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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
인상깊은 구절이보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는 거야.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는 거 몰라? 나 같은 화약장이는 화약 산업을 해야지 김종희 처럼의 책을 읽고나서 그의 성공 법칙을 정리해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시 여기던 평범한 가치를 그는 철석같이 지키고 실행에 옮겼다. 그랬기에 이렇게 성공법칙이 자신의 삶에 나침반처럼 생긴거 아닐까 생각이든다. 그의 성공법칙을 배워보자
여기서 가장 와닿는 것은 김종희 성공법칙 3인것 같다. .. 요즈음에는 스마트폰이 대다수의 전국민에게 보급이 되면서 한 치앞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어느누구도 할것 없이 모두가 밝다. 하지만 문제는 나무를 볼 줄 아는 능력만 길러지는 것같다 는생각을 했다. 여기서 김종희 회장님도 예전에는 화약산업이 위험하고 경부고소도로 들어 갈때에도 압력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숲을 읽게 되면서 화악산업이 자본가들이 쉽게 접근하는 수익성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가간것이 그는 숲을 읽을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가능한게 아닐까 생각이든다. 그런 회사였기에 기억이 남는 사건이있다. 회장님의 강조하는 철학중 정직이었다. 그 사례중하나가 이리역 폭팔사고인데 300톤의 폭팔물을 싣고 대기하던 한화의 물열차가 폭팔 하면서 철도 공무원 승객 기관사 포함하고 1158명이 중경상을 입고 56명이 사망하여따. 피해액만 그당시 규모로 80억 정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종희 회장은 어마어마한 피해액을 깎아서 협상을 보려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으로 전적으로 책임지기로하고 90억을 피해보상금으로 내놨다. 사고에대한 책임을 떳떳이 지고 정직하고 곧은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명성이 존재하는 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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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씨는 한국화약그룹의 창립자입니다. 한국인들은 흔히, 소비재 생산을 주로 하는 기업의 브랜드에만 익숙하기가 쉬워, 먼 과거의 한국화약이니, 혹은 변경된 그룹명인 한화에 익숙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남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저부터도 그랬습니다만,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든다. 야구단을 가지고 있다(이 야구단이 과연 그룹의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는 불미스러운 일로 대중에게 회자되었다 정도이지, 현재의 그 기업 위상 뒤에, 이런 위대하다 할 만한 창업자의 피와 땀이 서려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죠. 이 책은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화 창업자 김종희 씨(호는 "현암"이라고 합니다만, 우리가 아는 출판사 현암사의 창업자 조상원씨와는 무관합니다)의 일생을 네 파트 정도로 나누어 교차 편집(시간 순서를 셔플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뉘어진 파트 사이사이에, 어린이, 청소년(이 책은 주니어를 위한 책입니다)의 편의를 위해, "그의 일생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때로는 명제, 때로는 문답 형식으로 나누어 정리를 해 두고 있습니다. 비록 저연령층을 위한 배려지만, 어른인 저도 곰곰히 생각할 만한 소재가 많다 싶게, 실존 인물이자, 거의 무에서 유를 일궈 낸 거인의 생애에서 배울 것은 많았습니다. 이 책이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는 건 1) 한국전 당시 그의 소유도 아닌(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화약공판 시설과, 엄청난 양의 재고 화약을 인민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기지(奇智)로 지켰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이 런 경우, 일단 무력을 앞세운 군대의 위력이 눈 앞에 보이면, 지킨다, 저항한다, 넘겨준다의 문제 이전에 도망부터 가고 보는 게 보통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는 큰 체격이 부끄럽지 않게, 아니면 오랜 시절 상부로부터 받아 온 후의와 총애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니면, 이 책에서 강조하듯 정말 애국심의 발로에서, 대단한 일을 해냅니다. 2) 주인 없는 기업 화약공판은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인 기간을 오래 거치면서 경영상의 위기에 빠지지만, 미군측과의 집요한 접촉 시도를 통해 결국은 수주를 따 내어, 회사를 구명하고 이후 거대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듭니다. 3)
5.16 후 군부 정권이 들어서고,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볏짚에서 펄프를 생산하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나, 그는
거절합니다(사업성, 채산성이 전무함). 이를 괘씸히 여긴 정권은, 강도 높은 세무사찰과 재무건전성 조사에 들어가나, 기업을
(당시로서는 대단히 드물게) 깨끗이 유지해 온 김종희는 아무 트집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오히려 권력으로부터 감탄과
존중을 사게 되어, 굵직굵직한 국책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경인에너지(현대를 거쳐 지금은 SK 소유입니다)의 창건, 이를 바탕으로 한 본격 석유화학 공업에의 진출은, 한국화약그룹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 4) 빙그레의 창업(낙농가의 고충을 돌보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한화 그룹과 계열 분리를 거쳐 무관하죠), 플라자 호텔의 건설, 그
리고 유명한 이리역 폭발 참사 등의 굴곡을 맞아서도, 대체로 그는 기업인으로서 의연하게 처신합니다. 대소사에 일희일비함이 없이,
대장부 기질로 초연한 자세를 보이는 그 인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몰랐으나 체구가 당당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으나, 한화그룹은 그의 아들 김승연 대에 더 극적인 도약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해외 건설 파트를 맡아 아버지를 측근에서 도우는 그의 모습은 이 책에 잠시 삽입되기는 합니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인지, 최근 중대한 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면 온갖 생각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최소한 곤궁이나 위협 속에 의기를 쉽게 꺾어서는 안 된다는 점 정도는 이 책에서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 싶은 대목도 있었으나, 대체로 팩트가 가득한 충실한 읽을거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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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처럼
김종희처럼
국가 기간산업 개척에 평생을 바친 프런티어 고 김종희님은 대한민국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몇 분 중에 한명으로 그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력은 우리나라 역사에 없어서는 안될 큰 사건중에 하나이다.
