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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오만한 제국」을 읽지 않았다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보지 않았다면,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미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막연히 미국이라 하면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 우리나라를 도와 준 착한 나라로 인식해 왔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미국이라는 나라는 착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깡패 같고, 무자비하고, 부도덕하고, 비상식적이고, 위험천만한 나라인 것만 같았다. 어린 내게 그 누구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쪽과 저쪽의 평가에 대해 가르쳤다면 허구한 날 영어공부 하느라 밤을 새고 이해도 되지 않는 문법을 붙들고 씨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 요즘도 자식 영어 공부 시키느라 별의별 방법을 다 쓰는 한국의 엄마들을 생각하면 오늘 내일 해서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작년에 읽은 업튼 싱클레어의「정글」은 현재 미국을 만든 힘의 추악한 단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는(특히 한국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이 정육점에 배가 갈린 채 걸려 있는 한 마리 돼지의 적나라함처럼 펼쳐진다. 그렇다고 내가 반미주의자거나 미국을 증오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류현진과 추신수가 미국프로야구리그(MLB)에 진출하기 훨씬 전부터 MLB의 팬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가동되는 <MLB10 THE SHOW>라는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30개 팀의 선수들을 모조리 외울 정도다. NBA도 좋아 한다. 영어학원에서 일한 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마치 내 나라에서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 된 것 처럼 기뻐했었다. 하지만 무작정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미국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왜 자국 군에서는 폐물 취급을 받는 전투기를 굳이 우방국인 한국군에 비싸게 팔려고 하는 지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FTA로 그만큼 퍼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긁어가려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돈만 챙기고 튀어버린 월가의 금융기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셀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미국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DNA에 각인되어 흐르고 있는 숭미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이 내게도 동일하게 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흐흐...
“내가 터에퍼러였을 때, 아마 여섯 살쯤 됐을 땐데, 텍사스인 들이 우리 무리를 공격했어. 다음 날 동생과 나는 야영지로 돌아갔는데, 1백 명의 죽은 여자와 죽은 노인과 죽은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했어.” (p.422) 매컬로 가(家)의 가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가 인디언에게 붙잡힌 후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함께 살게 되는데, 그를 좋아하는 인디언 여자와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이다. 그 인디언 아가씨는 ‘초원의 꽃’으로 불리는 아리따운 여성인데, 내용 상 충격적인 가족사를 듣게 된다. 백인놈들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과 어린 동생만이 살아남은 이야기다. 그런데 엘리는 전혀 동요하거나 미안해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자신도 꼭 그렇게 인디언놈들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지주로 살던 엘리 가족에게 어느 날 밤 갑자기 인디언들이 침입했다. 무자비하게 가족을 죽이고 엘리와 형만이 사로잡혔다.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자신들을 취급하며 마구잡이로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인디언들 틈에서 탈출을 감행해 보기도 하고 반란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엘리는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버티다. 형은 의지도 약하고 고난과 마주할 용기도 부족해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엘리는 푸른 눈과 흰 피부를 가진 분명한 백인이지만 인디언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익히고 그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처럼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공격과 지배’라는 큰 틀로 보는 내게 이 장면은 꽤 흥미로웠다. ‘골드러시’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동부 항구에 몰려 있던 백인들의 러시가 이어졌다. 서부로, 서부로 가기만 하면 원하는 옥토를 얻을 수 있고 삽만 갖다 대면 펑펑 쏟아지는 황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멀기도 멀었다. 가다가다 지쳐 정착한 백인들도 많았고 기어코 서부에 닿은 백인들은 더 많았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개척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개간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곳에서 수천, 수만 년을 살아 온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의 골드러시는 한 밤 중의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평화롭게 땅에 발을 딛고 바람이 가져오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 온 그들에게 백인의 등장은 악몽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원래 백인이 평화롭게 정주하고 있던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쫓아냈으니 백인들이 무조건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복수라는 논리로 똑같이 백인들을 공격하고 죽인 인디언들의 행위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책 「더 선」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한 가정의 100년 역사를 통해 미국 근대를 톺아보는 전개가 좋다. 매컬로 가(家)의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전개 방식도 전개의 긴장감을 더하는 구성이라 본다. 만약 무조건 ‘백인이 나쁘다.’라는 것으로 읽혔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무조건 ‘인디언이 피해자다.’라는 것으로 읽혔더라도 마찬가지다.
