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진화란 단순히 변화일 뿐이다. 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진화’가 늘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살아가는 데에 숭고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물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살면서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생물에게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며, 이는 인간이나 대장균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유일무이하지만 최고는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종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화란 어떤 의미에서 잔혹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특별 대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p. 10) 우리의 몸이 다소 불완전하게 진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질병에도 쉽게 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특정 기관은 다른 동물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불완전함’을 살펴보고, 왜 우리는 현재 이런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려준다. ♣ ♣ ♣ ♣ ♣ 각 챕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심장병에 걸리도록 진화했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은 아무리 건강한 생활을 해도 일정한 비율로 발병한다. 그래서 심장에 있는 심장동맥을 “진화상의 설계 실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얼마나 잔인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선택(자연도태라고도 한다)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은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을 늘리는 힘이 있다. 결국 자연 선택이 늘리는 형질은 자녀를 보다 많이 남길 수 있는 형질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다. (p. 36)
인간의 유전자는 자녀의 수를 늘릴 수 있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다. 번식만 할 수 있다면 심장병으로 인해 죽더라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2. 조류나 공룡의 허파는 따라잡을 수 없다 포유류와 공룡은 중생대 초기,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다. 그럼에도 공룡이 훨씬 더 번성했다. 포유류는 중생대를 통틀어 그늘에 가려진 생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이 호흡기의 성능의 차이에 있었을 수도 있다. 같은 활동을 해도 포유류보다 공룡이 더 숨이 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은 현재 지구에서 한창 번성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의식 중에 인류가 다른 생물보다 모든 측면에서 우세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p. 53~54)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오만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인간의 부족하고 불완전한 면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다른 생물들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한 시각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3. 콩팥, 소변과 ‘존재의 대사슬’ ![]()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진화된 형태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질소 배출 방식에서 비교해 볼 때는 도마뱀과 닭이 육지 생물들 중 가장 적응력이 좋다. 그러나 수중 생활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잉어가 가장 우수하고 도마뱀과 닭은 가장 열등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조건하에서 “우수하다”는 것은 “다른 조건에서는 열세하다”는 뜻이다. 모든 조건에서 우수한 생물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은 그때그때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하는 것이지, 무엇인가 절대적인 높은 곳을 향해서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p. 68) 어떤 면에서 우수하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우수한 생물은 없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기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이고, 누구의 삶이 더 우월하고 누구의 것은 열등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4. 인간과 장내 세균의 미묘한 관계 오래전 수업시간에 인간의 소화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왜 우리의 소화과정은 흡수할 수 있는 최종형태(포도당이나 아미노산의 형태)로 바로 분해하지 않는 걸까’ 라는 의문이었다. 왜 여러 소화 효소들이 중간중간 관여하며, 여기 저기 기관에서 조금씩 소화를 시키는 것일까? 조금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과정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왜 ‘막소화’(소장에서의 소화과정은 ‘관강내 소화’와 ‘막소화’로 나뉜다. 이 중 막소화는 소장흡수세포의 미융모막에 있는 효소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화의 최종단계로, 소화와 동시에 흡수가 이루어진다. ?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라는 또 하나의 소화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쉽게 설명해주었다. 저자는 ‘장내세균과의 경쟁’과 ‘삼투압’ 두가지로 이를 설명한다. 먼저 영양분을 장내세균에게 다 뺏겨버리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장내세균과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막소화는 유리하다. 그리고 장 내에서 영양소가 단번에 분해될 경우 삼투압이 높아지므로 적당한 농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막소화는 유리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5. 