고김종희회장은 다이너마트를 우리 기술로 바꾼 사람이다. 과거부터 화약은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항상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약한 국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제 치하중에는 아예 화약이라는 거대한 힘을 빼앗겨 더이상 화약이 우리나라에 없는 귀중한 것중 하나 였다. 하지만 고김종희 회장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화약공판에 입사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우리에게 없는 화약에 대해 탐구하고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의 힘으로 만들기 위해 생애를 바친 분이시다.
우리나라가 처음 일제치하에서 벗어 났을 때 우리는 단지 화약을 보관할 수만 있었지 만들 수는 없었다. 그나마 화약을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라도 고김종희 회장이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김종희회장에게 인천에 있었던 화약공장을 재건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초안 폭탄이 생겼고 초안 폭탄을 바탕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게 되었다
비싼값에 일본에서 사들이던 다이너마이트를 직접 개발함으로써 다이너마이트 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던 그는 앞으로도 사회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쓰일 여러분야의 화약을 생산하게 되었고, 그의 투명한 경영 방침에 따라 화약 원가계선서에 대해 완벽하게 기록함으로써, 감찰원 뿐만아니라, 한국생산성본부, 대학교,대학원 까지 문제가 없자 다른 나라보다 제조가격은 싸도 성능은 좋으면서 문제하나 없는 다이너마이트라는 타이틀이 붙게되면서 무한한 성장을 하게 되고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를 지원까지 하게 되었다.
희안하게 위대한 사람이나 대단한 사람은 꼭 단명한다. 고 김종희회장 역시 병 때문에 돌아가신 분인데 너무 많은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붇었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은데 살아생전 그는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결국 그 사람들로부터 이 모든 것을 이뤘다며 항상 그 사람들을 칭찬 했던 사람이다. 남들보다 배포도크고, 이해심도 넓었던 그의 일생을 통해 청소년들이 그의 애국심과, 사람을 이해하는 이해심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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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⑦ "김종희처럼" - 국가 기간산업 개척에 평생을 바친 프런티어 -
저자 : 고수정 감수 : 오재덕 발행처 : (주)FKI미디어 발행일 : 2013년 8월 16일 초판1쇄 발행 정가 : 12,500원
오랫만에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7권이 출간됐다. 이번에는 한화그룹의 모태 회사인 한국화약주식회사를 1952년 설립한 "김종희"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화그룹 창업자에 대해서는 이름 이외에는 잘 몰랐는데 이 도서를 통해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다..
현암 김종희. 이 분은 잘 알려진대로 '다이너마이트 김'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졌다. 책에서도 나오듯이 일제시대에 원산상고를 졸업한 이후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이후 화약산업 개척에 매진하였다 한다.
1922년 충청도의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난 저자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공부를 계속할 형편이 못되었다 한다. 그러나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경기공립상업학교에 합격하였으나 4학년 2학기때 일본인과의 싸움에 말려들어 퇴학을 당한다. 다시 당숙의 도움으로 원산공립상업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 때 고이케라는 일본인 경찰서장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이 고이케경부라는 사람은 김종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다.
[경기도립상업학교 시절(윗쪽)]
학교 졸업후 당숙의 추천으로 서울의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한 김종희는 회사에서 생산부 다이어마이트계 부장인 마쓰무로씨를 만나게 되는데 이 분은 김종희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 김종희에게 화약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한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회사의 모든 일본인직원들은 자국으로 돌아가고 김종희는 조선공판의 지배인으로 임명을 받게 되어 20대에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그는 1952년 한국화약을 설립하고 1955년 인천화약공장 불하받아 화약제조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여 1959년 화약류 완전 국산화에 성공하게 된다.
