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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by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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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공동체와 권력의 속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수작이다. 이 우화소설은 모든 전체주의를 겨냥한 비판서로써, 전체주의의 위험과 공포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정치와 예술을 결합하여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서문에서 밝혔고, 자신의 조국인 영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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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공동체와 권력의 속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수작이다. 이 우화소설은 모든 전체주의를 겨냥한 비판서로써, 전체주의의 위험과 공포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정치와 예술을 결합하여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서문에서 밝혔고, 자신의 조국인 영국을 "악한 구성원이 지배하는 가족"으로 비유했다. 어떤 권력에나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폭력과 프로파간다라는 오웰의 주장은 보편적 설득력을 가진다.

 

 

 

 인간들에게 착취 당하던 동물들이 인간들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세운다. 농장의 재탈환을 시도하는 인간 존스를 격퇴하고 나서 동물들의 사기는 충천한다. 인간이라는 악의 존재가 붕괴되자, 새로운 권력자 돼지들이 부상한다. 혼신의 힘으로 인간을 추방함으로써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냈다고 자부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돼지정권의 주적인 인간을 퇴치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지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계급편향적 구호를 내세워 돼지들은 동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모두의 합의에 따라 동물주의 이념과 일곱 계명이 공포되고, 반란을 주도한 스노볼과 나폴레옹 두 돼지가 지도자로 공인되니, 모든 동물이 평등함을 표방하는 동물주의에 예외를 인정한다. 권력의 속성상 두 돼지 사이의 반목과 권력투쟁은 피해갈 수 없는 예견된 통과의례였다.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무지몽매한 민중은 누가 승리하든 결과를 수용할 뿐이다. 언제나 권력의 주변에는 양과 같은 아첨꾼, 선동대가 따랐다. 돼지들은 동물들의 무지와 선의를 교묘하게 악용했는데, 스퀼러는 임기웅변의 거짓 선전으로 돼지들의 탐욕적인 행태에 공동선이라는 명분과 포장을 만들어 체제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돼지들이 자신들의 소비를 위해 사과와 우유를 훔치면서 농장 전체의 이익증진보다는 개인의 부의 축적에 관심을 둔다.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향해 개를 풀 때 이미 공익이라는 사회주의 이상은 공허한 것임을 증명한다. 나폴레옹은 오랜 시일에 걸쳐 치밀한 책략을 세워 정권을 장악한다. 갓난 개를 데리고 갈 때부터 친위대로 만들 계략이었던 것을 보면, 스노볼 추방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나폴레옹의 분노와 권력의지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돼지들은 모든 언어와 논리적 통제권을 독점한다. 스퀼러는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추방한 행위를 헌신적인 구국의 결단이라는 교묘한 변설을 펴고 풍차에 관한 나폴레옹의 돌연한 태도변경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이 사용하는 물리적 폭력은 언어적 폭력에 정당성이 확보된다. 나폴레옹의 계획은 동물농장의 현실을 자신의 희망에 다라 맞추는 것이다. 모든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도자만이 별개 인격체로 존재하고 대중은 그의 복제품일 뿐이다.

 

 극의 중반부에서는, 나폴레옹의 부패와 권력욕을 집중 조명한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장악하고 스노볼을 추방한다. 집단의사를 확인하는 회의체도 폐지하고, 자신과 돼지정권의 목적을 위해 과거와 현실를 왜곡하고 재구성한다. 이는 레닌이 죽자,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추방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1930년대 피의 대숙청작업을 단행했듯 나폴레옹의 발밑에도 피의 축제가 시작된다. 돼지들의 언행을 빌려 독재정권이 국민의 무비판적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각종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국민의 삶이 도탄에 빠지고 지도층에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 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만민평등을 이상으로 내걸었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계급 갈등이 발생하고, 결과는 일반 대중의 기아와 고통으로 이어진다. 동물농장의 풍차 건설처럼, 스탈린의 야심찬 5개년 농업계획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양산하는 실패로 마감됐고,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의 장막을 쳤다. 동물들은 공포 때문에 믿음을 택하고, 침묵만이 폭력과 테러로부터 자신을 지킬 유일한 방편이라 생각한다.

 

 나폴레옹과 스퀼러는 교묘한 수법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사실을 오도했기에, 동물들은 지도자들의 행태를 직접 목격하고도 그들의 위선적 이중성을 간파하지 못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평등의 기본원칙도 정치, 군사 엘리트의 특권 앞에서는 무너졌다. 미니머스의 시는 동물들이 폭압적인 정부에 대해서 비판의식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나폴레옹이 이웃 농장들과 주고받는 거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이 편 외교정책의 패러디다. 프레더릭이 위조화폐를 사용한 것이나 풍차를 파괴한 사실을 통해, 러시아 국민이 독일에 품었던 극도의 배신감을 전달한다. 민중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는 반면 지배계급의 일상은 날로 부유해지고 사치스러워진다. 그리고 복서의 죽음은 동물농장 파멸의 중대한 전기가 된다. 복서는 지적 능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덕을 구비한 충직한 공동체의 구성원이지만, 도리어 그 충성심으로 인해 비참한 말로를 걷는다. 복서의 중대한 과오는, 동물농장의 이상과 나폴레옹의 이상을 동일시했고, 자기 자신은 어떻게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복서는 돼지들이 농장의 번영을 책임지는 사명감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나폴레옹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이러한 그가 자신이 그토록 숭배했던 제도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전체를 위해 일했으나 소수의 이익 앞에 희생물이 된 것이다. 복서의 삶과 죽음을 통해 소련 공산당 정권이 노동자 계급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암시한다. 

