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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상실의 풍경(2011.2.25. 해냄)』은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하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누명〉이 작가 조정래의 데뷔작이었고 10편의 작품이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발표된 것으로 작가의 초기작품 성향을 살필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되살려내기로 유명한 저자의 작품 스타일은 단지 상상에 머무는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는데 이를 통해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비판하는 문학의 역할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다친 동료를 돌보기 위해서 한 일로 도둑으로 몰려 미군 부대에서 쫓겨나게 된 한국군인 이야기를 담은 〈누명〉과 아버지의 월북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감옥에 갇힌 어느 사내 이야기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그리고 카투사들의 생활과 미군들의 부정적 행태, 미국을 경외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빙판〉이 눈에 띈다. 또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해 낸 대신 신경과민, 신경성 노이로제라는 병을 얻은 어느 가장의 이야기이며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상실의 풍경〉도 눈여겨 볼 작품이다.
소설을 읽은 후 기분이 개운할 때도 있고 찜찜한 기분이 지속될 때도 있다. 작가 조정래의 작품은 두 번째 경우라고 말해야겠다. 억울하고 분통터져서 어떻게 살아,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가 지나온 역사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970년대를 살았던 소시민의 모습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작품 속 그만큼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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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작가 청년 조정래의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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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단편집으로 일전에 [어떤 솔거의 죽음]을 읽은 적이 있다. 모두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된
14편의 작품이 실려 있었다. 그에 반해 이 책 [상실의
풍경]은 1970년대 초반에 발표된 10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이 작품집을 먼저 읽은 다음에 [어떤 솔거의 죽음]을 읽어야 했는데, 그의 초기작들을 두서없이 찾아 읽다 보니 시대적으로는 거꾸로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두 작품집 모두 40여년 전의 우리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암울했던
그 시기에 거침없는 비판의식을 내보였다는 점에서 한,두 해의 순서는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상실의
풍경]에 수록된 10편의 작품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카투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그것은 1970년대 초반에
미국과 미군을 비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모두들 미국을
은인(?)이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고, 합리주의의 전형이라고
취급된 미국에 대한 비판이었기에 말이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누명]은 미군과 카투사간의 싸움에서 명백하게 미군의 잘못이 드러나자, 그에
앙심을 품은 미군장교가 한 카투사를 도둑이라는 누명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 국군으로 편입(국편)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빙판]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매형과 이를 한사코 말리려는 어머니 사이에서 누나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성화에 카투사에 근무하는 병욱은 매형을 만나 설득한다. 병욱은
군에서 미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 하지만, 매형은 미국비판 = 반미 = 용공 = 간첩의
논리로 병욱을 몰아 부친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프레임이다. 4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작품이건만 지금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우파들의 논리에 아연해 질 뿐이다. [타이거
메이저]에서 강철은 상습적인 폭력배라는 이유로 대대장이 처벌을 요구한다. 카투사 파견대장 박소령은 강철에게 국편을 명령하지만, 강철은 미군에게
멸시당하고, 차별당하는 게 아니꼬와서 조졌다며 못 가겠다고 버틴다. 사회에서
권투를 했다는 강철에게 박소령은 8일 후 열리는 기지 내 권투시합에 출전하라고 한다. 8일 후 권투시합에서 백인과 맛붙은 강철은 케이오로 이기고, 기지의
전 미군과 카투사들이 보는 앞에서 박소령에게 멋진 승리신고를 한다. 그렇지만 박소령은 강철에게 국편을
명령했고, 강철은 아무 말없이 한국군으로 떠난다. 비록 미군들에게
멸시 받고 차별당하지만 규정에 따르는 의연함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연좌제에 관련된 작품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후유증과 그것을 악용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에서 이중현은 지하간첩단 사건에 연루된다. 이름
모를 잡지에 자신의 이름이 편집인으로 올랐다는 이유였지만, 거기에는 여순반란사건 당시 반란군에 가담했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쓸 때, 20년
후에는 우리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헌데 그 두 곱인 40년이 다 되었는데도 기별이 없다며, 또 다시 40년 후에도 이 작품들이 현존성을 갖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설]에서는 학군단으로 소위 임관을 앞둔 청년이
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임관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소위 임관자격 박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원조회가 필요한 모든 일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이 청년의
고통을 깊게 만든다.
이
밖에도 작품집에는 상업전수학교에 역사교사로 취직하지만 제대증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이력서 위조범이 되어 실직하는 과정에서 받는 모멸감을 그린 [선생님 기행], 돈과 패거리 그리고 비방이 난무하는 정치판의 구태가
국민학교 반장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비판하는 [이런 식 이더이다], 물신화 된 세태에서 신경증이 극에 달한 중년 남자의 삶을 그린 표제작 [상실의
풍경] 등이 실려있다.
