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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지가 꽤 지나서인지 새삼 책의 내용을 떠올려 글을 쓰려고 하니 책을 읽을 때의 마음처럼 또 마음이 저려온다. 책을 읽을 때 가슴을 졸이며 조마조마하게 읽었고, 다음에는 어떤 일이 또 생길지 걱정하며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책을 읽다가 읽을수록 책속에 빠져들어 꼼짝없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흡인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아주 오랜 전 텔레비전 속에서 탈북한 한 가족을 본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한두명도 아니고 그 많은 가족들과 탈북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당시 인터뷰를 봤지만 사실 크게 실감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제발 봉수네 가족이 무사히 탈출하기를, 또 공안들에게 잡히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며 책을 읽었던가? 그만큼 책의 내용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는가 보다.
봉수네 가족이 탈출하기 전 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생활을 어렴풋이 알수 있었다. 처음에는 책을 읽다가 생소한 북한 말에 당황하기도 했는데 곧 익숙해졌다. 전반부는 조금 지루하게 읽혀지는데 반해 봉수네 가족이 탈출을 결심하고 탈북하는 과정부터는 호흡이 가빠졌다. 혹 들키면 어쩌나, 가진 돈을 다 뺏기면 어쩌나 ,애꾸눈 저 사람 믿어도 되나, 정말 나도 봉수네 가족이 되어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러다 다행이 봉수네 가족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한시름을 놓았지만, 가이드라는 여자의 말만 듣고 김정옥 목사와 헤어지는 순간은 또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몇번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봉수네 가족은 그나마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도움을 받게 된다. 김정옥 목사님과 왕씨 노인,꽃제비 양호까지 봉수네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리남행 비행기는 가능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감행했던 리남행 비행기에 결국 오르지 못한 은효만 할아버지 가족의 먹을 음식을 구하려다 그렇게 된게 더욱 마음이 아팠다. '가족들 데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열심히 걸어가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그만 또 울컥하고 만다. 모두 다 같이 리남행 비행기를 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할아버지 말씀대로 열심히 걸어갈 거란 사실이야. 정말 열심히 걸어갈 거야.새로운 시간을 향해서, 또 새로운 꿈을 향해서." 봉수의 말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꿈을 향해서 정말 열심히 걸어가길 바란다. 봉수네 가족들에게 새로운 시간과 꿈을 향해 걸어 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으로 지켜 봐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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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전후세대를 부모로 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전쟁이나 분단, 이산가족, 탈북자, 동포 등의 단어를 실감하기는 참 어렵다. 머릿속엔 교과서에서 배운 한국전쟁이 담겨있겠지만 진정 살갗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리남행 비행기]는 스토리 자체의 흡입력은 물론 탈북자에 대한 시각과 관심을 재삼 일깨우고 있다는 데 매우 만족하는 청소년 소설이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을 지나 태국까지, 리남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택한 봉수네 가족. 할아버지부터 어린 여동생까지 다섯 명의 일행에게 닥치는 위험과 고비는 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터. 그 사이 우연히 만나거나 어쩌면 필연으로 만난 사람들의 정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중국땅이니 중국 공안은 물론 중국인도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조선족이나 같은 탈북자 신세인 사람조차 경계해야 할 상황.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를 이 상황은 책 속 봉수네 가족은 물론 독자인 나조차도 마음 졸이게 만든다. 인신매매를 당하여 벽돌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고, 소매치기에게 가진 돈을 몽땅 털리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생명의 은인인 목사님과 한 소년을 만나기도 하며 갖은 우여곡절을 겪는 봉수네 가족.
