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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유행어는 그 사회 문화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개콘의 '느낌 아니까'라는 유행어는 한국 사회의 감성 주도적 문화, 혹은 스타일 위주의 문화적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유행의 시대는 껍데기 문화를 중시한다. 외모와 외관 그리고 스타일과 취향으로 소비문화의 흉한 골상을 위장하는 셈이다. 이런 문화적 취향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중적 취향, 속물 취향, 아니면 그저 소비 마케팅 전략?
많은 소비문화 연구자들이 문화적 취향으로 계급적 속성을 판별할 수 있을지 탐구해왔다. 품위 있는 취향과 천박한 취향이 상류사회와 하류사회라는 문화적 위계질서와 상응할까? 고급문화의 엘리트 취향과 전형적인 중류층의 속물적인 취향과 하류층이 열광하는 천박한 취향이 존재할까? 문화엘리트가 선호하는 특정한 예술양식이나 예술작품 혹은 작가 리스트가 존재할까?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그렇다고 보았다.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예술과 문화가 계급을 정의하고 구성원 자격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즉, "문화란 계급 구분과 사회적 계층을 만들어내고 보호하려고 고안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그문트 바우만은 부르디외의 이런 취향과 계급성의 일치를 거부한다. 유동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더이상 사회계층화와 분열의 규범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비를 선동하고 상품 매출을 지향하는 욕망제조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소비사회에서 선호의 유연성과 취향의 평등성, 선택의 즉흥성이 전략이 된다. 그리고 유동하는 현대사회의 문화에는 계몽하거나 고상하게 할 민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유혹할 고객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유행이란 인간 조건의 영원한 측면인 '소비시장에 의한 착취'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는 최신 유행을 쫓는다. 지멜은 '유행'이란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성향과 개인의 분리를 추구하는 성향 사이의 타협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삶의 특정한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소비자들의 정체성은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동한다. 안전과 자유는 상호의존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호배타적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외로움에 대한 공포를 수반하고, 안전에 대한 욕망은 개성의 상실과 자율성의 결여에 대한 공포를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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