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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돼 있는 피씨통신 동호회에 서너개씩의 독후감을 올리고 다른 사람과 느낌을 나누는 것은 내게 상당한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황금사다리를 읽고 난 후 몇권의 책을 더 읽었어도 한동안 독후감을 쓸 수가 없었다. 황금사다리에 대해 쓰려고 하면 '전율' 이라는 단어만 머리속에서 맴돌고 다른 책에 대해 쓰려고 하면 황금사다리가 눈앞을 가리고서 책망하고 있는 듯하고. 이제 나, 마음을 가다듬고 황금사다리를 정리한다.
이 책에서 내가 전율했던 것은 관동대지진 당시의 상황때문이었다. 지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분노가 왕이나 정부에 전해지기 전에 명백하고 간단하게 규정된 '조선인'이라는 적! 일제시대, 제나라에서 땅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찾아들었던 일본에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가해진 마녀사냥은 그저 머리속으로 담아내고만 있기에는 너무 슬프고 아팠다. 아찔하고 역한 기운이 책밖으로 튀어나와 전해지는 바람에 잠시 책을 덮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살갗이 떨려 한참동안 책을 다시 펴볼 엄두가 나지않았다.
겨우 100년도 지나지 않은, 멀지도 않은 이웃나라에서 행해진 내 민족에 대한 학살을 어떻게 감당해야할 것인가? 살아남고자 했으나 살아남을 수 없어서,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아들을
살려냈던 아버지의 처참한 마지막 몸짓은 그 대목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눈시울을 적시고 목메게 한다. 그뿐인가! 불특정 다수의 일본인에게 아무런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조선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참하게 죽어갔던 사람들. 누가 잊으라 하는가? 누가 굳이 신경쓰지 말라 하는가?해설을 쓴 사에구사 도시카쓰는 이 책에 나오는 일본의 역사나 사물들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고 썼다.
현혹이라니! 난 분노하고 슬퍼한다. 인간세상밖의 인간(日王)을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해 또다른 인간세상밖의 인간(조선인)들을 그렇게까지 학살하다니... 글을 쓰신 정찬님이나 해설을 쓰신 분들 모두 이 작품을 권력에 맞추고 있다. 권력의 이동, 혹은 승계, 유지.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권력의 처참함보다 관동대지진의 실상을 알기를 권한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그저 힘없이 사라져가버린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일 뿐이지만 그 분노와 그 눈물만이라도 가슴에 새겨야 하겠기에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일본도에 손가락이 끊기고, 죽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아버지는 일본인들의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오면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엉금엉금 기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그러다가 흙을 입에 틀어넣어 우물우물 삼키는가 하면 땅바닥을 혀로 핥기도 했다. 그들은 명령했고 아버지는 철저히 복종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어릿광대 모습은 일본인들의 신발밑창을 핥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피에 물든 혀를 길게 내밀고 그들의 신발 밑창을 열심히 핥았다. 그들은 좀처럼 만족하지 않았고 아버지는신발바닥이 하얗게 되도록 핥고 또 핥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일본도가 허공에서 번뜩였다. 피가 솟구쳐 올랐고 아버지의 목은 옆으로 기울어졌다. 아버지는 죽음직전까지 애걸하고 있었다. 칼이 허공으로 치솟을때도 일본말로 뭐라고 외치며 빌었다. 무엇을 빌었을까?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알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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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고문에 대한 것이었다니...... 글쎄 고문에도 미학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그런 내용인듯 싶다. 그렇다고 고문을 정당화한다거나 뭐 그런 책은 아니다. 다만 고문 기술자의 독백을 통해, 고문 기술자 역시 한 인간으로서의 정신 세계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는 식의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황금 사다리라는 제목을 통해 의도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천황이라는 존재와 고문 기술자라는 존재의 극한적 차이 그리고 그 두 가지 존재가 갖는 공통성에 대한 고찰, 한편으로는 조선인이라는 조건과 에타라는 존재적 조건이 갖는 공통성이라는 두 가지 전제를 깔고서, 천황 암살의 불을 권력의 불로 바꾸어 나가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천황까지도 자신의 신민으로 삼으려 했던 고문 기술자의 내면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듯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문 기술자의 세계가 완벽하지 못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권력관계를 통해, 또한 그 아들로 인해 쓰러지는 고문기술자를 보여 줌으로써 오히려 일관성에 방해를 받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인지...... [인상깊은구절] "천황의 존재야말로 일본 권력자들의 탁월함의 상징이며 표현이다. 권력자의 머리 위에 천황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줄 아는가. 그들이 신민들의 살과 뼈를 아무리 바수어도, 그 피가 강이 되어 흘러도 권력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천황이 권력의 칼을 하사했고, 천황이 명령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천황마저 하늘의 존재로서 지상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일본의 권력자들은 땅의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의 땅에 아무리 악이 넘쳐 흘러도 그것은 하늘의 뜻인 것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는 불충이며, 그것을 받들지 못하는 것은 치욕일 뿐이다. 하야시의 사상은 이러한 일본의 권력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부정이며, 냉소이며 초월이다. 하야시는 박해받은 자의 고통과 비명은, 그 살과 뼈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야시는 사상으로써 일본의 권력을 냉소했고,실천으로써 천황을 향해 다가갔다. 인간에게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있듯이 사상을 보존하려는 본능도 있다. 그 사상의 혈맥을 하야시는 너에게 잇고자 한 게 아닐까." |
| 정찬의 『황금 사다리』는 이제 한국소설이 권력의 윤리학 차원에서 벗어나, 권력의 속성에 대한 미시적인 탐구에까지 그 묘사 영역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과리의 지적대로 이 소설은 임철우의 「붉은 방」이 개척한 성과를 계승하고 있다. 정찬과 임철우가 이러한 소중한 영역을 개척한 것은 그들이 다른 소설가보다도 인간과 권력, 역사, 사회, 욕망의 이중성과 다양성, 양가성에 대해서 밀도 깊은 사유를 진행해왔다는 점에 연유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투적 사유나 지배적인 관습과 결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 인식을 소신껏 보여주는 소설가가 많아질 때, 한국소설도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관념적이며 형이상학적 사유를 향한 성실한 탐색을 보여주는 정찬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휘황찬란한 매혹은 소설가 정찬의 편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먼 훗날 쓰여지는 문학사는 기꺼이 그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