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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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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속도의 시대이다. 물론 나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손에서 절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세대이긴 하지만, 어렴풋하게 디지털 시대 이전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시대라고 불리는 그런 시절 말이다. 지금은 MP3 음원으로 음악을 들어서 CD 조차 잘 듣지 않지만, 그 이전엔 LP로 음악을 듣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은 무려 DVD를 블루레이로 보지만, 조악한 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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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속도의 시대이다. 물론 나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손에서 절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세대이긴 하지만, 어렴풋하게 디지털 시대 이전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시대라고 불리는 그런 시절 말이다. 지금은 MP3 음원으로 음악을 들어서 CD 조차 잘 듣지 않지만, 그 이전엔 LP로 음악을 듣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은 무려 DVD를 블루레이로 보지만,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 테잎으로 영화를 보던 시기도 있었고 말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정경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윤대녕의 소설집남쪽 계단을 보라를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 시대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중편은 1994년 봄부터 1995년 봄까지 쓰인 작품으로, 2003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 이번에 새로 복간되었다. 작품의 소개 글에도휴대폰과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 서로 지극히 몸을 움직여야만 가까스로 마음의 주고받음이 가능하던 시절에 대한 풍경이라고 되어있다.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서 그런지 사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나 역시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남자라는 건 아내에 대해서 늘 보수적이게 마련이라는 거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가 때로는 몹시 힘이 든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늘 혼자인 모양이다. 아니, 혼자라는 사실부터 먼저 깨달아야 하는 모양이다. 아내는 애초부터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푸른 길

 

빠르고 간편한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라 함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경쟁력이 없고 낙후된 것처럼 느껴지긴 한다. 디지털은 조금 더 편리하게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그것만큼 ''이라는 감정이 사라져가는 데에도 일조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일화 중에, 시골 노인의 주선으로 처음 맞선을 보게 된 두 남녀가 서로 약속 장소를 잘못 알아듣고 두 시간 넘게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기다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때는 핸드폰은커녕, 더 이전 삐삐도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약속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이 오지 않으면,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거나, 그냥 바람 맞은 셈 치고 돌아와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긴 시간과 소통이 되지 못하는 답답한 과정을 견뎌야 하는 것과 5분만 늦어도 전화나 문자로 독촉을 하게 되는 만남이 같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때로는 조금 느리고, 조금 천천히, 가끔은 멈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메일보다는 정성스런 손 글씨의 편지가 더 뭉클하고, 핸드폰보다는 직접 얼굴 보며 대화하는 것이 더 정겨운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대녕의 이번 작품은 참 따뜻하고,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표제작인 '남쪽 계단을 보라'에선 주인공이 출근길에 매혹적인 여성을 만난다. 그녀와 함께 지하철에 오르고 싶어 발걸음을 서두르다가,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난다. 망설이다 다시 집에 돌아가 서류를 가지고 급하게 나와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그 아름다운 여성이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여성이 주인공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시간이 십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내가 다시 그녀를 본 것은 불과 십분 후다. 허겁지겁 집에 들렀다 나와 다시 단풍나무 길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아까처럼 전방 오십 미터 지점에서 하늘빛 옷자락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 계단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단풍나무 길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십 분 전에 돌아간 영사기의 필름을 거꾸로 다시 돌리고 있을 때와 같은 형국이었다. 그동안에 변한 것이라곤 손목시계의 분침이 열 개의 눈금을 지나친 것밖에 없었다. 또한 이번에는 서류가방 안에 보고서가 제대로 들어 있다는 것 정도밖에는.   

