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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 2학년때 새로 오신 수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받아 오신 선생님이셨다. 당연히 총각선생님이셨고.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일인데, 이상하게, 머릿속에 영화 화면처럼 상세하게 그 시절의 선생님이 기억난다. 또한 지금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그 분은 양00 선생님으로 처음 수학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신 날 우리의 염원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셨다. 누구의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돈키호테'라는 말이 들어가는 곡이었다. 음이 기억이 날듯말듯해 검색해 보았지만 찾지 못하는것이 기억에서 잊혀졌나보다. 그 음악을 듣고 '돈키호테'에 관심을 가졌던듯 하다. 그 뒤로 책을 읽었어도 이상하게 생각나는 건 그 시절의 중학교때 수학 선생님이시다. 얼굴도 못생기셨는데 총각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좋아하고, 어떤 아이를 좋아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었던 듯도 하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읽어본 지가 꽤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오랫만에 그 선생님을 떠올리는 글을 만났다. 서영은 작가가 출판사 편집장과 함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 에세이 이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배경과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집 등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작가가 다녔던 곳마다 돈 키호테의 영혼이 묻어 나왔다. 책의 표지에서처럼 팔을 높게 쳐든 돈 키호테의 모습이 가는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어, 돈 키호테의 나라 답게 세르반테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었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다.
작품을 썼던 곳, 작품과 관련된 곳에서 『돈 키호테』를 다시 읽어보며 작품을 생각하면, 그 느낌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받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세르반테스의 묘에서 돈 키호테란 인물 속에 강하게 투사된 전의가 작가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대결의식의 투영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었다.
언덕 너머로 보이는 풍차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병졸로 보여 쫓아갔던 돈 키호테의 허무맹랑한 용기가 라 만차의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감옥으로 향하며, 지하로 지하로 들어가는 곳들은 작가의 글을 쓰는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들게 했다. 작가들의 방,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언제 봐도 멋진 표현이라 생각이 든다.
모든 작가의 방은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기 때문에,. 갇혀 있던 곳에서 작품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방에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상상의 나래를 높이 펼치기 위해서 몸뚱어리는 묶어놓고, 눈 막고 귀 막고 들어앉는 게 아닌가. (301페이지)
세르반테스 감옥 전경, 캄포 데 크립타나 가는 길 로터리에 세워진 설치물
위 사진에서 보면 세르반테스가 불후의 명작 『돈 키호테』를 썼던 감옥이다. 이 감옥 세르반테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또한 오른쪽 사진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 생각하는 돈 키호테가 돌진하고, 그것이 거인이 아닌 풍차임을 알리려 돈 키호테를 말리는 산초의 설치물이다.
책에서는 곳곳마다 사진과 함께 세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고, 그 상황에 맞는 책 속의 구절들을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즈막히 읽어주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구절들, 사진과 함께 보는 『돈 키호테』는 훨씬 이해하기 쉽다. 로시난테를 타고 황야를 향해 달려가는 돈 키호테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비록 허황된 생각으로 물들어 있었다 할지라도.
돈 키호테의 길을 걷다보면, 돈 키호테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가 둘시네아 였듯, 우리 또한 그 길에서 스스로 둘시네아가 되는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여성을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로 그렸던 세르반테스의 마음과 어느새 비슷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돈 키호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의 길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높이 쳐들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우리 앞에 힘든 일이 있어도, 돈 키호테의 용기를 기억하며 세상에 부딪혀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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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 톨레도에서 마드리드에 이르면서 곳곳에서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가 스페인 사람들의 삶에 녹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 스페인광장에 서 있는 세르반테스 기념비를 비롯하여 콘수에그라 언덕에 서 있는 풍차, 톨레도 금세공방에서 만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모습 등등.... 스페인 여행기를 쓰면서 콘수에그라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보니 작품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주유한 길을 따라가는 ‘돈키호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는 소설가 서영은님이 돈키호테의 길을 따라가면서 세르반테스의 삶과 <돈키호테>에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여행에세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기행에세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참 적절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돈키호테의 길을 따라가면서 만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담은 무수한 사진들이 우선 눈에 띕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돈키호테> 원전에서 따온 인용문이 꽤(?) 되고, 그에 대한 작가 자신 혹은 동행하신 분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여행기간 동안에 주고받은 대화를 녹음이라도 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맥락으로 저자가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분명 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키호테 1부>를 읽고 적은 리뷰에서 돈키호테를 ‘정신 나간 괴짜’라고 적었다가 오히려 제가 정신나간 사람 같다는 댓글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서영은님은 “작가가 그의 내적 동기를 ‘미침’ ‘광기’와 연결짓고 있어, 그 때문에 이 작품이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미침은 정신병리학적 광기가 아니라 ‘의지적 열정’이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괴짜는 괴짜이나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복면가왕을 즐겨봅니다만, 편견을 버리고 음악에만 집중하여 듣다보면 좋은 노래를 부른 가수를 족집게처럼 골라내는 것을 보면서 다수의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나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재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돈키호테를 정신 나간 괴짜로 보는 시각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자를 따라 돈키호테의 길을 여행하다보면 돈키호테에 대한 스페인사람들의 애정(혹은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을 엿볼 수 있습니다. 