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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ㅡ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옮김 , 문학동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덮은 책이 미미여사의 레벨 7 이었다 . 그 책의 1권 들어가는 입구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 《그러나 , 그대 , 이것은 모두 꿈에서 본 것 , 꿈의 이야기 . 》 ㅡ그림 형제 : 도둑신랑 ㅡ 이제 막 프롤로그를 읽었을 뿐인데 레벨 7 의 그 문구가 그냥 자동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 퍽 익숙한 인물이란 느낌과 분명 이 인물을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나는 여러 얼굴로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왈칵 반가우면서 이렇게 익숙한 인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호기심이 물기 잘 마른 스펀지 같았었다 . 1권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 두껍고 시커먼 하드 커버 속의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를 2미터 앞에 앉혀 두고 슥슥 스케치를 잇고 있을 거였다 . 이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불안의 싹을 꿈으로 단속적 단서로만 암시받아도 무기력하게 자신을 내던지면서 그는 내내 일생을 수동적 공격형 인물로 수행하는 인간으로만 기능해온듯 했다 . 자신 스스로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거였는데 되돌아가 그 문제가 스스로 고칠 수있는 부분인지 조차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간으로만 . 행여 물으면 ' 그래 그 모든 문제가 다 네 탓이야 . ' 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원망을 본격적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절실하게 도피하는 인간으로 보인다 . 막상 마주치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는데 마주하는 것부터가 공포인 겁장이일까 . 그걸 알아가는게 이 소설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 한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기막히게 설명한 멘시키의 대뇌피질에 관한 예는 그래서 너무나 적절하고 탁월하다 . 특히나 주인공 ' 나 ' 가 보이는 일관된 회피의 행위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사건에 될대로 되라지 하는 , 어찌보면 터무니없게도 보이는 낙관성은 그 안에 잠재된 문제 해결능력을 스스로 자각하고 각성이 되기만 하면 그와 아내 유즈 사이의 문제까지 일사천리로 스르륵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 그런 또 하나의 예시와 암시로 , 그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다 . 그렇기에 저 자신은 원하진 않았지만 초상화가로 나름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거였을 거다 . 그 부분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문제가 더 큰 것일수도 있다 . 무뎌진다는 것 . 일상이 된다는 것 .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 . 그는 불편함이 없다는 걸로 고통이 없고 갈등이 없었다는 걸로 매사를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그렇기에 사랑한다고 믿은 소중한 여자의 변화에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전혀 알수 없었던 거였고 ,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기에 그저 자신의 잘못이 되는 것만이 두려워 도망치듯 집을 나와버린다 . 그래서 그 앞에 필요조건으로 나타난 현상이 이데아 ' 기사단장 ' 즉 관념이다 .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관념이 , 모호함이라는 껍질이 ,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만큼의 중요한 정도로 존재하는 대상의 드러남이 꼭 필요한 피흘림의 ' 기사단장 ' 이고 , 그의 ' 죽음' 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 " 멘시키 씨 ,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사시면 공간이 부담되거나 하진 않나요 ? " " 아뇨 , 그렇지는 않습니다 . " 멘시키는 곧바로 대답했다 . " 전혀요 . 저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 이를테면 대뇌피질을 생각해보세요 . 인류는 매우 정묘하게 만들어진 고성능의 대뇌피질을 선물받았습니다 . 그러나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역은 전체의 1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 그토록 높은 성능의 근사한 기관을 하늘이 내려줬는데 , 유감스럽게도 충분히 활용하는 능력은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겁니다 . 예를 들면 호화로운 대저택에 살면서 다다미 넉 장 반짜리 방 한 칸에 모여 검소하게 지내는 4인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나머지 방은 텅텅 비워둔 채 말이죠 . 그에 비하면 저 혼자 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쯤은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지요 . " ( 본문 431 , 432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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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나오자 마자 계속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책인지라 읽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 몇년전에 읽은 그의 1Q48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품에도 언급이 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생각이 났다. 읽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편보다 2편이 읽는 진도는 빨리 나갔다. 1편이 설명이나 추상적인 느낌이 많다면 사건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멘시키, 아키가와 쇼코, 마리에 등의 이야기 집 주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요약하면 몽환적인 판타지에 에로틱한 요소들이 덧붙여져있는 느낌이다. 솔직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력이 아니었으면 중도에 책을 포기 하지 않았을까 싶다... 1200페이지에 이르는 스토리를 이어간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닐 것이기에 그 점은 놀랍지만 너무 많은 것이 섞여 어려운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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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은 처음이다. 하루키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다. 