                                                                                      -남쪽 계단을 보라

 

그 이후로 주인공은 자신이'세계'의 십 분 앞이거나 혹은 십 분 뒤인 장소에 버려졌다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모두들 아홉 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자신만 아홉 시 십 분에 존재하게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세계' ''사이에 벌어진 시간의 간격은 얼핏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두 개의 달이 뜬 새로운 세계, 현실과 환상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 일상의 '이쪽' '저쪽'의 세계. 보여지는 세계와 숨겨진 그 이면의 세계에 대한 고찰. 매일 같은 일상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시간이 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어제처럼 집을 나섰는데,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난다거나, 무심코 주변을 둘러봤는데 모두들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나만 홀로 시간의 바깥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누구나 가끔 그럴 것이다. 이 세계의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혹은 반대로 안전하게 제도권 안에 있고 싶은데 밀려난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리고 '가족사진첩'에서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그냥 속이 막 울렁거려요. 효섭씨, 만약에 우리 불행해지면 어떡하죠?"

"결혼이란 불행할 때 함께 있기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몰라. 사람이 늘 행복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물론 서로가 상대를 잘 만나야만 하겠지."

 

이 대목을 읽는데 뭐랄까,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든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로맨틱하지 않은가 말이다. 윤대녕의 글은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치게 만드는 말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때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어도, 어스름한 저녁에 깨어나 지붕에 후득이는 빗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간절하게 사무치는 때가 있다라든가, 훗날 나는 이 여자에 대해 아주 각별한 감정을 품게 된다. 그때 내 어찌 그런 일을 짐작인들 했으랴같은 대목들. 요즘은 내가 워낙 특정 장르에 빠져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그런 감각들이,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보다는 감수성 풍부했던 나의 어린 시절, 책을 읽을 때 플롯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부분들을 주목했던 그 시기로 내가 다시 돌아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 왠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3.10.09.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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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_윤대녕]20여년전의 이야기들...
"[남쪽 계단을 보라_윤대녕]20여년전의 이야기들..." 내용보기
지난 번 읽었던 '도자기 박물관'의 여운이 꽤 컸다. 그 책은 너무 힘들었던 날 들에 대한...조용한 위로와 같았다. 생각날때마다 펼쳐서 보고 또 보고 했었으니 말이다.   이번 책 '남쪽 계단을 보라'는..보다보니, 20여년전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와 좋았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이런 저런 앱이나 SNS를 통하여,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혹은 그렇게라도 연결되어 있음
"[남쪽 계단을 보라_윤대녕]20여년전의 이야기들..." 내용보기

지난 번 읽었던 '도자기 박물관'의 여운이 꽤 컸다.

그 책은 너무 힘들었던 날 들에 대한...조용한 위로와 같았다. 생각날때마다 펼쳐서 보고 또 보고 했었으니 말이다.

 

이번 책 '남쪽 계단을 보라'는..보다보니, 20여년전의 정서가 물씬 풍겨나와 좋았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이런 저런 앱이나 SNS를 통하여,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혹은 그렇게라도 연결되어 있음에 안도하고 살고 있겠으나, 그 시절만해도...공중전화,편지 같은 것 밖에 없었으니...불편하긴 했지만, 그때가 살짝 그리워 지기도했다.

 

이 책은 개정판이고, 윤대녕이 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때 쓴 글이다.

가장 최근작의 완성도가, 바로 예전의 이런 작품들로 다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종종 철지난 영화를 보는것처럼, 살짝 촌스러운 얼개가 느껴지기도 했지만...그래서 더 진지한 문학작품 같았으며, 무엇보다도 한 작가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두루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두 편 정도를 제외하곤 다 마음에 들었는데,

'신라의 푸른길''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은 이게 바로 문학작품이구나 싶을 정도로 여운도 느낌도 좋았고, 또 시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여 흐믓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뺨을 후려 갈길 정도의 임팩트가 없었음은 살짝 흠이라면 흠이겠다.  

 


 

 "사람에겐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때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 사람이 상처 한번 받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어. 다행히 그것도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사람의 숨결 속에서 말이야.

 

 과거의 자신을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 마. 그때엔 그게 아마도 최선이고 진실이었을 거야.

 저 봐, 지금도 시간은 마라톤선수처럼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어. 느린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굉장한 속도로 말이지. 이 순간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단 거야. 그러니 너무 과거에 대해 집착하지 마. 나이를 거꾸로 먹어 난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말이지"   <가족사진첩. 209-210쪽>

YES마니아 : 로얄 c******m 2013.10.03.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