[조선화약공판 근무시절 (윗줄 오른쪽에서 네번째)]
1960년대에는 기계산업, 석유화학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기 시작하여 신한베아링공업과 제일화재해상보험을 인수하고, 한국화성공업,태평물산,경인에너지 설립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한국프라스틱공업, 태평개발, 유니온포리마, 천안북일학원을 설립하여 1977년에는 15개 기업과 학교까지 갖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해 화약운송열차가 이리역에서 폭발하는 사고로 위기를 맞았으나 전 재산 90억원을 피해보상금으로 내놓아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김종희에게는 당뇨병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1981년 59세의 나이로 당뇨병과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종희회장에 대한 자세한 소개 Site : 여기를 Click!!]
이와 같이 이 분은 한국 경제사에 있어서 화약산업을 기반으로 큰 획을 남겼다. 그는 사업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던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다. '사업을 통한 보국'의 일념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분야인 화약산업에 평생을 바쳐 국가기간산업의 한 부분을 일구어 낸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그는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있게 추진해 나갔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굽힐 줄 모르는 '용기'를 미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내 사람은 내가 책임진다는 '따뜻한 뚝심'으로 승부했고, 전문가 다운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로서 항상 최선을 다했으며, '삶의 본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나눔과 베품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앞장섰다고 한다. 지금은 김종희회장의 장남인 김승연회장이 뒤를 이어 한화그룹의 2대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지만 최근 그의 행보와 여러 구설수들을 보면 선대회장의 경륜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듯 보인다..
책은 전체적으로 3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 사업보국을 꿈꾼 진정한 프런티어 2. 뚝심으로 그려간 비전의 지도 3. 김종희 할아버지, 질문 있습니다!
본 도서는 청소년들에게 경제거인들로부터 본받을 점들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책 마지막 파트에서는 '김종희 할아버지, 질문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걸 봐도 알수 있다.
본 도서시리즈가 위인전의 성격을 띤 점을 감안하더라도 김종희회장의 정직과 정확성을 중요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현시대의 많은 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총 7명의 경제거인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 앞으로 또 어떠한 경제거인을 소개할런지 궁금하면서 또 많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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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처럼] 기업가 이야기인 이책은 현재 [ 한화그룹]의 전신인 [ 한국화약 주식 회사]의 설립 과정과 그 창립자의 사업보국 , 사업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940년대 해방 전 부터 일본인에 의해 독점 되다시피 한 < 화약 > 산업에서 한 우물만을 줄기차게 파고 , 지키고자 했던 집념의 기업인을 여기 소개 한다..
우선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 다이나 마이트> 에대한 간력 개요 이다.. ++++++++++++++++++++++++++++++++++++++++++++++++++++++++++++++++++++++++++++++++++++++++++++ 다이너마이트(dynamite, 문화어: 다이나마이트)는 나이트로글리세린 또는 나이트로글리콜 물질이 6% 이상 포함된 폭약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1866년 알프레드 노벨이 최초로 발명한 것이며, 1867년에 영국에서 특허를 인정 받았다. TNT도 폭발물이긴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와는 전혀 다르다.
용도 다이너마이트는 주로 건축, 채광, 파괴, 그리고 전쟁터에서 쓰였다. 그러나 더 새로운 폭발물과 기술은 다이너마이트를 여러 방면으로 응용하여 바꾸어 놓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수면 안이나 아래 쪽에서 폭파하는데 주로 쓰인다. 다이너마이트는 무장 전투, 다리 파괴, 적군이나 식품 배급을 느리게 하는 데도 쓰였다. 금고를 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막대를 끓이고 니트로 글리세린을 걷어냄으로써 일부러 니트로 글리세린을 다이너마이트에서 추출하기도 한다. 다이너마이트는 또한 스키 휴양지에도 자주 쓰인다. 안전 요원들은 다이너마이트 막대들을 사용하여 고의로 눈사태를 만듦으로써 스키타는 사람들이 도착할 때 안전하게 만든다. 주요 장치는 다이너마이트를 시동하는 데 쓰인다. 종류
+++++++++++++++++++++++++++++++++++++++++++++++++++++++++++++++++++++++++++++++++++++++++++++++++++++++++++++++ 다이너 마이트는 화학자 노벨에 의해 발명된 1866년 , 19세기 최대의 발명 중 하나라고 기억된다.. 평화적인 이용도 건설이나 플랜트, 채광이나 채굴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발명 이후 군사적 전략적 무기로서의 비중이 더 커지고 , 오히려 나라간의 전쟁 규모를 더욱 크게 하는데 ? 기여 하기도 한다.. ( 1차 세계 대전 ~ 2차 세계 대전 등 ) .
