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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이 책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한국 개혁주의자들의 편협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간 개혁주의가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는지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많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서평보다는 이 책을 변호하는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2) 분류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은 크게 2개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앞 부분은 칭의에 대한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는 전통적인 개혁주의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어이가 없다고 보는 이유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4) 이 책에서 김세윤 교수는 칭의에 대해 다음의 이야기들을 합니다. ① 첫째로 '칭의'라는 것이 법정적 선언(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를, 죄가 없고 또 의로운 자로서 간주한다는 선언)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칼빈조차도, 칭의가 법정적 선언 이외의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개혁'주의자'들은 이것에서부터 걸려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② 두 번째로는 김세윤 교수는 성경 본문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에 충실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조직신학적 개념으로서의 칭의를 "칭의"라부르고 있는지를 살핍니다. 용어상의 검토를 합니다. 순전히 표현상의 문제 제기입니다. 그런데 김세윤 교수가 살펴보았더니, 성경에서는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칭의'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성화'와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영화'까지 다 묶어서 "칭의"라 이름 붙이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에 맞게 우리도 이 셋을 합한 것을 '칭의'라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한편으로 성경이 언제 "성화"라는 표현을 쓰는지도 살펴보았니, 성경에서 '칭의'라는 표현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신학상의 칭의, 성화, 영화를 다 묶어서 "성화"라 칭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화"라는 말을 앞에서 새로 정의한 '칭의' 즉, 조직신학상의 칭의, 성화, 영화를 통틀어 일컫는 그 '칭의'와 동의어로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히 표현상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합니다. 그런데 (물론 이것은 김세윤 교수의 잘못인데) 김세윤 교수가 이 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탓에(이걸 결론부에 가서 잠깐 언급 할 뿐입니다), 텍스트를 잘 읽어내지 못하는 개혁'주의자'들은 김세윤 교수가 또 전통적인 칭의 개념을 흔들어 놓는다고 비난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③ 셋째로, 김세윤 교수는 '칭의'에, 톰 라이트가 부각시킨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편입됨', '하나님의 아들로서 입양됨'의 개념도 같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는 선언을 받을 때 이 일들도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보야아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성경을 한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노답 개혁주의자들만 제외하고는) 누구나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얘기를 굳이 한번 더 썼을 뿐입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주장입니다. ④ 넷째로 김세윤 교수는 (조직신학상의 칭의 개념이든 자신이 새로 정의한 칭의 개념이든) 칭의 개념은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 담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아무런 모순이 없이 매끄럽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틀이 성경 전체를 일관(一慣)하는 틀이라는 이야기의 연장으로서, 칭의 개념 역시 이에 의해 풀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이건 김세윤 교수가 이미 『복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등에서 충분히 이야기해 온 사항입니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칭의가 성경의 일부분에만 국한된 주제가 아니라 성경 전반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임을 강조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빛을 던져 주어 칭의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알게 해줄 따름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낯선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5) 견인(perseverance)에 대해서는 김세윤 교수가 애매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이 믿음을 통해 한 번 얻은 우리의 구원은 잃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또 히브리서 등에서는 구원을 잃을까 염려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기 때문에, 김세윤 교수는 조직신학자가 아니라 성경신학자 답게, 둘 다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 교리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둘 다 붙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둘 다 붙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생활에서 둘 다 적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둘 다 붙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면 실제로는 둘 다 붙들지 못하게 됩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붙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모순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둘 다 붙들어야 한다고말 할뿐 말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김세윤 교수의 문제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김세윤 교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이, 김세윤 교수의 견해가 개혁주의의 입장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요즘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김세윤 교수에게 주어지고 있는 비판의 요지는 전통적인 개혁주의와 그 이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최악의 argument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와 '개혁주의'를 동의어로 보겠다는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디테일에 있어서 그리고 그 어느 경우에나 개혁주의를 진리의 동의어로 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어떤 논점이 주어졌을 때, 성경에서 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살핀 다음, 먼저 그에 최대한 부합하는 견해를 도출하려 애써보기도 전에, 역사적으로 개혁주의자들이 무엇이라 말했는지를 살펴보는 것 같습니다. 핫지가 뭐라 말했는지, 오웬이 뭐라고 말했는지, 튜레틴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단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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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윤리와 분리된 신앙을 가르치고 믿는 한국 교회의 비극"을 낳았다.
