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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리뷰]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용보기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앞으로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     지난 몇 해는 마지막 시집을 쓴다면서 살았다.   2020년 가을 황동규     위에 인용한 글은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의 앞부분에 있는 <시인의 말>을 옮긴
"[리뷰]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용보기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앞으로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

 

  지난 몇 해는 마지막 시집을 쓴다면서 살았다.

  2020년 가을 황동규

 

  위에 인용한 글은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의 앞부분에 있는 <시인의 말>을 옮긴 것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자면, 황동규 시인은 이 시집이 자기 생전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겠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 가운데 (다가오는) 죽음을 의식하거나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내용의 작품이 많이 있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이 든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겠지만, 어느덧 80대(1938년생)에 접어든 시인으로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황동규 시인이 시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0여년 전인 1980년대에, 황동규 시인은 '풍장' 연작시를 통해 죽음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했다(황동규 시인의 작품을 다 읽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이전에도 죽음을 노래한 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풍장' 연작시에서 시인은 죽음에 대해 가정법(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으로 접근하며 다분히 관념적이고 유희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이런 태도는 당시 시인의 나이가 40대 중반~50대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죽음에 나이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40대 중반~50대라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고려할 때 한창 활동할 때이지 죽을 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해보기 시작하는) 때가 이 나이대가 아닐까.

  그러나, 이번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에서 보여주는 죽음(혹은 죽음에의 예감)은 관념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이다. 어느덧 시인의 나이는 8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 여기저기에 탈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통해 보면 황동규 시인은 안과 질환(황반변성)과, 대사질환(고혈압)을 앓는 것으로 되어 있고, 청력도 약해졌으며,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니지만 간혹은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 침대에 누워

    외눈 덮개로 얼굴 가리고

    황반변성 안구주사를 맞고

    거즈로 덮은 눈과 산동 약 넣어 초점 잃은 눈 위에

    안경을 얹고

    희미하게 놓인 구두 찾아 꿰 신고 병원을 나선다.

    어른거리는 붉은 불빛, 걸음을 멈춘다.   - <안구주사를 맞고> 1연

 

    11월이 아직 며칠 남은 날,

    혈압약 챙길 시간 다 되어도 창 훤해지지 않고

    늦가을 꽃들 하나둘 다 제 갈 길 떠나고

    서달산을 다색으로 물들이던 단풍들도

    땅에 내려 검은 흙이 되고 있다.   - <어디로?> 1연 부분

 

    보청기 끼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 안 나게 문을 여닫곤 한다.

    누가 들을까 봐도 아닌데

    그리운 문소리도 있는데. - <이 겨울 한밤> 1연

 

    꽃잎 괜히 건드릴까 조심하는 바람처럼

    가파른 언덕을 촛불 안 꺼뜨리듯 조심조심 내려와

    맨땅에서 넘어졌다.

    어이없지 않다.

    해가 뜨거나 비가 오거나

    아닌 밤중에 싸락눈 사락사락 내리거나

    내 삶의 마지막 토막은 결국

    맨땅이 되지 않겠나.

    눈비 번갈아 맞고 땡볕 따갑게 쪼여대

    기쁨 성냄 미움 아픔 같은 거 다 증발하고

    채 비우지 못한 마음마저 증발하고

    목에 걸려 남아 있던 말들도 먼지 되어 날리는

    금 쩍쩍 갈라지는 맨땅.

 

    태어날 때 꺼꾸로 매달려

    엉덩이 맞고 시작한 눈물은

    대충 말려 갖고 가겠네.

    눈물 자국은, 글쎄

   제풀에 희미해지도록 놔두시게. - <맨땅> 전문

 

  시인은 몸에 탈이 나기도 하고, 거동도 예전 같지 않아서 조심하는데도 넘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시인은 더이상 가정법을 쓰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삶의 마지막, 곧 죽음을 생각한다. 시 <맨땅>에서 시인은 넘어지고 나서 '내 삶의 마지막 토막은 결국 / 맨땅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이 죽음을 의식하게 되는 데에는 시인 자신의 신체 변화뿐 아니라, 시인의 주변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백 년 한 세기가 다 지나가고 있네.

    이제 엉덩이와 뒷다리만 남았어.'

    낙상으로 누워 네가 말했지.

    그런가?

    하긴 우리 백 년의 엉덩이가 가파르긴 한 것 같아.

    산책길을 반으로 줄였어도

    몇 번인가 걸음 멈추고 숨 고르게 하거든. - <우리의 백 년 한 세기가> 1연

 

    네 스마트폰에서 온 마지막 문자

    네 문자 아니더구나.