새 작품이 출간되면 매번 화제가 되고,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스스로를 하루키 덕후라고 지칭하는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겐 단순히 ‘유명한 작가’일 뿐이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작가, 내겐 딱 그 정도였다. 이랬던 내가 『기사단장 죽이기(2017.07.12. 문학동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빼고 뺐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주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이 행동은 하루키가 중국에서 일어난 ‘난징대학살’ 사건을 소설에 끌어들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일본 내에서 지탄, 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하루키의 문학세계를 모르는 입장에서 1권 읽기를 마친 후 느낌은 무미건조하다. 1권 마지막장에 가까워질수록 2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기대했던 난징대학살 사건의 언급이 없어서 흥미가 떨어진 게 분명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 궁금해진다거나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특별하게 다가오는 게 없었다.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데아’라는 이상한 인물도 호기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2권을 읽은 후에야 ‘이데아’와 이웃 ‘멘시키’에게 부여된 역할은 무엇인지,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비밀과 초상화가가 직업인 주인공 주변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니 1권의 줄거리 요약은 무의미해 보인다. 다만, 1권에서 주목한 문장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오늘은 데생을 할 거야. 난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바로 물감으로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차근차근 데생부터 하려고 해. 그렇게 해서 너라는 사람을 조금씩, 단계적으로 이해해가고 싶거든.” “나를 이해해야 해요?” “인물을 그린다는 건 상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언어 대신 선이나 형태, 색을 쓰는 거지.”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리에가 말했다. “나도 그래.” 내가 동의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간단한 일이 아냐.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거야.” (p.538-539)
『기사단장 죽이기 1권』에서 ‘아마다 도모히코’가 남긴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와 더불어 주인공이 그리는 그림들 그리고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주인공의 말은 그가 평범한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존재에게 선택받을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런 예상이 맞는지 2권에서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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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전이하는 메타포 ㅡ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ㅡ "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요 .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정도로 . " ( 본문 12 쪽 ) 늘 그렇지만 재미있는 책은 마지막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 끝이 궁금해 다음 장을 미친듯 넘기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책 뒷 쪽의 무게가 한 숨이 나는 걸 , 그러다 마침내는 마지막 엔딩에 서운해져 버리고 . 더할 나위없는 재미였는데도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날 알지도 못할 작가에게 괜한 심통을 부려보게 되곤 한다 . 주인공이면서 한번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 나 ' 는 9개월 간 아내 유즈와 떨어져 심정적 이혼을 겪게 되면서 자신을 외딴 산 속에 유폐시킨다 . 철저히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만의 고독한 작업을 할 셈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주변인들과 엮여 사건의 매개자이며 촉발자가 되서는 말할 수 없는 것과 말없이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한 시간을 온 몸으로 겪고 배우게 된다 . 그 시간들에 나타나는 현상이 이데아 , 메타포 , 이중 메타포 등등이다 . 그들은 그림 속의 존재로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도 하고 과거에 그가 알던 그리운 이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하며 , 여행지에서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마주한 인물로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 또 고양이의 촉감이나 이계라고 밖에 표현 못할 공간으로도 나타나며 , 들릴 리 없는 소리들로 변주되어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관계를 이끈다 . 그리고 나는 , 손에 잡힐듯 눈에 보일듯 생생한 그림 하나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한다 . 기사단장 죽이기 . 소설 속의 주인공 ' 나 '와 열 세살 소녀 아키가와 마리에도 그랬듯이 그 그림이 그려지고 우리 앞에 표현된 이유에 대해서 ...아흔이 넘어 사물의 인지조차 놓은 노인의 깊은 심연에 가느다란 무엇으로 남은 그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 우리에게 단지 난징대학살의 진상과 지난 독일의 잔혹한 시간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 다는 아니었을텐데 ,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의 주마등 끝에 자리한 회한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 그때 그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었다면 자신은 그런 그림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후회없이 연인만 가혹하게 보내고 살아 죄인의 심정으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짙은 회한 . 남은 그림을 '나'가 봐야 했던 이유는 , 지금의 생에선 그런 전쟁이 다시 되풀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에 후회란 그같은 짙은 상념을 남기는 그림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뭔가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 였을거였다 . 지독한 나치의 시대도 , 제 2차 대전도 끝나고 현재의 우리시대는 총칼의 위력보단 뭔가 서서히 인간을 잠식하는 것들에 둔감하게 사로잡혀 가고 있는 추세다 .