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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건물 4층에서 추락한 여고생의 사건 경위를, 사고와 자살 여부의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오래 전 과거의 진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이와 별개로 여고생의 부담임이었던 교사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모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흔히 우리들의 인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위대한 모성’을 표면상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모성의 본능’을 버려둔 채 비참하고 불운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한 가정의 비극적인 고통을 집요하게 파헤쳐간다. 모녀의 시각은 서로 엇갈린 독백 형식을 취하면서 교차되는데, 초반부터 심상치않은 기류가 흐르고, 극이 전개될수록 뭔가 큰 재앙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소름 끼칠 정도의 극한까지 치닫는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과도하게 사랑하고 의지한 반면, 딸에게는 온전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딸의 엇갈린 마음이 안타깝게 전개된다.
아니면 모성이란 것 자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여자를 가정에 묶어두기 위해 남자가 제멋대로 만들어내고 신성화한 속임수를 가리키는 단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P54~55
나의 단 하나뿐인 소원은 엄마가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열심히 애썼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바랐다. 그런 사랑을 원했다. 그러니까 엄마, 이 손을 놓지 말아줘..... -P136
딸은 외할머니가 준 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기억한다. 하지만 엄마가 준 것은, 엄마가 그린 행복이라는 밑그림의 일부분이나 소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상기한다. 그럼에도 딸은, 죽음을 결심한 그 순간까지 엄마의 치부조차 애정으로 포용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무너뜨린 장본인을 자신이라 질책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입장까지도 받아들인다. '딸을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다'는 엄마의 고백은, 사랑이 쏙 빠진 앙꼬없는 찐빵처럼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변명이며 위장임을 보여준다. 그녀는 분명 딸에게 자신이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알리기 위해 수기를 써내려간다고 했지만 딸의 독백이 그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애초에 엄마라는 사람은,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애정을 품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산사태와 화재로 인해 '아름다운 집'이 잿더미가 되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어린 딸 중에 한 명만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어린 딸만 살린다. 이후, 딸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증오라는 이름으로 대체된듯하다. '아름다운 집'을 잃은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없이 시집살이가 시작되고, 혼자서 짓는 농사일, 가부장적인 시아버지, 이유없이 모진 멸시와 타박을 일삼는 시어머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과묵한 남편, 철면피 시누이들의 행각 등은 일상 자체가 지옥이 된다. 딸은, 궁지에 몰린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엄마의 입장을 대신하지만 그럴수록 사태는 불리해지고 모녀 갈등은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급기야 엄마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딸이라는 집착에 매달리지만, 딸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엄마를 향해 시종일관 사랑만을 갈구한다.
어떠한 살인이나 물리적 충격요법을 굳이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에서 빠질 수 없는 트릭과 반전을, 인간 내면의 심층적 구조를 통해 치밀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인격까지 부정당하는 게 사회적인 속성이다. 그 전형적인 인식은 굳어진 의미며, 난타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조차 모성을 버려둔 '엄마'를 향해, 엄마다움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성이란, 타고난 성질의 것이 아닌 학습에 의한 후천적인 형성에 의할 수도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임을 드러낸다. 각 장을 마칠 때마다 등장하는 릴케의 시는 고통스러운 모녀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복잡하고도 미묘한 통곡으로 들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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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기분이 든다. 존속 살인 사건과 영아 살해가 잊을 만하면 전파를 타는 것을 보며 가족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죽하면,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살해되면 1차 용의자는 무조건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정의가 내려지겠는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가족’은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異物(이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일본 작가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름을 알고 있는 몇몇의 작가중에 기억되는 미나코 가나에는 고백을 통해 만나보았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던 《고백》에 이어 읽게 된 《모성》의 첫 문장은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무슨 욕이될까 싶었지만, 이 고백은 어쩌면 처절한 후회와 자식에 대한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 금지옥엽의 딸이 자살을 시도했으니까...... 스물 네 살, 회화 교실에서 릴케의 시를 좋아했던 다도로코를 만나게 되면서 결혼하기까지 그저 보통이었던 삶의 무늬를 써가던 ‘엄마’의 삶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손녀를 구하기 위해 불이 난 곳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면서 조금씩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엄마와 행복하게 살던 고지대에 세운 꿈의 집은 산사태로 인해 사라졌고 ‘엄마’(할머니)의 생명을 대신하여 남게 된 '딸의 생명'은 엄마에게 목구멍에 걸린 생선 잔가시처럼 남겨지게 되고, 형체가 없던 잔가시는 엄마의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서서히 곪아 가고 있었다. 이후, 시어머니와 살게 된 엄마의 가족. 소중한 피와 살을 나눈 친엄마의 죽음이후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딸, 남편을 모두 자신과는 다른 타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을 점점 고립시킨다. 소설은 엄마와 딸의 회상과 고백을 교차하여 같은 사건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곳에 진실이 있다.
