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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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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복음이시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땅에 복음으로 가득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복음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제자를 세우셨다. 본서는 하나님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제자,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사는 제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자가 누군인지를 보게 만든다.   본서는 제자의 정체성과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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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복음이시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땅에 복음으로 가득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복음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제자를 세우셨다. 본서는 하나님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제자,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사는 제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자가 누군인지를 보게 만든다.

 

본서는 제자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보게 한다. 정체성을 잃기에 사명을 잃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잃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예수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제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는 사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명을 잃게 되면 결국 밖에 버리워지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본서는 정확한 제자의 정체성을 확인해 준다. 무엇이 자신들을 세워가는 것인지에 대한 제자도를 분명하게 인지 하게 한다. 제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싸움을 싸우게 된다.

 

본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제자, 제자도에 대한 모습을 보게된다. 제자를 잃게 된 주님은 제자를 다시 찾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수정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제자로서 살아가도록 제자도를 중심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르쳐 주셨다. 그들이 진정한 삶의 변화를 가지며, 복음의 사명자로 살아가도록 주님은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주셨다. 성령님을 통해 그들은 복음의 깊은 정신을 부여받게 된다. 생명을 구하고 생명을 주신 주님을 전하는 복음의 제자들은 성령충만한 이들이었다.

 

또한, 본서는 복음을 위해 세워진 제자들의 삶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보다는 공동체적 삶을 실천했다. 그들에게 복음은 하나를 이루게 했다. 각자의 삶속에서 각자의 생각과 목표를 위해 살아갔지만 성령을 통해 그들은 하나의 삶으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공동체적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이었다. 복음을 위해 하나가 된 실천적 삶이 그들의 삶이며 제자도이었다. 복음은 그들의 전부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의미요 가치였다.

 

본서를 통해 다시금 제자의 삶과 사명이 무엇인지, 제자가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다. 제자들의 삶에서 바라본 예수님을, 그들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이달의 사락 p***1 2013.09.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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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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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도슨 <복음 중심의 제자도> 국제제자훈련원     큰 아이가 연필을 너무 힘주어 잡아 조금 지나면 손가락이 아파 글씨를 제대로 쓰기 어려워 지는 것을 옆에서 보기에 정답이 보여 쉽게 지도해 줄 수 있듯이, 제자도에 관하여 일관되게 그 길을 가기는 어려운듯 보이는 제자도에 힘쓰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도에 관한 정답? 이랄까? 참고서 같은 그런 책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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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조나단 도슨 <복음 중심의 제자도> 국제제자훈련원

 

 

큰 아이가 연필을 너무 힘주어 잡아 조금 지나면 손가락이 아파 글씨를 제대로 쓰기 어려워 지는 것을 옆에서 보기에 정답이 보여 쉽게 지도해 줄 수 있듯이, 제자도에 관하여 일관되게 그 길을 가기는 어려운듯 보이는 제자도에 힘쓰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도에 관한 정답? 이랄까? 참고서 같은 그런 책을 좀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것이 마치 큰 아이의 글씨 쓰기와 같이 너무 힘이 들어가 하나 하나 짚어가며 다시 읽고 묵상을 하다보니 읽는 작업이 꽤나 오려 걸렸다.

 

 

책 읽기 작업을 다 마치고 부록에 수록된 복음적인 동기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샘 도슨의 책<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하고 순전한 헌신> 과 데이비드 파울리슨의 "엑스레이 질문"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나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복음 중심의 제자도에 올바로 서있지 않은 것을 피하지 않고 바로 직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제자도'란 결국 다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 곧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것이다고 결론짓는다.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어느덧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나이지만 마땅히 해야할 신앙의 삶에서 한가지만 즉 행위로써만 얻어지는 결론에 대해서 치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책을 대하자마자 접하고 그래서 항상 기쁨이 없었구나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초는 하나님 자신의 완전함이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기쁨을 누린다. 그분만이 수만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돋보인다." p.120

 

또 말하지만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제자 삼는 기술에 치중하고 이것을 배우려고 오늘도 복음을 담당한 이들은 프로그램을 쫒아다니며 분주하다. 그리고 열심히 프로그램을 전파한다. 시작은 그리스도였으나 어느덧 그분이 주신 선물에 치중하고 있는 것.

