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를 배경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바다는 생업의 터전이면서 새로운 꿈을 실현하며 지내는 소망의 공간이다. 출근길에 보는 바다는 물결의 미동도 없이 잔잔하여 더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그곳이 거센 바람과 만나면 걷잡을 수 없는 풍랑으로 바다는 굶주린 하이에나가 목표물을 포획하는 것처럼 공포를 더할 때가 있다. 성난 얼굴이 상대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이끄는 것처럼 성난 바다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았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끝말 사람들에게 바다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부정적인 기운을 없앤 뒤 정갈한 기운을 모아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며 이들은 만선을 꿈꾸며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섬은 다소 폐쇄적인 공간으로 동티를 내는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 왔다. 부정을 없애는 것만이 모든 악재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끝말 사람들의 일념은 축출 대상이 되어버린 뿔치는 더 이상 마을의 아이로 인정받기 힘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뿔치와 함께 당 할머니 집에서 살던 살강이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살강이는 당 할머니의 유언과 맞먹는 말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 뿔치와 함께 부정적인 개체로 보고 희생양으로 삼으려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소망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의 부정적인 씨앗은 그 사람을 옥죄고 만다. 지금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부자유와 삶의 멍에를 벗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쉽사리 그 짐을 벗기 힘들어 체념하며 부정적인 인습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뿔치와 살강이는 할머니의 유언대로 남들이 덧씌운 부정한 존재라는 낙인을 벗어버리려 용궁을 찾아 떠난다. 끝말 섬을 도망쳐 흰 바다 너머 검은 바다, 검은 바다 너머 붉은 바다, 붉은 바다 이삭항 이삭 대감을 찾아 용궁을 찾아 어떤 답을 얻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그 길이 평탄치 않았기에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풍랑을 만나 죽다 살아나고, 노역자로 팔려 나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부정적인 존재라는 소리를 벗어날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던 뿔치였다.
늘 함께 할 것이라 믿었던 살강이와 헤어져 그녀를 보러 간 밥집에서 파리하게 쇠해 가는 살강이를 보면서 뿔치는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무기에게 자신의 목숨을 저당 잡힌 채 맞바꿔 받은 돛의 씨앗 세 개를 들고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지금껏 자신의 삶을 무거운 댓돌로 짓누르는 부정을 풀기 위한 간절한 바람으로 불안한 여행에 나선 것이다. 무모한 사람들을 해치며 욕심을 채워가는 해적선에 올라 반전을 겪으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며 급기야 용궁에 이른 살강이와 뿔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등에서 태어난 이는 끝말 사람들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다. 뿔치는 사람들이 덧씌워 멍에를 지운 대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끝말에 기생해 오고 말았던 것이다.
뿔치는 푸른 용으로 변한 살강이를 보면서 비로소 자신이 동네에 재앙을 내린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 뿔치임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선택 의지와는 달리 세상이 정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것이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사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기준으로 진정한 모습을 찾기보다는 타인이 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우가 많은데 중심선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이삭항 용궁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부정의 가면을 벗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선 뿔치는 귀찮다는 핑계를 들며 타성에 젖어 지내는 이들을 반성하게 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 기존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던지려는 노력이 비금 바로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
|