“씨발, 나는 좆같이 더러운 인디언이 되지 않을 거야, 엘리. 난 차라리 죽는 게 나아.” (p.83) 함께 인디언 부족에서 붙잡힌 형이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해 엘리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이다. 하지만 엘리는 생각이 달랐다. 의지도 달랐다. 어차피 죽어버릴 바에야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엘리에게는 ‘좆같이 더러운’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의미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 ‘좆같이 더러운’ 것이었다. 결국 엘리에 의해 매컬로 가(家)의 역사는 이어지게 된 것이니 어쨌든 엘리의 그 선택은 옳았다.
“우리 가족의 많은 이들을 앗아갔고 어쩌면 몇 명을 더 앗아갈지 모르는 이 땅을 대령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p.107) 후에 엘리의 막내아들이 되는 피터 매컬로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닿은 곳은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새로운 경제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족들을 탄생시켰다.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초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자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국을 바라볼 때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처럼 비록 그것이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아닐지라도 하나의 사안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양가성 또한 존재한다. 매컬로 가(家)라는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것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버지가 아무리 사랑한 땅일지라도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쓸모없는 불모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식들이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가치일지라도 아버지에게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객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두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내가 그 가족의 일원이라면 그 정도의 객관화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
“어디 틀어박혀 숨어 있고 싶지 않는 한, 나는 별이 지기도 전에 일어나서는 젖은 풀밭을 걸어가 차가운 시냇물로 물 항아리를 채우고 화톳불이 꺼지지 않게 손을 봤어. 하루 중 남은 시간은 여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아 했지.” (p.159) 이럴 때는 엘리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가장 좋다고 본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는 인디언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티에테티’로 불렸다. 그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 「더 선」이 몇 권이 더 출간될지 알 수는 없지만 2권, 3권으로 이어지면서 엘리가 어떻게 다시 가문을 일으키는 지 궁금했다. 당장 닥친 현실과 구조를 엎을 수 없다면 현재에 최대한 충실하고 요구되는 것들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버지처럼 의식이나 양심 따위에 시달리지 않는 막무가내 짐승이 될 것. 인간이란 쇠고기 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품고 숙면을 취할 것.” (p.252) 엘리의 아들 피터 매컬로가 아버지를 평가하는 내용이다. 이 한 문장을 통해 엘리의 생애 후반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 열심과 삶에 대한 의지가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삶을 지켜온 엘리인데, 인생의 후반부 아들에게서 ‘막무가내 짐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 행복한 인생은 아닐 것 같다. 다음 시리즈에서 펼쳐질 엘리의 그 치열한 삶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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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마이어의 장편소설 『더 선』 제1권. 1832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2백 년에 걸친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매컬로 집안의 세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미국 건국 신화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다. 건국 신화를 냉소적으로 탈신비화하지도 않고 몽롱하게 재신화화지도 않으며 제3의 방식으로 새로 써내려갔다. 2012년 3월, 엘리의 증손녀이자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인 진 앤 매컬로는 여든여섯 살이고 목장 저택의 대형 거실에서 이란의 샤에게서 선물로 받은 양탄자 위에 꼼짝달싹 못한 채 홀로 누워 있다. 몸은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마비되었지만 “정신만은 완벽하게 깨어 있는” 지니는 분명히 누군가 자기를 일부러 이렇게 해놓았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누가? 그리고 왜?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앞에 전 생애가 파노라마로 스쳐가듯이, 이따금 비몽사몽을 헤매는 지니의 의식 속에서 집안의 역사가, 지니의 지난 생애가 영사막에 투사되는 영화 장면처럼 명료하게 재연된다. 제2차 세계대전, 목축업의 몰락, 석유 산업의 부흥, 케네디의 죽음, 9.11 사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지니의 개인사와 매컬로 집안의 가족사가 입체적으로 부조된다. 그리하여 빈털터리 인디언 꼬마 소년에게서 비롯된 집안이 어떻게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로 성장하는지가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그 과정은 텍사스 역사뿐 아니라 미국 역사의 축약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진 앤 매컬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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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출간인 2권을 마저 읽고나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 절반을 읽은 소감으로 말할것 같으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서부개척사에서 시작해서 찬란하게만 보이는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 그 실체에 이르기까지 미국 텍사스의 역사를 종단하는 이야기를 몇차례 왕복하는 동안 그 치열했던 전쟁터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비장한 감정마저 든다.