당연히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행색이 꼬질꼬질한 가족들을 가장 슬프게 했고, 또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먹을 것을 찾아 나선 할아버지의 한 말씀. "열심히 걸어라." 봉수네 가족에게 얼굴을 돌리지 못한 채 중국 공안 얼굴에 대고 필사적으로 외쳐야 했던 그 장면은 차마 눈물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리남행 비행기]는 지루할 새 없이 가슴 졸이며 술술 읽히고, 그 안에서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여러 인간 군상이 밀도높게 그려졌다. 무사히 리남행 비행기를 타는 해피엔딩으로 마치고 있지만 그들에게 또 어떤 여정이, 한국에선 또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지 왠지 안심이 안 되는 건 또 무슨 이유일런지...... 그래도 봉수네 가족은 아마도 절대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드니 다행이다. 열심히 걸어라, 그 말은 봉수네 가족과 독자에게도 던져주는 소중한 유언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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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소년 이야기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봤고, 탈북소년의 우리나라 정착기도 동화를 통해 봤다. 그런데 어린이 동화책으로 본 <리남행 비행기>에는 탈북가족의 탈북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고, 가족간의 사랑이 잘 녹아져 있는 감동적인 책이었다. 북한을 탈출해 오는 사연은 구구절절 다양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정붙이고 살던 곳을 등지고 떠나는 마음이 오죽할까? 새로운 희망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봉수네 가족 이야기가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실제 상황도 그러할 것이다. 두만강을 건너는 것부터 인신 매매범에게 잡혀 벽돌공장을 끌려가기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고, 마지막에는 먹을 것을 구하려 나갔던 할아버지가 그만 북한 공안원에 잡혀끌려가는 장면은 얼마나 눈물겹던지...뒤돌아서서 가족들에게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 갈테니 무사히 남은 가족만이라도 무사히 탈출하라는 당부하는 장면은 결국 울컥하게 만들었다. 인간 사냥꾼들의 비열한 행동과 대조적으로 봉수네 가족의 탈출을 도왔던 한인목사 김정옥과 중국인 왕 노인의 선행은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였다. 그리고 북한을 탈출한 뒤 꽃제비가 된 왕호 이야기는 눈물겨웠고, 아직도 중국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왕호같은 아이들이 눈에 밟혀 맘이 아팠다. 아직도 통일은 멀고, 목숨 걸고 탈출하는 북한 주민들은 줄을 잇는다는데... 그 중에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당당히 새로운 삶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중도에 목숨을 잃거나 다시 북으로 강제 송환되는 이들이 많다니 그 또한 안타까운 실정인가? 몇 해 전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좀 촌스럽고 억양이 센 그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기억도 희미한 지금, 한 편의 동화책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만남으로써 다시 동포애를 느끼고, 그들에게 관한 관심과 사랑을 전해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봉수네와 같은 새터민들이 이 땅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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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남행 비행기. 책 제목을 보고서도 왜 몰랐을까. ‘리남’이 ‘이남’이라는 것을.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 일념으로 두만강을 건너 태국으로 향하는 한 가족의 탈출기를 그린 소설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봉수네 다섯 가족이 그 주인공. 소설의 앞부분은 사실 흡입력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낯선 말들이 많이 나오고, 다소 복잡한 상황들을 배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탈북을 시도한 친구들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봉수의 삼촌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기에 그가 중심 인물인가보다 생각할 무렵, 삼촌이 갱에 묻혀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봉수 아버지는 가족에게 탈북 계획을 털어놓고 실행에 옮긴다. 할아버지와 네 가족, 목숨을 건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에서 탈북 소녀 바리가 중국을 거쳐 머나먼 영국으로 흘러 들어간 기구한 역정을 이미 접하였기 때문에 탈북의 과정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나는 봉수네 가족의 사연은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언제나 위험한 상황 속에 있었던 사람들. 그저 막연하게 태국에만 가면 리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그들의 목표가 과연 맞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지만, 워낙 험난한 길, 일단 태국까지만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새터민으로 불리는 탈북자의 사연을 접하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 주위에도 탈북자에 관한 이야기가 간혹 들려오는 것을 보면, 상당한 수가 남한으로 오고 있다고 짐작만 했다. 예전에는 워낙 특별하게 바라보았을 탈북자에 대한 시선도, 워낙 수가 많아지고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다보니 차가운 시선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 밖’이라고 해야 맞을까. 가상의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탈북자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더욱 궁금해지는 것 하나. 이 책은 리남행 비행기에 봉수네 가족이 성공적으로 몸을 실은 대목에서 끝난다. 봉수네 가족은 과연 남한에서 어찌 살고 있을까. 유일한 목표였던 리남행 비행기는 그들에게 소망하던 현실을 펼쳐주었을까. 몇 안 되지만 중국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선한 사람들을 남한에서도 만날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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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음 법칙 없이 표기된 제목에서부터 이북 냄새가 난다. 이북이라는 표현은 나에겐 그리 낯설지가 않다. 개성이 고향이던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생전 술만 드시면 울면서 고향의 봄을 주구창장 불러대곤 하였다. 어린 마음에 왜 그게 그리 싫었던지 술만 들어가면 반복되는 레퍼토리로 그러는 아버지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려서 형님만 놔두고 가족이 월남을 하였기에 아버지의 형님과 태어나 자라 놀던 고향이 그리워, 홀로 남겨진 형님이 보고파 그리 애통해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집 지키라고 혼자 남겨진 나에겐 큰 아버지일 그분은 아직도 그 집을 지키며 살아계실지 불현듯 궁금해진다. 봉수의 아버지는 석탄 열차 호송원이다. 두만강을 친구들과 함께 건너려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 때문에 끝내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 온 영도 삼촌은 친구들을 밀고했다고 오해를 받고 있지만 봉수는 삼촌을 믿는다. 봉수의 같은 반 친구들이 봉수 아버지가 석탄을 몰래 빼낸다고 하지만 봉수는 영도 삼촌의 결백을 믿듯이 자신의 아버지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강냉이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자신의 집에서 명절도 아닌데 흰쌀밥을 먹게 되는 일이 잦아지고 쌀독에 숨겨진 쌀이 자신의 믿음에 불안감을 줄 뿐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탄을 캐러 갔던 영도 삼촌이 결국엔 갱 속에 갇혀 죽고 말자 아버지는 이남 행을 선택한다. 