뿔치는 용이 승천한 자리를 피로 더럽히고 태어났다고 뿔치이고, 얼굴이 온통 얽은 곰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자란 아이기 살강이이다. 이들은 모두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힌 아이들이나 이들을 감싸고 보살핀 할머니의 따스함 속에 친구로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다. 그러나 당할머니의 죽음으로 더이상 보살핌 속에 놓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용궁을 찾아 떠난다. 마을 어른들에 의해 이무기 골짝에 제물로 던져졌다가 구사일생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아이들 앞에는 계속 힘든 일들이 생겨난다. 거기다가 검무기는 빨리 빨리 씨앗을 쓰라고 재촉한다. 뿔치의 목숨값인 씨앗을 말이다. 풍랑에 휩쓸려 겨우 닿은 뭍도 마른 풀만 돋은 죽음의 땅 뼈섬이고, 불행 중 다행으로 배꾼들을 만나 목숨은 건졌으나 결국 그들에게 일꾼으로 팔려가고 해적선 붉은뱀호까지 타게 된다.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혀 힘겹게 살아가던 마을에서 멀어져가면서 점점 뿔치는 자유로움을 누리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 뿔치와 살강이 사이도 조금씩 틈이 생긴다. 남자로 성장하는 뿔치와 그런 뿔치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살강이의 마음과 그러면서도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또한 작가는 참 잘 그려내고 있다. 성장하면서 자라나는 아픔을 겪는 두 아이의 이야기가 다른 주변 인물들과 잘 어울려가며 생동감있게 전달된다. 뿔치랑 헤어질까봐 용궁 가기를 주저하는 살강이, 그래서 해적패 속으로 뿔치를 집어넣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지만, 뿔치가 사람을 죽이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다시 잡는다. 결국 용궁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고 푸른용이 승천을 하려면 숨탄것을 제 몸같이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알아야 깨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푸른용에게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해적선을 물리치러 갔지만 오히려 붉은뱀호에게 포위당하고 공격당하는 나랏배와 곰치, 살강이를 구하기 위해 뿔치는 결국 세 번째 씨앗도 쓰게 된다. 자신의 목숨 값과 바꾼 씨앗을 말이다. 안타까워하며 말리려 하는 살강이, 자신 때문에 뿔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없다고 하며 이무기에게 뿔치 대신 자신이 목숨 값을 치르겠다고 마음으로 탄식한다. ..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결말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단지 뿔치와 살강이의 고된 삶이 안타깝고, 부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책을 넘겼을 뿐이다. 그러나 대단한 반전! 그래서 난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앞으로 되돌아가 작가 소개를 다시 읽게 되었다. 만약 반전을 여기서 말한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누가 되리라! 성장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 끝에 오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다소 생소한 뿔치와 살강이라는 존재와 용이라는 허상의 존재를 통해서 판타지로 풀어가나 그 끝은 참으로 담백하다. 뿔치와 살강이, 비록 부정이라는 굴레 속에서 힘겹게 자라나 굴레를 벗기를 애타게 찾는 모습으로 비추어지지만 그 속에서 우리들 내면의 성장의 아픔도 같이 보게 된다. |
|
여러 해 전, 대학생이던 사촌 동생이 어찌어찌하다 원양 어선을 타고 온 이야기를 했다. 고생담을 들으면서 나는 그 녀석이 부러웠다. 망망대해에서 검은 바다를 들여다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내가 먼 바다, 먼 산, 먼 나라를 동경한다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방향 감각 없고 길치인 나는 안 가 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들은 내게 가슴 뻐근한 즐거움과 서글픔을 준다.
뿔치- 제 7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한 해양 판타지 동화. 제목만큼이나 작가 이름도 특이했다. ‘보린’. 보통 앞 날개에 작가 사진이 박히던데 이 작가는 그런 친절을 보여주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더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바다처럼 깊고 바다처럼 요동치는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사람의 내공이 부럽다.
뿔치와 살강이는 부정을 탔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살았다. 용이 승천한 자리 뿔등을 피로 더럽히며 태어난 뿔치와 얽은 얼굴로 살강에 버려진 살강이는 당할머니가 거두어서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당할머니가 용궁을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후 몰래 마을을 떠나려다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이무기 골짜기에 던져진다. 돛도 없는 작은 배로 거친 바다로 나가야 하는 뿔치는 이무기에게서 돛 세 개를 받고 목숨을 팔았다. 돛 세 개를 다 쓰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무기가 던진 물음을 가지고. <?XML:NAMESPACE PREFIX = "O" /> ‘용왕을 만나면 물어봐 다오. 검목이 천 년 공덕을 쌓고도 어째서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가.’
아, 이건! 내 아이에게 읽어주곤 했던 ‘복 타러 간 사람’ 이다. 전래 동화 모티브를 이렇게 차용할 수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이 책은 많은 책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가져와 제 것으로 만든 듯 했다. 첫 장을 펼쳤을 때는 ‘워터십 다운의 열 한 마리 토끼’가 생각났다. 본문 앞에 예언처럼, 시처럼 나와 있는 두 줄의 글 때문이었다. 여기에 뼈섬, 황금섬, 이삭항 같은 상상력 가득한 곳들과 바래님(바람),해적선, 해적선을 쫓는 나라의 군사들, 푸른 몸을 한 황금섬의 사람들까지, 다양한 것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무기의 흑심을 하릴없이 만드는 논리도 솔로몬의 재판처럼 신나는 일이었다.