텍사스가 멕시코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날 태어난 증조부 앨리와 앨리의 증손녀인 앤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매컬로 가문의 흥망성쇄를 그리고 있는 이 연대기에서는 앨리와 앨리의 막내아들인 피터, 증손녀인 앤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텍사스인들의 살아있는 역사가 보여진다. 미국 건국사를 구성하는 신화의 한 축이 실은 원주민인 인디언과 라틴계 이주민에 대한 약탈과 살인을 통해 쌓아올린 역사이며, 그 실체를 밝힌다는 뉘앙스의 소개글이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실체를 깨닫는 이외에도 현대인으로서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레 봉인되어 버렸을 숨겨진 투쟁심이 깨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걸어온 저마다의 치열한 삶 속에서 지금의 세대가 체감하지 못하는 인간 본래의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한다.
엘리가 어린시절 코만치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어머니와 누나를 잃는 장면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마치 다큐의 한장면처럼 무미건조하게 묘사되는 이 살육장면에서는, 그 리얼함에 거부감을 느끼기 보다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방식에 정신이 번쩍든다. 아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재벌 3세쯤 되면 이미 현재의 부에 대해서 늘상 들이마시는 공기나 방을 열고 들어가면 놓여있는 침대처럼 아주 당연하게 처음부터 그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낀다고 하는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의 자유를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여기고 자란 지금의 세대가 바로 인류 역사에서 그런 포지션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증면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텍사스 정착민과 인디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인디언들의 풍습이나 생활방식 사냥법, 그리고 가치관까지, 소설을 읽었지만 논픽션을 읽고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깊이있고 장대한 이야기에 2권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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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소개하는 것을 통해 많은 기대를 갖게 되었다. 세계적인 작가의 글에는 영적 감각이 새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필체에서 감동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에서는 힘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더 선은 기대와 다른 방향을 보았다. 물론, 기대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와 달리 글에 대한 이해폭이 좁아져 갔다. 내용에 대한 구성과 흐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시작했다.
더 선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앞에서 말했지만 흐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려운 중에 글을 읽기 시작했다. 탄력을 받기 어려워 고민했다. 책을 덮을까 했다. 그러나 미국의 개척초기에 땅을 빼앗고 빼앗기는 시기에 일어난 시대적 배경을 통해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 백인과 인디언간의 갈등과 싸움이었다. 승자의 역사이지만 내면에는 많은 눈물과 피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매컬로 가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본서는 점차 흥미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사고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문들이 있지만 잔혹한 현장속에서는 역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디언의 삶속에 동화되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는 인류는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급진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동화속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잔혹하고 잔인한 역사의 뒷면에서는 인간의 미가 담겨져 있다. 미국 개척기에 일어난 수많은 갈등과 죽음은 오늘의 미국을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희생속에 뿌린 피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로 기억되어지고 있다. 가족과 형제들이 죽어가는 현장속에 살아난 한 사람의 모습은 오늘의 가문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흥미보다는 아픔, 아픔보다는 눈물을 보게 된 본서는 우리들에게 당시의 현장 인물들의 아픔에 동화되게 했다. 그들의 삶은 결국 자신들의 삶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래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아들의 눈물이 오늘의 대지가 되었다. 대지속에 피어나는 모든 것은 그들의 피의 결과이었다. 죽음과 삶의 자리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로 전개되어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글의 핵심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의 흐름을 알게 되었을 때 본서의 내용이 내 마음에 차츰 스며들기 시작했다.
본서는 인류애를 담고 있는 책이다. 본서를 통해 오늘의 가문을 새롭게 보게 된다. 한 가문의 세움이 결국 인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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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들'(더 선)에 대한 이야기다. 매컬로 가문의 일대기라는 형식을 빌어 미 개척사를 둘러싼 대하드라마.
나보고 1백 년은 살 거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그 나이가 되었으니 그 말을 의심할 건더기는 없는 셈이야. 머리가죽이 그대로 붙어 있긴 하지만 기독교인으로 죽는 건 아냐. 그리고 만약 영원한 사냥터(북미 인디언의 내세)라는 게 있다면, 난 거기로 가겠지.(13쪽)
여기서 엘리가 언급한 '영원한 사냥터'라는 말은 적어도 첫 번째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다.
엘리는 자신을 납치한 부족인 코만치족 코초테카(버팔로를 먹는 무리)임을 알게 된다. 그는 거기서 사냥과 전쟁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가 얻는 코초테카식 이름은 '티에테티 타이보'(불쌍한 백인 꼬마). 부족 우두머리 토샤와이와 그 아들 에스쿠테 그리고 너어커루의 도움을 받아 엘리는 무리없이 적응해 나간다.