 

조나단 도슨 목사님이 직접 실천하고 계시는 파이터 그룹에서 하고 있는 '복음 숙제'에 대해서 210쪽부터 자세히 언급해주시는 부분에서 복음이 말하는 부분을 참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적 욕망: 참된 친밀감을 위한 싸움

복음은 말한다: "네가 가진 것, 예수님으로 기뻐하라. 그러면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허영: 참된 가치를 위한 싸움

복음은 말한다: "예수님이 너를 위해 아름답게 행하셨다. 그러니 너의 가치는 무한하다."

 

교만: 참된 신뢰를 위한 싸움

복음은 말한다: "네 자신감(확신)은 너의 충족함에서 오는게 아니라 너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온다."

 

분노: 하나님의 방식을 위한 싸움

복음은 말한다: "예수님은 주님이다. 그러기에 나의 환경을 통제할 권한은 그분에게 있다. 나는 그분을 신뢰함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는다."

 

 

세상을 살아가며 얻었던 지식과 복음이 말하는 것을 비교하니 점점 나의 이성이 복음에서 떠나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게 해왔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에 회심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젊은 이성인을 보면서 "몰라서 그래" 라고 치부하기보다는 내가 그 한권의 책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깨달아 그들에게 전하여 줄 말이 항상 있어야 하리라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g*******s 2013.10.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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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중심의 제자도」조나단 도슨, 국제제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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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전도하여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사이클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재생산, 배가의 원리 등을 배웠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단지 전도하는 도구에 불과합니까? 이런 회의(懷疑)가 생겼습니다. 그 단체에서 나와 후에 지역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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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전도하여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사이클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재생산, 배가의 원리 등을 배웠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단지 전도하는 도구에 불과합니까? 이런 회의(懷疑)가 생겼습니다. 그 단체에서 나와 후에 지역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좀 더 균형 잡힌 제자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도 안에 분명 전도하는 삶이 포함되지만 재생산이 제자도의 유일한 중심은 아닙니다.

  조나단 도슨의 <복음 중심의 제자도>는 제자도에 대한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합니다. 특히 ‘Part1, 다시 생각하는 제자도’에서는 제자도에 대해 겪었던 나의 당혹감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제자의 정체성을 세 부분, “합리적(rational), 관계적(relational), 선교적(missional)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합리적”이란 주님의 제자는 ‘제자(마데네스)’라는 이름의 뜻처럼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관계적”이란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진리와 은혜 안에서 예수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선교적”이란 주님의 제자는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결국,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복음)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저자는 제자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란, 복음을 배우고, 복음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pp. 58~59). 매우 명쾌한 정의입니다.

  이 책은 복음과 구원에 관한 통합적인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은 제자를 만들뿐 아니라, 제자로서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는 전도 받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전 과정 속에 전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지향하는 수직적 제자도(vertical discipleship)과 하나님의 선교를 지향하는 수평적 제자도(horizontal discipleship)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통합형 제자도(diagonal disciple)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Part2, 제자의 마음 다루기’에서는, 우리가 제자 훈련 중에 얼마나 극단적이 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적이 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영적 방종의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해결책은 ‘복음적 동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복음적 동기는 첫째, 종교 감정, 둘째, 하나님의 경고와 약속을 믿는 믿음, 셋째, 회개를 통해 표현된다(p. 135)”고 할 수 있습니다. ‘Part3, 복음 실천하기’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선교로의 ‘세 회심’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세 가지 은유, “추수, 몸, 성전”을 언급합니다(p. 70). 그리고 이런 ‘복음 중심의 제자도’를 이루기 위해 ‘파이트 클럽’(Fight Club)을 시작하라고 도전합니다. 이 파이트 클럽은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부요함을 알아가고, 죄와 싸우는 모임입니다.

