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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이해'는 나의 대학 1년 교양선택과목 중 하나였다. 과목명에 음악이 들어가니 음대에서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딱히 음악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환경에 음악이 빠졌던 적은 없었다. 어릴 적 책장을 열심히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탈리아 가곡시리즈 테이프로 카타리를 열심히 들었고 독일가곡악보집에서 슈만과 슈베르트를 만났다. 그들이 한 생애동안 아주 불운했다는 걸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알게 되었다. 음악감상시간이 있어서 클래식 음악을 일주일에 한번은 만났다. 내게 주어진 음악적 환경은 이게 전부였다. 음반가게에 10곡씩 때론 12곡씩 녹음을 맡기기도 했고 용돈을 모아 LP판을 사서 모으기도 했다. 음악을 듣는 딸에게 부모님은 처음엔 라디오를 다음엔 워크맨과 이어폰을, 그리고 언젠가 겨울 크리스마스에 인켈 오디오세트를 사서 세 명의 딸방에 들여놔 주셨다. 기계가 생겼으니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직접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고 나눠 음악을 들었다. 베토벤의 로망스가 귀에 들어오던 날 나는 악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음악가가 어쩌면 이리도 여리고 섬세한 곡을 만들수 있었을까 참으로 희한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미리 규정짓기를 하는 것이 생각을 압축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베토벤(1770-1827)이 살았던 시대에 그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처럼 그의 음악은 뭔가 특별했고 색달랐다. 아무도 그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밀어내려는 의도도 많았다. 고전주의 음악과 낭만주의 음악 사이의 과도기적인 음악가라고 말을 하지만 좀 어렵다, 이러니 음악책을 손에서 놓는 것이 아닐까. 고전주의를 알아야 하고 낭만주의를 알아야 하니 말이다. 나도 잘 모른다. 제대로 설명할 줄도 모르지만 하이든을 시작으로 모짜르트의 음악이 고전주의라고 한다면 그 형식을 달리하는 자유로움과 혁명적인 거센 느낌의 베토벤은 그 시대 락과 같았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그의 교향곡 1악장은 아주 강하게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향곡 3번 [영웅]이나 5번 [운명]을 들어보라! 얼마나 강렬한 시작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의 9번은 어떤가. [합창] 그 누구도 하지 않던 일을 베토벤은 시도했다. 교향곡 말미에 인간의 목소리를 집어넣은 일이다. 대규모의 합창과 더불어 각 성부의 가수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일이 아니고 뭔가. 독일의 자랑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일년에 딱 한번 일회 공연을 한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되었다고 사인한 날 10월 3일에 독일 전 지역의 무대에서는 [합창]을 연주한다. 우리처럼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거나 해내야 하는 걸 했을 때 방송에서 틀어주는 환희의 송가는 그들에 비하면 아주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만큼 대중적이라 생각해야 할까! 베토벤을 이쯤 알고 브람스 (1883-1897)교향곡 1번을 듣는다면 그 시작이 발끝에 몰려있던 피를 머리쪽으로 끌어올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강렬한 시작이니 들어보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이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고.... 나는 음악관련된 일에 관심이 많다. 음악듣기를 좋아한다. 음악하는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했다. 나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먹물의 속성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나에게 음악의 기술을 알려준 사람이다. 노래 , 피아노, 기타의 기초를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음악을 못하는 나이지만 내가 그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은 음악 비평이다. 역시 내 피에는 먹물의 속성이 흐른다.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에 다른 이의 지식을 얻어들어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글쓰는 이들이 말하는 구라! 나는 그런 것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요아힘 카이저와 같은 저명한 음악비평가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읽을까 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가 사랑한 클래식]은 애초에 클래식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한 질문들을 간추려 저자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영상물이었는데 이를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아주 간결하고 깔끔한 책이다. 질문하면 마구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명확하고 적확한 답변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음악적 경험과 저자만의 감성도 잃지 않는다. 음악가들과 지휘자들의 이야기, 오페라 가수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등도 꼼꼼하게 읽어준다. 독일스러운 맛도 풍긴다. 한 질문의 답변 말미에 이런 음악을 들어보라고 추천한다. 나는 대부분 들어보았다. 다시 듣기를 하기도 하고,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빈터라이제(Winterreise), 우리에게는 '겨울나그네'라고 명명된, 원제는 '겨울여행'인 24곡의 연가곡 연주를 들었다. 카이저가 묘사한 그녀의 Schnee(쉬니),'눈'의 독일 발음이 공포였다는 그 부분을 나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녀의 연주는 탁월했다. 5번째 곡 '보리수'를 얼마나 고요하고 청아하게 부르던지, 보리수를 부르는 그 시작부터 내 등줄기에 소름이 쏴악 한번 지나갔다. 너무도 아름다운 시점에서 나는 소름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칭송하던 카이저의 모습을 영상으로도 만났다. 들어봐야 아는 일이니 루드비히의 '겨울여행'을 유튜브에서 라이브연주로 들어보길 바란다. 수년동안 오페라 보기를 했기에 이해가 빨랐고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니벨룽엔의 반지]가 그 예이다. 비록 바이로이트에서는 아니지만 바그너의 오페라를 전부 봤다. 오페라 한편당 장장 5-6시간 걸린다. 서곡인 [라인의 황금]이 세시간이 안되고 그 외에는 다 장편이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에서는 독일민족주의를 드러내는 연출이 종종 보인다. 오페라 파이널에 등장하는 바그너 오페라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나오고 독일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연출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그러나 카이저는 그 부분에서도 흔쾌히 답한다. [파르지팔], [로엔그린], [탄호이저], [방황하는 홀란드인],[트리스탄과 이졸데]등은 어떤가. 