친엄마와 맞바꾼 딸의 생명. 그것이 잔가시로 남겨져 엄마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월드의 세상에서 혼자 마음 졸여가면서 딸을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나쳐 딸과 높은 벽을 쌓은 엄마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의 모습에서 母性(모성)이란 이름으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선은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치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사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자식이기에 엄마와 딸의 교차된 생각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양쪽 모두에게 같지만 다른 묘한 감정의 차이에 공감을 하면서도 서로 진실의 이면에 다가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며 좁혀지지 않는 두 모녀사이에 안타까움이 든다. 나의 엄마는 항상 어렸을 때의 ‘나’를 기억하시고는 여전히 한참 어린 아이처럼 대하시곤 하는데 실제로 엄마가 되면 나역시 엄마처럼 무엇이든지 척척 잘할 줄 알았다. 허나, 엄마처럼 자식에게 희생하고 인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크기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커져간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현재의 가족에게는 새로운 이해로서의 탈출구가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인이 코와 입매가 닮은 사람들이 된장 한 뚝배기에 반찬 한두 가지, 밥 한공기로도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가족이라 했듯이 가족의 사랑은 함께 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소설의 화자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하는 , 소통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비극은 피했을 텐데 하는 안쓰러움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남겨진다. 점점 팍팍해지는 가족의 현주소를 마주한 기분에 씁쓸함이 많이 남지만, 이 책으로 인해 가족관계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나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의무만을 강요하며 그것을 모성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반성과 고민을 남긴 소설이다.
“모성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그 엄마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하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틀림없이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말로 위장하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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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를 낳아준 이를 구하는가, 자기가 낳은 이를 구하는가? (73)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솔직히. 나는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앞으로 어쩜... 그런 상황이 되지 않고서야 영원히.. 답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자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햇살이 따스한 정원이 있는 고지대 집에는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행복한 웃음소리와 릴케의 시가 흐른다.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 고지대의 이 집. 하지만 태풍이 불어와 흙이 덮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어머니와 어린 딸. 어느 한쪽만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여자의 엄마는 그녀에게 어린 딸을 살리라고 말한다. 결국 딸을 살리고 여자는 시댁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모녀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시댁 생활, 그리고 남과 같이 변해버린 남편, 그 속에서도 어머니와 바꾼(?) 딸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후 시어머니와 시누이 때문에 둘 사이는 더 멀어지기 시작하는데...
나는 글쎄.. 이런 말을 하면 울 엄마가 서운하다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의 처지는 아들 하나에 딸 셋, 그것도 앞뒤로 짜부가 된 중간의 이리 저리로 치이면서 사랑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런 부분들이 어린 시절엔 서운했고, 그것 때문에 부모님께 많이 대들었지만 가끔은 그 부분들이 아주 감사하다. 부모님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서 가장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으니까...
‘부모의 사랑’이란 참 묘하다. 주는 입장에선 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 부분은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알겠다. 내 어린 시절처럼 아이들이 많은 것도 아닌데 우리 집 작은 녀석은 고놈의 사랑 때문에 늘 불만이다. 엄마가 형을 더 사랑한다 생각하고, 엄마는 늘 ‘형’편만 든다고 서운함을 토로한다. 50대50으로 정확하게 사랑을 반으로 나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정확하게 사랑을 배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입장 차이는 늘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독백에서, 그리고 딸의 독백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걸 보며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첫 아이와 만난 그 날을.. 아이는 어느 날 온갖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빨갛고 쭈글쭈글한 아이. 눈도 뜨지 않고 울어재끼는 아이를 보면서 솔직히.. 기쁘기 보다는 무서웠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울 것이고, 어떻게 안아주고 보듬을 수 있을까? 병원에서 그리고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그나마 천국 같았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입성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없이 기쁘다가도, 이유 없이 운다고 생각될 때에는 미치도록 이 아이가 미웠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나에게는 엄마들이 갖고 있다는 모성은 없구나 하고... 모성이란 것이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갖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모성이란... 아이가 태어난 순간 바로 엄마에게 짠하고 나타나지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호흡하고 감정을 나누고, 눈빛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 안의 나이테 같은 것이었다.
