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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해방전후사는 늘 나의 관심사이다.
시간은 인간이 치유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출간하는 과정에서도
벌써 4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저자 나카지마 가제는 일본 민영방송국 TBS의 보도 프로그램 PD이다.
15년간 한국을 취재하면서 섭렵한 기록들중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에 집중하여 직접 한국어로 쓴 책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성폭력 피해라는 보편적인 인권, 여성의 인권 문제인데
책임을 저야할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여
가해 책임을 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여전히
한일간 입장과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평행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일본인 PD의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일본이 강제동원이나 성노예 명칭의 삭제에 집착하며
피해자들의 삶과 기억을 지우려는 매우 부적절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국가들도 지지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점점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있어서 고립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책임회피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강고하며
문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주장은 참 변함이 없다.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 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전향적 태도를
역대 일본 총리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10대 소녀가 가족에게 보탬이 되겠다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낯선 이의 꼬임에 넘어가 의심없이 믿고 따라간 결과가
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였다는 모함으로 둔갑하게 된다면,
게다가 신체적으로도 성적 학대와 폭력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가 침묵할 수 있을까!!!
그 어린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한 번만 가정해 본다면
이렇게 끈질기게 인권 침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영광을 여전히 꿈꾸고 있는 듯한 현재 일본의 윗세대들은
고유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들여다보고 각성하길 바랄 뿐이다.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해온 역사가 적지 않아
그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엾기까지 하다.
동시에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말씀하듯이,
일본인 개개인의 응원과 방문은 언제나 감사한 일이라고 하셨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도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혹여 윗 세대들이 듣지 못한다면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라도 귀기울여주길 바랄 뿐이라는 저자의 호소가 고맙기까지 했다.
일본 내에서 언론인으로서 객관적이고도 균형잡힌 시각과 목소리를 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국제 약속과 국민 정서 양쪽 모두를 짚어준
나카지마 가제 PD의 기록은
영원토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2015년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는 238명.
그 중 생존자는 47명이었고 2022년 현재는 11명뿐인 절박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실은 기억으로, 정의는 연대로" 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간절한 목소리의 울림은 미미한가보다.
가해자 측의 강제 연행이나 증언을 직접 증명하는 공적 문서가 나오지 않고 있을 뿐,
피해자 측의 증언과 기록들은 수도 없이 많음에도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는 일본.
오히려 돈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퉁치려는 행위가
더더욱 인간적인 모욕으로 다가와 상처가 가시기는 커녕 덧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불가역적' 인 한일합의 후 2016년 화해*치유재단 설립에 이어
정부가 바뀌고 2018년 해산에 이르기까지
국가간 대화 속에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은 온데간데 없다.
당시 한국 정부측은 한일합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일단 차치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대하자는 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는 사실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통해 처음 접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위안부 생존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그렇게 역사에서 피해자들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꼼수가 엿보여
분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2015년 당시 한일간 외교부 장관이 한일합의를 하면서
사과의 의미로 일본은 한국에게 10억엔이라는 자금을 출자했다.
당시 46명의 생존자 중에서 34명이 1억원씩 받았고,
유가족에게는 2천만원씩 지급되었다.
혹자는 돈을 받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그 유가족들에게
억울하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피해자들의 신발을 신고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위안소에서 매일 20명의 건장한 군인들을 받으며 강간을 당했던 피해자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없이 괴로웠을 것이 뻔하다.
위안부였던걸 공표할 수도 없는 성차별적 국가의 현실 속에서
먹고 살기가 상상할수도 없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받은 그 돈을 받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옆에 서서 한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개개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한다면
물론 이것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볼 수 없을 거란걸 안다.
국가간의 공식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물론 힘쓰는 일도 계속하면서 동시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
그래도 조금씩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이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글로 남긴 사람들의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고.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더 많이 담겨 있지만
당시 강간의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 병사의 증언은
비교할수도 없게 노골적이고도 참혹하게 다가왔다.
이 말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당시 병사였던 일본의 만화가가 남긴 것이다.