허구의 인물이 지나갔다는 장소에 그의 기념물을 세워 기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은 작품일 뿐인데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세르반테스가 결혼 후 3년 동안 거처했다는 아내의 외삼촌집 역시 세르반테스와 관련된 것들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3년 만에 이혼해서(이혼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남이 된 남자를 새삼스럽게 기리는 것이 왠지 쑥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편력에 나선 길은 모두 3개의 코스입니다. 의 길은 이 책에 등장하는 라만차의 콘수에그라, 캄포데 크립타나, 엘 토소보 등은 물론 <돈키호테 2부>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가 돌아본 돈키호테의 길은 1부에 등장하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고, 세르반테스의 족적과 관련이 있는 장소를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자료들이 주로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사실확인이 쉽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합니다. 저자 역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족적을 따라가기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저자가 참고한 책들도 읽어볼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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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을 찾아 여행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한 것 같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 속의 주인공이 갔던 곳이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 영화, 책속의 여러 곳이 나오는 곳이 있다. 특히 책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가보는 재미가 솔솔 한 것 같은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을 가게 된다면 영광과 행복이 같이 밀려올 것 같다. 아 가을 이 가을에 어디든지 여행가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대신한다.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는 말 그대로 돈 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 책 속에 돈키호테는 왠지 엉뚱하고 괴상했던 기억이 난다. 막 지나가는 아무구나 덤비고 싸우고 하여튼 내가 상상하는 돈 키호테는 상당히 엉뚱했다. 거기에 같이 따르던 산초 또한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영은 저자가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높이 처든 돈키호테의 창을 처든 작품을 보면서 돈 키호테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혼자서 만의 여행은 아니다. 여행이란 게 혼자서하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서 같이 느끼고 즐기는 여행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여행을 같이 떠나는 출판사 직원 Y와 길을 안내한 J, 그리고 저자인 서영은 돈 키호테의 책속의 갔던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책의 소주제 첫 부분들을 보면 저자가 여행한 곳의 약도가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려진다. 이것이 점점 마지막으로 갈수록 여행은 끝을 보게 된다. 가는 곳마다 세삼 돈 키호테란 존재가 대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돈 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나 그림들이 다 있다. 그리고 그들의 책 속에 등장한 장소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식당들도 대부분 돈 키호테를 기리는 곳이 많다. 세삼 책을 읽으면서 돈 키호테란 존재가 이 들을 먹여 살리는 존재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 유명한 사람 같다. 실존 인물이 아닌 책속의 주인공이 이리 유명할 줄이야 앞으로 돈 키호테란 존재에 대해 더 공부를 해보고 싶어진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잘 나온다. 그가 살던 곳 결혼한 곳, 아니면 글을 썼을 것 같은 곳...역사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책 속에서 돈 키호테를 쓴 저자인 세르반테스 보다 돈키호테가 더 유명하다니 역시 돈 키호테 힘이 대단하다. 사실 나도 돈 키호테는 알고 있었지만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속에 등장하는 돈 키호테의 여러 모습들을 사진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어쩌면 저리 재미나고 웃기고 실제적인 것 같이 만들어 졌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보면서 저자가 간 여러 곳의 이미지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아마 다들 책을 읽는 다면 그 매력에 반할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돈 키호테의 책을 저자가 읽어주는 부분에서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책을 안 읽어도 왠지 내가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책속에 한 장면을 읽어주는 부분이다. 돈 키호테가 라 만차 지방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멋진 들판, 여기서 말하는 거인은 풍차다. 이 대목에서 예전 돈 키호테를 읽던 기억이 더 났다. 돈 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고 생각하고 악이라 생각해 풍차에게 가서 싸우는 장면이다. 사실 어린 시절 왜? 저럴까? 무척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돈 키호테의 매력에 나도 빠져 든 것 같다. 저자 몸속에 들어온 돈 키호테가 나에게도 들어 온 기분이 들었다. 엉뚱하고 이상한 돈 키호테 지만 악을 보면 싸웠고 정의를 위해 산초랑 열심히 달린 사람 같다. 생긴 것도 이상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매력이 점점 넘치는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닌 책 속의 주인공이니 이런 책을 쓴 세르반테스라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 돈 키호테가 거쳐 간 곳으로의 여행도 되고, 그곳을 구경하는 자연적인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것이고 특히 이 나라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저자와 같이 여행한 Y, J 가 있었기에 이리 멋진 책이 나온 것 같다. 그림 이미지를 올려서 같이 구경하면 좋겠지만 그 이미지는 책을 사서 읽기를 바란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그곳으로 여행이라 그런지 책이 술술 잘 읽어진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이 책과 저자인 서영은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 아 이 가을 정말 여행가고 싶다. 기회를 봐서 다시 돈 키호테 책을 읽어보아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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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타이밍이 중요하다고...어릴적 아동용 축약본으로 보고선 그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같다. 일전에 스키장 카페테리아에서 부츠를 신은채 음식을 먹으며 완역본의 두꺼운 하드커버를 읽던 중년신사가 기억난다. 나도 싫어하기에 남에게 하기도 싫었지만 (뭐? 무슨책 읽나 들여다보는거), 그 이미지는 뭐랄까 뜨겁고 건조하고 숨막히고 음식냄새 가득한 와중에 불어오는 신선한 한줄기 바람이랄까, 무척 좋아보였기에.