사랑은,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화려할 필요가 없다.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따스한 손실.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나 손을 잡을 때나 외할머니의 체온에 대한 기억은 무수히 남아 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외할머니 이불 속에 쏙들어갔을 때 느낀 따스함이다. (76) 눈빛 하나라도, 손길 하나라도 마음이 오고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요즈음 엄마들은 사랑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집, 많은 돈, 그리고 화려한 씀씀이. 그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에 대한 사랑일까?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222-223) 이 책을 읽고 미치도록 마음 아프고,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는 나란 엄마는 지금 어떤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분명 아이들에게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나는 과연 아이들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따스한 엄마일까? 혹시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지만 분명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가슴 섬뜩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미나토 가나에 특유의 독백 형식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가 딸이 되었다가 감정 이입을 한다.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자, 우리 아이들의 엄마이니까. 두 입장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랑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지.. 사랑도 일방통행이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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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222p)
모성. 엄마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보면 좋을까. 모성이라는 것은 여자가 아이를 가지는 순간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뱃속에 넣고 열달동안 있으면서 점점 자라나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겨나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모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일까. 아이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모성이 생기는 것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이가 없는 여자는 모성도 없는 것일까. 작가는 어느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모성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 것일까.
어려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한 여자가 있다. 엄마는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었으며 칭찬을 해 주었다. 한마디로 자존감을 굉장히 세워주었던 것이다. 여자는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행동을 했다. 물론 엄마는 칭찬을 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엄마와 딸은.
딸은 한 남자를 만난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우울함을 직감했지만 엄마는 그 그림을 보고 다르게 평가했다.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를 하며 시를 읊었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보다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했을까. 결국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 가정은 문제가 없었을까. 그 남자와 결혼하기 전 그런 말을 들었다. 그 집 부모가 만만치 않다는 말. 여자는 자신이 잘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면서 큰 자신감을 가졌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그 사람이 잘못을 했으니 그런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장담한대로 인생이 흘러갈까.
정원이 있어서 꽃을 심을 수 있는 작은집, 그곳에서 남편과 함께 딸아이를 키우면서 살았다. 남부러울 것 없었다. 그저 그렇게 평안한 삶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는 자주 못 만났지만 그래도 남편이 교대 근무를 가는 날이면 엄마를 불러서 엄뫄 딸 그리고 손녀까지 셋이서 밤을 보내곤 했다. 즐거웠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르게 바뀌었다. 아주 나쁜 쪽으로 백팔십도로 말이다.