엘리가 코초테카족 자매 '한 마리의 새'(별명 일하기 싫어)와 '초원의 꽃'과 나누는 섹스신이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어떤 원초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엘리의 아들 피터 대에 이르러 또한번의 살륙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원주민에 의한 것이 아닌 백인에 의해 멕시코계 페드로 가족이 몰살된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딸 마리아는 살아남는다.
한때 그들은 스페인의 귀족 가문이었고 왕에게서 직접 이 땅을 하사받았다. 페드로는 멕시코에 사는 일가붙이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자신을 멕시코인으로 여기지도 않았다.(118쪽)
어떻게 보면 이러한 피의 살육은 미 개척사의 현장이기도 하겠다. 엘리의 아들 피터는 아버지와 달리 이성적으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인디언과 멕시코인을 학살하거나 몰아내고 건국한 미합중국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피터는 자신이 페드로 일가의 살륙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된 결과에 대해 내내 번민하며, 페드로 일가에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보낸다. 피터의 다음 독백을 들어보자.
좋은 소식을 들자면, 대기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고 대지가 다시 생기를 찾았다는 것. 비가 계속 내린 덕분에, 아델리아와 헬리오트로프에 꽃이 피고, 아나카휘타가 주변 어디나 벌새들이 노닐고, 파란날개 나비가 날아다니고, 에바노와 유창목의 향기가 대기를 떠돈다. 해 질 녘에 구름이 붉게 타오르고 강물이 노을빛에 잠겨 반짝거린다. 하지만 페드로에게는 이 모든 게 보이지 않는다. 페드로에게는 오직 어둠뿐이다.(254쪽)
피터는 페드로 일가 살륙과 관련하여 부친 엘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다.
"꼭 그런 방식이 필요했던 건 아니에요."
"바로 그런 방식이 필요했다. 가르시아 집안이 땅을 차지한 것도 인디언을 쫓아내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였지.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땅을 얻어야 했고,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우리에게서 그런 방식으로 땅을 빼앗아갈지도 모르지. 이 점은 네가 꼭 명심하길 바란다."(260쪽) 필립 마이어가 소설 제목을 "아들들(더 선)"이라고 붙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아래 대화는 지니의 부친 찰스(그는 거의 소설에서 열외이다)가 어느 기자에게 한 말이다.
딸들은 말입니다.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나쁜 일이에요. 아들이 우선입니다. 그다음이 석유죠. 카리조의 밀러 잡안을 봐요. 땅을 80섹션이나 소유했지만, 그걸 물려줄 자손이라고는 계집애들밖에 없잖아요."(235쪽)
이 말을 엿들은 지니는 후에 딸도 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오를 다진다. 사실 억세고 드센 텍사스에서 남자들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런 판국에 지니 매컬로의 분투(?)는 언뜻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활약은 2권 이후에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페드로 일가의 불행은 그 사위들의 못난 행실과 그런 망나니 남편을 맞아들인 딸들이 스스로 초래한 화일 지도 모른다.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사위들 둘은 피터의 가축들을 몰래 빼돌리고 있었다.
한편 엘리(자손들에게는 '대령'으로 불리는)가 코초테카 족과 함께 하면서 익힌 습관들은 아들 피터와 증손녀 지니에 의한 기억 속에서 대를 이어 물림된다. 마이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비록 백인들이 총의 힘으로 원주민들을 물리적으로 내몰았지만, 원주민 정신의 원형은 도도한 역사 속에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처신을 잘했다. 인디언 이야기도 들려주고, 막대기 두 개로 불을 붙이는 법도 보여 주고, 활솜씨(아버진 내가 끝까지 당기지도 못하는 인디언 활을 아직도 쏠 줄 안다)도 자랑하며 베란다에 모인 아이들을 즐겁게 해줬다. - 피터의 회상(187~188쪽)
대령은 손님이 없을 때는 화살촉을 만들거나 삼나무를 깎으며 베란다에 앉아 있곤 했다. - 지니의 회상(184쪽) 엘리가 그랬다면 증손녀인 지니는 그에게서 또다른 인간의 원형을 느낀다. 인간의 역사는 단지 유전인자만 전수되는 것이 아니리라.