...여기서 작가의 감춰진 의도를 읽을 필요가 있어요. 돈 키호테가 처음 공격한 사람이 마부라는 건데...말은 기사와 함께 정의를 실현해나가는 성스러운 동반자적 동물...그런 성스런 말을 채찍으로 떄리며 겨우 짐나르는 용도로나 부리는 사람, 즉 마부들과의 싸움은 곧 세상사람들의 상식과의 싸움으로 볼 수 있어요....돈 키호테는 사람들을 기사도 정신에 따라 고결하고 진지하게 대하는데, 상대는 그의 진지함을 장난으로 알다가 마침내 그가 대하는 그런 인격의 사람으로 연극을 할 수 밖에 없어져요....하나같이 본래의 자기보다 말, 행동, 몸가짐이 우아하고 예의바르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p.89~90
작가가 여정에 따라 작품을 읽어주는데, 와우~ 거기에서 "왜이렇게 재밌냐'며 감탄을 느끼느는 두 동반자처럼 나도 정말 감칠맛을 느끼며 꼿꼿히 오른손에 쥔 창 끝 하늘을 바라보는 돈 키호테에 대한 호감을 왕창 끌어올렸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돈 키호테냐 아님 햄릿이냐?'는. 둘 다 마음에 안들었지만, 작가가 반복되어 그 가치를 일깨워주자 그의 광기는 의미있는 열정으로 다시 다가왔다. 광기는 멸시되어 망각되지만, 열정은 전염되어 누군가를 감동시킨다.
...작품속 주인공들은 독자의 자기동질화를 통해 거듭 태어나고 있다...앞으로도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불멸이란 과거의 현재성이다. 또는 초시간적 속성이다. ...p.30~31
...돈 키호테는 기사인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밑바닥까지 이미 기사인 사람이예요. 그는 자기자신을 의의 병기로 바치겠다는 각오였지요..그의 자기 확신이 너무 크기 떄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할때 오히려 연극을 해야 되는 거지요....p.52
작가는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 키호테]의 여정과 작가의 중요한 인생포인트를 따라 세르반테스의 빈무덤이 잇는 마드리드에서 출발, 루타 데 돈 키호테 (La ruta de Don Quijote)'를 걷는다. 그의 부모가 작가를 낳은 알칼라, 작품의 배경인 사막지역 메세타를 지나 결혼한 교회가 있는 에스키아바스 등 여러도시를 돌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 기행 에세이로, 작품을 따라 이를 다시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선과 꼭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 키호테] 뿐만 아니라 그녀가 길에서 다시 만난 철학과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 등이 무척이나 지적인 흥미와 찬사를 불러일으킨다 (난 아마 스머프로 태어났다면, 투덜이였을텐데..찬사라는 말을 쓴다는건 대단한거라고).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보다 그때 그 장소라고 여기며 돈 키호테의 말과 생각, 태도를 마음으로 재현해보는 것, 그것이다. 그렇게 했을때 놀랍게도 우리앞의 모든 것은 그 사실이 드러내는 감춰진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p.97
...편력기사도...법학자여야하고 분배정의와 교환법칙을 알아야...신학자...의사...약용식물전문가....천문학자...수학...순수하며 말은 늘 정중하고 행동은 너그럽고 자유로우며 실천에는 용감하고 고난에는 끈기를 지키며 목숨을 걸고라도 진실을 위해 싸우는 자가 편력기사입니다.....용기라고 하는 건 비겁이나 무모함이나 하는 두 극단적인 악덕 사이에서 구한 높은 덕을 말하지요. 그러나 용기있는 자에겐 비겁이라는 상황에 다다를 만큼 내려가는 것보다는 무모함의 경지까지라도 올라가는게 그래도 나쁘지않은 방법인 겁니다....p.113~116 (음, 기사가 이렇게 고고하고 많은 책임감이 따르는지 몰랐는데 감동이다. 게다가, 이글을 읽고나니 햄릿보단 차라리 돈 키호테가 더 낫다는 생각까지..)