작가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지금의 우리 현실과 비교해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은 바로 지금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970년대, 그러니까 40년 전에 쓰여진 작품들이 이처럼 현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 말마냥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조정래 작가의 초기작들을 찾아서 읽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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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조정래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태백산맥을 통해서였다. 1991년 고교를 졸업하고 읽었던 태백산맥은 정말 충격적인 서사였다. 그리고 내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야한 소설이었다. 북한괴뢰군은 뿔 달린 빨간 도깨비라고 배웠던 나에게 좌익에 대한 우호적 성향을 갖게 한 것도 다 태백산맥의 영향이었다. 당시, 좋아했던 남친에게 이 책을 홀수로 선물해 줬었다. 나머지 짝수는 네가 채워서 읽으라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그 친구는 서울로 학업을 위해 떠났고 어느 날 죄수복 같은 한복을 입고 고향에 내려왔다. 겉멋이 훌륭했던 친구는 시류에 따라 데모를 주도하던 학생회 간부로 커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고 그에게도 태백산맥을 권해줬다. 지금은 그 사람보다는 그의 책상 밑에 있던 태백산맥으로 그를 기억한다. 나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안겨준 태백산맥. 장편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해 아리랑과 한강은 아직 못 읽고 있다. 그러던 중 조정래 선생님의 초기작품들이 도서출판 해냄에 의해서 ‘상실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과 한강의 모태와도 같은 책이었다. 1970년 등단작인 ‘누명’에서부터 1973년까지 쓴 ‘타이거 메이저’까지 모두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상실의 풍경’은 상실이 상실인줄도 모르는 시대적 상황에서 펼쳐지는 소시민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카투사가 ‘미군에 소속된 한국군’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군의 실상과 한국의 위치, 부패한 교육의 현실, 정치적 미숙함, 월남전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영웅, 남편과 자식을 불모의 땅으로 보내야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 사회가 만들어낸 정신적 트라우마로인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 그들의 현실이 여과 없이 소설에 펼쳐진다. 작가가 보여준 대하소설의 역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가슴 뜨거움의 씨앗불과도 같은 생각들이 군데군데 빛을 발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식인이 보여줄 수 있는 참된 펜의 힘이 시대를 초월하여 빛을 발하는 구나. 오래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타피가 한국과의 우호적 협력(중동 건설에 우리나라의 많은 근로자들이 투입되었던 일)에 대해 중동주재 한국대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최근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카타피의 문제적(?) 발언으로 인해 방영이 보류되었던 녹화장면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우호적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근로자가 중동건설에 힘써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협력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한국은 미군에 의해 점령된 미국의 식민지라는 발언을 했다. 아마도 이 발언 때문에 방송이 보류된 것이지 싶었다. 그의 발언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세계사적 안목으로 조목조목 따지는데 참 똑똑하며 의젓한 기품을 지닌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조정래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고 있자니 카타피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작가가 지닌 역사적 안목이 놀랍다. 태백산맥을 쓰신 이후에 여러 차례 국가기관에 출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 소설이 유효하게 빛나는 이유는 그 모든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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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로 만났던 작가 조정래님의 단편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늘 큰 작품들을 통해 만나던 작가님의 글을 아기자기한 단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상실의 풍경>은 1970년대 초반 쓴 글들을 묶은 것으로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작가의 데뷔작인 '누명'도 만날 수 있어 내게는 의미있는 독서 였다. 1970년 초반에 씌여진 글 들이니 이미 40여년이 흘렀다. 작가는 이 글들을 쓸때 20년 후에는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기대 했다고 하는데 그 20년이 두 번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 되고 있다. 40년이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변한 것은 무엇일까?
단편이라고 하지만 내용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겠다. 암울했던 70년대 초반 우리네의 이야기들이라 밝고 환한 이야기보다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로 읽는 동안도 읽고나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한 내용 들이다. 물론 내가 70년대 초반을 온전히 기억하는 세대는 아니지만 여타의 책을 통해 알고 있는 풍경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조정래님의 접근법과 다른 뿐... 지극히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는 <상실의 풍경>역시 조정래님의 다른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님의 사화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청년기적 작가의 사회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과 우리네 일상 속에 정착된 부조리와 폭력, 이념 갈등 등으로 상처받은 서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글들이 유신시대에 씌여졌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쩜 언론이 자유롭다는 지금보다 더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는 내용들을 그 때 쓸 수 있었는지 작가의 힘은 그래서 위대한가 보다.