맨살에 닿은 토끼의 부드러운 털의 느낌, 거의 물처럼 부드럽던 그 느낌과 그녀에게 몸을 기대며 어깨를 어루만지던 증조할아버지 손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 지니의 회상(90쪽)
앞서 밝혔듯이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5년간 수백 권의 관련 서적을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시대를 너무나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건조하고 딱딱할 수 있는 대목에서 소설 읽는 즐거움과 재미를 더해 준다. 가령 아래를 보자.
송아지를 울타리에 묶어놓고 어느 암소의 젖을 송아지 얼굴에 끼얹었다. 그러고는 암소에게 고아 송아지에게서 나는 자기 젖 냄새를 맡게 해준 다음, 송아지를 암소의 젖통 아래로 데려갔다. 보통은 암소가 낯선 송아지를 걷어찼지만 그러면 잠시 기다렸다가 이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었다. 가끔은 암소가 금세 굴복하고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며칠이 걸렸다.(234쪽)
어디 이뿐인가? 버팔로 사냥과 고기 해체 방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부분(16장)은 마치 그 옆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다. 또한 코초테카 족이 사냥하고 화살 촉을 만들 때는 오호! 하는 감탄마저 일었다. 1917년 6월 21일, 이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페드로의 딸, 마리아가 피터를 찾아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그리고 있는 미 개척사의 대하소설 같은 연대기의 첫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이제 첫 번째 이야기가 막 시작된 참이다.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너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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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1』을 읽고 우선 작가의 위대함을 느껴볼 수가 있음을 고백해본다. 정말이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생각도 해볼 수 없는 주제를 설정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큰 박수를 보내본다. 그것도 단순한 주제를 넘어서 방대한 지식을 요하고, 내용 전개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소설다운 맛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삶은 투쟁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핏빛 투쟁!'이라는 책 표지의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초기 역사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그 시대에 매컬로라는 한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계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제목 [더 선]에서처럼 한 집안에서 할아버지인 엘리, 그의 아들 피터, 그리고 손녀 진 앤에 이르기까지 3대로 이어지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용 전개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게 되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많은 사연들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가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개되는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특히 인디언들의 세계와 모습을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책에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고유 지명과 당시 언어에 대한 해설은 더욱 더 관심을 갖게끔 해주어 좋았다.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책 앞에 제시되어 있는 가계도를 다시 보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헷갈리는 가족상황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실제의 모습이 그런지, 아니면 소설이라 표현이 조금은 과장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생생한 생활 모습과 현장감 있는 표현들이 실제 느껴지는 매우 흥미로운 기분도 되었다. 인간의 삶은 결국 핏빛 나는 투쟁으로 점철이 되었고, 처절한 삶의 모습을 적나라한 표현으로 실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이 1권 시작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2, 3권의 내용도 기대가 된다. 처음부터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계속 이어지는 내용들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 미국에 대해서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만을 알고 있는 내 자신에게 미국이 개척시대에 있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인디언들과 백인들 간의 갈등 및 목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갈등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에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역사교과서가 아닌 자유로운 소설 형태로서, 주인공을 포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역사책 공부보다는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21세기 미국 최고 소설이라며 탄생과 동시에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걸작이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되었다.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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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하면 라스베가스의 화려함, 디즈니랜드 같은 꿈동산과 자유분방함이 떠오르지만, 확실히 미국은 '개척과 모험'이란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오래 전 이어령 박사는 미국 문학은 거리의 문학이라고 가리켰을까? 미국의 자유스러움, 개척 등을 압축해서 그리 표현한 것이리라(그에 비해 우리나라 문학은 집의 문학이라고도 했다. 난 그 표현이 딱 맞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개척'의 사전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가 같지 않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이 책의 문구 '삶은 투쟁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핏빛 투쟁!'이란 말이 과연 액면 그대로 와닿는다. 