한국 교회에 한참 유행하던(?)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칭의와 성화>를 쓰신 김세윤 박사님은 바로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신앙 양태에 일침을 가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믿음으로 이미 의인이라 칭함 받았고, 그것은 최후 심판 때 확인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냥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면 된다"(80)는 식의 가르침은 구원파적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믿음(구원의 확신)과 생활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고, 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삶의 문제는 소홀히 여기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밖에 나가서 전도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싫지 않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꼴보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도리어 복음이 거절 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김세윤 박사님은 그 원인이 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칭의론은 "의인으로서의 삶이 없으면서도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교리, 심지어 의인으로서의 삶을 방해하는 교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94).
"성화를 칭의와 분리해서 사고하는 데서부터 '칭의론'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칭의론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형법적 범주로 이해하며, 대신적 속죄 행위로 해석한 것"(15)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무죄가 선언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는 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요, 그 선물은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믿음을 윤리와 분리해서 이해하고, 윤리는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자신들이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91). 김세윤 박사님은 칭의론에 대한 이러한 왜곡과 편향된 가르침이 "의로운 삶을 낳기는 커녕 도리에 방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칭의와 성화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칭의' 된 자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영화'(구원의 완성)에 이른다는, "구원의 서정의 틀" 안에서 칭의론을 설명해 왔습니다. 이 책은 본래 2012년 "두란노 바이블칼리지에서 주최한 종교개혁 기념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강좌의 원래 제목은 "성화란 무엇인가"였지만, 김세윤 박사님은 "성화를 칭의와 분리해서 사고하는 데서부터 '칭의론'이 왜곡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칭의론'의 구조부터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서 강의(책)의 제목을 <칭의와 성화>로 바꾸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10).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이다.
<칭의와 성화>의 가장 주된 논지는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 없는 같은 개념이며,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칭의론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새 관점 학파의 전제"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 관점 학파는 "유대교가 근본적으로 '언약적 율법주의'의 종교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선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관계에로 '진입'했으니,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그 관계에 '머무름'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구조를 가지고"(82)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바울도 "은혜로 주어진 칭의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된(즉, 올바른 관계에 '진입한') 신자들에게 종말의 완성 때까지 그 관계에 계속 '서 있음'의 중요성을 강조"(82)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하는 "칭의, 성화, 입양" 등은 인간이 죄 용서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을 나타내는 언어들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로/믿음으로 의인 된다는 말은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음도 포함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사람임을 뜻하는 것입니다"(163). "그 관계에 계속 서 있음"의 요구는 "우리가 사탄의 나라에서 옮겨져 하나님 나라로 들어왔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117)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구원의 서정의 구도에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의의 열매'/'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칭의'에 뒤따르는 '성화'의 단계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김세윤 박사님은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삶은 칭의 다음에 오는 성화의 단계가 아니라, "의인으로 칭함 받은, 즉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우리가 '그 관계에 서 있음'의 단계"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의 의미에 있어서 칭의와 동의어인 성화의 현재 단계"(173)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종교개혁적 전통에서는 칭의론의 법정적 의미가 강조되어 왔지만, <칭의와 성화>는 바울의 칭의론에는 관계적 의미도 있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바울의 칭의론을 "구원의 서정의 틀"이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틀"로 이해해야 왜곡함 없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칭의의 과정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성화'의 삶의 동기가 강화된다.