하나의 제목 밑에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딸의 이야기 그리고 모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총 세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성에 관한 이야기는 병원으로 옮겨진 한 여학생의 기사를 바탕으로 해서 전개되어간다. 그 기사를 본 한 교사의 생각. 기사를 자꾸 곱씹어 생각할수록 목에 걸린 가시마냥 두드러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교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데뷔작이 워낙 뛰어나서 그 뒤로 나오는 자신의 작품마다 그 작품과 비교를 당해야 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은 유달리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많고 엄마와 딸 그리고 할머니까지 삼대에 걸친 이야기들이 많다. [꽃사슬]도 같은 맥락에서 보여지는 책이다. 그런만큼 여자들의 관심의 받게 되는 책이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 자신도 한번쯤은 엄마였을수도 딸이였을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모성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우리나라에는 <고백>의 작가로 유명한 미나토 가나에의 신간 <모성>
『 10월 20일 오전 6시경, Y현 Y시 Y초 현영주택 정원에 시내 현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17)이 쓰러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Y경찰서에서는 여학생이 4층에 있는 자택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고, 사고와 자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여학생의 담임선생님은 "성실하고 반 학생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아이다. 특별히 고민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으며, 어머니는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이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17살 여고생이 자기 집에서 떨어졌다는, 사고로도 자살로도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기사를 서두로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왜 나는 딸을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냈는가.'에 관한 엄마의 고백에서는 진심을 담아 칭찬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며 태양같은 존재로서의 그녀의 엄마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문화센터 회화교실에서 만난 다도로코와 결혼을 하면서 다도로코 집안사람들은 칭찬하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란걸 깨닫지만 깊은 호수같은 남편의 어두움을 해님같은 자신이 잘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모두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임신을 했을 때는 사랑을 담아, 훌륭한 작품을 완성시키듯 태교하며 엄마의 칭찬을 끊임없이 갈구했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성심성의껏 사랑을 주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로 키우며 자신처럼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도 자신의 소중한 엄마를 슬프게 하는 말을 할 때면 (물론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다) 역시 딸은 다도로코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의 엄마가 손녀를 향해 '보물'이란 단어를 써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아이, 딸의 회상으로 건너가면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올바로 행동하고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행동읗 하며 외할머니에게 말을 할 때에도 엄마가 바라는 말들만 하게 된다. 외할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지만 엄마는 '네가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식의 사랑 정도로만 느낄 뿐이다. 자신의 존재는 엄마가 그린 행복이라는 그림의 일부분 소도구일 뿐.
『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한 걸까. 』 - p48
그러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져 그녀의 엄마와 아이가 장롱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집에 불까지 나버린 사건.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를 낳아준 이를 구하는가, 자기가 낳은 이를 구하는가...... 그녀가 순간 먼저 손을 내뻗어 구하려던 쪽은 아이가 아닌 엄마였다. 하지만 '부모라면 자식을 구해야지. 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라.'는 엄마의 마지막 유언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의 관계가 이어진다.
『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 - p222
어떻게하면 엄마가 나의 존재를 받아줄까.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엄마에게는 닿지 않는다. 그러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데... 사건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모성의 사전적 의미는 여성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살피며 키워내려고 하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적인 성질이다. 하지만 <모성>의 나...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사랑하는 엄마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냥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는 어머니로 불리고 싶지는 않아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딸에게는 있고 자신에게는 없는 엄마라는 존재. 그들은 각자 사랑을 갈구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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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본능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엄마와 딸의 고통스러운 내면의 회상과 고백의 여정을 내밀한 아픔을 도려내듯 콕콕 찌르기도 하면서 조곤조곤하게 들려주며 그들의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손을 놓지 못하게 한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 모성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화두는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그 엄마는 인격을 부정당하는 착각에 빠져, 자기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틀림없이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왠지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깊은 곳을 들춰내는 불편함이 있을 정도로 엄마의 입장에도 공감을 하게 되는 모습이 나에게서도 느껴졌다. 이 작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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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누구나 모성에 대한 강한 집착력이 있다. 집착력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여자라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이 보상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누구든지 최선을 다한다. 사실 요즘은 그렇지 아닌 이상한 사람들도 잇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모성은 언제나 영원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이 소중함을 나의 자녀들에게도 물려줘야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키워야할 의미와 책임이 있다. 사실 의무, 책임 보다는 우러나옴이 더 강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냥 사랑스럽고 그냥 좋은 것이다. 책의 처음 부분에서 한 여고생이 다세대 주택에서 뛰어 내렸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불호가실한 상황에서 여고생의 엄마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기사를 시작으로 엄마와 딸의 회상이 시작된다. “너를 낳아서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했단다. 