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속도를 못 느끼는 둔감함 , 생생하게 피흘리는 전쟁보다 은근하게 인간을 잔인으로 몰아넣고 있는 생의 터전이 지금이다 . '나' 는 그런 생업에서 무뎌진 한 인간이고 알게 모르게 염증이 난 사람이기도 하다 . 은연 중에 자신이 꿈을 접고 ,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 인물 . 그러면서 한쪽으론 그게 자신이 잘 하는 일이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인물 . 자신이 그렇게 까지 하는데 아내가 자신말고 바람을 피우다니 , 용납이 될리가 없다 . 그런 생각은 말로 드러나지 않아도 몸으로 생활에서 점차 곁에 있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 분명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희생자적 관념이 된다 . 주부 콤플렉스가 괜히 있는게 아닌거다 . 오랜 시간을 함께 산 사람들을 보면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 문제 없이 평생이 순탄했어요 . 하는 부부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코너에나 모셔야 할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 또 자주 듣는 얘기중엔 여자가 바람이 나면 대게의 경우는 남자가 잡고 , 여자는 가정을 깨려고 한다는 이야길 많이 접했을 거다 . 나만해도 그런 이야길 많이 들었다 . 그럴법 하다고 생각한다 . 왜냐면 여자는 대게 한 마음에 두 사람을 동시에 못 담기 때문이다 . 뭔가를 목적하고 마음에 담은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곁에 있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자는 그렇다 . 나를 기본으로 상상을 해봐도 ) 그것에도 역시 한계는 있을 거다 . 유즈 역시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여자였으니 자신을 원망하는 남편의 온몸의 아우라를 견디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한 일이었을 터 . 주인공 ' 나 '는 여행을 하면서 분풀이하듯 무아지경의 상태로 여기저기를 해매고 다닌다 . 그러다 미야기 현 , 이와테 현 근처에서 예의 하얀색 스바루의 남자를 만나고 그(스바루)의 여자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여자를 만나 , 제 안의 흉폭한 심정과 진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 그는 그녀가 아닌 실제로는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걸거다 . 그렇기에 어느 밤 꿈에서 그라면 보통 있을 수 없던 일을 비록 꿈일지라도 아내 유즈에게 성적해방을 난폭하게 해치우며 만족을 하고 , 사악해지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는 사악한 아버지*가 되고 . < 나중에 기사단장의 말을 들으면 사악한 아버지* 라고 하는 걸 보아 , 그 스바루 남자는 그녀를 쫓는 사악한 아버지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 주인공 '나 '가 일반적인 형태로 부모가 되었다면 어쩌면 그런 사악한 아버지가 되었을 수도 , 또 , 옷장 속에 갇힌 마리에 앞에 서있던 남자로 친부지만 뭐에 씌여 나쁜짓을 하는 아버지였을 수도 , 암튼 상상의 여지가 너무 많다 > 그것은 모두 꿈의 일이다 . 현실에선 그는 그런일은 상상도 못하니 멘시키 와 마리에 두 골짜기 사이에 끼어서 그림을 그릴 뿐이다 . 이따금 기사단장이 나타나 이런저런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준다 . 이 모든 일은 그가 꿈일지언정 사무쳐서 해 놓은 일을 잘 풀어 원만하게 흘러가도록 하는데 있다 . 그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을 보고 그의 맺힌 한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듯이 ( 마지막에 기사단장을 도모히코 앞에서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또 기록하는 긴얼굴을 나타내 증거하게 함으로 이중으로 그의 한을 풀게 함 ) 그와 유즈 사이의 막힌 강물을 돌아 흐르게든 바로 흐르게든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모든일은 필요한 일인 것이다 . 그러니 멘시키와 마리에는 그가 사악한 아버지가 되지 않도록 장치된 메타포이며 이중 메타포이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ㅡ 더니 , 정말 영화 제목하나 기막히게 지었다 . (아..이 책과 상관없이 ..) 멘시키는 아마 마리에와 어쨌든 가까워질테지 . 실이라는 뜻을 가진 '무로 ' 의 아버지가 된 ' 나 '와 유즈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 무로에게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 토끼와 세상 어딘가로든 연결된 많은 동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 지금쯤이면 여기와 시차가 없으니 한가로운 주말이려나 , 이렇게 유와 무의 틈을 소설의 이야기로 매꿔도 보며 아 , 너무 즐거웠다 . 다들 난징 대학살이니 , 안슐루스니 그게 중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물론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라 , 너무 많은 것들을 크게만 생각하느라 전쟁도 , 불사하고 참전도 당연시하고 하는거 아닌가 ... 한 인간의 고뇌 , 인간의 삶과 사랑 , 그런거... 눈에 보이는게 좋다는 말 ,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 마리에의 그 말이 나는 이 소설에서 내내 울림이 가장 컸다 . 무뎌지지 않고 생이 주는 아주 작은 주름과 나이듦에도 새삼스레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소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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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1권 읽기를 마친 후 지금까지 두고두고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책이다. 간신히 읽었고 눈앞에서 치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루키 문학은 한 번 경험한 것으로 족하다. 그 지역을 돌아다니던 시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극히 고독하고,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안고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실해 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이어가며 수많은 낯선 이들 틈에 섞여, 그들의 일상 속 여러 장면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 -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 몇 가지를 버리고, 며쳐 가지를 건졌다. 그 장소들을 지나온 나는 그 전과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었다.p.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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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을 다 합하면 거의 12,000페이지 짜리 긴 소설인데... 다 읽고 나니 왠지 단편을 읽은 느낌이 든다. . 여전히 화소 높은 카메라로 선명하게 찍은 듯한 상황 묘사도, 곳곳에 음악이 흐르는 이야기도, 독특한 향내를 풍기는 묘사들도 여전히 하루키 스럽다 싶은데... 