 

 동물들의 본래 이상은 숭고했다. 도덕적 자부심과 사회적 평등이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제어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혁명의 원대한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적 권력은 혁명을 구상하고 주도한 인텔리겐치아 계급이 장악했으며, 인텔리겐치아와 동조자들은 즉시 공산당을 전체주의 체제로 전환시켰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바로 이 계급이다. 돼지들은 직접 일은 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감독했다. "동물농장 주인 여러분, 여러분이 싸워야 할 하등동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하층계급이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논리적 귀결에 따라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나폴레옹과 다른 돼지들은 인간 농장주들과 동일한 착취자가 된 것이다. 스탈린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타도했던 귀족계급이나 비판했던 서방 자본가들과 구분이 불가능한 존재로 전락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민중의 자각이 없는 사회에 등장한 권력은 반드시 독재에 이른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단어 중에 '갑과 을의 사회'가 있다. 을을 착취하지 않으면 갑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는, 갑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나는 을일 뿐이야'라는 자괴감 때문에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저 묵묵히 아픔을 견디는 사람들. 우리는 저마다 '을 없는 갑'이 되어 누구도 착취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갑과 을의 끝없는 대치상황 속에서 『동물농장』은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예나 지금이나 보편적 알레고리의 힘을 지닌,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갈등이 이 책의 주된 힘의 원천일 것이다. 



d******7 2013.09.10. 신고 공감 12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전체주의와 권력에 대한 비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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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도용시 법적책임 *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고전으로 꼽히는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만났다. 영국 최초의 '전후 소설'로 불리며, 반유토피아 소설,모든 전체주의를 겨냥한 비판서인 <동물농장>은 우화이다. 우화라고 한다면 흔히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만,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전체주의의 위험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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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도용시 법적책임 *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고전으로 꼽히는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만났다. 영국 최초의 '전후 소설'로 불리며, 반유토피아 소설,모든 전체주의를 겨냥한 비판서인 <동물농장>은 우화이다. 우화라고 한다면 흔히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만,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전체주의의 위험과 공포를 경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어, 쉬운 책도 가벼운 책도 결코 아니다.

 

이야기는 존스 씨의 매너농장을 배경으로 이뤄진다. 늙은 수퇘지인 메이저는 간밤에 꾼 이상한 꿈을 알리고 싶다며 동물들을 모은다. 자신이 죽기 전 습득한 지혜를 전해주겠다며,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국의 동물들에게는 자유가 없고, 비참한 삶을 살며, 힘들게 노동하여 만든 모든 생산물을 인간에게 모두 약탈 당하고 있으며,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이라고 말한다.동물들의 삶에서 모든 악이 인간의 횡포에서 비롯된 덧이 분명하니 반란을 일으키며 '인간'을 제거하자고 말한다. 그날부터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이며, 두 발로 걷는 모든 것들을 적으로 삼기로 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구호 아래 인간을 정복한 후에도 인간을 본받지 말라는 것과 어떤 동물도 학대,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반란 초기의 이 말은 시간이 흘러 살수록 변화하는 권력자의 모습과 대비되는 것으로 중요하다.

 

메이저가 반란을 도모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주게 되자 반란을 준비하던 동물들에게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동물들을 조직하고, 스퀼러는 용의주도 한 말솜씨로 돼지들이 동물들을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존스를 쫓아내고 모두가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동물들, 그사이 돼지들은 혼자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익혀 오며, 권력에 대해 도모하기 시작한다. 돼지들은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다고 하였으나 자신들의 이익을 더 챙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돌파구를 고안하는 돼지들은 같은 혁명을 꿈꾸던 동물들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한다. 그러나 존스 씨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는 동물들, 인간이 사라지자 일을 해야 하는 몫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문제는 스노볼과 나폴레옹 두 권력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는데,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동물들을 이끌려하고, 여기에 권력에 빌 붙는 스퀼러까지 여론몰이에 일조한다. 어떻게 본다면 스퀼러가 체제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돼지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글을 배우지만 금방 까먹고 마는 지적 무능력과 무관심이 낳은 정보 불균형의 이유도 있었다. 돼지들이 내세우는 구호에 순응하고 쇠뇌되어 자신에게 닥친 불행들을 잊고 마는 것이다.

 

자신들의 반란을 이웃 농장에까지 퍼뜨리려고 하고 또 한 번 인간들에게 승리를 거두지만, 이는 돼지들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 주었다. 동물들이 자신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이념과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매번 의견을 달리하고,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제거한다. 이제는 나폴레옹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풍차를 만드는 데 동물들을 동원하고, 스노볼에게 죄를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단다. 나폴레옹의 폭력과 스퀼러의 언어적 폭력에 정당성이 확보되고, 나폴레옹은 처음 만들었던 동물들간의 계명을 교묘히 바꿔가며 인간들과의 거래와 교류를 하기도 한다. 점점 인간의 삶을 따라가는 돼지들, 그러나 동물들이 돼지들이 어긴 계명들을 생각할 때마다 스퀼러는 뛰어난 언변으로 동물들을 속이고 선동한다.

 

돼지들이 동물들을 속이고 현혹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량이 부족하여도 동물들의 배급이 눌렀다고 여론을 조작하고, 스퀼로는 존스 때보다 동물들의 삶이 좋아졌다며 통계와 증거를 설명하며 동물들을 속인다. 점점 삶이 힘들어지는 동물들, 그리고 열심히 일하던 복서의 죽음 뒤에 숨겨진 돼지들의 거짓된 행동, 동물들의 삶이 피폐해질수록 지배계급인 돼지의 삶은 부유해지고 사치스러워진다.