고마워. 너의 사랑을 이번에는 저 아이에게 쏟아부어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주려무나.” p74 엄마는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고지대 꽃들이 반발한 아름다운 집에서 태풍이 불고 집이 타던날 이 글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사랑하고 항상 딸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준 엄마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남게 되는 어린 딸과 어머니 그들은 할머니와 엄마를 잃고 시댁에 들어와서 살게 된다. 거기서 선택한 엄마, 엄마는 과연 딸을 구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엄마를 구하고 싶었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엄마와 딸 둘중에 하나를 구하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구할까? 당신은 누구를 구할것인가? 서로 어긋나는 엄마와 딸 두 사람은 생각과 다르게 서로 어긋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왜 생각한 대로 살지 않는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딸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엄마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로 행복하게 풀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다. 시집살이를 하는 엄마, 친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엄마를 시집살이 시킨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가만히 지켜본다. 엄마를 위할 사람은 나하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표현하는 것들로 인해 할머니가 엄마를 더 괴롭힌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불행이 많이 슬펐다. 그리고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데 마음같이 못한다. 더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도 남편이 월급도 적고 그리고 그 돈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하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딸 서로 사랑하면서 자구 어긋나게 된다. 그리고 이집에 자주 드나드는 시누이들 정말 얄밉다. 그 얄미움에 반박하지 못하는 엄마 딸만 고모들에게 얄밉게 굴게 되고 이 두 모녀는 자구 집안일만 하게 된다. 엄마는 논에서 밭에서 일하고 어린 딸은 집안일을 한다. 우리 집에서 이리 어린 나의 달이 할머니 구박에 이리 산다면 나는 가만있지 않았을 것 같다. 참 안쓰러웠다. 현대판 시집살이인가? 남편의 답답함이 더 속상하게 몰려온다. 엄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행복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친정엄마가 남겨준 소중한 손녀인 딸을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두 모녀의 어긋남이 끝이 없이 어긋나고 서로 방법을 말하는데 다르게 전해져 온다.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p222~223 딸이 회상에서 생각하는 부분이다. 참 가슴 아프게 전해져 온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아마 이런 상황에 접하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마지막에 최고로 얄미운 사람은 역시나 아버지였다. 어떻게 저런 부인을 두고 바람을 핀단 말인가? 이 작품의 끝으로 갈수록 더욱더 모녀의 어긋남이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결론을 알게 되는 딸. 그 딸이 외할머니가 선택한 사살이 자기를 구하기 위해 할머니의 목숨을 버린 사실을 알게 되는데 참 이상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면서 누군가에게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딸의 행동은 참 가슴 아프다. 엄마 용서해 주세요....마지막에 엄마가 부르는 ‘사야카’라는 소리가 참 따듯하게 느껴진다. 그래 딸아 너는 예쁜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나의 딸이란다. 이 책 『모성 』을 읽으면서 역시 저자인 미나토 가나에는 사람이 표현하는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을 읽고 반했는데 다시 이렇게 저자의 책을 읽다니 참 좋다. 고백에서 여러 사람의 고백을 알게되고 그들의 심리묘사가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모성을 읽으면서 엄마와 딸의 회상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흘러가는 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마지막 딸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엄마가 하는 말이 참 좋았다.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세요.” p281 나도 나의 딸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그리 말해주고 싶어진다. 이 아이는 내가 소중하게 아주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니 꼭 행복하게 만들어주세요. 아주 오래오래 말입니다. 처음에 걱정이 많았던 소설의 첫 부분이 마지막 결말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마음 따뜻한 글이 되어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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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감정이라고 말하는 '모성'... 너무나 당연시되어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모성'이란 감정에 관해 책이 출간 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이슈를 이끌어 내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 중 하나로 엄마와 딸의 관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셔서 늘 자식들 곁에 함께하지 못한 엄마를 두어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가질 시간이 부족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를 바라보니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좀 더 친밀한 시간을 많이 가질걸 하는 후회를 하곤 한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결혼하면 아이는 딸을 갖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나는 아들이 있다. 임신 사실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딸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7개월이 넘어서서 의사에게 듣게 된 이야기는 아들... 지금이야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순간에는 잠시 실망스런 감정이 들기도 했다. 막상 아들을 낳고 든 마음은 솔직히 너무나 작은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두려움을 더 느끼며 자식을 바라보았다. 자식을 키우면서 힘들 때 흔들리는 나의 감정과 양육방식으로 인해 수시로 내가 제대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책에서 늘상 보아오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미나토 가나에는 '모성' 작품 이후 작가를 그만 두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이번 작품에 깊은 애정을 들어내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당연히 규정지어 내려오는 감정으로 여겨지는 모성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인지, 아님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성에 관한 불편하지만 진실어린 이야기를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소녀가 자신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서 떨어진다. 이 사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한 규명을 밝혀지지 않았다. 다친 소녀의 엄마는 자신에게 딸은 금지옥엽이란 표현을 쓸 만큼 소중하게 키워냈기에 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엄마는 온전한 사랑을 느끼고 받았기에 밝은 빛이 나는 여인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 고향에 터를 잡은 내재된 열정이 있지만 어두운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여자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남자와의 결혼에 두려움은 없다. 그들만의 꿈의 집에서 행복한 시간에 자식까지 태어나 완벽한 가족을 이룬다. 엄마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가 가까이 있고 엄마에게 귀염 받는 딸이 있고 다정하진 않지만 든든한 남편이 있다.