바그너를 좋아한다기보다 어디까지인가 하는 그런 오기가 발동해서 끝까지 앉아 보는 편이다. 졸면서 보는 일이 흔했고 지금 다시 보기 한다면 예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 것 같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졸지 않고 충분히 즐기고 싶다. 그 외에 평생 불운한 청춘이었던 슈베르트이야기, 지휘자와 연주자의 이야기, 음악 용어들이 뜻하는 바와 오페라에서 연출의 비중이나 가수들의 역량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서술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나이듦에 따라 클래식 음악 듣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자꾸 한다는 의미에서 그 쟝르가 무슨 문제가 될까마는 그 중에 음악이 들어있다면 더 좋다는 입장이다. 객관적인 음악듣기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그저 음악을 듣는 일이 아닐까. 언젠가 들었던 음악들이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들린다면 그걸로 행복하다. 내 귀의 클래식이 들리는 일은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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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부터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부문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 앎을 넓혀보려는 노력조차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공부를 해볼 기회가 생기더라도 바탕이 얇은 탓에 이해하는데 힘이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무슨 공부든지 다 때가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하다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처럼 전통 클래식에 관한 공부기회가 생겼습니다. ‘음악비평의 교황’이라 불리는 요아힘 카이저의 <그가 사랑한 클래식>을 읽게 된 것입니다. 1928년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난 요아힘 카이저는 음악학, 독문학, 철학, 사회학(테오도르 W. 아도르노에게 사사)을 전공했고 <쥐트도이췌 차이퉁>에 입사한 이래 클래식 음악전문 저널리스트로 50년 넘게 음악비평을 싸왔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로 꼽히며, 1977년부터 1996년까지는 슈투트가르트 음악·조형예술 국립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랑한 클래식>은 요아힘 카이저의 클래식 에세이입니다. 특히 클래식 애호가들이 그에게 보내온 질문들에 대하여, 독일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췌 차이퉁>의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카이저의 클래식 수업’이라는 비디오 칼럼을 통하여 답을 주어왔는데, 2년여 간 연재된 칼럼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녹아나는 글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되어 어렵게만 생각되는 클래식음악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4분 33초 동안 아무 음도 연주하지 않는 휴식을 둔 <4분 33초>라는 피아노곡을 설명하면서 휴식마저도 음악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항상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으며 그 안에 움직임을 품고 있다. 그 속에서 무언가 감동적이고 감정적인 것, 무언가 우울하거나 경쾌한 것이 생겨난다. 말하자면 음악은 어떤 내용, 중요한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휴식, 휴지부는 영혼의 숨고르기와 같다.(33쪽)”
<그가 사랑한 클래식>을 읽으면서 몇 차례 눈길이 멎은 것은 바그너에 대한 의문들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이 과연 독일 사회에서 용인되어도 좋은가, 라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반유대적이며 아돌프 히틀러가 숭배하던 음악가를 진지하게 대해도 괜찮은 것인가의 문제였다.(77쪽)” 역시 일제시기에 친일 행적을 보였던 예술가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나치의 기수’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독일국가민주당(1964년 창당한 독일의 극우정당)을 지지할 위험에 빠지게 될까?(207쪽)”라는 질문에 대하여 “독일국가민주당에 표를 던질 이유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자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 듣는다고 해서 갑자기 그 당의 지지자로 둔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정치적 입장의 토대가 될 수 없다.(208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모두 암기해서 연주해야만 하나?”라는 질문에 대하여 연주자의 기억력에 관한 글도 흥미롭습니다. 연극제작에 참여하다 보면 배우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배우들의 대사를 모두 외울 수 있게 됩니다. 오랜 시간을 배우들과 같이 연습을 진행하다보면 절로 외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훈련을 거치면 악보에 담은 연주내용을 모두 암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프란츠 리스트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외우는 일은 절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반면 요하네스 브람스는 한 번도 악보를 연주회장에 들고 간 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고 하구요.(91쪽)
조금 아쉬운 점은 57꼭지의 이야기들 가운데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던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바그너의 오페라의 경우 ‘클래식, 들어볼까요?’에서는 볼프강 빈트가센이 부르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 중에서 <머나먼 나라에>를 들어보라 합니다. 느끼신 것처럼 쉽게 구할 수 없는 음악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음악들을 따로 모아 CD로 제공했더라면 이 책이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허영한 교수님이 오라토리오의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헨델의 성경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6083672>에서처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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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대답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은 던져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게오르크 크아이슬러의 말로 이책 도입부에 나온 문장으로 나역시도 와닿는 문구이다. 저자에 의하면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의 흥미를 끌고 있으며 , 그가 이미 그것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란다.