 

처음 정한 계명들은 돼지들을 위해 교묘히 바꾸어 가고, 무지한 동물들은 작은 의심을 가지다가도 순응하고, 인간을 위해서가 안닌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려 한다. 전체를 위해 일을 했으나 소수의 행복에 희생되는 동물들, 개인의 숭고한 희생을 국가에 헌납한다. 동물들이 꿈꾸던 기아와 채찍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주는,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사회는 없었다. 그리고 인간을 닮지 말자던 돼지들의 마지막 생각하지 못 했던 모습은 경악하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이 반유토피아 소설인 결정적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체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쓴 소설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런 모습이 전체주의에만 한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이라고도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독재자가 없는, 그런 형태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을 수없이 속이고, 그에 속아 넘어가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다른 나라라고 다르기나 할까.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내놓는 국민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공약들, 복지를 보장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사람들이 당선만 되면 나폴레옹처럼 말을 바꾸고, 국민의 삶이 힘들어져도 조작된 통계들을 들먹이며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고 그럴듯한 말들로 국민을 속이는 스퀼러 같은 사람들, 그래도 좀 더 국민의 편이었던 것 같은 정치인들도 점점 권력의 맛을 알아 갈수록 자신들이 혐오하던 그런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고 상대편을 추락시키기 위해 거짓된 소문들을 퍼뜨리고, 음모를 꾸미고,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해서, 국민을 대신해라는 '국민'을 들먹이며 사실은 자신의 권력을 도모하기 바쁜 인간들이 사는 사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아닌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보았다. <동물농장>이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이유도 어느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동물농장>이 유명한 작품이니 만큼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는데,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좋았던 점은 매 장마다 해설이 있다는 점이었다. 해설을 보지 않아도 그 상황만으로도 저자가 말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당시의 정치 상황을 알고 보면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오웰의 서문과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나니 <동물농장>을 쓴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또한 문화평론가와 번역자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그 끝에서 문화평론가가 비운의 주인공이라며 스노볼에게서 끝나지 않은 희망을 환기시키고 절망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영국의 액튼 경이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이 먼저 스노볼을 축출하긴 했지만, 스노볼이 나폴레옹을 대신해 권력자가 되었으면 정말 달라졌을까? 모든 권력은 부패한단. 스노볼의 권력도 부패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권력을 가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많이 읽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s****g 2013.09.17.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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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식의 척도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들어는 봤으나 내용은 모르는. 남들이 다 웃을 때 혼자만 어색하게 분위기를 보고 한 박자 늦게 웃는 사람처럼 고전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하는 책을 이제야 마주하고 어색한 눈 맞춤을 한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다. 1903년 인도 뱅골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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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식의 척도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들어는 봤으나 내용은 모르는. 남들이 다 웃을 때 혼자만 어색하게 분위기를 보고 한 박자 늦게 웃는 사람처럼 고전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하는 책을 이제야 마주하고 어색한 눈 맞춤을 한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다. 1903년 인도 뱅골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으로 돌아와 이튼스쿨에서 교육받았다. 1922년 인도제국 경찰 신분으로 미얀마로 갔다가 5년 뒤 유럽으로 돌아와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작가의 삶을 살면서도 스페인 내전에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입대하여 이때의 느낌을 카탈로니아 찬가로 썼다. 대표작으로는 <동물 농장>과 <1984>가 있다.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47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하였다. 매너 농장에서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메이저의 연설 속으로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가 본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이오. 착한 인간이란 오직 죽은 인간뿐이란 말이요.

난 목숨을 뺏고 싶지 않아요. 비록 인간의 목숨일지라도 말입니다.

예기치 않게 매너 농장의 혁명은 일어났고, 승리로 돌아갔다. 이후 상황을 보고 있던 존스 씨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농장에 쳐들어와서 2차 대립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복서가 인간을 들이 받았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복서는 자신의 선의를 이야기하고 스노볼은 전쟁이라고 감상은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전쟁은 전쟁이다. 지금 3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전쟁이다. 누군가는 착한 사람이며,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지만 죽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니까. 상대의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가차 없이 공격하여 전의를 상실 시키는 것. 비겁하고 치사하지만 그래야 목숨을 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으니까.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 중 복서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전쟁터까지 나왔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는 병사들이.

다행히 이야기에서는 그 사람은 기절을 했다가 달아났다. 이야기에서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싫은데,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어린이들이, 병원이, 산모가 죽어가는 것에는 왜 무덤덤한가?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한 나를 보며 살짝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제각기 나름대로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있어 때때로 격렬한 논쟁도 벌어졌다. 회의에서는 스노볼이 탁월한 연설로 자주 다수의 지지를 얻었지만 나폴레옹은 드러나지 않고 자기편을 만드는 실력이 있었다.

정치적이다는 말을 싫어한다. 정치를 하는 상황이 오면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거나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인간은 원래 정치적 동물이다. 3명만 모여도 자기편을 만들려고 하고, 그것으로 힘을 행사하려고 한다. 정치인의 여러 유형 중 두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대중연설에 강해서 다수의 지지를 끌어내는 사람과 조용히 자기편을 만드는 사람. 두 사람의 대결에서는 누가 이길 것인가?

결국엔 충성도의 차이에서 판가름 나지 않을까? 대중연설을 통한 다수의 지지는 충성도가 약하다. 군중 심리처럼 그 사람을 지지할 수는 있으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도 그 지지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반면 드러나지 않고 자기편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좀 더 은밀하고 맞춤형으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충성도가 높아진다. 리더에게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갖게 되고, 때로 충성 경쟁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이 두 사람(?), 이 두 마리의 돼지 싸움에는 누가 이길까?

 

 

그 규칙은 인간의 발명품인 이불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본체에서 이불을 걷어치워 버렸어요. 그 대신 담요를 덮고 잔답니다.