...우리 삶은 영적으로 잠들어있을때 가장 행복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p.144 (헉, 나 지금 행복한데~)
...실제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심상이란 프리즘을 거쳐 생각의 현시로 바뀌어 보인다...사실성과 무관하게 인식될 수 있다...다가간다고 쳐도 그가 충분히 환영을 사실처럼 굳게 믿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경과한 뒤이다. 떄문에 심상의 환영이 바깥의 사실과 마주쳤을때 사실이 밝혀진다해도, 그것은 이미 행위의 의지로 바뀐 뒤이기 떄문에 영향을 주지못한다....p.159
...결핍감은 타고난 성품의 빈곤이기 때문에 현재 그의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든 만족을 모르지요...상대방이 이러니까 나도 이런다는 식의 상대적 관계에서는 결핍감이 증폭, 확산 될 분이에요. 그러나 여성 또는 남성 쪽에서 그 결핍감을 감당하며 상대적 관계를 초월적 관계로 바꾸어갈 때만 사랑은 서서히 두 사람 사이에 구원의 다리로 가시화돼요..너희 결핍감은 너희가 만든 환영이다...내가 진정한 사랑은 '치뤄내다' '감당하다'는 동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에요...p.290~292
...돈 키호테의 진지성의 근거는 기사도에 있고 그 진지성이 사실마저 뒤집는 당위성이 된다. 진지성이란 진리에 대한 올곧은 헌신이 내면에서 내연하는 정신의 불꽃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는 보이는 빛이다..."돈키호테의 역설은 철저하게 의미의 세계에 대한 것이예요....침노적 전투...이 침노는 사실의 세계, 물질의 세계로만 보았을떄 생기는 우리 삶의 왜소함, 덧없음, 속절없음, 비루함을 갈아엎고 위대함, 거룩함, 성스러움에 접목시키려는 존재적 반란인거지요. 그러기 떄문이 이 인물이 소설 속 주인공이어서 우리하고 상관없는 허구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못해 꺠닫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해주는 광야의 소리...p.429
의미없이 보이는대로, 남들이 보는대로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성을 가지고, 소유의 개념이 아닌 존재의 개념으로 바라봄 등 작품과 길을 따라가며 작가가 꺠우치는 말들이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제목,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금융에서 hit the bottom은 긍정적이다. 바닥을 이미 쳤으니 더이상 내려갈 곳은 없고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 상식적인 사람의 눈엔 미친 사람이지만, 불가능한 꿈이라도 꾸고 부딪히며 스스로의 자격을 고양시키고 불굴의 의지로 부딪히는거, 그럼 언젠가는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높이 날 수 있지않을까.
...저는 보통이상으로 가산이 넉넉하고 집의 아내와 아이들과 친루들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지요.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지껄이는 것을 좋아하지않아서 제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못하게 합니다. 저는 매일 미사에 참석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재물을 나누어 씁니다만, 여간 조심하지 않고서는 교묘히 파고들어오는 위선과 허영이라는 큰 원수를 마음 속에 들일까 염려하여 저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지 않습니다......p.464 (돈 키호테가 길에서 만난 푸른 벨벳의 신사)
참 멋진 책이었다.
p.s: 조승우, 정승화의 [맨 오브 라만차] 알람과 할인쿠폰까지 받아놓고...ㅜㅠ http://www.youtube.com/watch?v=RfHnzYEHAow 'The impossible dream'을 부르는 피터 오툴의 눈가가 촉촉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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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올해 11월에 다시 올려진다고 하는데, 돈키호테, 알돈자, 산초 모두 초연 때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배우들이라 캐스팅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가 조승우 배우의 돈키호테를 보았던 시기로부터 벌써 6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떠올리면 뮤지컬 넘버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이 되곤 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캐릭터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나에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충직한 하인 산초를 데리고 다니면서, 풍차를 적군으로, 이발사의 대야를 맘부리노 투구로 여기고 공격하는 돈키호테의 허무한 싸움은, 그가 가진 꿈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매혹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건 허황된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기사가 사라진 시대에 웬 노인이 자신을 방랑기사 돈키호테라 칭하고 여관을 성으로 여기고, 허드렛일을 하며 가끔은 몸을 파는 천한 알돈자를 고귀한 레이디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여기서 방점은 그가 기사인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까지 이미 기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돈키호테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나는 '연극 성'이라고 생각해요. 물려받은 유산 덕에 하인을 부리며 아쉬운 것 없이 살아가던 시골귀족이, 기사소설에 푹 빠져 의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녹슬고 청태가 가득 낀 칼과 창, 투구를 꺼내어 닦은 뒤', 기사복장을 하고 말에 올라 세상으로 나간다고 해서 그의 변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작가는 그의 내적 동기를 '미침' '광기'와 연결 짓고 있어, 그 때문에 이 작품이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미침은 정신병리학적 광기가 아니라 '의지적 열정' 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그로 하여금 기사보다 더 기사도 정신에 투철한 '기사'로 만들었던 거지요.