개척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개척을 사전적 의미가 아닌, 역사적 의미도 아닌 문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작품이 있다. 우선 저자에겐 굉장히 뜻깊은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초기개척사를 역사가 아닌 문학적 관점에서 묘파한다는 건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가족사에 관한 소설이란 점에서 우리나라엔 박경리의 <토지>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이런 책은 또 인종적(?) 관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 역사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누구의 관점에서 기술할 것이냐는 것인데, 미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척이겠고, 개인이나 가족으로 볼 땐 처절한 사투이겠지만, 인디언의 관점에서 보자면 침략일 것이다. 만일 이 똑같은 이야기를 개척사적 관점이 아닌 침략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또한 살아낸다는 것은 뭘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은 그렇게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장대한 느낌은 들긴 하지만 왠지 문체는 그다지 나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어서 읽는데 애좀 먹었다. 영문 원서는 한 권짜리면서 우리나라 번역본은 1,2권으로 나누어 나오는가 보다. 2권이 아직 나오지 않고(9월 예정)있는 상황에서 2권을 읽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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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면 언제나 한번은 가고 싶은 나라이자 오늘날에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과 자본을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영어가 거의 세계 공통어가 되었고 조금이라도 세계적인 모든 행사들에는 영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공경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나라이고 더 넓은 대지,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평원과 계곡 및 바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미국이라는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문화적 야망과 욕심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를 바라는 나라가 미국이 아닐까 싶다. 넓은 영토와 무한하다시피한 자원은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기위한 기초가 되었던 무기이기도 하다. 그리곤 더 넓은 영토 확장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근대에는 동남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침략하기도 했던 미국,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의 물자를 세계에 팔아 얻은 재화는 엄청날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영토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분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 관한 책들을 최근에 몇권읽어보았다. "부의 독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샘 피지개티 저/이경남 역 알키), "미국 패권의 역사", "대륙 횡단 철도"를 비롯한 몇권의 미국 관련 도서를 통해 콜롬버스가 미국 대륙에 상륙한 후, 영국 및 유럽의 열강들에 의한 개척시대와 영국과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그리고 남북전쟁으로 이어지는 미국 역사에 있어서 그들의 부를 향한 분쟁은 멈추지 않는 기관차 처럼 서부 대륙을 비롯해 아시아로 넘어가는 지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땀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보다 많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힘없는 멕시코를 침략하여 그들이 일찍부터 생명을 유지하던 넓은 땅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넘어가기도 했다. 금을 찾아 떠나는 시민들...목장을 찾아 떠나는 무리들...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몇세대에 걸쳐 유랑생활도 마다 하지 않았던 그들이 오늘을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더 선"은 이러한 오늘날의 미국 시민이 있기 까지의 생활사를 잘 표현한것 같다. 다른 책에서 읽은것과도 유사한 시대 상황과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 배경이 낯설지 않다. 초기 미국으로 유입된 인종은 영국을 비롯하여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또한 그 시대에는 총과 대포라는 무기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대이기에 토착 인디언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은 문화와 무기 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었던것으로 봐서 영토 확장을 위한 준비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고 봐야 할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의미로 많은 사망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외국에 갔다 음식이나 다른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되는 풍토병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디언, 측 코만치족들과 아파치족들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때 TV를 통해 드라마 형식으로 방영되었던 서부극을 통해 많이 접해 본 경험이있다. 