정치적 대결에서 밀린 스노볼이 사라지자 동물 농장은 나폴레옹과 그 일당들이 점거를 하게된다. 실질적인 혁명의 주체인 다른 동물들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식사량을 배급받으면서 노동에 시달린다. 점차 다른 동물들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기 시작하는 돼지들과 나폴레옹은 선동꾼을 동원해서 혁명의 7개 원칙들을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바꾸기 시작한다. 처음 스노볼에 의한 규칙들은 인간들은 적이며, 인간들이 거주했던 본체에는 동물들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본체에 들어가기도 하고 잠도 자지만 이불만은 덮지 않겠다는 말로 바뀐다. 어이가 없고,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다른 동물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나폴레옹이 거느리는 개들에 의해 폭력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이 개들이 어린 새끼일 때부터 따로 키우며 자신의 사병처럼 길들이고 사용했다. 돼지들의 농장 운영에 다른 동물들이 이용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동물들 이야기 같지 않음으로 인해 불편함이 밀려온다.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힘을 위해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분위기와 상황을 만들어 가고, 교묘하게 원칙들을 바꾸는 모습이 정말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불편하지만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긴 코를 땅에 박고 몇 차례 깊이 냄새를 들이켠 다음, 커다란 목소리로 “스노볼! 그놈이 여기에도 왔었어! 틀림없이 그놈 체취야!” 하고 소리쳤다. 나폴레옹이 “스노볼!” 하고 소리칠 때마다 개들은 어금니를 드러내 보이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으르렁거렸다.

나폴레옹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쫓겨난 스노볼을 이용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실처럼 만들며 농장의 모든 일들이 쫓겨난 스노볼 때문이라고 여론을 만들어 간다. 생사도 분명하지 않은 스노볼은 마치 간첩처럼 동물 농장을 헤집고 다닌다. 누구도 본적도 없는 소문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권력자의 욕구에 맞추어서 누군가는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썼던 부분이 조금 더 사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때 대부분의 간첩들은 힘없고 가난하고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내부의 불만을 권력자에게 돌리지 않기 위해 간첩까지도 만들어 내는 역사를 실제 살았던 우리에게 동물 농장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나폴레옹은 농장 본채에서도 다른 동물들과 떨어져 독실에 거처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제 나폴레옹은 그냥 ‘나폴레옹’으로 불리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공식적으로 ‘위대한 우리들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로 불렸으며 돼지들은 그에게 ‘모든 동물의 어버이’, ‘인간의 공포’, ‘양 떼의 보호자’, ‘아기 오리의 친구’ 등등 여러 가지 호칭을 만들어 부르기를 즐겼다.

나폴레옹은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 스스로가 말하지 않고, 선전군을 동원하여 호칭을 만들고, 스스로 권력자의 공간으로 고립된다. 소설이 먼저 인지, 현실이 먼저 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고 탁월한 묘사가 돼지가 돼지로 보이지 않는 기술을 발휘한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위대한 수령 동무, 인민의 아버지 등의 호칭이 처음부터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통해 힘이 강해지자 신격화에 이르는 모습을 시간적 흐름과 함께 호칭의 변화, 외형의 변화로 보여준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권력의 독재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나폴레옹은 혁명의 뜨거움과 본질을 잃은지 오래다. 이런 상황들을 읽으면서 왜 다른 동물들은 그 상황을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상황 안에 갇혀 있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원칙들은 교묘하게 바뀌거나 지워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동물이나 반대하는 동물들을 공개 처형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혁명은 쉽지 않다. 북한을 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선전과 신격화인데, 그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상황 안에 갇히게 되면 누구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을 이해할 수 없거나 우리 보다 못하다는 시선이 아니라 동족으로 동등하게 품고 존중해야 한다는 김누리 교수의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똑똑한 돼지들이 권력과 특권을 누린다. 언론을 통제하고 선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호한 정치노선을 걷기도 한다. 인간은 적이라던 혁명의 제1원칙도 자신들의 술과 음식을 사기 위해 사업을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돼지들은 급기야 두발로 걷기도 하고, 옷을 입고, 인간들과 카드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신다. 두발과 네발의 차이는 존재에 대한 차이였고, 존엄이었다. 권력은 이처럼 근본적인 존재마저도 흔들어 놓는 것일까?

이것이 정녕 권력을 가진 일부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나?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다른 동물들 보다 내가 좀 더 하면 돼지를 외치던 복서 같은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는 않았는가?

너무 착해서 세상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라고 속으로 물으며 낮추어 보지는 않았는가?

내 속에 많은 의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길을 잃은 모습이다.

명확한 정답보다는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의도 속에 갇힌 느낌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동물 농장을 보려면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 하는데, 공산당 선언이 너무 어려워 동물 농장을 읽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며 미루어 놓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이다. 물론 공산당 선언을 읽지도 않은 내가 보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오늘은 주위에 나폴레옹을, 내 안에 나폴레옹을 인지한 것에 감사한다.

 

민중의 자각이 없는 사회에 등장한 권력은 반드시 독재에 이른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마련이다.(액턴 경)

 

 

YES마니아 : 로얄 h*****o 2022.06.11.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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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꿈꿨던 세상 :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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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주의자로 볼 수 있는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실체를 통렬하게 꼬집은 소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TV로 방영되기도 했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빌려 옮겨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 긴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저자인 "오웰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여 러시아어로 팸플릿 형식의 번역본을 대량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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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츠키 주의자로 볼 수 있는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실체를 통렬하게 꼬집은 소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TV로 방영되기도 했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빌려 옮겨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 긴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저자인 "오웰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여 러시아어로 팸플릿 형식의 번역본을 대량 제작하여 철의 장막 속에 갇힌 병사들에게 배포하도록 주선했다"고 하니 분량도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번역은 비교적 맛깔나게 한 것 같다. 모든 장이 끝난 후 역자가 첨언하는 해설도 내용을 심화해서 읽는데 꽤 도움이 된 듯 하다. - 해설의 내용중 인물에 관한 부분은 10장의 해설 뒤에 '등장인물(사건)과 러시아 역사 대비표'로 깔끔하게 정리해두기도 했다.