지금은 70년대와는 시대가 많이 달라져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고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보고 배운 주입식 교육방식대로 좋은편, 나쁜편 이렇게 나누는 방식이 지극히 자연 스러웠지만 지금은 참 많이도 달라 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한 언론자유가 우리에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로 인식 되는 지경이니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그 의사를 서로 존중해 줄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 어찌 개인들의 의사 하나하나를 언론이 정부가 일일이 대응을하는지...
이제는 달라지면 좋겠다. 물론 통일이 되는것은 우리모두의 소원이니 반드시 이루어져야 되겠지만 빠른 시일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잠시 미루어 두더라도 당장 이룰 수 있는 언론의 자유만이라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작가가 다시 20년 후쯤 글을 쓸때는 물론 통일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 20년 동안 우리도 많이 발전하고 변화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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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가 아닌 단지 상실과 풍경이란 단어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그러니까 『태백산맥』,『한강』, 『아리랑』이란 대작을 쓴 작가가 아닌 손자를 등에 업고 환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와 함께 상실이란 단어에 끌린 것이다. 『상실의 풍경』속 10편의 단편을 통해 19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과 마주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아니 존재했더라도 알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1970년대를 생각하면 새마을 운동과 월남전이 떠오른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노래는 아직도 생생하다. 잘 살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하던 시절, 공산당과 빨갱이란 단어가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다. 간첩 신고는 애국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는 더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해서, 국가가 원하는 이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간첩이란 이름으로 월북을 하기도 했다.
소설은 소설을 너머 1970년대 사회를 담고 있다. 10편의 소설은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함께 군생활을 하는 군인 이야기(누명, 빙판, 타이거 메이저)를 통해 한국 군인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더불어 그 안에서 미군을 옹호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탐욕도 마주할 수 있었다. 영어를 배우고 어쩜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참한 상황, 바로 그 시대 우리의 모습이었다.
6.25와 월남전을 온 몸으로 느끼고 힘겹게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어떤 전설, 거부 반응, 청산댁)를 비롯한 1970년 시민들(상실의 풍경)의 삶은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 40년 전 그들의 삶은 지금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서글프기도 했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 삶은 편리해졌지만 남과 북은 여전하게 대치하고 있으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며, 월남전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1970년, 그 시절 누구나 큰 도시로 서울로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이념이 있던 시절이었다. 나라의 부름으로 군대에 갔고 전쟁에 참전했지만 남은 건 싸늘한 죽음뿐이니,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까. 과연 그 시절에만 해당되는 일인가?
‘사람들은 바삐 걸어가고 차들은 거침없이 달리고, 번잡함과 분주함 속에서 태연한 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태연함은 세상의 외피였다. 그 외피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신음하고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랴. 그동안 자신과 같은 피해를 받고 홀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끝내는 체념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런 아픔은 전혀 표면화되지 않은 채 세상은 무사태평하게 잘도 돌아간다.’ p.197~ 198 <어떤 전설> 중에서
작가는 1970년 당시, 이 소설들을 쓰면서 40년 후엔 달라졌을 꺼라 믿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은 누군가의 삶일 터, 그 시절을 지나 다시 이 소설과 마주한 그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상실로 인한 슬픔은 여전하게 차오르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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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정래의 소설을 처음 만났던 때는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 때 심정적으로는 운동권이나, 표면적으로는 비운동권이었던 내가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던 것. 그 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왜곡되어왔던 해방직후의 역사적 진실을 파헤쳤다는 [태백산맥]을 나는 결국 4권까지 밖에는 읽지 못했었다. 특별히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1973년 작 '상실의 풍경'을 보자. 현대화된 도심에서의 생활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상기하며 고향으로 떠나지만 이미 그곳은 그가 살던 어린 시절의 그곳은 아닌 것이다. 겉으로는 그리 변하지 않은 모습에 잠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그곳의 촌스러움과 불편함에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는 그의 양가 감정. 그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에서 바라보던, 휙휙 셀 수 없이 지나가버리는 전신주처럼, 1970년대 급변하던 시대의 표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평안을 느끼며 잠시 쉬었던 산사에서 밤중에 그를 가위눌리게 하던 그 커다란 물체의 실상도 바로 그가 바랐던 '고요'였다. 가끔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도 한밤중의 '고요'가 너무나 무거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게 된다. 소음이 너무 싫어 그것을 피해가면 또 무겁게 짓눌림을 참지 못하게 하는 '고요'... 단편 '상실의 풍경'에 강하게 이입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금 21세기를 사는 나에게도 여전히 같은 풍경이고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흡사 연기처럼 퍼져서 어둠을 타고 전신을 휘감아왔다. 