이책의 저자 독일 최고의 음악 비평가 요아힘 카이저는 '음악 비평의 교황'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독일에서 비평계의 대가이다. 신문사 편집부에서 독자들로부터 궁금한 질문을 받아 하나씩 답변했던 것들을 영상으로 찍어 그의 블로그에 올렸던 비디오 칼럼이 바로 '카이저의 클래식 수업'이다. 2009.5-2011.1월까지 진행된 칼럼이었고 이것을 다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는 59년부터 50년넘게 음악비평가로 활동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하인리히 뵐과 함께 <47그룹>의 멤버로 진보적 문학운동에 참여하였다. 20년가까이 슈투트가르트 예술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고 뮌헨의 김나지움, 문화센터, 시민학교등에서 수십년간 다양한 주제로 강의, 라디오 방송의 클래식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우리시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바그너와 함께한 인생' '카이저의 클래식' '내이름은 자라스트로' '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와 그 연주자들' ' 상상의 대화' '나는 최후의 모히칸족이다'가 있다.
음악에 관련된 책으로는 ' 내가 사랑한 클래식 1,2,3'를 아직 도서관에서 읽고있는 중이어서 빌려온 것은 내기억으로는 처음이지 싶다. 막연히 초등학생때부터 연주했던 기억만으로는 내가 작곡가들에 아는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라도 음악사와 그에 관련된 제반지식에 관심을 갖으며 알아 가고 싶다. 이책을 읽으며 아주 좋은 방법을 생각했는데 바로 , 그챕터에서 나오는 음악에 대해 유투브에서 바로바로 찾아가며 같이 듣는것이다. 지휘자의 표정과 연주가의 모습을 보면 저자의 글귀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대주교나 수상보다 더 유명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르디의 <레퀴엠>을 같이 들으니 그가 얼마나 에너지틱하고 활력넘치는 지휘를 했는지, 백발이 성성한 그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읽는 책은 내마음에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또한 세계적인 명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글도 재미있었다. 그는 손떨림 증상이 있어 그런지 지휘를 아주 천천히 할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머뭇거림이 곡시작전에 꽤나 길어 심지어 단원들은 그의손이 연미복 조끼의 세번째 단추쯤에 도달하면 시작한다던지, 더이상 기다릴수 없겠다싶을때 시작하기도 한다는 말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
글렌 굴드에 대한 잘 모르나 막연한 호기심과 관심역시 이책을 통해서 유발되었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로 60년평생 지나치게 똑똑한 피아니스트는 필요이상의 말과 글로 자신을 망쳤다고 한다. 오만하리만치 도발을 지행했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글이나 음악을 좀더 접해봐야겠다.
절대적인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 그녀가 부르는 비제의 <카르멘>중에서 <하바네라>를 같이 들으며 챕터를 읽었다. 그녀의 풍부한 표현력과 자신감이 차고넘치는 매력적인 표정과 외모에서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저자는 실제로 파리에서 공연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노르마역을 맡은 그녀를 보았다고 한다. 너무도 강렬하고 생생한 무대, 풍부한 표현력에 비평계의 거장조차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그녀의 무대를 옛영상으로만 봐야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찾아서 볼것!: 카라얀과 함께한 도니체티의 벨간토 오페라<람메르모르의 루치아> 영화감독 루치노 비스콘티가 연출한 <라 트라비아타>의 밀라노 버전
소프라노 안나 네크렙코에 대해선 실력보다 미모덕에 성공했다고 서술한다. 궁금해져 또한 그녀의 공연 - 베르디의 < 라 트라비아타>중에서 <언제나 자유롭게>를 함께 들으며 읽었다. 카이저의 말대로 아름다운 서구 미인이었다. 내가 그녀의 실력을 평가하기엔 아직 듣는귀가 약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이저는 그녀의 실제공연도 몇번인가 보면서 형편없는 실력이라고 가차없이 서술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주목받는것에 대한 뭔가 특별한 것에 대한 가능성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책 말미에 역자의 말에서 그는 평생 음악계에 몸담은 거장답게 다양한 음악적, 인간적 경험을 녹여낸 깊이있고 따뜻한 시선의 글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러게.. 우연히 집어든책 치고는 거장의 훌륭한 글을 접한것 같아 나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더 읽어야지!
*비브라토에 대한 최근의 negative적 견해에 대한 일침- 비브라토는 항상 음악적 표현의 일부였다.라고 경고하기도
*실내악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인 현악 4중주는 인간의 목소리를 모델로 한다. 제1/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각각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에 해당한다.
*음악에서 휴지부는 순간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휴지부가 색채를 띠거나 음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다. 그안에 위대한 작곡가가 심사숙고해서 빚어낸 영혼의 움직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내가 몰랐던 휴지부에 대한 이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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