 부록인, 오웰의 영문판 서문과 우크라이나판 서문, 에세이 2편도 작품을 심화해서 읽는데 도움을 줬다.

 개인적으로 《조영래 평전》과 이력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역자이기에 '번역자 인터뷰'는 내심 한편으로는 무척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의 이해를 위하여 풍성한 부록까지 곁들여진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가진 사회주의적 의식의 기반을 추측해보았다. 그는 '모든 인간이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인간적인 권리와 생활을 향유하는 것'과 같은 꿈을 꾸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에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는 어울리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다음으로 사회주의가, 그 다음으로 공산주의로 진행됨은 필연이라 보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나 독재의 한 형태임은 분명하며, 영국의 액튼 경의 유명한 경구대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과두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험한 적 있었다. 문제는 그런 '이상화된 인간'으로만 사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불순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이 언제 어느때나 그러한 이상적 실험을 깨뜨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 따라 권력을 보유하여 행사하는 조직은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실제 그 임무와 기능을 수행할 때 오염되거나 변질되기 쉬워진다. 대개 권력이 집중된 조직이 -견제와 같은- 의식적인 개입없이는 시간이 지날 수록 부패하는 현상은 인류 역사에 굳이 비춰보지 않아도 -인간의 본성에 관해 성악설이 아닌, '종합설'의 관점에 서더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이 보여준 것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의 그림을 보고 우리가 꿈꾼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와 반대의 것이었다. 아니, 자본주의 경제체제만도 못한 것이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수십만개라면 하나의 경제체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품이 있을진대, 선구자인 마르크스가 초안만 잡아놓은 계획을 가지고 그것의 실험에 들어간 결과는 참혹했다. 부족한 장치와 미숙한 작동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 피의 숙청과 대규모 기근의 희생자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수정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들은 우리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혹자는 절대왕정체제나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체제를 만들어 바꿀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역시 '수단'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산주의를 표방하나 실제로는 절대독재정체제 내지 절대과두정체제였던,- 민중을 수탈하고 살해하는 최악의 정치체제를 지닌 소련은 저자 조지 오웰의 이상에 걸맞지 않은 정도를 넘어, 격렬한 비판의식을 가동케 하였던 듯 하다.

 그러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나치즘에 물들어 군국주의 국가로 변한 국가 독일의 침략에 맞서 같은 연합군으로 손을 맞잡은 소련에게 지식인이든 그 누구든 비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중잣대로 -인간의 악한 본성과 부패권력집단에 의해 공산주의의 현실적 모습이 최악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 소련을 옹호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 컸던 듯 하다. 저자는 이에 더 분노했으리라.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서 이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 그렇다고 고전 자본주의가 좋다는 이들도 많지 않으리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체제 중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아닐까. 여기서 좀 더 변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세계 사회가 달라졌으니 이 책은 더 이상 읽어볼 가치가 없고 '한 땐 그랬었지'하는 고전으로 남겨둬야 하는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종막을 내린 지금에도 유효한 것은 -남한에 있어서- 비단 북한정권때문만은 아니리라 본다.

 책을 읽어보면, 결국 민중은 거대 집단적 체제가 수립되어 운용되는 한 피수탈자인 것은 변함없다는 것, 따라서 체제가 변하는 것은 권력층만 변하는 것이지 달라지는 게 없다는 슬픈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있다. 혹자들은 말한다. 왕정에서 일제로, 일제에서 남한이나 북한으로 된 것은 지배층과 수탈 체제가 교묘하게 변한 것이지 민중의 입장에서는 그 구조상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어렸을 적 나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동물농장》을 이 기회에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읽혀져 더 흥미로웠다.  