믿었던 아버지는 친구들의 말따나 조금씩 석탄을 빼내 밀매꾼에게 팔아 넘겨오며 마련한 돈으로 영도 삼촌이 가려던 길을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두만강을 구사일생으로 건너자마자 애꾸눈 조선족에 속아 벽돌 공장에 팔려가고 또 다시 애꾸눈의 계략에 중국인 인신 매매 단에 넘겨져서 끌려가던 차에 봉수네 는 탈출을 감행한다. 그곳 따퉁에서 우연히 만난 한인 목사님의 도움으로 태국으로 향한 길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목사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 자신들의 힘으로 가려는 길을 가게 된다. 중국 노인의 도움도 받고 창강까지 가게 되며 그곳에서 만난 꽃 제비에게 남겨진 전 재산을 빼앗기지만 결국엔 그의 도움으로 태국으로 넘어가는 국경 마을인 쿤밍까지 가게 된다. 다시 찡홍까지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도착 한 찡홍에서 먹을 걸 구하러 갔던 할아버지가 중국 공안에게 걸려 잡혀가게 된 순간 나서서 만류하려던 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는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말라고 하며 애원한다.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잡혀가는 할아버지를 향해 나서려는 순간 가족의 탈출을 도왔던 목사님이 나타난다. 목사님의 도움으로 봉수 가족은 그리도 그리던 이 남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오늘 신문을 보니 탈북자들이 향해야 만 하는 고단한 여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 위해 중국과 라오스, 태국으로 이어지는 탈 중 루트를 기자들이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탈북자들이 겪게 되는 여정을 그대로 재현하여 제작하였다 한다. 지도상으로 바로 아래에 있는 이남을 가기 위해서 많은 탈북자들이 그처럼 험한 길을 가야만 하고 그 중에서 운이 좋으면 살아남아 자신이 원하는 우리 땅에 들어오게 된다. 같은 민족임에도 당일 개성 관광이 가능한 이남의 현실과 또 다른 이북의 한쪽은 목숨을 건 탈출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남 행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북한 동포들이나 북에 고향을 두고 눈물지으며 고향의 봄을 불러대다 결국에는 고향땅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나 다 같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하루빨리 서로가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날이 언제쯤 돌아오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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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남행 비행기>는 탈북기이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이다. 10대 소년 봉수네 가족이 두만강을 넘었다. 봉수와 9살짜지 여동생,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모두 5명이 북한을 탈출한다.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간 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 중국에서 할아버지는 북한 보안원(경찰)에 잡혀 북한으로 압송되었다. 나머지 가족은 중국 대륙을 세로 질러 태국까지 간다. 김현화 작가는 이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먹을 것이 없어 흙을 집어 먹는 9살짜리 아이를 그린 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하다. 지렁이도 구워먹지만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탈북할 때 가져온 돈이 있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을 처지가 아니다. 탈북자 신분이 탄로나면 모든 고생이 허사가된다. 이 가족을 노리는 북한 보안원과의 쫓고 쫓기는 상황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탈북자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인신매매단도 이 책에 등장한다. 탈북자 가족은 중국에서 한국 관광객들도 만는다. 이들이 본 한국 관광객은 자유 그자체이다. 호텔에서 잠을 자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것 말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삶이 탈북자에게는 소중한 자유로 느껴진다. 저자는 봉수의 눈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청소년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이처럼 이 책의 바탕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역경을 견딘 인간애가 짙게 깔려 있다. 과거에 북한 사람의 탈북은 한국인에게 이슈거리였다. 지금은 덤덤하다. 그만큼 탈북이 흔해졌고 실제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도 적지 않다. 이들의 탈북기도 시들하다. 영화나 소설 소재로도 식상하다. 고생해서 결국 자유를 찾는다는 단순한 결론 때문이다. 이 책도 다르지 않다. 다만, 남북한 전쟁 위기가 고조된 지금 상황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탈북기만 한 소재도 없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북한 말이 나온다. 단짝친구는 짝패동무이고 장모는 가시어머니이다. 화장실은 위생실이고 아파트는 다층살림집이다. 북한말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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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봉수네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남한 행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봉수네 가족을 신고하려는 사람들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교대로 등장해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예를 들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들이 딱히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일지라도 착한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니까. 은장도씨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봉수의 동생에 대한 사랑 등은 이미 핵가족 화된 우리 가정에서는 많이 희석된 사랑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가족 사랑을 접하니 새삼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북한 가정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가족애가 많이 남아있는 듯했다. 봉수네 가족을 보고 현재 우리나라 가정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훨씬 풍족하지만, 봉수네 가족만큼 끈끈한 사랑이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희생이 있었지만, 봉수네 가족이 탈북해서 무사히 남한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봉수네 가족을 통해 가슴 속에 간절한 꿈을 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봉수네 가족이 죽음을 무릎 쓰고 건너온 이 땅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행복보다는 불행을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우리가 불평을 하고 있는 이 자리도 그 누군가가 간절히 오기를 바라는 곳이다. 이런 사실만으로 우리는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탈북기이지만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도 넌지시 암시해준다. 지금 탈북자들은 새터민의 이름으로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언론에서 간간이 비추어진 그들의 삶은 그리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따스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한다.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바로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