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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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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사계절 감성 탐조조병범 지음/자연과생태/ 2020.10.   모를 내기 전 트렉터가 논을 갈고 있는 시골의 봄 풍경은 새로울 거 하나 없습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대체 뭘 찍은 사진일까’ 의아했어요. 글을 몇 줄 읽다가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옮기니 오른쪽 아래에 비로소 하얀 새들이 보입니다. 논에 트렉터가 오가는 그저 그런 어느 한 날이 새에 눈 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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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사계절 감성 탐조

조병범 지음/자연과생태/ 2020.10.

 

모를 내기 전 트렉터가 논을 갈고 있는 시골의 봄 풍경은 새로울 거 하나 없습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대체 뭘 찍은 사진일까의아했어요. 글을 몇 줄 읽다가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옮기니 오른쪽 아래에 비로소 하얀 새들이 보입니다. 논에 트렉터가 오가는 그저 그런 어느 한 날이 새에 눈 뜬 이에겐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던 거지요. 트렉터 꽁무니를 뒤따르는 쇠백로, 중백로, 황로가 입체로 도드라집니다. 그제야 새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을 글쓴이의 마음에 이입이 됩니다.

 

지금은 트렉터지만 옛날에는 쟁기였을 터

소와 쟁기와 흰옷 입은 농사꾼과

백로와 황로가 어울린 봄 논 풍경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54)

 

트렉터가 파 놓은 자리에 지렁이, 미꾸라지 같은 먹이를 먹는 새들이 보이자 논의 주인이 바뀌는 시간으로 상상은 날개를 답니다.

 

백로가 논의 주인이 될 때가 있다.

농부가 모내기를 끝내고

논을 잠시 떠날 때가 그때다.

농부가 밭에서 풀과 씨름할 때

백로 무리가 논을 성큼성큼 걷는다.”(55)

 

흰옷을 즐겨 입던 옛날에는 백성인지 백로인지 구별하기 어려웠겠다는 글을 읽으며 다시 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 바깥으로 여행은 이제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새에 시선을 맞추어야 가능한 상상이고 시간 여행입니다.

 

이 책은 출근길 어느 날 직장 근처 습지에서 흰뺨검둥오리 가족을 만나면서 시작된 가볍고 작은 생명, 새에 관한 기록입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계절이 바뀌면서 이 땅을 다녀가는 새들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비단 새들의 흔적만이 아니에요. 새를 통해 만난 그리움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솟소쩍 솟소쩍 소리를 내고 금방 고요 속으로 빠져들며 소나무랑 한 몸이 된 소쩍새가 엄마의 따순 등을 그립게 합니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만난

감나무 잎보다 몸집이 작은 가수
고음으로 다채로운 가락을 노래하니

흥에 겨우면 저절로 터져 나오던

아버지의 숨겨진 흥을 듣는 듯하다.”(143)

 

도감이 건조하게 새를 만나는 지점이라면 이 책은 글쓴이의 마음과 눈을 통해 새를 만나는 따스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생명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담뿍 담긴 눈이고 마음입니다. 안쓰러운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고요. 때론 망가져가는 환경을 걱정하는 눈빛 역시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왼쪽 다리가 댕강 잘린 괭이갈매기

배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묻어

자유롭게 날갯짓을 못하는 민물가마우지

큰회색머리아비는 깃털이 꺼멓게 되었다.

기름이 묻어 자유롭지 못한 날개

사냥을 하지 못해 먹이를 먹지 못하니

모래톱을 산책하는 사람이 바로 옆을 지나도

몸을 일으켜 도망갈 힘이 없다.”(209)

 

때론 활짝 웃게 만드는 사진과 글도 만납니다.

 

넓적부리도요 한 마리가 발발거리는

수백 마리 민물도요에 끼어 있다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 수가 없다.

물이 빠져나갈 때까지 눈을 부릅떴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수십만 마리 새

바닷물과 섬 풍경 본 것에 위안을 삼았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아뿔싸! 내가 이리저리 눈 돌리며 찾는 동안

홀로 나를 똑바로 지켜보고 있었다.”(122)

 

사진 가운데에 넓적부리도요 한 마리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더군요.

 

책을 읽는 내내 글쓴이와 함께 습지를 돌고 공원을 바닷가를 걸으며 천천히 새를 관찰하고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미처 몰랐던 새 이야기를 듣다 어느 순간 눈이 젖어들기도 했지요. 때론 봄날이 어서 왔으면 싶으리만치 꽤 설레기도 합니다. ‘사락사락 꽃잎인지 새인지 모를작은동박새를 만나고픈 마음 때문이에요. 이제 새를 만난다면 적어도 글쓴이의 마음 한 자락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꾸 봐야 예쁘다지요? 어느 한 장소에서든 새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때론 아프게 지켜보고 때론 아름답게 바라본 글쓴이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이 땅의 텃새도 때가 되면 이 땅을 오가는 철새도 모두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늘 함께 하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다양하고 어여쁜 새들이 우리 곁에 머물기도 하고 잠시 들렀다 가기도 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새들 마다마다의 인연을 기록해놓은 글쓴이의 관찰이 뭉클합니다. 새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 보이지 않던 한 존재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존재가 살아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가 열리는 일이라는 것도요. 그러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요, 새를 본다는 것은!

 

 

 

e*******7 2020.11.01.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