 어릴 적에는 해피 엔딩이 아니면 불쾌감이 짙었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이젠 문학작품이나 비문학적 표현물에서 비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거나, 불쾌감의 효용을 인지할 수 있기에, 이 작품의 결말이 딱 적합했다고 본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동물농장 속에서, 순수하게 꿈꾸고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복서와 클로버, 스노블을 생각하면 말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YES마니아 : 로얄 s******s 2013.09.18.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실패한 혁명 그러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다.
"실패한 혁명 그러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다." 내용보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던 게 초등학생 때였던 것같다. 아마도 동물 그림들과 우화형식이 내 눈길을 끌었지 싶다. 시튼의 '동물기'나 파브르의 '곤충기'를 좋아했던 내게 이 책은 그와 유사한 종류의 책이지 싶었으며 한참 유행하던 반공만화영화 '똘이장군'을 닮아 있기도 했다. 그래선지 내겐 반공교육용으로 펴낸 책으로 읽혔지 싶다.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의도한 바
"실패한 혁명 그러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다." 내용보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던 게 초등학생 때였던 것같다. 아마도 동물 그림들과 우화형식이 내 눈길을 끌었지 싶다. 시튼의 '동물기'나 파브르의 '곤충기'를 좋아했던 내게 이 책은 그와 유사한 종류의 책이지 싶었으며 한참 유행하던 반공만화영화 '똘이장군'을 닮아 있기도 했다. 그래선지 내겐 반공교육용으로 펴낸 책으로 읽혔지 싶다.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인간에 의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굶주림과 불합리에 맞서 인간을 내쫓고 자신들만의 동물농장을 세운 동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농장을 경영하게 된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통해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한 풍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이 지닌 가치와 인간의 어리석음이 소설 속 동물들과 전혀 다를바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매너농장의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동물들을 모아놓고 간밤에 꾼 자신의 꿈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깨달은 이제까지의 동물들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야말로 동물의 일생은 "비참한 노예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먹이를 얻어먹는 대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죽도록 일하라고 강요받고",  " 쓸모없게 되는 순간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는 동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한다. 인간만이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생물이며 동물들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면서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동물들은 공감하며 인간을 몰아내고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사는 농장을 꿈꾸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일어난 반란은 동물들을 단혹스럽게 했지만 똑똑한 두 수퇘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지도력으로 점차 농장은 안정을 되찾게 되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각기 맡은바 일을 열심히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지고 마침내 스노볼은 농장에서 추출된다. 나폴레옹의 탐욕과 권력유지를 위한 행동들은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권렭에 기생하는 아첨꾼과 선동대, 임기웅변가들의 거짓선전과 공동선이라는 명분과 그럴듯 한 포장으로 민중들을 오도하고 세뇌시킨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의 삶은 아랑곳않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바쁘다. 마침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동물주의의 근본이념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로 변해 버리고, 결국 동물 농장은 지배자가 인간에서 돼지들로 바뀌었을 뿐 반란 전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혁명의 본질을 잃고 만 것이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동물농장>을 통해 오웰은 원대한 이상과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혁명이 본래의 목적을 잃고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새로운 독재 계급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혁명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우화는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볼셰비키혁명의 전개과정에서 일어난 특정사건들과 실제 인물을 연상시키는 소설 속의 캐릭터들은 사실성과 이야기의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반란 "이후"의 삶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민중의 무지와 선량함은 독재를 방조하고 그 세력을 키울 수 있게 했다. 특정한 인물뿐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 우화가 시공을 초월해 어느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기에 여전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으며 공감을 얻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는 신념과 내가 조금 더 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일만 했던 순진무구한 "복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예전의 초등학생은 어느덧 세상살이의 힘겨움과 어두운 사회의 이면을 알게 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묵묵히 앞서간 선배들의 넋을 위로하며 헛헛한 웃음으로 복서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으련다.  비록 스노볼과같은 이들의 이상주의에서 시작한 혁명은 분명 뼈아픈 좌절을 경험해야 했지만 그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역사는 기억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결코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주의나 이즘을 떠나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바라는 꿈을 조용히 가슴한켠에 품는다.


 

k******2 2013.09.1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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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조지 오웰,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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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인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과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반란으로 매너 농장은 동물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동물들은 ‘동물주의 이념’과 ‘일곱 계명’을 공포하고,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결국 농장 안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스노볼은 축출되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나폴레옹은 친위견들을 활용해 농장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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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가인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과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반란으로 매너 농장은 동물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동물들은 ‘동물주의 이념’과 ‘일곱 계명’을 공포하고,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결국 농장 안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스노볼은 축출되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나폴레옹은 친위견들을 활용해 농장의 모든 것들을 통제합니다.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만해야 했습니다. 노동조건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동물들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추진한 풍차 건설은 실패하지만, 나폴레옹은 이 실패를 통해 오히려 더욱 강력한 독제체제를 구축합니다. 모든 통계는 조작되고 농장의 삶의 질은 좋아졌다고 선전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동물은 사형 당했기에 모두들 침묵할 뿐입니다. 지배계급인 돼지들은 전쟁의 승리를 선전하며 나폴레옹 정권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이런 체제 속에 순진한 다른 동물들은 처절하게 이용만 당하고 죽어갑니다. 대표적으로 말(馬) ‘복서’가 그랬습니다. ‘복서’는 자신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위대한 농장의 건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바로 위대한 ‘동물농장’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돼지 몇 마리를 제외하고 저 옛날의 ‘반란’을 기억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농장은 여전히 번창해갔지만, 동물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배계급인 개와 돼지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인간을 한 번, 그리고 인간을 한 번, 돼지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pp. 168~169). 「동물농장」은 동물들을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을 풍자한 우화소설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한 반유토피아 정치소설입니다.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은 번역자 안경환 교수의 친절한 ‘해설’과 오웰의 서문 부록들, 그리고 문학 평론가 정여울 씨가 번역자와 인터뷰한 내용들을 수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동물농장」을 저자 조지 오웰의 저작 동기를 이해하고 저자의 관점에서 책을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조지 오웰은 1900년대의 러시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Marx)와 레닌(Lenin)의 ‘공산당 선언’에 따라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권력투쟁에서 트로츠키기(Trotskii)는 축출되고 스탈린(Stalin)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도자 돼지들은 쉽게 이런 인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거의 몰락한 현시대에서 오웰의 이 소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웰은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이 책은 시의성(時宜性)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책 「1984」을 읽으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느꼈던 오싹한 감정을 이 책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어디 전체주의가 공산주의뿐이겠습니까? 제국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오늘날 모든 사회 속에 전체주의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일어납니다. 「동물농장」의 마지막은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와 국가 체계도 결코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든 인간 개개인은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일까요?

l******y 2013.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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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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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끝이 이렇게 인간의 허실함을 잘 드러내는 문구로 완벽하게 끝내기란 참 어렵지 않을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친절하고 한결같이 냉소적인 어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읽기에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우화적 줄거리와 그다지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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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끝이 이렇게 인간의 허실함을 잘 드러내는 문구로 완벽하게 끝내기란

참 어렵지 않을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친절하고 한결같이 냉소적인 어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읽기에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우화적 줄거리와

그다지 복잡하기 않은 캐릭터로 쉽게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다.

 

자꾸만 비교하려 생각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과 동물의 비유에

마음이 멈짓멈짓해지고

우직한 복서의 죽음앞에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짐은 이 얇은 책을 두꺼운 장편 역사서처럼

느끼게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것은 그만큼 깊이가 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중학교때 필독도서로 읽었던 동물농장은 너무나 재미없는 동물이야기였다.