  이 책은 제자도에 관해 매우 성경적이고 또한 실천적인 책입니다. 나처럼 제자훈련에 대해 혼란을 겪었던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구원을 이루어가고, 온전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제자가 되어가고 있고,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l******y 2013.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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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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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중심으로 제자 도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제자된 이들은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복음의 핵심과 제자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때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헌신할수 있을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복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한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도 못하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중심으로 교회안에서 공동체를 잘 이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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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중심으로 제자 도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제자된 이들은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복음의 핵심과 제자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때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헌신할수 있을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복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한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도 못하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중심으로 교회안에서 공동체를 잘 이뤄나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제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나갈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지상명령인

복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예수님이 제자 삼았던 그 모습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28;19)' 이 말씀이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심이다.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의 모습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제자는 사명을 맡은 자이다.

세상 끝난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리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시작이 되시고

끝이 되신다 라고 하셨기에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한다.

 

복음으로 세워진 제자도는 교회와 공동체적 삶을 실천했다.

성경에 기초한 제자도의 모습을 보면서 복음안에서 선한 믿음의 싸움을 통하여

제자도를 형성해 나가며 복음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에 영혼을 사랑하며

공동체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복음안에서 제자삼기의

삶을 발견해 나갈수 있음을 보게 된다.

 

많은 교회들이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전도하며 선교

한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초한 복음의 참된 의미와 복음중심의 제자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될때에 진정한 복음중심의 제자도를 형성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명령에 제자삼기의 사역을 감당할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능력이 우리안에 함께 할때에 제자삼는 사역에

주님이 역사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복음중심의 제자 삼음과 공동체을

이뤄 나가는 제자의 모습들을 함께 할 것임을 생각해 본다.

 

복음을 통해서 진정한 제자도의 동기와 공동체의 의미를 갖게 해주고

찾아주며 성령께서 도우시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적인 기초위에

복음의 중요성 복음의 분명한 뜻을 바로 이해하며 제자훈련을 배워갈수

있는 시간이 됨을 본다.

j*****1 2013.09.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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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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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80년대를 전후하여 제자훈련을 해 왔다. 이 제자훈련이 성숙인가? 복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개 교회, 각 단체마다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각 개인의 훈련에 임하는 자세에 따라서도 많이 다를 것이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자훈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자훈련 안한 단체가 없었고, 교회마다 제자훈련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그런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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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80년대를 전후하여 제자훈련을 해 왔다. 이 제자훈련이 성숙인가? 복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개 교회, 각 단체마다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각 개인의 훈련에 임하는 자세에 따라서도 많이 다를 것이다.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자훈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자훈련 안한 단체가 없었고, 교회마다 제자훈련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그런데 결과는 한국 교회의 쇠퇴로 돌아 왔다. 무엇때문인가? 제자훈련의 문제는 없었는가? 그나마 제자훈련을 했으니까 이정도만 줄었다고 항변할 것인가? 그렇게도 많은 훈련생들이 영혼구원에 포커스가 맞춰진 훈련을 받았다면 분명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훈련의 보완점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가? 내가 느끼기는 최종 꼭지점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전도도, 영혼구원도, 생명을 살리는 것도 강조했고, 중요시 여겼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개인의 성숙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제자훈련의 중심축을 바꾸어야 한다. 영혼구원으로, 생명 살리는 축으로 변환시키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

 