<칭의와 성화>를 읽기 전까지, 칭의, 성화, 영화를 각각의 "단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긴장된 일인지 새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전통적인 권위를 가진 교리라 해도 화석처럼 굳어진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빛 안에서 끊임없이 검토되고 재해석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구원은 분명 삼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 "(인간 편에서) 아무 공로 없이"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려는 사람들은 <칭의와 성화>에 여전히 신학적 이의를 제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분명 윤리 그 이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백성에게 요구되는 삶은 세상의 윤리보다 훨씬 고급한 것이며, 그 목표는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는 최고의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칭의와 성화>에서 전적인 은혜에 거룩한 삶으로 응답해야 할 성도(하나님께 드려진 사람) 된 자의 긴장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세윤 박사님의 명쾌한 강의가 신학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고, 신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석학들의 생생한 논쟁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고, 동시에 신학의 날카로움이 목회 현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칭의와 성화>는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저희끼리는 '의인'되었다고 기뻐하는 천박한 신앙에 일격을 가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원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구원의 핵심이 바로 칭의론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는 우선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칭의론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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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온, 내 인생의 전환점을 줄지도 모를 신의 한수와 같은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참된 지식과 지혜, 경험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쉽지만 깊고 간략하지만 넓은 책의 수준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명품 서적임을 보장합니다. 이 책을 통해 더 행복하고 멋진, 기쁘고 자유로운 삶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될 것 같아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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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지금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그 구원의 사건이 효력을 발생하여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며 산 아담적 실존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 믿음으로 그 관계 속에 서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그리스도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그들의 칭의는 완성되어 의인으로 확인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84P) 한국교회에 위기라고 한다. 아니 위기는 오래전부터 감지되었지만 이렇게 심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난 그 이유를 복음의 왜곡된 이해와 설령 복음을 이해했더라도 그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진 것에 대해서 찾았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고 자료들과 책을 통해서 하나씩 공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를 만났다. 어느 정도 이 책은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고 때론 이거다라는 부분도 만났다. 이전의 김세윤교수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 책은 김세윤교수의 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이 책은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른 복음이다. 구원이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으로 여기는 천진난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 속에서 행동은 마치 구원은 천국티켓으로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구원은 단순히 천국티켓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 흠 없고 거룩한 백성으로 갈 때 까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신앙의 뿌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저자는 그동안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견한 복음의 법정적 의미가 지배한 칭의론을 다시 분석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한다. 즉 법정적의미의 구원론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은 주어졌으나 윤리(혹은 거룩한 삶)와 상관없는 값싼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간과하였던 칭의의 관계적 의미를 되새긴다. 칭의를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등 돌린 죄인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보는 관계적 의미의 칭의를 설명한다. 결국 칭의는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즉 저자는 칭의는 무죄 선언 받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것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올바른 관계에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의인으로서 그런 사람이 최후의 심판 때에 의인으로 확인되는 칭의의 완성까지 칭의로 보는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주장한다. 또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단순히 새관점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에 맞서 이방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 고안한 구원론이며 유대교의 민족주의에 대한 싸움 교리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날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임을 증명한다. 이때 저자는 그동안 로마서1장16-17절에 집중한 구원론적 복음에 덧붙여 로마서1장3-4절에 주목하여 기독론적 복음을 설명하면서 로마서 전체에 나타난 복음의 부연설명을 자세히 주해하여 설명한다. 결국 바울은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의 사탄의 나라에 대한 전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와 생명의 통치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멸하고 죄인 된 우리를 구속해 감의 뜻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가 아닌 하나의 동의어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칭의는 죄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법정적 뉘앙스가 강하다면 성화는 죄를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제의적 뉘앙스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칭의를 그동안 구원의 서정에 따라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단계로 나누어 분리시킴으로서 거룩한 삶의 실종되었음을 지적하고 칭의를 구원의 서정에 의한 이해가 아닌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이해 할 때(진입함/서 있음/구원의 완성을 받기)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가 구조적으로 함축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의 교회 안에서만 신앙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로 정체성에 근거가 된다. 또한 구원의 서정 속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예정과 성도의 견인교리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두 가지의 교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리가 나오게 된 본문의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즉 예정과 견인교리를 집착한 나머지 방종한 삶을 살지 말고 탈락의 교리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의 신실함을 의심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며 얻은 교훈은 칭의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의 통합과 균형적인 해석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거룩한 삶에 대한 도외시는 법정적 의미만을 강조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적의미에 무지한 채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볼수있다. 