뿔치와 살강이는 첫 번째 돛을 써서 뼈섬에 닿는다. 숨있는 것은 하나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 곳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겪다가 장삿배를 얻어 타고 용궁으로 갈 수 있는 이삭항에 갈 꿈을 꾼다. 그러나 두 아이는 뱃사람들에게 잡혀 팔려 가는 신세가 된다. 뿔치는 짐꾼 일을 하면서 떠나 온 끝말 마을에서와는 달리 자유를 느끼기도 하지만 밥집에 팔려가서 고생하는 살강이를 위해 해적선에 오른다. 뿔치는 돛대에 매달려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초인적인 모습들을 보임으로써 해적선 우두머리 귀신상어에게 인정받으며 자신감을 키워갔다. 돛을 계속 쓰게 만드는 검무기는 살강이에게 뿔치의 범상치 않음을 일깨우며 용이라고 말한다. 살강이는 뿔치를 잃을까봐 노심초사하게 되고, 용궁을 찾아가는 것을 주저한다. 그러나 살강이도 결국 부정이라는 낙인을 용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벗지 못할 거라는 뿔치를 위해 용궁을 찾아 나선다.
용궁은 가까이에 있었다. 뿔치와 살강이가 먼 길을 돌아 돌아, 온갖 고난을 겪으며 찾아가 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늘 지나고 난 뒤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용궁에 닿은 들 해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살강이는 꿈에선 듯 용왕에게 길을 물었다.
뿔등에서 태어난 아이, 그 신세가 왜 그런지, 푸른 용이 어째서 깨어나지 못하는지? - 숨탄것을 제 몸같이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알아야 깨어날 터.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보물은 제 속에 스스로 생기는 법이지 남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한 몸처럼 지낸 동무가 떨어져 나가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 스스로 생겨난 보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느니. (pp.270-271)
용왕의 답은 결국 사람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마음에 새길 말이다. 부정을 털어 버리러 길 떠난 아이들이 마지막에 얻은 진리이듯.
뿔치와 살강이는 서로를 제 몸같이 여겨 마침내 깨어났다. 그리고 그 장면의 반전이란! 작가는 푸른 용이 누구인지에 대해 복선을 깔아 놓았다. “살강아, 살강아, 뿔치 저놈을 부탁하마.” “용왕님, 바래님, 멀쩡한 애 하나 요절낸 늙은이는 죽어 어디로 가오....” 그리고 붉은 용을 만났을 때의 장면에서도.
마침내 뿔치는 깨달았다.
‘그저 진작 알았더라면, 부정이라는 딱지가 기껏 이름에 불과한 것을 알았더라면 그리 지내지 않았을 텐데. 제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는 이들을 더 믿고 의지했을 텐데. 그것이 안타까웠다. 뿔등에서 태어난 뿔치, 그 이름에 얽매어 저조차 제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하물며 사실도 아닌 그 이름 때문에, 사실도 아닌 이름 때문.....’ (p.302)
뿔치의 넋두리는 나의 것이기도 하다. 이런 글을 대하면서 다시 한 번 얽매이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다잡는다.
마지막에서, 뿔치와 살강이의 길 떠남이 또 이어질 거라는 희망과 아버지의 사랑이 단단한 뭍처럼 뿔치를 기다릴 거라는 감동이 여운을 남긴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내밀고 싶다. |
|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그 때가 있다. 내안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일생에 있어 어느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닌듯. 내안에서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멀고도 멀지만 조금씩 내 안의 나를 보게 될때의 그 기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여기 열세살 살강이와 뿔치도 마찬가지다. 뿔등에서 태어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언제나 부정이라는 이름과 함께 쓰인 뿔치와 당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살강이는 끝말 마을 사람들에겐 부정한 이름과 한갓 제물로만 받아들여진다. 끝말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뿔치와 살강이는 이무기 골짝에 제물로 받쳐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을 재현해주고 비쳐주는 거울과 같은 판타지 소설로서 흥미진지한 모험과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용왕의 존재를 찾아 그들 속의 고민 즉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 판타지 소설에 그리 흥미가 없는 지라 읽는내내 조금은 많이 불편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살강이와 뿔치가 겪어야하는 그 험난한 여정. 그 안에서의 많은 시련과 역경. 꼭 그 시련과 역경이 나에게 주어진 것만 같아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모험이며, 본연의 참된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읽으면서 책을 덮고 한참을 숨을 고르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만큼 살강이와 뿔치가 겪는 모험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천년의 공덕을 들이고도 여전히 이무기로만 남아있는 검목이. 뿔등에서 태어난 뿔치가 푸른용일 것이라는 희망, 아니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다. 하지만 뿔치의 몸과 마음을 내건 돛의 씨앗 3개를 주면서 이 씨앗을 사용하게 만들며 모든 모험을 이 검무기가 만들고 이끌어나가게 한다. 검무기와 함께 용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시작되고 이 여행속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과 시련과 모험을 만나게된다.