이 책은 제자훈련에 있어서 더 근본적인 면들을 파헤치고 있다. 제자훈련 하는 목적인 배가인가? 성숙인가? 저자는 청년 시절에 한 여성을 알게 됨으로 성적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무던 애를 썼지만 결코 되지 않았다. 즉 제자도를 성숙으로 본 것이었다. 그러나 성숙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어떤 사람은 배가로 본다. 즉 전도로 본다. 제자훈련 하는 목적이 오직 전도라는 것이다. 영적 성결 따위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전도만 되면 되지 그 사람의 경건과 도덕과 영성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분리를 ‘복음 나누기’라 부른다. 성경은 신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보다 ‘제자’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제자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기본 범주다. 우리는 먼저 제자이고, 그다음에 부모이거나 피고용인, 목사이거나 집사, 배우자다. 제자는 신분(정체성)이다. 나머지는 모두 역할이다. 우리의 역할을 일시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분은 영원하며 경이롭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를 확실히 정의하는 게 더없이 중요하다. 제자라는 의미에서 전도와 제자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즉 전도 아니면 제자도를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식이다. 제자도에서 은혜의 복음을 제거하고, 전도에서도 복음의 능력은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제자라는 의미를 도덕적 성적표를 받는 것으로나, 복음을 천국을 보증하는 예약 티켓으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잘못된 복음관을 제자도에 적용하면, 복음은 전도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결과 제자도는 뭔가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신학이나 경건, 사회정의 같은 뭔가 더 ‘진보된’ 것ㅇ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자도를 전도와 분리한다. 이처럼 전도와 제자도를 분리해서 본 것은 지상명령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이든, 그리스도인을 성숙시키는 사명이든, 이 둘 중 하나가 지상 명령의 중심이다”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해석은 빈혈에 걸린 복음을 낳는다. 지상 명령은 바로 복음 중심이다. 이젠 통합하는 복음이 되어야 한다. ‘복음 중심의 제자도’는 전도와 제자도를 분리하기보다 통합해야 한다. 복음을 제자도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을 수직적 제자도로 볼 수 있다. 즉 복음으로 변화된 제자들이 경건, 기도, 예배, 성숙에 기쁨을 느끼는 삶이다. 다음은 수평적 제자도, 즉 하나님의 선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즉 선교 중심의 제자도를 말한다. 이젠 통합형 제자도로 나아가야 한다. 통합형 제자도는 경건이나 선교가 아닌 예수님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도는 허물어지고, 해체되며, 실망스럽게 된다. 복음은 제자도의 중심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복음의 좋은 소식을 믿을 때, 제자도는 우리를 그분의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고 깊이 통합한다. 그분의 주 되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그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서는 경건한 행위나 선교적 행위가 아닌 삶 전체를 드려 그분께 헌신하게 된다.

 

제자도는 형상을 위한 싸움이다. 남자나 여자나 싸우는 것을 좋아 한다. 남자는 스포츠, 격투기, 죽이는 게임 등등, 여자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 다른 여자보다 더 예뻐 보이고자 하는 욕망, 인기를 끌고자 하는 시기심 등이 싸움에 갈망을 보여준다. 그런데 인간적인 보이는 형상을 위한 싸움을 우리를 더욱 더 괴롭게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자 하는 것은 닮아도 닮아도 기쁘고 행복하다.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도로 나아가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 성경은 그래서 곳곳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세상의 것들과 싸워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싸우라는 것이다. 즉 악한 영들과 싸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고 보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뒤틀린 동기가 있다. 제자도란 의미를 지나치게 율법을 적용하여 정죄한다. 아니면 자신의 죄를 고해성사하고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제자도를 죄짓지 않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자들끼리 사실 책임관계를 맺고 서로 죄를 고백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등의 고상한 목적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책임 관계가 빈번히 규범 지키기 혹은 규범 깨기에 기초한 관계로 전락한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규범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람들에게 벌을 준다. 반면 반항적인 사람들은 서로의 실패를 못 본척하며 은근슬쩍 넘겨 버린다. 둘 모두 규범 중심이다. 종교적인 사람은 규범을 지키려 들고, 반항적인 사람은 규범을 깨려 든다. 우리는 ‘책임을 일삼는 모임’에 속했던 경험이 있든 없든, 모두 규범을 지키거나 깨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모든 제자는 ‘종교적 행위’ 혹은 ‘영적 방종’으로 기운다. 어떤 제자는 두 극단을 오간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열심히 살면 인정해주실 것을 기대하거나, 선교적 관점에서 전도를 열심히 하면 좋아 하실 것을 기대하는 착각에 빠진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게 아니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주인 삼으려한다면, 제자도의 중심에서 복음을 제거한 셈이다. 복음의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그분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섬긴다.

 