현재 한국교회에 칭의 이해는 칭의의 관계적의미를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도의 삶에 진지한 성찰이 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의 칭의는 철저히 예수님의 복음과 일치함을 보았고 칭의와 성화는 분리됨이 아닌 하나이며 그것 또한 종말론적 구조에서 봐야만 정확하게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칭의와 성화의 분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칭의로만 머무르는(성경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결과는 초래했다. 구원받았으니 이후의 삶은 어떠하든 천국가지 않느냐?라는 배짱을 얻게하여 진정한 구원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했다. 하지만 구원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로 서야 하는 순간까지 이루어져 가는 것임을 즉 완성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예정과 견인론 그리고 타락의 가능에 대한 경고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권면이다. 조직신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도그마처럼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교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맥속에서 참된 의미를 찾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의도를 존중하여서 논리적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모습임을 알게 해준 것이었다. 그동안 나도 예정과 견인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었지만 다시 한번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의 표현대로 칭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임을 기억한다면 칭의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말씀으로 경험되어 질 것이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지금 보다 한국교회는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고 성도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더 성숙하여서 믿지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될것이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새 관점 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아쉬운 점은 로마서 9-11장에 대한 새관점 주의자들에 대한 해석의 반론이 언급되지 않은 점이다. 이 부분은 김세윤 교수의 다른 저술에서 기대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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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칭의의 세 단계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기,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기의 뜻으로 이해할 때 칭의를 ‘성화’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구원의 서정론’dl 가져오는 역효과를 극복하고, 믿음/세례 때 얻는 칭의(과거)를 의로운 삶(칭의의 현재)과 통합하여 이해하게 됩니다. (칭의와 성화 287p) 저는 항상 책을 읽기전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에 관하여 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칭의와 성화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막상 생각해 보니 자신있게 잘 생각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려고 노력 했습니다. - 개인적으로 이 책은 한번 읽고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그래도 간단히 서평을 작성해 보려 합니다..ㅜㅜ) 먼저 칭의와 성화의 저자는 김세윤 교수님 입니다. 전통적으로 칭의란 갈라디어서 2장의 말씀에서 보듯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 또한 사람에게서 난것이 아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우리가 선물로 받는다면 우리는 우리안에 있는 죄가 부끄러워 하나님께 고백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칭의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통하여 우리가 회개하며 나아갈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의롭게 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칭의 하셨을때(의롭게 하셨을 때) 비로소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성화란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고백할때 성화의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이란 한번으로 끝이 아닌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칭의와 성화의 책터 1에서 칭의에 관하여 여러 학파들의 관점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느낀 것 은 세월이 흐르면서 칭의에 관해서 더욱더 말씀 안에서 단단하게 보완되어 간다는 것 보다는 사람의 이성만을 의존하여 알아 가려고 하고 그럼으로 말씀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들이 많이 셖여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중심의 믿음(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아닌 사람 중심의 믿음(내가 기쁘게)으로 변질 되어 간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그럼으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키워 가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책터는 칭의론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가 법정적 의미을 지나치게 강조할때 '구원파'적인 칭의론으로 빠질 수 밖에 없음으로 법정적의미 뿐만 아니라 관계적 의미와 균형을 맞추어 이해하며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칭의와 성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세 번 째 책터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서의 칭의론 입니다. 그리고 세 번 째 책터의 첫 번 째 제목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바울의 칭의의 복음 이며 내용 중에 "불트만은 바울의 칭의의 복음, 즉 율법의 행위 없이 은혜와 믿음으로만 의인이라 칭함 받음의 복음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일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다시한번 느낀 것은 복음은 진리 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누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복음을 동일해야 합니다. 전달하는 대상과 방법 표현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예수님의 복음과 일치한 것 처럼 우리가 전하는 복음 또한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동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 책터는 은혜/믿으로 받는 칭의와 행위대로의 심판입니다 마지막 책터에서는 요약과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책터의 마지막은 맺는 말 :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우리 모두가 칭의론은 결국 하나님의,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 믿음의 순종'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함을 잊지 않음으로써,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그릇된 칭의론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한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마치고 있습니다. 칭의와 성화 뿐만 믿음에 관한 모든 것들은 성경을 기초로 하여야 하며 또한 성경을 기준으로 말씀안에서 만들어가 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럴때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이 예수님과 같은 바른 칭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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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의 ‘종말론적으로 유보된 칭의’에 대해 한국교계 그중에서 특히 개혁주의적인 신학 입장을 천명하는 노선에 서 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과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을 김 박사의 유보된 칭의론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칭의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으로 얻은 칭의가 심판 때까지 유보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칭의론도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신약 종말론의 보편적인 구도 속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뤄진 구원을 지금 우리가 받음은 그 구원의 첫 열매에 해당하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의 행위대로의 심판을 거쳐 구원의 온전한 수확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전통적인 칭의론 이해가 칭의의 관계론적 의미와 종말론적인 유보를 간과함으로써, 칭의(구원)와 의인으로 살기(윤리)가 구분되는 문제를 낳게 된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만 이미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아무렇게 살아도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소위 ‘구원파’적 칭의론을, 어떤 이들은 ‘예정론, 성도의 견인론’으로 뒷받침하기까지 하여, 오늘 윤리와 분리된 신앙(구원의 확신)을 가르치고 믿는 한국교회의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칭의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의 이전됨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감, 하나님 나라 안에 서있음,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기의 구도로 이해해야 한다”며 “전통신학에서 말하는 성화는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해서 사는 것, 즉 제자도의 삶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화를 칭의와 분리할 수 없다. 