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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영균씨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대배우이며, 연기에 대한 열망과 꿈이 상당했던 도전가,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헌신, 매니저 수준의 섬세한 뒷바라지에 대한 사연도 따뜻하고 좋았다. 영화사를 대표하는 한국의 대배우가 되어 500억 재산을 기부하고, 정말 재밌고 인상 깊게 읽은 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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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명보극장에서 영화가 개봉했을 때 <빨간 마후라>의 인기는 대단했다. 서울 명보 매표소부터 늘어선 관객 줄이 을지로 상가까지 이어졌다. 그때가 바로 '암표'라는 게 탄생한 시점이라고 말할 정도다.관객 25만 명을 동원하면서 그해 흥행 1위작이 됐다. 당시 서울 인구가 100만명이었으니 서울 사람 중 4분의 1이 영화를 본 셈이다.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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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엔딩 크레딧 : lalilu 책의 표지는 저자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후회 없이 살았다”라는 조금은 묵직한 감동을 주는 문장을 전한다.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후회가 없는 삶 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직 인생 40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지금도 후회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내 자신과 너무도 비교되는 문장 앞에서 과연 저자의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내용이 몹시 궁금해진다. 저자는 영화배우가 천직이라고 알고 살았다는 내용으로 프롤로그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영화배우를 천직으로 생가하고 살아온 저자의 삶에 후회도 여한도 없다는 것을 보며 얼마나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드라이브 걸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2020년 저자의 나이는 아흔둘이라고 한다. 백세까지 8년의 시간만 남은 저자의 삶은 한 세기동안 한국 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을 신앙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어머니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어머니의 힘은 참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지금의 저자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보며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지금의 한국 영화는 정말 보물과 같은 선물이고 우리나라의 자랑이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영화 산업의 규모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자와 같은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나 그 분야를 시작한 선구자 또는 개척자들의 피와 땀과 노력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저자가 영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흘린 모든 진액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나리오가 좋아야 하고 연기, 음악, 영상미 정말 모든 예술이 영화 하나에 응축되어 녹아나온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를 보지만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지 보이지 않는 숨결을 느끼게 된다. 책을 보며 저자의 백수를 응원하게 되었다. 백세가 되는 그 때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라져 영화 시상식에서 저자에게 정말 감동적인 감사의 마음을 영화인들이 전했으면 좋겠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저자의 여생을 응원하며 저자를 통해 한국 영화가 더욱 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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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타, 성공한 사업가, 그리고 500억 기부자” 한국영화 100년 지킴이, 아흔둘 노배우의 비망록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판한 신영균 님의 <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엔딩 크레딧>은 제목에서 아쉬움이 전해진다.
올해는 영화관에 자주 방문하지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나는 조용히 음악감독과 감독이 삽입한 영화 엔딩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되새긴다. 물론 15분이라는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청소를 마쳐야 하는 일정을 생각해 마지막 관객이 자리를 뜨면 조용히 같이 일어나게 된다. 오늘 소개할 신영균 님은 이름 하나로 많은 것이 떠오르는 분이다.
어른들에게 그의 영화에 관한 소개를 자주 접했고, 어린 시절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한 배우이다. 그는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영화관계자로 불린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그에 관해 <엔딩 크레딧>이 전하는 이야기를 접하고, 후회 없이 살았다는 그의 고백에 공감했다. 그 정도의 인기스타가 구설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고, 성공한 사업가로 승승장구했고, 가장 최근 놀라운 소식은 자신이 이룩한 자산 중 상당한 500억을 기부한다는 발표였다.
서울 여행 시 명동에 있는 명동극장을 보며 이곳이 신영균 님의 극장이라는 사실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의 영화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기고자 한 의도와 영화에 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을 개원해 생업에 몰두하지만, 연극반에서 느낀 무대에 대한 동경은 그를 연극과 영화로 이끌었다. 연극 <여인천하>에서 <과부>로 영화에 데뷔했다. <빨간 마후라>, <연산군>, <미워도 다시 한번>을 통해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은퇴 후 사업가와 정치인의 행보를 이어간다.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내기에 한 가지를 이루어내도 대단한데 여러 분야에서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성공을 이어간다. 사랑스러운 가족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것도 본받을만하다. 이제는 아흔둘의 노익장을 과시해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는 면을 보면 100세 이후의 행보도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계의 여러 인물 중 단연 인상적인 사람은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이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안타까운 일이 이들 부부에게 일어난 것이다. 최은희 씨가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에 납치되자, 신 감독은 2년 전 이혼한 전처를 찾겠다며 홍콩에 갔다가 그해 7월 똑같이 납북되었다. 당시 북한에서 영화계를 좌우하던 김정일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거로 알고 있는데, 최은희 씨의 이야기는 다르다.