    한밤중까지 펜션을 떠나지 않던 파도 소리,

    아침엔 잠잠했다. - <네가 갔다> 1연

 

  친구의 낙상(<우리의 백 년 한 세기가>), 너(아마도 친구?)의 죽음(<네가 갔다>) 등도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다음 시처럼 (살아 있는) 친구를 만나서도 죽음 이야기를 한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오랜만에 연락 닿아 만나는 네 얼굴도 갰다.

    네 뒤에서 비치는 저녁 햇빛 새삼 눈부셔

    안경을 벗으니

    순간 아무것도 뵈지 않다가

    나타나는 네 얼굴에 슬그머니 겹쳐 보이는

    무교동 청진동을 횡보하던 한창때의 얼굴,

    우리의 얼굴!

    우리 둘이 청진동 해장국집에 시계 맡기고 나오며

    같이 불렀던 <스텐카 라진>의 여운도 들어 있는.

    맡긴 시계들이 들으라고 목청 더 높이 불렀던가.

    그때 콘크리트 덩이에 넘어져 생긴 네 턱의 상처

    이제 뵈지 않는구나.

    그래 웃자.

    오늘은 날이 갰고 우린 만났다.

    어쩌다 저세상 가서도 서로 연락이 닿으면

    오늘처럼 비늘구름 환하게 뜬 날 만나자. - <오늘은 날이 갰다> 부분

 

    ***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는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수록된 시는 약 80편(정확히는 78편)이다. 이 시들 중 시 제목에 '죽음'이란 시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간 시는 2편(죽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 / 죽음아 너 어딨어?)이지만,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마지막', '노을', '갔다' 등의 시어가 제목에 들어간 시도 있고, 제목이 아닌 본문에서 죽음 혹은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시도 많아서, 이 시집에는 죽음을 이야기한 작품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이 결코 죽음의 어두운 빛깔만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하루하루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매일 서달산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는(황동규는 시집 뒷편에 실린 산문에서 자신이 시인이 되기 전의 꿈이 작곡가였다고 한다.) 등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다음 시의 중략 이후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은행잎들이 날고 있다.
    현관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군.
 
    (중략)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집 8층까지 오르는 층계 일곱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 층은 활기차게 한 층은 살금살금, 한 층은 숨죽이고 한 층은 흥얼흥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분
 
  또한, 가끔씩 친구나 후배를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실에도 들르며, 강연도 하고, 사당동패라는 시인 평론가들의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 등,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나태해진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문자가 떴다.
    몇몇 병원들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강연도 하고 산문도 쓰고
    특집 시편까지 손보고 있다니
    목표 향해 쉼 없이 걸어가는 모습 돋보입니다. - <차 마시는 동안> 일부
 
  이 시에서 지인이 보낸 문자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활동적인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노라면, 마치 시인의 하루하루의 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만큼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부분 시인의 일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활시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생활시라고 해도 좋을 시들이 많다, 그날그날의 삶 속에서 겪은 일을 시의 형식을 빌려 기록한.
 
 
   *** 

  황동규 시인은 천상 시인이다. 아버지(황순원)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든, 혹은 개인적 노력의 소산이든 황동규 시인은 삶이 시인 시인이다.

  다음 글도 황동규 시인이 천상 시인임을 보여준다.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 특히 이즈음 몸이 속을 바꾸며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일들을 시로 변형시켜 가지고 가고 싶다. 가지고 가다니. 어디로? 그런 생각은 지난날의 욕심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못 가지고 가는 시를 쓰자. (책 뒷표지에서 인용) 

  이 시집 이후로도 황동규 시인의 시집(유고시집이 아닌)을 만날 수 있다면 황동규 시인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기쁨이 될 것이다.

 

t*******1 2021.08.02.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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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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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시인들보다는 다소 연륜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을 볼 때 그런 부분들을 많이 의식하게 되는데 기존의 시인들이 보여줬던 모습들 때문에 독자가 괜히 의식하며 시집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읽은 황동규 시인의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도 그런 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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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이 시집을 읽어야 하는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시인들보다는 다소 연륜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을 볼 때 그런 부분들을 많이 의식하게 되는데 기존의 시인들이 보여줬던 모습들 때문에 독자가 괜히 의식하며 시집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읽은 황동규 시인의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도 그런 주제가 무엇인가, 무슨 주제를 가지고 시들을 풀어쓴 것인가를 의식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집을 읽다 보니 시인의 시들은 특별한 주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편 한 편이 가진 순수한 이야기들을 즐기면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시인의 시는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읽어야만 진정한 시의 맛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도 그런 느낌으로 읽어 나갔을 때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게 시집 한 권을 즐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더욱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극단적인 표현들이 강조되며 각자의 시들에 개성을 강하게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집은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들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한 권이었으며 황동규 시인의 시작에 대한 깊이가 더욱 깊어졌고 좋은 표현들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무척 흥미롭고 좋은 시들을 만난 기분이며 이런 시집이야말로 역시 시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닌가 합니다.

p*****9 2021.01.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