이 가족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다. 태풍으로 인해 예사롭지 않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새벽.. 비로 인해 집이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하고 불까지 크게 번진다. 소녀의 할머니며 엄마의 엄마가 장롱에 깔려 있다. 여자는 딸보다는 엄마를 먼저 구하고 싶다. 허나 엄마는 여자에게 딸을 구하라고 부탁한다.
장난처럼 남편과 아들이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하냐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물론 반대의 질문을 가족들에게 하기도 하고... 진짜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와 자식이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이후 스토리는 남편을 따라 시댁에 들어간 여자와 딸이 서로를 보고 느끼게 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고압적인 시댁의 모습이지만 여자는 자신보다는 엄마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더 매달려 생활한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 답답하면서도 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딸... 허나 우연히 목격하게 된 일이 계기가 되어 천둥치는 그 날 밤의 진실이 들어나면서 딸은 엄마에게....
읽는 내내 불편 했지만 나 역시 사회가 만들어진 모성에 나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당연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자꾸만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엄마의 딸이고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는 나에게 모성이란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재밌게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 데뷔작 고백이나 야행관람차와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도 좋지만 잔잔하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모성 역시 나에게 있어 저자의 작품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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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너무 이상해서 한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나서야 아...하는 감탄이 나오는 좋은 내용인데 뒷표지 문구가 잘 이해가 안되고 번역이 너무 이상해서 잘 이해가 안가고 잘 안 읽힌다. 미나토 가나에 책은 원서로 몇 권 읽어봤는데 이 작가는 문체가 굉장히 간결하고 사실적이라서 정말 술술 잘 읽히는 작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번역판이 인기를 끈거다.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번 작품은 번역이 너무 이상하다. 원서에 충실한 나머지 문장구조를 바꾸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만한 문장들을 너무 날 것으로 그대로 배치해서 '아 내가 번역서를 읽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용은 좋았으나 책 편집이 그것을 뒷받침 못해줘서 아쉬운 책이다. - 언제쯤이면 예스24의 책 받고 써주는 리뷰가 사라질까? 진짜 책받고 그저 좋은 말만 써주는 리뷰들 때문에 책 살 마음이 사라진다 ㅎㅎ 내가 리뷰를 올리자마자 스타블로거들의 행차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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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모성' 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골자는 '모성' 이라는 것이 여성 DNA 새겨진 유전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의 가슴 절절한 모성과 '엄마의 희생' 이 강요되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다큐에서는 '모성'이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이고 출산 후 아이와 엄마가 만들어가는 정서적 유대라는 점을 밝히며 아이를 낳고 (당연히 생기게 될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모성' 을 느끼지 못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들에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이 다큐를 본 후라서인지, 미나토 가나에의 목소리가 더욱 무겁게 와닿았다.
미나토 가나에는 집요하다. 미나토 가나에가 집필한 책들이 거의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그녀의 특색있는 문체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품 '모성'의 경우 그녀 특유의 문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고 자신의 딸을 금지옥엽으로 키워낸 주인공. 딸을 금지옥엽을 키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주인공.
집요하게까지 느껴지는 문체의 집중력으로 결국 독자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화자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이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광끼어린 애정과 집착이 비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꼭꼭 씹어 음식을 삼키듯 섬세하게 풀어낸 주인공의 독백을 따라다가보면 오히려 주인공에게 설득당하고 만다. 모성을 흉내내는 주인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고백> 이후 정말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소설을 읽은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했다.