“북한에서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정치범 수용소 같은 곳에 끌려갔어요. 거기서 단식을 하니까 강제로 영양제 주사를 맞았는데 그게 소독이 제대로 안 돼서 C형 간염균을 얻은 거예요. 숨지기 2년 전엔 간 이식 수술도 받았어요.” - 108쪽
이외에도 우리 영화의 60년대 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유명한 배우와 신영균 님과 일어난 일화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별명인 빨간 마후라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런데 ‘빨간 마후라’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25대 박춘택 공군 참모총장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초대 김정렬 총장의 동생인 김영환 장군을 아시나요? 6·25 때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분입니다. 그분이 초급장교 시절 강릉 형님 댁에서 발견한 빨간 천을 목에 둘러본 모양입니다. 멋있어 보여서 계속 둘렀는데, 그게 시작이 됐다고 합니다. 적진에 떨어졌을 때 구조 신호용으로도 딱 맞고요. 미 공군에도 없는 상징물입니다. 대한민국 공군만의 상징이죠.” - 328쪽
우리나라 공군을 대표하는 빨간 마후라는 그렇게 탄생했고, 영화는 몰라도 빨간 마후라로 시작하는 도입부의 경쾌한 음악은 언제나 기운을 북돋운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빨간 마후라와 기부와 관련한 김신 참모총장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6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인 김신 총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이다. 그는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고, 김구 선생에 관한 독립운동을 알리는 동시에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 오랜 시간 해외 유명 대학에 42억 원을 기부하다 27억 원의 증여세와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고액 기부자에 대한 증여세 부과를 목격한 적이 여러 차례 있어 신영균 님의 기부행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행위라 존경스러운 동시에 걱정이 앞서는 현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영균의 <엔딩 크레딧>은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아주 소중한 책이라 생각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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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신영균은 92세 노장, 이 책에서 그의 첫 일성은 "후회없이 살았다'(p5)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흔적이리라 생각든다. 건강하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존경스러운 분이다. 장수의 비법이 궁금해진다. 그는 장수의 요체로 시곗바늘처럼 규칙적인 생활패턴, 꾸준한 운동,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를 꼽아 추천했다. 요즘 100세 시대 많은 분들의 공통적인 비법이었다. 한국영화 역사 100년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생을 보면서 일반인이 넘볼수 없는 화려한 은막이 세상에 알려져있지만, 초창기에는 고생과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충고하는 말은 "성공하고 싶은가. 그러려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리고 끝까지 해라. 다른 지름길은 없다."(p50)이다. 역시 노장의 관록이 묻어나는 발언은 모두에게 충분한 인생 조언이다. 그에겐 어머니와 신앙이라는 두 버팀목이 있었다. 둘다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삶을 다잡아 주는 구심점이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아직도 품고 있었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성경책 한 권만 관 속에 넣어 달라"(p9)고 자식들에게 유언처럼 부탁할 정도로 신심이 깊다. 말많은 연예계에 큰 구설수없이 나이든 원로배우의 배경이지 않을까. 그의 일대기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배우로 시작하고, 영화시대가 되면서 영화배우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스타가 되면서 잘 알려진 수많은 감독과 동료배우들과 연기를 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 1978년 영화배우직을 은퇴하면서, 배우가 극이 바뀔 때 역을 바뀌듯이 인생에서도 역할이 바뀌어 사업가, 정치가로도 문화예술계에 계속 활동을 했다. 그의 충무로 영화계에 대한 사랑이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영화가 아카데미 4관왕 수상으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고, 그에게도 최고의 쾌거를 환호하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한국영화사 100년을 만들어온 배우이기 때문이기에... 마지막 평론에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칭한 "한국영화의 영원한 남성 아이콘"(p395) 신영균은 우리 한국영화사에서 최고의 배우가 아닐까싶다. 그는 "아직도 연기를 꿈꾼다"(p403)면서 영화계에서 여전히 등대로 비추고 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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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은 92살의 한국 원로 영화 배우이자 사업가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본 적 없었고, '빨간 마후라'라는 노래만 들어보았을 뿐이다. 그는 한국 영화사의 산 증인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한국 영화의 역사를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한국 전쟁 후 우리 나라는 가난했고, 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면 지독히도 못 살았었던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1960년대에 많은 한국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나라가 가난하다고 예술과 문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연극도 공연되고 영화도 찍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1957년에 우리 나라 개봉 영화관이 11개였고 재개봉관을 합하면 48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1961년에 영화<마부>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여 한국 영화 최초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 되었었다고 한다. 1964년에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 <비련의 왕비 달기>가 촬영되었다. 