"위안소는 지옥이었다."
이런 지옥은 1930년대에 중국에 처음 위안소라는 이름으로 설치되기 시작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의 점령지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에서 여성들을 강제동원한 역사는 비단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은 주로 직업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간 것이었다 하고
그 외의 국가들에서 온 피해자들과 대우부터 달랐다고 전한다.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7개 지역에 걸쳐
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 취급 받으며 속아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만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난 저자의 이야기 속에도
한국의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절대로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책임져야 할 대상이 있고 그들이 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
정치는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서 빛을 발한다.
정치가 휴머니즘을 상실할 때 변질되는 것이다.
왜곡되어져서 앞이 똑바로 보이지 않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무거운 역사를 떠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혹하고 지옥같았던 시간과 해방 후에도 겪었을 차별과 편견의 나날들을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일본인 PD의 취재를 통해 일본의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이기도 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다음 세대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다.
위안부 추모비나 소녀상의 참된 의미는
시위가 아니라 바로 이 메시지인 것이다.
진실이 기억되고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가해자들은
그 상징물을 끊임없이 박해하고 없애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국가의 지배욕이 나약한 개인을 파멸시키는 이 아픈 역사를 보면서
온전히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지워지지 않도록 기록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과도 같다.
누구나 선택권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야 하겠지만
누구의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사회가 힘을 보태줘야 한다.
인류애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현재 진행형의 위안부 문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접할 수 있어
주변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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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네이버에서 친절하게 초록창 옆에 노란 나비를 달아주었고, 정치인들 가슴에도 보란 듯이 노란 나비 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그냥 익히 들은 이야기들로 가슴 아프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로 오늘을 그냥 흘려보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전 #지워지지않는기억 을 완독한 후, 8월 14일을 맞이하니, 네이버 창 옆 노란 나비가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생생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바탕이 되어있는 이 책은 부끄럽게도 15년간 한국을 취재해 온 일본 민영 tv 방송국 보도 프로그램 PD 나카지마 가제 님이 쓴 책이다. 집 근처 공원에 있는 소녀상을 보면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 등으로 불쌍하다, 맘이 아프다 정도였는데, 책 속에 생생하게 증언되어 있는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눈앞에 그려지는 상황에 나도 몰래 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이 강제 연행으로, 아니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서 간 위안소였다.
쇼와 17년(1942년) 되던 봄쯤 귀가하는 도중에 부산역 근처 골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남자 2명이 나를 불러 세우고 '구라시키의 군복 공장에 돈 벌러 안 갈래?라며 승낙도 하기 전에 배에 밀어 넣어 태워 라바울로 연행당했다. 현지의 교회를 나눠서 만든 위안소로 끌려가 군인과 하루 10명, 많을 때에는 15명이 넘는 군인과 성행위를 강요당했다."(당시 15세가량, 포항군 출신의 피해자) 지워지지 않는 기억 中 - P67 17살 되던 봄, 10명 정도의 일본인 군인에게 팔다리를 잡혀 붙잡혀 가 트럭과 기차를 갈아타고 오오테산 부대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는 성행위를 계속 강요당했는데, 하룻밤에 30, 40명에서 때로는 50명의 군인을 상대로 당했다. (충남 출신의 피해자) 지워지지 않는 기억 中 - P67 15살, 16살이면 지금의 중학생 나이다. 내 딸이 14살이니, 이러한 증언들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감히 상상을 해본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위안소에서 일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점에 있다. 높은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노동의 내용을 위장하거나 그 내용을 확실히 알리지 않고 여성을 위안소로 데려간 행위도 당연히 용납되진 않지만, 위안부 모집을 민간인이 했다 해도, 위안부를 전장으로 보낼 것을 요청한 군의 책임은 면할 수 없으며 그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또한 위안부는 '성 노예 범죄'라는 표현을 유엔 고문 방지 위원회에서도 사용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을 권고했으나, 가해자인 일본만 성 노예가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과거의 악행에 대해 반성을 하고 무릎 꿇고 사과한 독일의 총리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본은 역사를 조작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로 국제적 낙인이 찍히는 건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
위안부의 문제에 대해서 이러한 가슴 아픈 사연은 우리나라 방송에서 많이 보인 모습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 책 속에서 처음 들었던 내용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심각성을 모르거나, 뉴스에서도 중하게 다루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일본은 공식 사과를 정말 한 적이 없을까? 1992년 1월 17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한반도 출신의 소위 종군 위안부가 체험한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힌다. 증언이나 자료들을 보면 모집 등에서 군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나 여기서 다시 한번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충심으로 사과와 반성을 하고자 한다. "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내각 관방 장관. 1994년 8월 31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1995년 7월 18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1996년 6월 23일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2007년 4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 2007년 4월 27일 아베 신조 총리 2015년 12월 28일 아베 신조 총리.....
