가인 레몽 크노나 조르주 페렉은 리포그램이라는 행위로, 제약을 통하여 잠재력을 증명한다는, 울리포 그룹이 지향하는 아이러니를 몸소 보여주었다. 2020년 우리가 경험한 제약이 이후 어떻게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인지 몹시 궁금하고 매우 불안하다. 

 


레몽 크노 Raymond Queneau / 조재룡 역 /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 문학동네 / 342쪽 / 2020 (1947)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0.12.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