지금도 위는 진화하고 있다 저자는 성인이 우유를 소화시키기 위해 락테이스를 계속 만들어내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원래 모유를 먹는 나이가 지나면 락테이스를 더이상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이 목축을 시작하게 되면서(약 1만년 전) 우유를 마시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기에 우리는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 안정화 선택이 작용하고 있을 때에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방향성 선택이 작용할 때에는 진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아마 수천 년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목축이 시작되면서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성인이 많아진 지역에서는 이미 방향성 선택이 끝나고, 또다시 안정화 선택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우유를 마시지 못하면 불리하다. 그러므로 만일 앞으로도 계속 목축이 이어진다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성인이 많은 채로 계속 안정화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다. (p. 92) 진화는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진화를 달리는 자동차에 빗대어 생각해볼 때, 자동차의 엑셀은 진화의 ‘방향성 선택’에, 브레이크는 ‘안정화 선택’에 각각 대응해 볼 수 있다. 유리한 돌연변이와 불리한 돌연변이가 생겨날 때마다 자연선택은 적절하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진화를 시키기도 하고 진화를 멈추기도 한다. 6. 인간의 눈은 잘못 설계되었는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듯 보이는 우리의 ‘눈’은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너무나 정교한 이 신체기관에 대해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생물들에 비해서는 우수한 우리의 눈도 조류의 눈과 비교하면 성능이 많이 뒤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미완성의 눈을 가졌다는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실제로 진화에는 완성도 미완성도 없다. 아무리 완전하게 보였던 것도 환경이 바뀌면 쓸모가 없어지기도 한다. 모든 생물은 불완전하며, 그렇기 때문에 진화가 일어난다.”(p.110)라고 말한다. 7. 요통은 인류의 숙명 우리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원래 수평이었던 척추를 위로 세우게 되었다. 거기다 허리뼈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허리뼈에 몸의 무게가 실리게 되어 요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고 한다. 8.인간은 침팬지보다 “원시적인가?” ![]() 인간의 손과 침팬지의 손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기능이 조금 다르다. 엄지가 긴 인간의 손은 물건을 쥘 때 유리하다. 침팬지의 (엄지를 제외한) 긴 손가락은 나뭇가지에 매달리는데 유리하다. 흔히 우리는 침팬지보다 더 진화된 상태라고 생각을 하기에, 손의 형태 역시 인간의 손이 침팬지보다 더 진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의 조상들의 화석을 조사해본 결과 인간의 손이 침팬지의 것보다 더 원시적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원시적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이것이 미개하다거나 열등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자손이 조상과 다를 바 없이 같은 형질(특질)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 자손이 가지고 있는 형질을 ‘원시적인’ 형질이라고 한다.”(p. 139) 단순히 조상의 형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원시적’이라고 표현한 것뿐이다. 9. 자연선택과 직립 이족보행 사족보행을 하던 인류는 어떻게 직립 이족보행으로 자연선택된 것일까? 중간단계로 엉거주춤하게 걷는 단계를 거쳤다기에는 그런 유형은 오히려 사족보행보다 생존에 불리하므로 자연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나무 위에서 이족보행이 진화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몸이 비대해진 인류의 조상이 나뭇가지 끝의 열매를 먹으려 하고 있다. 사족보행으로 하나의 가지 위를 걸어서 열매에 다가간다면 가지가 부러져서 땅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보행(中腰步行)으로 양손과 양발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에 매달린다면 열매에 다가가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아 열매를 무사히 따서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도 먹을 수 있고 다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무에서 떨어질 확률이 적은 편이 적응도가 높아진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에 의해서 사족보행으로부터 중요보행으로의 진화가 일어난다. (p. 150~151) 10. 인류가 난산을 하게 된 이유는 인류가 난산을 하게 된 원인은 직립 이족보행과 태아의 머리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어떤 형질이 하나에만 도움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틀림없이 많은 방면에 도움이 되고, 그와 동시에 많은 일에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진화를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면 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p. 164) 지금의 우리가 가진 골반과 척추의 형태는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현재의 상태에서는 최선의 결과인 것이다. 11. 생존 경쟁인가, 멸종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생산적인 환경이 변화하든, 주변의 생물이 변화하든, 진화의 당사자인 생물의 행동이 변화하든 이미 있었던 변이 중에서 유리한 것이 선택되어 확산된다는 생각이다.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다윈이 생각한 자연선택이다. 