우리나라의 경우 화약이란것이 알려 지던 것은 훨씬 이전 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강력하고 운반이 용이 하면서 필요한 시간에 적정량을 폭발 시킬수 있는 [ 컨트롤 가능한 폭약] 은 다이너 마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일제 강점 시기에 대부분의 기술 정보들은 일본인에 의해 보안 유지 되었기 때문에 1945 년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이의 유지 발전 , 개발 할수 있는 인력이 거의 전무 한 상태에서 [김종희 회장]의 뚝심어린 생각으로 위태롭게 나마 꺼져 가던 화약의 불씨를 다시 살릴수 있었던것은 대단한 국가적인 행운이라고 할수 있겠다... 1950 ~ 1953 년의 한국 동란에서도 여러군데의 분산된 확약 저장고를 토대로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하나 하나 재건의 싹을 튀운 것 또한 그의 정신 <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는 현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기업가이던 쉽게 이러한 까다로운 기술 사업에 뛰어 들기 어려웟던 시절 그는 과감히 기술을 찾고 공부하고 여기에 필요한 인력들을 적재 적소에 배치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만의 4번째 성공 법칙 < 장이가 되자 > 라는 것과 < 사람이 곧 재산이다 > 라는 그의 철학에서 위임 받은 임원이 공장 가동에서 부터 운영까지 일임 할수 있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의 리더 였던것으로 평가 한다..
어느 나라이던 전쟁 직후에는 재건의 바람이 불게 마련이고 모든 물자 들이 귀중해지고 외산 수입제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무역 역조가 나타 난다.. 1960년도 초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의 첫 삽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 나라안의 거의 모든 지역이 토건 , 건설 사업장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던 시절이 아니 었을까 , 새로이 포항에 철강 공장이 들어서고 ,,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초대형 역사 경부 고속 도로가 시작 될수 있는 원동력은 , 그간 기간 산업 분야 에서 꼭 필요한 [ 화약]을 국내 기술로 자립 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커다란 성과로 자리 매김 하면서 , 한국 화약이라는 그룹은 성장 할수 있었고 , 그룹의 토대를 마련 할수 있지 않았을까 본다... 무슨 사업이던 간에 [ 준비 되어 있는 자 ] 들만이 그러한 기회의 자리에 중요한 획을 그을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일이다..
좋은 일만 있엇던 것이 아니라 1977년 이리역 화약 폭발 사고시에는 대대적으로 사운을 걸고 그 일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피해 복구에 나섰으며, 그의 거의 전재산 < 당시 90억 > 가량을 희사 할 정도의 올곧은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졌던 부분은 당시를 기억 하는 사람들에겐 아직도 기업인의 좋은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의 또다른 꿈인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도 불굴의 도전정신을 내세워 < 경인 전력 개발 > 로 발전소 사업에 도전 하였고 , 1971년 < 경인 에너지> 라는 이름으로 인천 원창동의 허허 벌판에 발전소 기공식을 진행 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이후 정부기관의 몇가지 제의에 따라 ? 식품 시업과 호텔 사업 ( 현 프라자 호텔 )을 진행 하면서 동시에 건설업을 자회사로 두는 그룹으로 성장동력을 앃게 되는 토대를 마련 한다...
지금은 한화 [ 김승연 회장 ] 체제이고 현재 구속 수감중 ? 인지 모르 겠으나 선대 김종희 회장 만큼의 의지력과 솔선 수범 , 투명한 기업가 정신 등이 오히려 퇴색한 듯 하여 안타깝다... 기업이 커지면서 이제는 누구의 오너 기업이 아니라 대중이 , 국민들이 사랑하고 , 사랑 받는 , 혹은 존경 할수 잇는 부자 기업들이 많이 나와서 사회적 일자리나 , 중, 소 기업에서 해결 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투자 진행 건 , 민자 + 국가 자본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 들에 대한 기여를 좀 더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가 생각 해본다...
고 , 김종희 회장의 돈을 쓰는 철학 또한 배울점이 있어서 사회 기여나 , 100년지 대계인 교육을 위한 투자 ( 천안 북일고 )등은 미래를 위한 우리 후손 들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나누고 , 배풀어야 할 올곧은 기업가 상이 아닌가 한다...
기업가가 자신과 자신 측근의 안위만을 위한 정치와 기업운영을 할때 , 외부로부터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받는다 ,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 - 빌게이츠를 보라 ,, 그리고 투자의 귀재 - 워렌 버핏을 보라 ,, 자녀들에게 이미 유산 상속의 범위를 한정 하였으며 그러한 막대하게 쌓은 부를 도로 사회적 기여에 환원하는 아름 다운 투자를 ...이땅 우리나라에서도 보게될 날이 머지 않기를 고대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히 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 책력거99 > 느낌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