다 읽고나니 왠지 아쉬웠다. 용두사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왤까? . 판타지라면 판타지인데... 갈 것이면 그냥 확 가버리지 왜 가다 말았을까? 도대체 병원에서 우물까지 사흘의 여정은 도대체 뭐였을까? 기사단장-방울-우물-멘시키-마리에-도모히코 로 이어지고 끊어지고 섞이는 이것은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 . 미완성이지만 완성된 “나”의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여기까지”라고 내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강렬하고 강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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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간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요즘 전자책에 빠져 있어 통 종이책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주변의 추천으로 일단 1권을 구입했다. 추천 받았던 말이 회화와 음악을 소설 속에 잘 녹여 냈다는 것인데, 회화와 음악을 둘 다 모르는 나도 소설 속 묘사된 회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음악은 묘사 보다 찾아서 들을 수 있는 것들이라 찾아서 들어 보았다.) 전작 1Q84는 좀 정신 없이 세계를 들락날락 했는데 그에 비해 <기사단장 죽이기>는 많이 정돈된 느낌이다. 묘사가 섬세해서 지루하지 않게 스토리도 잘 넘어간다. 함축적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캐릭터 묘사도 잘 되어 있어 1권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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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미술 세계로 들어간다. 기사단장이라는 미술품. 그리고 판타지.
멘시키 와타루(免色 涉)란 이름은, 색을 면하고 건넌다는 의미다. '색'은 '색즉시공'의 '색'이니 '이데아'에 반하는 '현실세계'정도 되려나 ... 현실을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만든 건지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 (27)
초상화라는 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소설인듯 보이지만, 하루키라는 작가가 집어 넣는 섹스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식상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같은 작품에 필요한 것은 실내악적인 친밀함입니다.(141)
이 문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강당에서 오페라를 만나면, 흥겨운 몰입보다는 뭔가모를 이물감을 느끼게 된다. 오페라가 원래 대강당용이기보다는 친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무언가였음을 생각하면, 하루키가 던지려는 뭔가를 잡을 듯 하단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가능하다면 모르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어.(376) 네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404)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내면은 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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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년 빠짐없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 되어지고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1949~ )의 두권 짜리 소설중 첫권이다,
하루키 작품의 경우, 갠적으로 최근 몇몇 장편 소설들은 기대에 비해 읽는 재미가 좀 시들한 면이 있어서 주로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 위주로 즐겼는데 모처럼 만의 장편 소설 출간으로 작가의 초기 소설을 읽는 재미를 준다는 면에서 새로운 기대로 읽게 되었다,
특히 하루키 작품 이라면 출간 전후로 각종 언론 매체에서 비중있게 다루어 작품에 대한 기대와 함께 여러 정보들을 통해 대략의 짐작은 미리 해보게 되는데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독자인 필자를 놀라게 해서 숨죽여 몰입하며 아껴서 읽게 되는 작품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소설 작가가 풀어 가는 이야기, 즉 스토리 텔링의 정서와 문체 스타일이 읽는 독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환경과 정서를 이루는 공감대에 있어서 놀랍도록 일치, 교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하는 그런 지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얼굴을 그리는 초상화가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든지, 서양화가에서 일본화로 전향한 명망있는 원로화가의 미스테리한 이야기는 읽는 순간 그 호기심 자극하는 배경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든다,
표지의 말그대로 현실과 관념의 경계를 꿰뚫는 이야기의 힘, 상상력으로 무장한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이라고 표현된 이 작품은 하루키 소설을 읽는 재미를 제대로 선사한다,
또한 스토리 텔링 즉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던 작가 하루키의 말처럼 이 작품 속에서도 언급된 한마디는 오랫토록 뇌리에 맴돌았다,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화두처럼 뇌리에 맴돌며 지배하던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깊숙히 들여다 보면 누구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듯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 믿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편 그것은 돌이켜보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우리네 인생의 믿을 수 없는 우연과 에측 불가능의 굴곡진 전개들이 아닐까, 그러나 불가해한 요소들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또 아닐까,,, 이 소설 작품 본문에서 작가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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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밀하고 깊은 묘사가 돋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입니다. 등장인물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각각의 인물을 입체적이고 바로 앞에 있는것같이 묘사하여 읽는 맛을 더웃 맛깔나게 합니다. 장편소설이지만 한번 잡으면 놓을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어서 한번에 읽어 냈습니다.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고 기사단장과 만나면서 달라지는 주인공 (나)의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