뿔치는 자신에게 평생 주어진 굴레. 자신의 신세가 왜 그리한지에 대답을 찾게 되고, 자신의 동무였고 그가 그렇게 지켜주고 싶어했고, 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살강이가 바로 푸른용이었다는 것. 그리고 살강이는 뿔치와의 관계속에서 진정한 여의주를 찾아 자신의 본연의 모습인 푸른 용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무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보물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였기 때문에 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참된 나를 찾아가는 그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다보면 나에 대해 조금씩 더 생각해보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의 민속생활 속에 함께 있었던 용과 용왕,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신나는 판타지 이야기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
|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책은 전래동화 였다. 그 다음이 각 나라별 민화(民話), 설화. 그래서 책을 골라 잡았다 하면 다 그런 종류다 보니 많이 접해봐서였을까... 뿔치의 큰 틀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느낌이었다.
이무기가 왜 용이 되지 못하는지 바래가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를 뿔치보고 용왕에게 물어봐달라고 하는 부분은
원천강을 찾아가는 오늘이 이야기에서 책을 매일 읽는 매일이, 비맞으며 사는 구름이,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처럼 나오는 등장인물의 느낌(?)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류의 설화... 굉장히 많이 읽어본 것 같은데... 제목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이 갑자기 어디서 펑 하고 솟아난다는 건 무리가 있고 어느 정도 설정이 비슷한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오늘이에 나오는 이무기는 여의주가 너무 많아서인데 뿔치의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르다. 그리고 오늘이에 나오는 이무기는 오늘이의 조력자가 되는 반면 뿔치에 나오는 이무기는 도움을 주긴 하지만 원래의 목적은 뿔치를 헤치는 것이니 다른 점도 있다.
책에는 배와 관련된 용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한번 설명하고나면 다시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잘 기억하면서 읽어야 한다. 아랫부분에 있는 주석만으로는 배의 어느 부분을 말하는 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서 삽화도 어느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뿔등에서 태어난 뿔치와 살강에서 주워와 살강이 그리고 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돕기도 하고,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하는 검무기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입에 착 착 감기는 우리말이라 더 정이 가는 책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한자리에서 읽은 것도 읽은 것이지만 재미있는 책을 읽고 나면 꼭 옆에 있는 사람에게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 해주는데 이야기를 해주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줄거리들은 다른 리뷰들에도 많아서 안적었는데 그래서인지 단점만 적은 것 같아 아쉽지만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정말 생각지 못한 부분 ^^
나에게 책이란 한 번 보는 책/ 다시 보고 싶은 책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뿔치는 '다시 보고 싶은 책'에 포함되는 것. 그걸로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
마음에 남는 글귀 p.158 용왕께서 뭇짐승을 통틀어 사람을 고른 게 얼마나 현명하신 선택인지 몰라. 껍질에 눈이 멀어 알맹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는 달리 또 없거든.
p.195 뿔치야,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마음이, 머리가 있는 게야. 눈 닿지 않는 곳에 뭐가 있는지 알라고.
p.300 -남들이 붙여 놓은 것은 본질이 아니라 이름일 뿐이니, 너희에게 붙은 그것도 부정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이란 이름일 뿐이거늘. -그럼 어찌해야 그 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지요? -달리 불러줄 이를 찾으면 될 터. |
|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였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이 되어 바다를 떠돌아 다니며 겪게 되는 각종 모험에 대한 만화였는데 어렸을 때 부터 무척 좋아했는데 아직도 계속 연재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해양판타지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생겼다는게 신기하고 기뻤다. 주인공 뿔치와 살강이가 겪게 되는 바다에서의 온갖 모험담은 해리포터처럼 많은 복선과 흥미로운 플롯으로 얽혀 있어서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행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 복선을 눈치 채고 밝혀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게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 독자들이 끊임없이 사고하며 읽기에 참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나라에 팽배해져있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작가의 따끔한 일침도 들어가 있어 교훈적이라 생각한다. 평소에 교사로서 티비를 볼 때마다 늘 예쁘고 멋진 사람만이 대우받고, 능력이 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아이들에게 자꾸 주입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늘 불편했다. 실제로 우리반 아이들 중에도 커서 꼭 성형 수술을 하려는 아이들도 있고, 화려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연예인이란 직업을 무척 선망하는 아이들이 많다. 자꾸만 자신의 자존감을 남을 통해서만 채우려는 아이들을 볼 때 늘 안타까웠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부정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냉대 속에 자신은 부정하다고 자꾸만 자신에 대해 단정짓는 뿔치와 살강이가 이 시대의 아이들의 단상이 아닐까?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것만으로도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인데, 아직 어려서 티비와 같은 잘못된 매체가 전해주는 논리에 빠져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건강한 책을 읽어 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런 좋은 교훈도 들어가있으면서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한 순간도 놓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책 뒷부분에 펼쳐지는 숨막히는 반전은 어른인 내가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멋졌다. |
|
[푸른책들] 뿔치_바다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 해양 판타지 동화!!!