따라서 “행동에 의해서 진화의 방향이 변화한다”는 것은 이미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의 하나의 형태이며, 자연선택설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에 적합한 몸의 구조는 유전과 “달리는” 행동, 이 두가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달리는 행동 때문에 인류의 진화의 방향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육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게 되고 뇌가 커지는 길이 열린 것이다. (p. 175~176) 12. 일부일처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흔히 일부일처에 비해 일부다처 또는 다부다처가 인간의 번식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립 이종보행을 시작한 원시 인류는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먹을 것을 나를 수 있게 된다. 수컷이 먹을 것을 구해올 경우 다부다처의 사회에서는 누가 자신의 새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일처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새끼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새끼를 먹여 생존율이 높아지면 이들의 개체수는 증가하고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 (일부다처의 사회에서는 새끼가 많아서 양육이 암컷에게만 맡겨지므로 제외하고 생각함) 또한 인간은 출산 간격이 짧아 어린 아기를 여러 명 키워낼 수 있고 그러한 경우에도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이 공동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유리했다고 한다. 13. 우리는 왜 죽는가 만일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가능성이 있는 생물이 있다면 그 생물에게는 자연선택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선택이 일어나지 않으면 주변 환경에 맞추어서 진화할 수 없다. 더워도 추워도, 지면이 올라와 산이 되거나 지면이 침몰해서 바다가 되어도 모두 같은 형태인 채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런 생물은 환경에 적응할 수 없어서 멸종하고 말 것이다. (p. 201) 결국 우리는 ‘진화’ 하기위해 죽어야만 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진화해야 하고, 진화를 위해서는 죽음이 필수적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진화란 개인에게는 잔혹한 일일지도... ♣ ♣ ♣ ♣ ♣ 진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몸의 부분들이 왜 이런 기능과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진화를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인간이 모든 생물들 중 가장 진화된 단계인양 생각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화는 한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항상 모든 부분이 진화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서 다소 부족해 보였던 점들도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역시 개인에게는 슬프고 괴로운 일일지 모르나, 인류 전체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계단의 꼭대기에 서있다고 생각했던 인간이 사실은 다른 생물들과 나란히 서 있을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마치 인간의 최종 진화 단계인양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진화 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의 인간은 어떤 모습과 기능을 가지게 될 지 궁금해졌다. 인간의 진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 지금 우리는 왜 이런 모습과 신체 기능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잔혹한 진화론>을 추천한다. 이 책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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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진화론 책을 안읽은 것 같아 한권 샀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걸 처음으로 지적한 책이다. 인류는 진횐의 한 개체일뿐이다. 필체가 유려하십니다. 생존경쟁은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조건이디ㅡ.♡☆○ 늦가을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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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혹은 결말 부분을 읽어보면, 죽기 때문에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충격적이고 새로운 발견인것 같지만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 사실이 충격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진다면 그동안 진화를 진보 즉 일직선상의 점진적 발달로 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초점이 진보와 향상에 맞춰지면 목표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그 이면에 있는, 즉 자연도태로 필터링되는 수많은 개체의 죽음의 측면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저자가 제목을 잔혹한 진화론이라고 썼지만 사실 저자가 정말로 진화를 그리고 자연선택을 잔인하다고 생각했을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윈이 생존경쟁을 그저 비유일 뿐이라고 말했듯이 저자도 잔혹하다는 수식어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썼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선택을 받은 변이들은 그저 현재의 환경에 적응했을 뿐 그것이 과거에도 있었던 방식인지 난생 처음 등장한 혁신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지요. 그래서 진화는 우리가 볼 때 가끔 후퇴하는것 같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일테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원시적인가 파생적인가 하는 것조차 저자의 말대로 상대적인 것일 뿐, 진화가 잔혹하다는 말도 상대적인 것이고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진화는 새로 태어나는 , 그러나 기존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창조적인 부활이라고 제목을 지어도 아무런 모순이 없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