![]()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발표한지 무려 400년이 넘었다. 서영은 작가는 이번에 마음껏 부딪히고, 두려움 없이 날아올라라!는 뜻의 멋진 제목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새롭게 읽어낸다. 바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길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지역에 있는 세르반테스의 묘부터 둘시네아의 집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돈키호테와 산초, 둘시네아가 살아있는 듯한 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스페인을 찾는 여행객들은 곳곳에서 그림이나 조각, 조형물 등으로 돈키호테와 산초를 만날 수 있다. 두 인물이 작품 속의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실제 현존했던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리 곳곳, 상점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 가면 세르반테스의 조각상과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함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에겐 관심이 없고 돈키호테와 산초 앞에서 주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작품 자체의 불멸성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들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킨다. 이런 것이 바로 글의 힘으로 현실이 달라지는 그런 순간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책 속에 있는지, 실제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지점 말이다. 극중 인물이 책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일일 것이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매력적인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게 되면, 그가 꼭 현실에서 실재하는 인물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요 네스뵈처럼 작가가 캐릭터만큼이나 외모적으로 출중할 경우 더 그렇긴 하지만, 작가와 별개로 캐릭터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주인공이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보고, 그가 읽는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나라에 가게 되면 혹시 길을 걷다가 그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렸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이 쓰여진 바로 그 장소에 내가 직접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이 이어질수록 단순한 여행기라고 칭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페이지 곳곳에 돈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둘시네아의 흔적이 느껴지도록 첨부된 풍부한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감상적이지 않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단어들은 나를 스페인 중부 마드리드 남쪽에 위치한 라만차로 자연스레 이끌어주었다.
![]() 세르반테스가 이 지하로 내려간 것은 삶의 불운 때문이었고, 그를 감금시킨 것은 부유한 세도가, 그가 감금된 곳은 그 저택의 지하였다. 몇 세기 뒤에 후원자로 나선 그레고리오 프리에토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보면, 동굴에서 올라오는 그를 머리 희끗한 남자들이 에워싸고 굽실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상의 재력과 권력은 안식을 거부하는 세르반테스가 항시 겨루는 어떤 것의 중심에 있었고, 그 때문에 위험한 힘인 그의 의지적 열정은 세상 권력의 억압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어둠과 절대고독이라는 종이 위에 정신의 잉크로 <돈키호테>의 앞부분을 써 내려갔다. 우러러 받는 한 작가의 세계적 명성이 사람들을 인공조명이 눈부신 단상이 아니라 좁은 지하로 내려가게 만들고, 각자의 어둠과 대면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돈키호테>의 행간에 숨어 있는 참 빛의 위대함이다.
현실에서 돈키호테란, 꿈과 이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다소 무모하게 직진하는 캐릭터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그 유명한 넘버 "The Impossible Dream"의 가사처럼, 그 꿈, 그 싸움 모두 이길 수 없고, 길이 아무리 험해도 나는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우겠다. 잡을 수 없는 별처럼 먼 희망이라도, 나는 멈추거나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 바로 돈키호테의 정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이야기. <사실은 이렇지만> 의 현실을 배제한. 왜냐하면 이상 가득한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와 험난한 모험을 떠나더라도 산초는 여전히 아내에게 구박을 받고, 돈키호테의 충고에 따라 주변 남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당하고 마는 알돈자는, 여전히 천한 여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니 말이다.
꿈도 열정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진 사람들이나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영은 작가의 말처럼 어느 시대이든지 투혼은 인간에게 자기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되어준다. 돈키호테가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행동하는 무모한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최소한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다. 기사인 척 연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기사라고 믿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삶을 살아내는 것 말이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거리낌이 없다는 그 순수한 마음가짐. 나는 그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실체로 거듭하는 그런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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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를 읽다보면 기사가 편력하는 길 전체가 무대이고 길 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만나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거기에 개입하여 벌어지는 새로운 사건 전재가 저절로 연극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또한 이 형식은 우리의 인생길과 가장 흡사해서 어느 이야기도 종결되는 것 없이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그러한 시간의 변용을 통해 되풀이해 중첩되고 변화되는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에서는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소설의 끝 부분에 가서 산초적 돈 키호테,돈 키호테적 산초의 모습은 시간의 변용이 남긴 증거가 되겠지요."/276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읽고 싶은데 벽에 막힌듯한 기분이 들면 나도 모르는 조급증이 생기는 모양이다. 돈 키호테 읽기를 시도하려다 포기하기를 여러번. 마침 뮤지컬로 먼저 만나봐야지 했으나,너무 느린 손가락 덕분에 표는 내 눈 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려 고른 책은 '돈 키호테, 부딪혔다,날았다' 이다. 사실 처음부터 호감이 갔던 책은 아니었다. 한 개인의 시선을 따라 간다는 것은 자칫 편견된 시선에 동참하거나,실망하는 경우가 될 테니까. 결론적으로,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돈 키호테를 읽어 보고자 한다. 돈 키호테 여정을 따라가는 사이 사사로운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돈 키호테를 따라가는 시선에 있어서 만큼은 저자의 애정에 기꺼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도 어떤 면에서 나에게 돈 키호테가 되어준 셈이다.두려워 말고,끝까지 그 길을 따라가 보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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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이었다. 마드리드에서 레온까지 버스를 타고 약 5시간 거리이지만, 긴 호흡에 걸쳐 읽었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흔적을 따라 순례를 떠난 저자는 마치 돈키호테와 동화 된 듯 보였다. 덕분에 나 또한 저자에게 동화되어 ‘루타 데 돈키호테’의 흔적을 따라 흐르는 순례의 길에 편력기사가 되어 동행한 것 같았다.