어? 뭐지? 이런 사과를 했었다고? 그런데 왜 우린 사과를 못 받았다고 계속 그러는 거지?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일까? 이들 사죄들 중에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직접 말한 것은 세 번 있었지만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한 사죄는 한 번도 없다. 나는 이것이 많은 한국인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 정부가 사죄했다'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5년 한일 합의의 협상 과정에서도 한국 측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 방문을 요청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中 - P94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내가 식당에서 싸움이 나서 전치 3주 이상 진단이 나와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정작 날 때린 사람은 식당 가서 내가 그 사람 때려서 죄송하다 잘못했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건가? 당사자가 있는데, 엄한 사람한테 가서 사과를 백날 해야 무슨 그게 사과란 말인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2007년 아베 총리가 사과하는 곳은 우리나라도 아니고, 미국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과의 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발언한 사과라는 점이다. 미일 정상들끼리의 대화가 위안부 피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나 우리나라를 우습게 봤으면, 미국 가서 우리나라에 저지른 일을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당사자 위안부 피해자들은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현재 생존에 계시는 분은 11분이다. 그동안, 사과금을 못 받고 평생을 힘들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신 분들 삶은 어떠셨을까? 일본은 대놓고 배상금은 못 주었지만, 민간기금으로 피해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고 있었다. 글을 읽기 전에는 박근혜가 말도 안 되는 합의서 작성한 까닭에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내미는 보상금을 거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좀처럼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부와는 달리, 한 인간으로 내 할머니 같고, 피해자 같아서 도와주고 싶은 맘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가며 피해자 할머니들을 살펴주고 있는 '팔로워 사업'을 보면서 할머니들이 진짜 원하는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처음으로 그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김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인권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제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는 11분. 국가 지정일로 정해놓아도, 피해자분들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11분이 돌아가시면 국가 기념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11분의 피해자분들에게 찾아가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게 그리 수치스럽고 어렵단 말인가? 꽃 같은 10대 어린 나이게 강제로 끌려가 하루에 수십 명의 성 노예가 되고, 죽어서는 늑대 밥이 되어버렸다는 증언에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 안 하고, 피해자를 만나 제대로 된 사과를 안 하는 게 일본의 수준이다.
책을 통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놓고 괴로웠을 할머니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글 속에서 전해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관심 가져 주기를 소망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깐, 10살 재이가 집 근처 공원에 있는 소녀상 이야기냐고 물어보았다.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데, 차마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10대 아이들은 이 문제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관심이 없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부모인 나조차도 지금껏 관심을 갖고 알려고 한 적은 없었으니깐. 부끄럽다.
블로그 이웃님이신 배리어 프리 님 덕에 이 귀한 책을 선물받고 읽어볼 수 있었다. 가벼운 책은 아니라서 책을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까지 쓰셨으니, 일본내에서 더 힘들어지지시 않으실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랜시간 취재를 해주시고 책을 내어주신 나카지마 가제 님에게 감사드린다.
11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일본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 돌아가시고 당사자가 없으면 사건은 종료되고, 허공에 대고 미안하다 한마디 하면 끝일 테니깐.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날의 악몽이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