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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책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 중 하나인 사회정책학회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한 첫 학술상이라는 것과 일본 노동시장 행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경험을 오랜 기간 동안 듣고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연구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파트타임 노동시장과 이것에 영향을 미친 사회 제도 및 규범, 젠더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주된 연구내용이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시장과 젠더 이데올로기에 주는 시사점이 굉장히 크다. “파트타임 노동시장의 직무와 처우의 불균형이 안정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행위자들의 다양한 행위전략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29쪽) 어떤 현상이나 구조를 연구할 때 그것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을 경험하고, 그것과 맞닿아있는 사람들이 직접 ‘하는’ 이야기를 듣고, 분석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파트타임 노동시장의 행위자 전략과 상호 작용을 <주부 제도>, <주부협정>, <비공식 권력>으로 나누어 행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분석한 이 연구는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주부 제도>란 “남성 생계부양자형 젠더 시스템 하에서 사적 가족 내의 역할과 지위여야 할 주부라는 역할과 지위를 사회적 지위로 만드는 제도의 다발”이다.(31쪽) 일본의 세금 제도, 사회보험 제도, 내부노동시장의 임금체계가 이러한 주부 제도를 구성한다. <주부협정>은 “기혼여성의 일차적 책임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고숙련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불해도 괜찮다/합리적이다/어쩔 수 없다는 사고에 기초한 행위전략”을 의미한다. 주부 제도와 주부협정은 파트타임 노동자 개인 주체들의 일상적인 대응 전략, 즉 비공식 권력을 형성하고 지속시킨다. 기혼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남성 생계부양자형 젠더 시스템과 그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기혼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에 적응하는가하면 반대로 저항하고 권력과 규범을 무시하거나 비공식 규범을 발달시킨다. ‘파트타임 노동자’ 혹은 ‘주부’라는 역할로 다양한 개인들을 획일적으로 집단화하지 않고, 이들이 하는 저항 행위에 주목하고 이것이 기존 규범에 어떠한 균열을 가져오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더 시스템을 비롯한 특정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틈은 무엇일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일본 파트타임 노동시장이나 노동시장 구조를 분석한 내용보다 실제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들이 훨씬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주부 제도>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남성 생계부양자를 기초로 한 각종 사회제도와 노동시장 구조와 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무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높은 숙련의 노동을 제공할지라도 주부이기에 처우와 임금이 낮아지고, 이것에 체념하거나 마땅한 것이라 합리화하는 현실이 어이없고 답답하다. 남성 생계부양자형 젠더 관계와 사회 제도는 비단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여전히 남성은 생계부양자이며 여성은 생계부양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젠더 관계와 각종 사회제도에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가족돌봄노동을 전담하는 것을 전제로 여성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젠더관계 자체를 바꾸어 성별분업을 타파하고 남성을 가족 안으로 들어오게 해, 여성과 남성이 가족도 사회도 함께 돌보는 것, 남성이든 여성이든 혼자 살더라도 아이를 기르면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일본재생의 길’이며 진정한 노동방식 개혁이 될 것이다. 남성도 여성도 일과 가족을 양립하고, 지역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일본 사회에 미래와 희망을 돌이키는 길이 될 것이다.” 여전히 ‘저출산’ 문제를 논의할 때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양육에 대한 복지, 가정과 일에 대한 양립 등이 논의된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결국 양육을 비롯한 가족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며 여성에게 주어지는 이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각종 복지와 제도가 움직여야한다는 수준에 불가하다.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처럼 각종 법, 제도, 규범에 스며들어 있는 젠더관계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자체를 타파하여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가족 돌봄과 일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노동문제, 성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연구를 하고 있거나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