나는 이 앞도적인 삶의 위세 속에서 작가가 돈 키호테를 내세워서 추구한 기사도를 내 삶의 행동지침으로 삼고, 갑옷을 입히고 전사로 바꾸어, 절대선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높이 쳐든 오른손>中
저자가 말하는 혹은 돈키호테가 추구한 ‘절대선, 편력기사도는 무엇일까?’ 정확한 설명은 어렵지만, 그 답은 돈키호테를 읽어야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르반테스는 시골 귀족이 돈키호테가 되는 과정을 ‘미침’과 ‘광기’로 연결 짓고 있어 희화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그 미침은 ‘의지적 열정’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의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돈키호테의 강한 의지가, 돈키호테를 투철한 기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기사를 연기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기사가 되었고, 돈키호테를 만나는 사람들은 ‘돈키호테’에 맞춰서 연기할 수 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돈 키호테는 사람들을 기사도 정신에 따라 고결하고 진지하게 대하는데, 상대는 그의 진지함을 장난으로 알다가, 마침내 그가 대하는 그런 인격의 사람으로 연극을 할 수밖에 없어져요. 연극을 하는 그들을 보면, 하나같이 본래의 자기보다 말, 행동, 몸가짐이 우아하고 예의 바르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열여덟 살 연하의 신부>中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편력 기사도에 대해 저자는 의(義)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것을 위한 싸움, 그래서 스페인의 사상가 무나무노는 ‘돈키호테를 이성에 의해 경멸당하고 무시당하는 고결한 영웅주의’라고 말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예수가 떠올랐다. 어떤 위인이든지 자기의 옳은 신념과 세상의 잣대로 만들어진 ‘이성’과의 싸움은 필연적이다. 저자는 또 돈키호테의 의(義)의 싸움을 믿음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이 또한 철학과 신앙, 이성과 믿음 사이의 예수님의 따랐던 사도들과 같이 믿음이 발현한 것과 같다고 한다.
“예전부터, 나는 운명이란 수임하는 자만이 만난다는 얘기를 계속해 왔어요. 성령이 우리 삶을 강하게 갈아엎을 때, 예를 들어, 천사와의 싸움에 환도 뼈를 다친 야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지자가 순종함으로써 운명을 수임한 것이라고 한다면, 돈 키호테는 의(義)의 싸움을 운명으로 수임 받은 기사인 거지요.” –<열여덟 살 연하의 신부>中 돈키호테가 조소를 자청한 것은 자기 믿음이 항시 깨어 있도록,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었어 –<열여덟 살 연하의 신부>中
책은 돈키호테뿐 아니라, 노정 중간중간 에피소드를 통해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프라도 박물관에서 ‘옷 멋은 마하’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책을 통해 읽어보면 좋겠다. 좋은 에피소드였다.
문득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 내 삶은 저처럼 캄캄한 어둠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캄캄한은 너무나 오래고 깊어 인류 전체 역사와 맞먹는 두께여서, 그야말로 한번도 빛이 들지 않은 지구의 막장 같았어요. –<길 위의 대화>中
책에서는 이런 노정들 가운데 에피소드와 돈키호테를 공부하는 시간을 통해 미쳐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해준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읽은 민용태 교수님이 번역한 ‘돈키호테’와 ‘돈키호테 열린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긴 호흡이었지만 돈키호테로 인해 절대선의 시야를 가지게 된 작가의 시선으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언제 가보려나....
나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이상 없다. 본향에 닿기 전에는 나에게 집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직 길만 있을 뿐, 그리고 그 길은 돈 키호테처럼 쓰러지고 또 일어나는 치열한 영적 순례가 될 것이다. -<다시 순례자가 되어>中
“돈 키호테란 인물 속에 강하게 투사된 전의가 상상력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대결의식의 투영이라는 거지요.” -<높이 쳐든 오른손>中
황금빛 태양신 아폴로가 이 넓고 광활한 땅의 표면에 그의 아름다운 황금 머리털, 황금 갈기를 펼치고 누워 있을 즈음 유명한 기사 라 만차의 돈 키호테가 한가한 펜 놀음을 팽개치고 그 유명한 말 로신안떼의 등 위에 올라 그의 발에 익은 몬티엘의 옛평원으로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 위의 대화>中
“굳게 믿는다는 것이 뭔 줄 알아요? 바윗덩이가 눈앞에 있다 해도 미망을 깨치고 싶은 내 결의 앞엔 그것도 악한으로 보일 지경이야. 당장 내가 맞서야 하는 미망은 옛 자아. 관습대로 살아온 타성이야. 내게 검이 있다면? 아니 이미 펜이 검으로 바뀌었지만, 그 검으로 내가 저 악의 현시를 향해 돌진한다면, 그것은 관습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나의 옛 자아야” -<거인들의 출현>中
“돈키호테는(…) 자기가 섬기는 여인을 혹시라도 의심하면 ‘목숨을 내건 결투’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요.(…) 이런 섬김은 신앙의 한 형태이지요.(…) 이 세상에서 절대적 선을 상징하는 여성성이라면 성모밖에 없기 때문에, 돈 키호테가 섬기는 둘시네아는 성모라고 할 수 있어요.” -<거인들의 출현>中
“이 세상에서의 유유상종이 거짓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데 반해, 영혼 세계에서는 사랑의 능동성을 기준으로, 보다 섬세한 자발적 소속감에 의해 그룹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물의 시간>中
시간의 변용을 통해 되풀이해 중첩되고 변화되는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에서는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삶의 연극, 돈 후안 현상>中
맴맴이의 한마디 마치 돈키호테는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만 갔다. 올바른 것을 위한 싸움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돈키호테는 부딪히고 부딪히고 부딪히고 결국엔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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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 '돈 키호테'를 읽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여러 출간된 책들은 봤지만 제대로 번역된 소설은 만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펼치기 전부터 나도 모르게 미적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도 아닌 순례자의 길처럼 세르반테스가 만든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우선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갔다.