도대체 이 책이 왜 그리 유명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였다.

복합적 캐릭터나 큰 반전도 없었고

그저 황당한 이야기였기에 감동도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한번도 읽지 않았던 동물농장은

지금의 나에게 굉장한 감동과 깊이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단순한 것에 움직이는지 살면서 깨달은 탓에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큰 홍수에 떠밀려 가는 마냥 역사의 흐름에 그저 순응하는 우리네 모습을 알기에

그 답답함과 우민함을

이렇게 깔끔하고 직설적으로 담아낸 이 책에 갈채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모습, 이게 아마도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역사의 한 장면들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네는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 중 어떤 이는 혁명을 부르짖으며 이상향을 그린다.

어떤 이는 재빠르게 그 혁명의 앞머리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면서 그 권력을 이용하고

그보다 조금 느린 이들은 그 혁명의 끝자락에서 권력의 치마폭 한곁을 두르고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앞선 사람들의 뒷통수만 바라보며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간다.

물론 벤자민같이 현자임에도 세상의 이치를 설파하지 않고

그저 세상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이도 있다.

 

모두가 자신이 더 잘고자 하는 욕망에

움직이고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안경환 옮김의 홍익출판사 동물농장은

중간중간에 역사를 비교하여 이 조지오웰의 진의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해설이 달려있다.

역사를 모르는 이에게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이나 마르크스 그리고 레온 트로츠키와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들로 대변되는 이 이야기의 그리고 역사의 중심 인물들보다

그에 휩쓸려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l*******g 2013.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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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물농장
"[서평] 동물농장" 내용보기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을 은유와 비유로 의인화시킨 명작 중의 명작인데 이제서야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게 되었다. 여러 출판사에 <동물농장>을 출간하였는데 이번에 홍익출판사를 통해 나온 <동물농장>은 각 장마다 적절한 해설이 들어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등장인물 역사 대비표와 많은 지면을 할애한 부록은 조지 오웰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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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을 은유와 비유로 의인화시킨 명작 중의 명작인데 이제서야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게 되었다. 여러 출판사에 <동물농장>을 출간하였는데 이번에 홍익출판사를 통해 나온 <동물농장>은 각 장마다 적절한 해설이 들어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등장인물 역사 대비표와 많은 지면을 할애한 부록은 조지 오웰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랄데없는 작품이었고 역시 명작은 시대를 넘나들어도 그 가치는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똑같은 명작이지만 출판사와 번역가에 따라서 작품은 다른 가치를 지니게 한다. 책 뒷날개를 보니 홍익출판사에서는 명작들을 세계문학 마음바다 시리즈로 연달아 출간하고 있는데 관심있게 지켜봄직 하다는 걸 이 작품을 만나면서 느끼게 되었다. 


면밀하게 따지면 <동물농장>은 이솝우화같은 동화가 아니다. 어른들이 봐야할 책이며, 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둔한 민중들을 휘두르는 독재자가 언론을 통해 장악하는 과정들도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보면 볼수록 놀라운 작품이다. 이 모든 비유 속에 러시아 혁명과정과 인물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 역사 대비표와 러시아 혁명역사를 알면 <동물농장>이 얼마나 기가막히게 표현해냈는지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읽어나갈수록 나폴레옹과 스노블의 관계를 해설에 나오는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할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이 풍자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것은 독재와 파시즘을 치닫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도 양떼처럼 편승하려는 세력은 꼭 존재하며 권력을 차지할 때는 불법적인 폭력을 동원시켜 권력을 강탈한다.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고 언론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합리화시킨다. 보이지 않는 적에겐 화살을 돌려 내부를 결집시키고 노동착취와 배급중단이란 수단을 동원한다. 차단된 정보와 문맹이 맹목적인 헌신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SNS 시대에 살고 있다. 팟캐스트나 유투브 등 수많은 대안언론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선동하는 세력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 혁명은 과연 무엇을 가져왔는가? 그들이 내세운 평등은 누구를 위한 평등이었을까?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보면 정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c******d 2013.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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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혁명(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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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혁명"(33)     매너농장의 주인 존스 씨가 날마다 술에 취해 농장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을 때,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동물들을 모아놓고 간밤에 꾼 이상한 꿈과 자신이 깨달은 세상살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메어저가 깨달은 동물들 삶의 본질은 "비참한 노예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먹이를 얻어먹는 대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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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혁명"(33)

 

 

매너농장의 주인 존스 씨가 날마다 술에 취해 농장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을 때,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동물들을 모아놓고 간밤에 꾼 이상한 꿈과 자신이 깨달은 세상살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메어저가 깨달은 동물들 삶의 본질은 "비참한 노예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먹이를 얻어먹는 대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죽도록 일하라고 강요받고 있소. 그리고 쓸모없게 되는 순간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오. 영국 땅의 동물치고 늘그막에나마 한가하게 여생을 누리는 동물은 단 하나도 없소"(23). 메어지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인간"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힘들게 노동하여 만든 생산물을 모두 인간에게 약탈당하기 때문이오"(24). 메이저는 이제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생물", 동물들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면서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인간을 타도하는 것이 동물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물들은 흥분하여 인간을 몰아내고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사는 농장을 건설하는 꿈을 꾼다.