존 웨인, 찰슨 브론슨 등 유명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도 있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인디언과 백인들과의 목숨을 건 영토와 생존을 위한 싸움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오늘날 이러한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하는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느끼게 하기에 그런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의 배경이 유럽인들의 이민 시대를 시작으로 드넚은 초원에서 말과 소들을 키우는 목장시대, 텍사스에서 펼쳐지는 석유를 둘러싼 그들만의 갈등과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들의 후손들의 시각을 통해 바라다 본 미국의 역사이기에 더욱 흥미를 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부분이다. 1권에서는 1940년대 석유시대까지의 맥컬리 가문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시대별로 그들 삶의 방식을 서술함으로써 시대별로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한편으론 각 시대 상활별 인식과 환경, 가치관에 대해 알 우 있었고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 또한 시대별로 잘 표현하고 있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것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미국인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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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 The son 필립 마이어 Philipp Meyer 2013 우연히 집어온 책 필립 마이어 <아메리칸 러스트> 읽고 너무 좋아서 바로 주문한 책 (<아메리칸 러스트>로 필립 마이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 등의 전통을 잇는 미국 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고.) 작가는 5년에 걸쳐 무려 350권의 책을 독파하고 몸소 인디언 방식의 사냥을 체험하며 텍사스의 역사와 문화, 인디언의 풍습 등을 철저하게 탐구한 끝에 대작 「더 선」을 집필했는데, 책 속에는 알 수 없는 인디언 언어와 낯선 지명, 이름들이 나와서 처음에는 책 읽기가 약간 허들처럼 느껴지지만 계속 읽어나다가보면 그 흐름을 타게 되고 깊이 빠져들게 된다. 「더 선」은 1832년부터 2012년까지의 거의 2백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텍사스에 뿌리를 내린 매컬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를 세 인물 (매컬로 가문의 창시자격인 엘리, 엘리의 막내아들로 엘리와는 대척점에 있는 피터, 그리고 피터의 손녀로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텍사스에서 여성으로서 집안을 책임지며 석유 부호로 성장한 진 앤)을 통해 텍사스의 역사, 나아가 미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남의 것을 빼앗아 이룩한 미국. 텍사스 사람은 누가 자기 집을 훔치면 이렇게 말할까. '아,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이 집을 지었지만, 당신 마음에 든다니 당신에게 줄게요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이 좋은 땅도 함께요. 나는 그저 생쥐일 뿐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묻힌 곳을 알려드릴 테니 무덤도 약탈하세요.' 텍사스 사람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해, ?" "그는 자기 집을 훔친 자를 죽일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이제 네 심장을 도려내겠다."1-156
백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미 다른 사람들의 소유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나는 백인이야. 이건 당연히 내 거야.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어. 그런데도 우리가 백인을 죽이면 하나같이 놀란 표정들을 짓는단 말이야. 1-157 그들은 상대가 훔쳐 갔다고, 아무도 자기 소유물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아니던가. 일단 빼앗은 것은 영원히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 그 자신이라고 더 나을 바도 없었다. 그의 집안도 인디언들에게 땅을 빼앗았으니까. 하지만 한 순간도 이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텍사스 인들이 자기 집안의 땅을 훔쳤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게 땅을 도둑맞은 인디언들 역시 다른 인디언들에게 그 땅을 훔쳤을 뿐이었다. 2-398
책 첫 머리에 가계도가 나온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많고 이야기의 흐름도 시간 순이 아닌, 세 인물이 번갈아 나와서 자칫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아버지가 말 도둑을 잡으러 집을 비운 사이 코만치 인디언이 집을 습격하고 어머니와 누나는 강간을 당한 후 살해당하고 형 마틴과 엘리는 인디언의 포로가 된다. 인디언 지역으로 끌려가던 중 형은 살해당하고, 엘리는 코만치에게 받아들여져 코만치 전사로 자란다. 그러다가 백인들이 점점 인디언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고, 버펄로는 귀해지는데다가 역병이 돌아 인디언들이 몰살당하면서 엘리는 인디언들을 구하기 위해 보상금과 자신을 맞바꾼 후 다시 백인 사회로 귀향하지만 인디언 생활을 잊지 못한다.
19세기 중엽에 코만치 부족은 인구의 98퍼센트를 잃었다.409
인디언의 습성이 몸에 배인 엘리는 백인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중 월바거 판사 부인과의 관계가 들통나서 죽게 될 지경에 이른다. 자신의 후견인이던 블랙 판사의 도움으로 사형대신 순찰대에 들어가서 인디언을 쫒는다. 남북전쟁을 겪고, 인디언들이 거의 몰락하여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쫓겨난 텍사스에서 엘리는 목축업에 뛰어들어 큰 부자가 된다.
막내아들 피터는 선악의 경계를 뛰어넘는 엘리나 형제들을 닮지 않았다. 이웃 멕시코인 농장주 페드로 가르시아의 망나니 사위들이 엘리의 소들을 훔쳐가고 뒤쫓던 피터의 아들 글렌이 총에 맞는 사고가 일어나자 엘리와 아들들, 목동들은 가르시아 집을 습격하고, 피터가 무모한 살육을 막아보려하지만 엘리와 피터의 맞아들 찰스가 주축이 된 백인들은 가르시아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어린아이까지 모두 죽이고 기념촬영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총알과 담장만이 정직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법이지. 367 그 와중에 페드로의 막내딸 마리아만 살아남아 멕시코로 도망치고, 멕시코에서 온갖 고초를 겪던 마리아는 굶주린 상태에서 피터를 찾아온다. 마침 피터는 아내 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하던 상태였고 피터와 마리아는 엘리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피터가 자리를 비운 사이 대령과 샐리,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마리아를 쫒아내고 마리아는 멕시코로 떠난다. 피터는 마리아를 찾아 헤매고 결국 그녀를 찾아 멕시코로 건너간 후 자손을 남긴다.
목축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텍사스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목축업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카우보이들의 로망으로 남는 와중에도 피터의 아들 찰스는 목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와중에 대령의 증손녀 진 앤은 석유 사업에 눈을 뜬다. 아버지 찰스가 갑자기 죽고, 어린 나이에 집안을 이끌게 된 진 앤은 석유 시추업자 행크를 만나 결혼하지만 행크는 일찍 죽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못 미친다.