또한, 서영은 선생님에 대해서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참 '카미노'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이에 관련 서적이면 무조건 읽었기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는 전 작품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번엔 카미노가 아닌 오로지 '돈 키호테'의 인물과 작가의 '세르반테스'에 대해 발자취를 찾아가고 있다. 출판사 직원과 선생님 그리고 스페인 현지에서 살고 있는 박사를 포함 셋이서 자동차를 끌고 마드리드 부터 여정이 시작되었다.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소설속의 인물 '돈 키호테와 산초'의 흔적들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그만큼 이 소설이 살아있던 사람처럼 사람들의 뇌리속에 남겨지게 된 것일까.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론 소설의 위력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자를 위한 관광지를 소개하기 보다는 한 인물에 대해 애기를 하고 있기에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좋다. 작가와 작가가 만든 인물에 대한 탐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그들이 한곳한곳 스쳐 지나갈때 마다 선생님은 이 소설의 한 부분을 읽어주면서 그 내용이 주는 의미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전혀 읽지 않았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이 읽어가는 느낌이었기에 오히려 원작에 대해 관심이 쏟아지기만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자신이 삶을 살기 위해 때론 소설속의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들도 있었고, 독자와 사회에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세르반테스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감옥살이에 무려 5섯번이나 다녀왔는데 사람이 살면서 이 숫자 만큼 다녀오기란 쉽지 않는데 말이다.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몇년간 살기도 하고, 세금 징수 문제로 5년동안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는데, 이 시기가 한 인물의 탄생을 축척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런 인물이다. 간간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책속의 구절은 엉뚱하면서도 스스로 정의롭다 하는 것에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그의 강한 모습에 이끌리게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숭배하고 아름답다고 한 여인 '벨네시아'를 통해 우리는 종교적인 색채를 볼 수 있다. 산초는 왜 그를 따라나섰을까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오로지 호기심은 아니었을거 같은데 현실적인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때로는 그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부분은 제대로 책을 봐야 할거 같다.
하여튼, '돈 키호테'를 통해 세르반테스의 삶과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사실를 잊을 수 없었고 한편으로 나도 이 여정에 참여를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다. 책 한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그곳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흥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존재했다던 발코니도 있는데 말이다. 언젠가는 직접 '돈 키호테'를 찾아가는 기회가 올 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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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살면서 우리가 알게되는 작가, 더 알고 싶은 작가/작품은 얼마나 될까, 내게는 최근 만난 돈키호테가 그랬다.
어릴 적에 집에 꽤 두꺼운 책이 두권 꽂혀있었다. 바로 「돈끼호테1」, 「돈끼호테2」였다. 각 권이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두꺼웠고, 집에서 읽기 어려워보이는 책의 TOP10에 들었던 「돈끼호테1」, 「돈끼호테2」는 결국 그렇게 그 책들은 꽤 오랜기간 우리 집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는 그 책들을 그 상태로 내버려두었다.
그런 상태로 우연찮게「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를 읽게 되었다. 새하얀 바탕에 비쩍마른 노장이 자신있게 창을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고, 말과 함께 날아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건장하지도않고, 젊지도 않은 노장이 말이다.
읽기에 앞서서, 내가 돈키호테에 대해 정말 간결하게만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돈키호테」를 읽은 다음에 읽어야하나'하고 고민하기도했지만, 오히려 내가 「돈키호테」를 읽기 전에 돈키호테와의 여정을 담은 여행 에세이「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를 읽기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나처럼 고전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돈키호테」를 읽기에 앞서 읽으면 좋을 '입문서'랄까,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돈키호테」로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고,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 에세이를 통해 오히려 「돈키호테」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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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의 서영은 작가는 '스페인 살라망카에서높이 창을 쳐든 돈 키호테 조각품을 만난 후 그의 의지적 열정에 매료되어 '루타 데 돈 키호테' 탐색을 기획했다.' 고 이야기했다.
