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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단 하나의 방법..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단 하나의 방법.." 내용보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교통수단은 멈추어서고, 공장들의 기계가 가동을 멈추고, 식량과 생활용품은 지금 쌓여있는 것들이 소비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 최후의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석유가 발견되기 전, 아니 그 이전 석탄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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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교통수단은 멈추어서고, 공장들의 기계가 가동을 멈추고, 식량과 생활용품은 지금 쌓여있는 것들이 소비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 최후의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석유가 발견되기 전, 아니 그 이전 석탄이 발견되기 전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때에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사치스럽지는 못하지만, 이 행성에서 불편 없이 살아왔다. 그들은 오늘날 거의 모든 것의 원료가 되는 화석연료가 없었음에도 어떻게 하여 불편없이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노예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행성에서 인간의 역사는 잉여의 역사이기도 하다. 수렵채집의 시기가 끝나고, 농경생활로 인한 정착문명이 자리잡으면서 사람들은 점차 잉여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잉여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에너지였고, 지구상의 에너지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있었다. 저절로 주어지는 에너지는 태양열로 자라는 곡물로 대표되었고,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노동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이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 인간 노예에 의한 에너지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시대 노예는 경제의 핵심적인 동력이자 바로 에너지원이었다. 노예에너지에 의존하는 약탈경제의 시기였던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을 지탱해 온 힘은 이러한 에너지원, 즉 노예를 구하기 위한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중세 들어 도구들이 발명되고, 에너지 혁신이 일어나면서 노예제도의 매력은 감소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16세기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정복하면서 노예제도는 노예무역의 형태로 다시 전면에 등장하였다. 유럽사회 전반을 바로 인간의 근력에 의존하는 에너지시스템이 지탱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노예들의 반란이나 도주는 엄격하게 관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업시대에 접어들자 독특한 형태의 에너지 노역이 만들어지면서 인간노예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석탄을 기반으로 한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의 근력에 바탕을 둔 에너지에 비할 수 없는 동력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잉여동력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노예제도 폐지운동이 일어났다. 이제 인간사회는 인간노예에 의한 에너지시스템에서 고대식물에서 나온 탄소라는 사슬에 묶인 보이지 않는 노예에 의존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석유는, 이전에 석탄에 기반을 두며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영국을 제치고,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석탄과 석유로 움직이는 기계노예는 규모를 키우고 집중시켜서 일할수록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석유 1배럴에는 약 1700킬로 와트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 한 사람이 주말과 공휴일에 쉬고, 하루 8시간 동안 상식적인 수준의 노동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열량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7.37년을 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평균적인 북미인 1명이 일년 동안 소비하는 석유량은 23.6배럴, 이는 1인당 174명의 가상노예를 거느린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석유기반의 기계들, 식량, 그리고 생활용품과 같은 무생물 노예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예제도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우리 일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남미의 노예주들이 노예들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것은 노예들이 제공하는 편안한 삶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현재의 북미인들이 급증하는 무생물노예에 무관심한 것은 역시 화석연료에 의해 제공받는 안락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에너지노예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들의 유한성에 둔감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은 이처럼 에너지노예에 대해 둔감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어, 이제 그 끝을 보이기 시작하는 화석연료 없이도 지속 가능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떠 받치는 것은 수많은 기계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노예의 젖줄은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사실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물론 행성의 생태계마저 뒤흔들어 놓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복잡하던 농사일을 화석연료는 화학과 경제 그리고 고에너지 소비가 합쳐진 사업으로 변화시켜, 우리가 일상에서 식탁에 앉아 한끼 식사를 하는 것 만으로도 석유를 소모하는 꼴이 되게 만들었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농업에서 농업은 끊임없이 집중화되었고, 생산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일상적인 식품낭비를 초래하는가 하면, 이러한 공장식 농업은 전세계 모든 지역의 전통과 지역 특유의 농사방법 및 작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피크오일이 지난 석유가 귀해지며 비싸질 때 산업화된 농업이 어떻게 운영될지, 그 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의문을 표한다. 또한 화석연료의 등장으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세계인구의 절반이상이 지구면적의 3%에 불과한 도시에 살고, 이들이 에너지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는 도시이고 그를 섬기는 노예는 이 세상의 자원인 셈이다. 따라서 화석연료의 사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시기가 도래하면, 인구 역시 급격한 감소를 보일 것이며, 인간 또한 우리가 멸종을 목격해 온 수많은 종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가 세계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자아도취증에 빠진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사회모델에서 에너지를 생략하고, 유한한 자원에 대한 언급을 생략해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화석연료가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현대의 과학 역시 더 이상의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게 됨에 따라, 정치인들과 화석연료의 이해집단들은 국가별, 인종별, 세대별, 종교별 분열과 폭력을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경제성이 없거나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판명된 대체에너지 혹은 바이오 에너지를 거론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세상을 가부장적인 사회로 바꾸어 놓고 있으며, 사람들이 근본주의에 빠져들도록 유도하곤 한다. 에너지가 많아질수록 삶이 더 나아진다는 그들의 이기적인 주장은 과거 인간 노예주들이 떠들던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한때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되던 어획량이 해양생태계의 파괴로 1980년대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석유 또한 이미 피크오일이 지나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직까지 값싼 석유와 석유국가의 보조금이 이를 감추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화석연료의 발견으로부터 꽃피운 기계문명과 그것이 우리들의 정신 및 사고체계를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이러한 에너지노예에게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 있다. 숲은 광합성으로 만들어지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문명 역시 태곳적 지구가 만들어 준 화석연료나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들이 선택할 방법은 현재의 에너지중독에 빠진 삶과 단절하는 것,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적인 규모로 삶을 재편하여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는 것은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나, 러시아의 토지재분배처럼 혁명적인 처방이지만, 화석연료에 예속된 현 상태를 완화시키는 단 하나의 처방임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둘러보아도, 인간의 기본인 의식주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석유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우리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석유에 기반을 둔 수많은 기계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휘발유 값이 오르면 자동차 운행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석유를 피부로 느끼는 일은, 그리고 그 에너지원이 유한한 것이라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너지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잃었다고 말하는 저자, 현재의 우리들의 삶은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후손들의 삶마저 담보로 잡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k*****1 2013.09.12. 신고 공감 8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