그러던 중 피터가 멕시코에 남긴 자손들이 진 앤을 찾아오지만 진 앤은 이들을 매몰차게 내 쫒는다. 피터의 증손자 율리세스 가르시아는 곧바로 진 앤을 찾아가는 대신 목장의 목동으로 취직한 후 기회를 엿보다가 진 앤을 찾아가 자신이 피터의 증손자임을 밝히지만 진 앤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뒷걸음치던 진 앤은 넘어져 크게 다친다. 율리세스는 사고를 덮기 위해 가스 폭발로 위장해 진 앤과 집을 날려버리고 그렇게 4대에 이르는 캐럴로 집안의 번영은 막을 내린다.
땅은 사람을 미치게 하니까요.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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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00년대 엘리와 1900년도 초 그의 아들 피터, 2000년대의 증손녀 진 앤의 200여년에 걸친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이다.스코들랜드 이주민인 엘리는 신생 텍사스공화국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였다.1849년 봄 열 세살의 엘리는 인디언의 공격으로 엄마와 누나를 잃고 형과 함께 끌려가게 된다.가는 도중 형이 죽고 인디언 요새에 도착한 엘리는 점차 인디언들과 동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된다.엘리의 아들 피터는 침착하게 일기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아버지가 이웃이었던 라틴 계통의 가르시아 일가를 몰살시키는 장면을 목격한 피터는 큰 충격을 받고그렇게 손에 쥔 돈으로 점차 부를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쳐 놓는다.거친 삶을 살아야 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얻은 부를 누리는 어찌보면 냉정하고이성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다.엘리의 증손녀인 진 앤은 전쟁으로 오빠들을 잃고 20세의 나이에 혼자되어 할아버지 대로 부터 이어온거대한 목장을 지키며 석유재벌로 성장하게 된다.어쩌면 진 앤은 한 때나마 인디언의 야성을 간직했던 할아버지의 피를 가장 많이 받은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5년에 걸쳐 350권의 책을 읽고 몸소 인디언 생활을 체험하고 텍사스의 역사와 인디언의 풍습을 철저히연구한 후 이 책을 쓴 저자답게 이미 사라진 인디언의 생활방식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어려서 보았던 인디언들은 잔인하고 짐승같은 부족들로 그려져 있었다.화살과 칼을 들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머리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보면 인디언들은 잔인한 종족으로인식되기에 충분했었다.하지만 우리 민족과 피를 나누었을지도 모를 인디언의 눈으로 보면 백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침략자일 뿐이다. 자연스런 삶을 살기를 원했던 그들은 용맹스런 부족일 뿐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질서를지키고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와 누나를 잔인하게 살해한 인디언에게 끌려간 엘리가 어째서 인디언들과 동화되며 살아야 하는지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와 함께 끌려간 멕시코인들이나 독일인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지만용맹한 엘리는 점차 코만치 인디언이 되어간다.인디언들이 무기를 만들고 사냥을 하고 다른 민족과 전투를 벌이고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디테일하다. '티에테티 타이보'라고 불렸던 엘리. 그 뜻은 '불쌍한 백인꼬마'였지만 엘리는 멋진 전사로거듭난다.결혼전에는 아무 남자와도 잘 수 있고 그 선택은 여자에게 있다는 인디언 여자들의 특이한 풍속이 재미있다.결혼후에는 원칙적으로 일부종사를 해야하지만 남편의 허락을 구하면 다른 남자와 자는 것이 허락되다니.에스키모들에게도 이것과 비슷한 풍속이 있다고 한다.어찌보면 인디언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무조건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진취적이고 자유스럽게 느껴진다.그리고 예쁘고 부지런한 여자를 얻기 위해 남자들은 말과 머리가죽의 필요하다니.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흔드는 장면은 소름끼친다.마치 영화 '자이언트'나 '늑대와 함께 춤을'이 떠오르는 작품이다.백인 소년이 인디언으로 동화되면서 인디언의 눈으로 이주민들을, 신대륙을 바라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데다한 가족의 일대기가 미국의 역사와 겹쳐지면서 거대한 서사시를 보는 것만 같다.1권이 엘리의 이야기가 주류였다면 아마도 2권은 진 앤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펼쳐질 것같다.거대한 텍사스평원이 어른거리고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삶이 새롭게 다가오는 걸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