에세이에서 소개된 루트로 여행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 챕터의 시작부분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는 물론, 사진들 속에서 여행자의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정말 내가 이곳을 여행하면, 이런 각도에서 보겠지,라는 생생함이 전해졌달까. 전문 사진 작가가 찍는 사진이 아닌, 정말 여행자로서의 사진, 풋풋함이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진중하면서도, 아주 무겁지 않게, 발걸음은 가벼우면서 그러면서도 뜨거운 마음이 전해지는 책이었다.
올해 말에 「맨 오브 라만차」공연도 있을 예정이라는데,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도 읽었겠다, 이제 「돈키호테」를 찬찬히 읽어가면서 공연을 기다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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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치고, 다시 몇 장을 읽어내기가 조금 힘들었던 책이었다. 왜 그랬을까아. 아마도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풍차를 향해 바보처럼 돌진했다는 것과 그를 창조해낸 사람이 세르반테스라는 작가라는 점 뿐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돈 키호테]를 완독한 적도 없는 내가 작품을 기반으로 그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 조금은 버거웠었다. 그것은 초반에 작가 서영은님이 동행한 출판사 직원 Y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뭔가 깔보는 듯한, 철 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 든 노작가의, 자신이 사랑하는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 출판사 직원 Y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한숨이었달까. 나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나는 작가가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세계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기분으로 책을 써내려간 것은 아닌지 약간은 불편했다.
그런데 이 책, 읽을 수록 읽는 맛이 난다. 평범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사랑하는 작가와 출판사 직원 Y, 문학박사 J가 함께하는 [돈 키호테] 읽기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초점은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에게 맞춰져 있고, 물론 여과되었겠지만 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소재 또한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이다. 어떤 작품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작품 속 장면을 재현해내는 여행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이런 여행을 떠난다면 이렇게나 충실한 과정을 보낼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만큼 성실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졸려하거나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작가가 동행자 둘의 공부를 재촉하듯 [돈 키호테]에 등장하는 구절을 읽어주는 모습은 가히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 구절 중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주 복잡한 미로에도 들어가고, 가는 곳마다 불가능한 곳에 뛰어들며, 한여름의 불타는 태양 볕에도 인적 없는 황무지에서 버티며 살고, 겨울에는 바람과 얼음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사자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요괴에도 놀라지 않으며 괴물도 두려워하지 않지요. 이놈들을 찾고 저놈들을 쳐부수고 모두를 이기는 게 기사의 중요한 진짜 임무올시다. 때문에 편력기사의 일원이 될 운명을 타고난 본인은 의무의 한계 속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나 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금 사자들을 공격한 것은 기상천외한 무모함인 줄은 알았으나, 용기라고 하는 건 비겁이냐 무모함이냐 하는 두 극단적인 악덕 사이에서 구한 높은 덕을 말하지요. 그러다 용기 있는 자에겐 비겁이라는 상황에 다다를 만큼 내려가는 것보다는 무모함의 경지까지라도 올라가는 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겁니다. -p116 이런저런 문구들을 읽다보면 [돈 키호테]는 단순히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무모함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한 남자의 표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 생에서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진리를 그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는 마을 사람들과 돈 키호테의 친구 신부 등은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없는, 일반 소시민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쟁에서 팔을 잃고, 타국에서 노예가 되어 극한 체험을 했고, 매인 데 없이 전국을 유랑하며 드라마 같은 분방한 생활을 했던 시절이 있었나 하면, 유부녀와의 불 같은 사랑 이후 피폐한 마음을 추스리려고 애쓰는 작가(p138)-가 생의 휴식처로 여겼음직한 에스키비아스라는 마을의 평화로움을 오히려 위기로 감지한, 작가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초반에도 나의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 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돈 키호테가 객줏집을 성곽이라고, 객줏집 주인을 성주라 여겨 그에게 기사 서품을 요청하는 장면이다. 처음 객줏집 주인은 그런 돈 키호테를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그를 놀리고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는데, 그를 비롯하여 귀부인이라 여겨진 창녀와 주위 사람들도 처음에는 돈 키호테를 깔보고 비웃지만 차츰 그의 요청 아닌 요청에 따라 그 역할에 맞는 말투와 태도를 갖추게 된다. 그만큼 돈 키호테의 기사에 대한 마음이 깊고 강하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깨닫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어리석고 우스워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열망은 주위 사람들도 감화시키는 법이니까.
작가와 Y, 그리고 J의 여정은 돈 키호테가 로신안테를 타고 산초와 동행했던 바로 그 길이다. 신실한 신자에 워낙 [돈 키호테]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그 두 사람 역시, 특히 Y가 시간이 지날수록 [돈 키호테]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뭐랄까,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작가 역시 이 여행에서 또 다른 돈 키호테였으니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악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아름답다.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그저 관광지를 기웃기웃하는 그런 단순한 여행이 아닌, 서영은 작가님처럼 의미있는 무언가를 해내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돈 키호테의 길이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