60년대에 벌써 합작 영화를 만들었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1964년에 신영균씨는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가 이토록 오래되었고 발전되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지금은 TV와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영화를 보며 외국의 드라마나 영화도 안방에서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TV도 흔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유행했던 것 같다. 명동과 을지로에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을 섰고, 재개봉관에서는 좌석에 앉지 못해 서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빨간 마후라 영화를 촬영할 때는 실제로 군인이 뒤에서 총을 쏘며 연기를 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했다고 한다. 지방 촬영을 가던중 사고가 나서 죽을뻔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도로도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고, 차의 성능도 안 좋았으니 지방 촬영 그 자체가 큰 위험이었을 것이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북한에 납치되어 영화를 촬영하다가 탈출해서 나왔다고 했는데, 김정일이 그들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들을 납치했다고 했다. 그의 영화 상록수로 인해 한국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고, 북한에서도 북한판 상록수 영화를 요청하여 신감독이 납치 기간 동안 촬영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 같다. 나느 90세 이상을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 쓴 책을 읽으면 무조건 감동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한국 격변의 시대를 다 경험한 역사이다. 일본의 식민지, 광복, 6,25전쟁, 가난, 산업화, 5.18, 민주주의, 경제 발달까지 모든 역사를 본 산 증인들이 아직도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가며 우리에게 역사를 이야기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신 분의 책에는 얄팍한 우리의 철학을 뛰어넘는 삶의 교훈이 있다고 느낀다. 신영균씨의 책 '엔딩 크레딧'은 한국 영화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발전 과정을 겪어왔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이 함께 있어서 읽기 편했다. 책도 이쁘고 내용도 좋고, 이런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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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엔딩 크레딧 RHK출판 #엔딩크레딧, #신영균, #빨간마후라, #노블레스오블리주, #빨간마후라신영균, #영화100년사, 화려한 스타, 성공한 사업가, 500억 기부자로 알려진 저자를 만날수가 있었어요.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을 평가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또한 살아가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고 살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저자의 삶을 엿볼수가 있을것 같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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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함께 사진자료도 있어서 더욱 참고하면서 읽을수가 있었어요. 한국전쟁은 충무로에도 큰 영양을 미쳤다고 해요. 신상옥 감독의 빨간마후라도 한국전쟁이 낳은 찬란한 유산이라고 해요. 빨간마후라의 제작 비하인드스토리를 볼수가 있어서 재미나더라구요. 영화뒷 에피소트 재미나잖아요. 연극을 사랑했지만 연극을 하면서 겪게되는 어려움으로 잠시 중단후 학업을 시작했다고 해요. 결혼을 하고 나서 다시 열정으로 영화를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여정이 나오더라구요. 그후 연산군을 찍기까지 말이지요. 연산군으로 인해 남우주연상도 받게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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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감독과 최은희 배우의 북한 납치사건은 참 유명했지요. 그 사건을 재조명해서 보는듯했어요. 그때 참 안타까웠지요.. 온국민이 그랬을것 같아요. 영화속 무용담이며 위험한상황이며, 그래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저자 신영균배우님의 멋진 모습도 볼수가 있는 책이었어요. 영화의 역사를 보듯이 말이지요. 정말 유명한 영화와 배우들을 만나볼수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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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정말 유명한 배우들이었지요.
추억속 사진들이 나와서 우와 하면서 보게되는 책이었어요.
원로배우로서의 그의 삶과 인생, 영화에 대한 열정을 엿볼수가 있더라구요.
명보극장을 사회에 기부를 하게 되고, 모레시계의 일화도 보면서 더욱 재미난
역사같은 이야기를 보게 되더라구요.
유명한 현재의 배우들까지 말이지요.
한국영화사 100주년이 작년에 지나고 현재 영화의 산증인이라고 할수 있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영화속 인물과 제작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한권으로 이루어져 보면서도 참 재미나게 볼수가 있었어요.
한국영화의 발자취를 보면서 저자의 더불어 사는 삶도 볼수가 있는 책이었어요.
옛 영화속 비하인드 스토리와 영화배우들의 엔딩크레딧이라 더욱 재마나게 볼수있었네요.
꿈을 향해 열정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다했던 저자의 모습이라 스토리들이 더욱 멋지게 다가오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살아가면서 '후회 없이 살았다'는 표지앞면의 글처럼 우리들의 삶에서도
후회없이 최선을 다할수 있는 계기를 주는 책이었어요.
우리나라 영화를 더욱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는 도서였어요.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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