 

그런데 반란은 예상치 못한 시기에 느닷없이 일어났고, 동물들은 어떨결에 반란에 성공한다. 그리고 반란을 주도한 두 돼지가 농장의 새 지도자로 공인된다. 동물들은 유토피아의 꿈을 꾼다. "동물들이 기아와 채찍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하고,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날 밤 자신이 어미 잃은 오리새끼들의 앞다리를 감싸주었던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주는, 그런 동물들이 사회"(112)가 건설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동물농장>은 "순수하고 절실하게 필요했던 혁명이 배반의 독재로 전락"하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오웰은 그의 에세이에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의 문학적 소재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결정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러운 혁명의 시대에는 그렇다"(204). 오웰이 <동물농장>의 소재로 삼은 시대상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오웰은 독자들이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들이 어떤 역사적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도록 했다. 농장의 무능력한 주인 존슨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동물들에게 현실의 끔찍함과 이상을 일깨우는 돼지 메이저는 마크르스를, 혁명을 주도한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스스로를 혹사 시킬 정도로 우직하게 일만 하는 말 복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동물들이 죽어서 가는 '슈거캔디 마운틴'이라는 신비로운 나라가 있다고 주장하는 갈가마귀 모제스는 러시아정교를 상징한다.

 

오웰은 <동물농장>을 통해 원대한 이상과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혁명(러시아 혁명)이 본래의 목적을 잃고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새로운 독재 계급으로 출현하면서, 본래 독재자를 몰아내고 평등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의 이상은 허탈하게 깨어지고 만다. 모든 혁명이 실패로 마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된 혁명이라 할지라도 그 이상이 인간의 본성(권력욕과 탐욕)을 넘어설 수 없다. 민중의 무지는 혁명 주도 세력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낳고, 집중된 권력은 반드시 독재로 이어진다. <동물농장>은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라고 해설한다.

 

매너농장의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또다른 요인은 동물들의 무지이다. 매너농장의 동물들은 반란(혁명)을 꿈꾸었지만, 반란 "이후"의 삶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동물농장>이 풍자하고 고발하는 주요 인물들 중에 가장 문제 인물은 어쩌면 복서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내가 좀 더 일하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는 신념으로 죽도록 일만 했던 순진무구한 "복서"는 해방을 내세우며 새롭게 권력을 잡은 추악한 돼지들과 그 동조자들에게 배반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의 무지와 선량함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게 했고, 독재를 방조하고 그 세력을 더욱 견고히 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동물농장>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뼈아픈 진실은 성공한 혁명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혁명도 결국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무래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시작된 혁명이라 해도 권력과 부가 집중되기 시작하면 혁명을 주도했던 이상(목적)이 독재를 견고히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견제하며, 숭고한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하는 길은 한 번의 성공한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홍익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물농장>은 구성이 풍성하다. 각 장마다 번역자인 안경환 선생님의 "해설"이 덧붙여 있고, 부록에는 오웰과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동물농장>의 발간을 염두에 두고 쓴 오웰의 서문과 에세이, 그리고 번역자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을 고발한 <동물농장>이 오늘날까지 '전쟁의 승리나 원자탄보다 더 깊이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뿌리박은 인류의 문화자산"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동물농장(권력의 독재)의 삶이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동물농장"의 숭고한 이상이 변질되는 것에 절망할 모든 이들에게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쓰라린 좌절을 통해 결국은 진보하니까", "우리는 이상주의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날카롭게 이상주의의 칼날을 버려야 할 때"라는 안경환 선생님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주었던 작품이다.

 

 

 



c***1 2013.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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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설, 우화소설 -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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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릴 적 〈동물농장〉을 읽고 평생 일만 하는 동물들이 가여웠다. 하지만 책 속에서처럼 동물들이 사람을 내쫓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면 어쩌나 두려워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이모할머니 집 마당을 뛰어노는 닭이 날개를 푸드덕 거리면 소스라치게 놀랐고, 큰아버지 집 축사에 있는 돼지가 작고 귀여운 새끼를 낳아도 가까이 다가서기 무서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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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어릴 적 〈동물농장〉을 읽고 평생 일만 하는 동물들이 가여웠다. 하지만 책 속에서처럼 동물들이 사람을 내쫓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면 어쩌나 두려워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이모할머니 집 마당을 뛰어노는 닭이 날개를 푸드덕 거리면 소스라치게 놀랐고, 큰아버지 집 축사에 있는 돼지가 작고 귀여운 새끼를 낳아도 가까이 다가서기 무서웠다. 어린 나에게 〈동물농장〉은 단순히 동물에 대한 두려움만 갖게 한 소설이었다.

 

이번에 《동물농장(2013.08.20. 홍익출판사)》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예전의 그것과 달랐다. 어릴 적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동물이란 대상에 감정 이입되어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죽는 말 ‘복서’가 불쌍하다거나 욕심 많은 나폴레옹 뒤에서 무지한 민중을 상대로 정보를 조작하여 자신들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데 이용하는 돼지 ‘스퀼러’가 얄밉다거나 등등의 감정에 빠지지는 않았다. 대신 눈에 빤히 보일 정도로 인간을 닮아가는 돼지들의 행태가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정치소설이자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우화소설인 《동물농장》은 1917년 10월부터 1944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p.17). 이 작품이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소설을 읽고 느끼는데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게 된 동물들은 농장주 존스 씨와 일꾼들을 내쫓고 매너농장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고, ‘스노볼’과 ‘나폴레옹’ 두 마리 돼지를 지도자로 공인한 뒤 「동물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동물주의 이념을 압축한 일곱 계명을 제시하지만 스노볼은 축출되고 나폴레옹의 독재와 우상화가 진행되면서 무지한 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배고픔과 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은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노출되어 있는 북한의 현실과도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연관 지어서 읽으면 더 빠른 속도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홍익출판사에서 출간된 《동물농장》은 눈에 띄는 편집이 인상적인데,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설을 덧붙였고 이는 저자가 작품에 담으려고 했던 현실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더 정확하게 인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동물농장》은 시작이 발전적이고 혁신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식인의 타락과 노동자의 무지라는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결과를 고발하는 『고전문학』이지만 아직까지도 되풀이되는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마음이 무겁다.

 

 

 

 



b******s 2013.09.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