제7회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을 받은 해양 판타지 동화 <뿔치>!!! 표지에서 느껴지는 색채가 전혀 낯설지 않고 우리내 동양적인 색채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데요, 내용상 주고 받는 대화는 폰트를 각기 달리해서 읽는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답니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 제목의 '뿔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더욱 밀려왔는데요, 뿔등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뿔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뿔치는 남자, 살강이는 여자....... 용이 승천한 자리 '뿔등'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정 탄 아이로 낙인 찍힌 뿔치와 얼굴이 얽은데다 버려진 아이라는 이유로 마을의 냉대를 받는 살강이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제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나 가뭄을 부르고 역병을 부르고, 제 아비 넋을 빼놓은 걸로 모자라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풍랑까지 불러들여 키워 준 당할머니 숨통까지 끊어 놓은 놈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 뿔치와 살강이는 용이 승천한 자리를 피로 더럽힌 채 태어나고 얼굴이 곰보라는 이유로 부정한 존재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다가마을 어른들에 의해 이무기 골짜기에 제물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부정한 존재라는 낙인을 벗어버리려 용궁을 찾아 떠나는데요, 풍랑이 너울대는 바다와 낯선 섬들을 종횡하는 뿔치와 살강이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서로의 우정을 지키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힘이 되어 준답니다.
이미 정해져 있어 더이상 바뀔 것 같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든 되돌리기 위해 바다에서 펼치는 험난한 모험의 길을 씩씩하게 맛서 나아가며 안간힘을 쓰는 뿔치와 살강이를 통해 판타지라는 또다른 세계의 마법속으로 푹 빠지게 된답니다.
판타지가 얼핏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수도 있지만 판타지는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온갖 모험과 그것을 통한 성장, 깨달음 등을 우리의 현실과 견주어서 넌지시 알려 주는데요, 빠른 속도감과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나는 흥미진진한 모험 속으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
|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에 빠지고
날 때부터 주위사람들의 낙인으로 부정한 존재로 살아온 뿔치와 살강이 용궁을 찾아 떠나면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
|
책을 덮으면서 묘한 즐거움에 싸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뿔치와 살강이... 마을에서 부정한 것이라 불리고 이무기에게 던져졌던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 용궁을 찾아 용왕을 만나 자신들의 신세가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뿔치는 자신의 목숨값인 세 개의 돛의 씨앗을 가지고 살강이와 모험을 떠났습니다. 그 모험은 뿔치와 살강이의 성장 이야기인 동시에 자아를 찾기 위한 모험이었지요. 뿔치도 살강이도 힘든 시련 속에서도 서로를 믿으며 서로를 위한 마음을 통해 자신들을 옭아매던 부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독립적으로 행동하던 살강이의 모습을 통해서는 새로운 여성상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험을 통해 제일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용왕이 말하지요. "남들이 붙여 놓은 것은 본질이 아니라 이름일 뿐이니, 너희에게 붙은 그것도 부정 그 자체가 아니라 부정이란 이름일 뿐이거늘." 용왕의 말처럼 부정이라는 딱지는 기껏 이름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우리는 그런 이름에 얽매여 제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닌 그 이름 때문에, 사실조차 아닌 이름 때문에 말입니다. 저에게도 '부정'은 아니지만 다른 이름'완벽'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 이름 때문에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날 것 같은 조마조마함에 스스로 저를 옭아매고 있지요. 하지만, '완벽'이라는 이름은 저의 본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매 순간 저를 힘들게 합니다. 이제는 남들이 붙여 놓은 이름, 남들에게 보여질 이름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완벽'이 아닌 '저'일 뿐입니다. 제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고, 저의 본질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이쯤이면... 뿔치보다도, 살강이보다도 제가 가장 많이 성장한 것 맞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