모성의 경우, 스토리와 문체도 참 좋지만, 무엇보다 번역이 마음에 들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들과 비교해봐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담담하게 풀어가며 큰 감정선없이도 극단적인 흐름을 잘 전달하는 저자의 매력을 한국어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여 읽는 즐거움이 더해진 것 같다.
저자의 경우 <고백> 이후의 작품들이 실망스럽다는 평을 많이 받았지만, <모성> 으로 실추된 (?) 명예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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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과 2009년. 데뷔작 고백으로 일본과 한국 소설계를 뒤흔들었던 미나토 가나에가 신작소설 모성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미나토 가나에... 고백을 읽고, 리뷰를 두 편이나 쓸 정도로 재미읽게 읽고, 지금도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 5안에 꼽는 정말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으니 기다릴만도 하지... 거기에 2013년 출간이라... 소설가들의 진검승부의 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해인대. 자신 있나보다. 미나토 가나에.
그녀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걱정이 앞서긴 했다. 출판사가 바뀐것이다. 어느정도 인기있는 작가의 새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는데, 출판사가 바뀐다는 것은, 첫번째, 출판사가 망했거나, 두번째, 미나토 가나에의 인세가 생각보다 비싸거나, 세번째, 그녀의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거나, 네번째, 미나토 가나에의 신간이 재미 없다거나. 넷 중 하나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이후의 작품 중 고백을 뛰어넘는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미나토 가나에의 인세가 올랐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럼 나머지는....흠... 물론, 일본 소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신선하고, 재미있을지 몰라도, 2010년 부터 현재까지는 명함만으로도 영업이 되었던,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미여사 역시 기존의 작품을 뛰어넘는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질 않는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우려의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 미나토 가나에의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이야기??? .... 잡설은 그만하고. 이제 본론으로....
"이 작품 이후 작가를 그만 두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다." - 미나토 가나에, 모성
미나토 가나에가 칼을 간 모양이다. 본인도 알고 있을게다. 고백으로 만들어진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사라짐을.... "나도 이 책을 읽고, 아니라 생각되면, 다시는 당신 책 읽지 않을테요... " 이 각오로 모성을 읽었다.
한 여고생이 다세대 주택에서 뛰어내리며, 소설은 시작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단순사고인지 모를 상황에서 여고생의 엄마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이렇게 된 것이 믿을 수 없다"고 전한다. 과연 딸과 어머니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던걸까? 안타까운 기사를 시작으로 엄마의 고해성사와 딸의 회상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오호라. 미나토 가나에가 칼을 제대로 갈긴 갈았구나. 자신의 장기인 독백체를 꺼내든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독백체와 그 독백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 사람의 심리상태를 발가벗기는 것은 미나토 가나에의 최고의 장기 아닌가?
모녀의 비극은, 남편의 프로포즈였던 아름다운 집과 자신의 전부였던 어머니를 산사태와 화재로 잃으며 시작된다. 얄궃은 운명의 장난처럼 어머니와 딸, 둘 중 한명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딸을 구하고, 어머니를 잃은 엄마는 생지옥으로 떨어진다. 집을 잃는 바람에 시집에서 부모님과의 동거가 시작 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 모든 상황속에서 침묵하는 남편과, 손발 안 맞는 딸은 그녀에게 힘이 되주질 못한다. 그리고 연이어 발생되는 사건들. 그 속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엄마는 딸을 품으려 한다. 그게 사랑이든, 아니든...
엄마의 독백 후 이어지는 딸의 회상은...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우리네 아이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모성을 읽으며 연거푸 커피 세 잔을 마셨는지도... 꼬일 대로 꼬여버린 두 모녀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침묵하는 아빠. 그리고 외할머니 죽음에 얽힌 과거가 서서히 밝혀지고, 그리고 충격적인 아빠의 현재. 그리고 이 책의 세번째 화자인 고등학교 선생님의 진실은...??? 미나토 가나에의 강력한 한방이었다.
왜 미나토 가나에가 모성을 쓰고, 작가 타이틀을 걸었는지 이제는 이해가 간다. 화자의 독백을 교차 편집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일본 미스터리 특유의 트릭과 반전은 강력했다. 여기에 자녀 사랑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을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
PS. 모성의 모든 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릴케의 시가 발췌되어 있다. 화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시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모성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났다. 왜 일까? 그 이유는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을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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