성화 없는 칭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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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에 대한 역사적, 학파적 견해를 이 책 서두에서 개별로 소개하며 기술해 가고 있다 아울러 칭의와 성화에 대한 새 학파인 샌더스, 레이제넨, 던, 톰 라이트 등의 대표자들의 견해 또한 자세히 담고 있다 더불어 칭의론의 법정적 관계적 의미를 고찰함과 동시에 2가지 해석으로 구분해 기술한다 특별히 이 책에서 김세윤 박사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함에 있어 칭의와 성화를 기존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온 별개의 구분이 아닌, 칭의와 성화를 동일시 하는 해석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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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 Paul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는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법정적 선포’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법정적인 선포는 그것을 변하게 하거나 바꿀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책 김세윤 교수가 설명하는 ‘칭의와 성화’는 한국교회가 이것을 성경이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게 설명하고 다르게 곡해시켜서 신앙과 삶에 불일치를 만들었다고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된 설명의 결과 ‘윤리와 분리된 신앙을 가르치고 믿는 한국 교회의 비극’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책에서 설명하는 칭의와 성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을 향한 성경의 가르침인데 이 책에서는 칭의를 통해서 성화를 등한히 여기는 한국교회의 풍토를 이 책에서는 꼬집고 있다. 즉 잘못된 칭의론에 영향으로 인해서 한국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삶을 방해하는 교리로 전락된 칭의론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가장 큰 골자는 칭의와 성화는 하나로 이해하고 하나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성화 없이는 칭의가 잘못된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이다. 칭의는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구원의 확인이라는 감정적인 것으로 (또는 인간 개인의 이성적 판단으로) 칭의를 이해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안에서 말씀하고 있는 칭의의 정확한 내용과 의미를 발견하고 그 칭의를 중심으로 성화를 이루고 성화를 통해서 구원의 완성이 영화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많은 부분 동감을 하고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소위 말하는 영접기도의 잘못된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바람직한 구원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 요즘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바른 가르침이 없기에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한 병폐가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요즘 피디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거짓 목사들의 모습(또는 죄의 유혹에 넘어진 목사)을 보면 그런 삶에 문제를 일으킨 말씀의 사역자를 통해서 어떻게 참된 주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될 수 있을까에는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복음이 진정으로 의미하고 있는 칭의와 성화에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구원에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른 말씀으로 교정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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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바울신학의 세계적인 거장이신 김세윤 교수님의 책이다.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튀빙겐 대학교와 세계유수의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신 교수님은 이 책에서 칭의와 성화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갖으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2012년 10월29~30일 이틀동안 서울의 두란도 바이블 칼리지에서 주최한 종교개혁 기념강의를 녹취해서 글로 옮기고 다듬어서 만들어진 책이다. 두란노 바이블 칼리지에서는 성화에 대한 강의를 요청하였는데 성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칭의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기에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이다. 본 도서는 5가지 chapter로 구분해서 책이 구성되어있으며, 칭의론에 대한 신학적 논쟁, 칭의론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서의 칭의론, 은혜/믿음으로 받는 칭의와 행위대로의 심판, 그리고 책 전체의 요약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칭의와 성화가 신학적인 용어라 목회자나 신학생이 아니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성경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서 많이 어렵지는 않는 책인 것 같다. 또한 책의 각각의 chapter의 마지막에 요약정리를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것같다. 책의 시작은 먼저 칭의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그러면서 칭의론에 대한 많은 신학적인 논쟁으로 시작한다. 전통적인 견해에 대한 도전을 제시하며 칭의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 장에서 칭의론의 법정적의미와 관계적인 의미를 정리하면서 칭의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칭의론은 무죄선언, 의인이라 칭함 받음, 의인의 신분을 얻음등 법정적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의 회복이라는 관계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 김세윤 교수님은 칭의를 이야기하면서 죄용서와 함께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고 순종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며, 최후의 심판 때까지 그속에 있어야 함을 요구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죄용서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안에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본 도서에서 여러 가지 신학적인 관점을 통해서 칭의롤 통한 죄용서와 성화의 단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구원에 이르는 삶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회복되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 그것에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존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알게됩니다.” 저자는 우리가 예수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예수 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초창기의 복음 선포에 익숙해져 예수는 믿지만 삶의 열매가 없이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잘못된 칭의론을 바로잡고 칭의와 성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백성임을 삶으로 증명하기를 원하고 있다. 복음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가운데 왜곡된 가짜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을 받았다면 그에 따른 삶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다. 교수님의 맺는 말을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칭의론은 결국 하나님의,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믿음의 순종‘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함을 잊지 않음으로써,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그릇된 칭의론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하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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