복음은 제자도의 중심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지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신 게 아니라 진정한 선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가르치셨다. 왜 마음인가? 마음은 인간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중심이다. 예수님이 지적하셨듯이 우리의 마음이 선하든 악하든 이는 동기의 창고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바로 이곳, 곧 동기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동기가 행동보다 중요하다. 시34:8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고 했다. 맛본다는 말은 미친 듯한 감정에 빠져든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진정한 감정, 곧 하나님을 진심으로 흠모하는 것으로 우리는 변화시킨다. 종교 감정과 복음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거저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맛본 사람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분을 좋아 하고 이유 없이 존경한다. 그분을 따른다. 이런 사랑과 존경의 감정을 가진 제자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선물을 주신다. 회개는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죄에서 돌이키는 일은 우리의 일이고,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회개는 믿음과 동떨어진 다른 무엇이 아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성령님이 임하신다. 성령이 없이는 복음적 거룩도 없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모든 제자로서의 경건과 복음 전파의 삶의 핵심이다. 성령님은 ‘결정하기’와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도우신다. 즉 어떤 일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세밀하게 역사하신다. 내가 경험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즉, 어제 설거지를 했으니까 오늘은 하지 않아도 돼) 또 다시 하기를 원하시는 음성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 또한 어떤 죄악의 유혹에서도 벗어나게 하시는 능력을 주신다.

 

공동체적 제자도를 형성해야 한다. 즉 교회 공동체 전체가 주님의 제자로를 실천함으로 그 공동체에 소속된 제자들이 주님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제자가 되어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더욱 적극적으로 제자도가 실행되게 해야 한다. 공동체가 부분적 제자도로 그쳐서는 안된다. 즉 경건, 선교, 주님을 본받기 등에서 모든 부분에 제자도를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그 공동체가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운동을 벌이면 된다. 그러기 위해 파이트 클럽을 만들어라. 즉 세상과 악의 세력과 함께 싸울 수 있는 클럽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돕고, 협력하고 격려하며 죄와, 세상과 보이는 형상을 찾아가는 유혹과 싸워 이기게 하는 그런 클럽을 만들어 세상과 적극적으로 싸우라는 것이다. 영적 싸움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도와주신다.

 

결론적으로 제자도란 한 쪽에 치우지면 안 된다. 즉 경건도, 전도도 다 부분적일 수 있다. 그 중심이 율법적이거나, 규율로부터 방종이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오직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분을 마음 중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여 그분과 교제하며 그 분이 주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삶을 살면 경건으로 영광 돌리고, 전도도 하는 진정한 제자가 된다. 이것이 복음 중심의 제자도이다.

YES마니아 : 골드 s*********8 2013.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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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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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조나단 도슨 지음 / 전의우 옮김 제자란 단어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제자하면 예수님의 12제자를 떠올리고 신앙인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제자훈련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 되지만 소정의 교육을 받는 정도이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복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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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의 제자도

조나단 도슨 지음 / 전의우 옮김

제자란 단어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제자하면 예수님의 12제자를 떠올리고 신앙인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제자훈련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 되지만 소정의 교육을 받는 정도이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복음으로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음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에만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도 복음을 다시 영접해야 한다.

복음을 영접하고 난 후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깊이 하고자 세상과 단절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보내고 싶어 한다. 이처럼 영적인 소원이 강렬할 때 세상을 멸시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이 12제자에게만 적용될까? 반면 복음을 영접한 직 후 곧바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도 한다. 전도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며 날마다 밖으로 나간다. 이것이 제자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저자는 이것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며 복음으로 제자도를 이룰 때 가능하다고 말하며 그 사례를 소개한다.

특별히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치게 멀리 했던 성령님에 대한 새롭게 인식하고 성령님의 역할을 조명한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도 없고 더욱이 성화의 길을 갈 수는 없다. 예수님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았고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의지하도록 도우셨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까? 먼저 성령님을 경시했던 죄악을 회개하고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그를 인정하며 입으로 성령님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 그리고 성령님께 항복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앞세우면 성령님과 교제할 수 없다.

저자는 특별히 파이트 클럽을 소개한다. 파이트 클럽은 소설가 척 팔라닉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임은 2-3명의 남자 또는 여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죄를 극복하고 선한 믿음의 길을 가도록 서로 격려하는 작은 모임이라고 한다. 이것은 선한 믿음의 싸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 신뢰가 필요하고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세 가지 질문, 곧 무엇을, 언제, 왜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선명하게 자신을 죄악을 발견하고 싸우며 구주를 신뢰하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분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을 신뢰하라고 조언한다.

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의 성숙을 위해서는 이처럼 작은 모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또한 격려와 조언을 듣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이는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데도 많은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성령님께서 임재 해 주시길. 무엇보다 내 안의 성령님을 위축시키지 않고 그에게 항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b*********g 2013.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