분명 눈은 뜨고 있는데도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그렇게 무서워지면서 숨이 답답해 오는 것이다.....목탁 소리가 울린 것은 이때였다. 그 목탁 소리를 듣자 살았다는 기분이 퍼뜩 들며 무섬증이 싹 가시었다. 동시에 짓눌리는 압박감도 없어졌다. 가슴이 확 터지면서 숨결이 가벼워졌다. 어찌된 일인가. 순간 그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고요, 깊이나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것. 겹겹으로 쌓인 산중의 어둠 속에 웅크린 고요. 그것이었다....(P397) '상실의 풍경' 외에 조정래 작가 데뷔작, 카투사 생활과 주한 미군의 부정적인 행태를 그린 '누명'을 비롯해 예비교사가 불이익을 겪으며 실직하는 과정을 그린 '선생님 기행', 여순반란 사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정치판을 닮은 초등학교 선거를 비판하는 '이런 식이더이다'등을 읽으면서 아이러니 했던 것은 40년 전 작가가 작품으로 비판하며 그렇게도 끝나기를 바랐던 사회, 역사적인 문제들이 아직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답답하고 씁쓸해진다. 그래서 조정래도 이렇게 말했나보다. ...40년 후에도 이 작품들이 현존성을 갖게 될까 봐 두렵다. 새 옷으로 꾸며입은 이 책이 새 독자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그 두려움을 빨리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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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정래 작가의 1970년대 소설들을 묶어 만든 책이다. 40년의 세월이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20년 후에는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리라 기대하고 썼어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런 기별이 없다. 40년 동안 변한 것은 무엇일까? 총 10개의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과 끝은 카투사라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 병사들의 얘기다. 앞의 것은 우리 땅에서 우리가 차별을 받고서 떠나는 얘기이고 마지막의 것은 차별에 항거하고서 당당하게 떠나는 얘기이다. 우리 땅이지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미군 부대.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미군 부대가 이전을 하고 간 땅은 거의 죽은 곳이 되었다. 몇 십 년간의 오염으로 인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간섭을 하거나 감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왜 40년 전의 글을 보면서 아직도 가슴 답답함을 느껴야 하는가? 지금처럼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 40년이면 옛날 얘기가 되어야 하며 ‘허허’하는 웃음으로 ‘예전에는 그랬지’하면서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썩은 미소조차 지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만 가득할 뿐. 연좌제에 걸려 소위 임관을 거절당한 사람과 출판사 사장의 사기에 걸려 이름을 도용당한 사람이 결국 감옥에 가게 된 얘기. 어느 것 하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 답답하다. 그래도 그런 답답한 사실들을 알고 표현을 했으니 그 때 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많은 희생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알려진 것 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이. 40년 후에는 정말 웃으면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옛날 얘기로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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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풍경>은 조정래 작가님의 70년대 중, 단편 모음집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지만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새롭게 단장되어 출간된 책을 놓고 작가는 말한다. “슬픈 역사의 비는 얼마나 오래 내려야 하나?” 아직도 분단된 나라, 슬픈 역사의 비는 여전히 이 땅을 적시고 있다. 70, 80년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이 있었다. 분명 그 때는 언젠가는 통일이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통일이 국민적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미지수다. 경제성장과 함께 전쟁의 아픔을 겪은 세대는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교체가 되면서 민족의 뼈아픈 분단이 이제는 완전한 단절로 고착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어쩌면 2011년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시대적 아픔은 지나간 과거의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의 풍경>은 70년대 작품이라서 전쟁을 겪은 세대의 가슴 아픈 삶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창하게 시대와 역사를 논하지 않아도 개인의 비극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각 작품마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그들이 겪는 불행은 결국 그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가난하고 억울한 것인지 보는 사람까지 슬프게 만든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과 <청산댁>은 가장 극한 결말이라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져온다. 빨갱이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사상 문제는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자는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고 한순간에 죄인으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세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잔재는 남아있다. <어떤 전설>의 한 구절처럼, “이거 말이오, 유전병치고도 아주 고약한 유전병이오.”(202p)인 것이다. <타이거 메이저>의 강철이 거둔 통쾌한 승리가 링 안에서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기를 바라듯이 간절함이 희망이다. 시대적 비극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상실의 풍경>은 우리에게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가? 잃어버린 아픔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20년 후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 때는 <되찾은 풍경>이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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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어야 할 희노애락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인생이든 어떤 제도이든 자리를 잡아가고 발전하며 약해지고 소멸한 후 새로운 탄생을 거듭하는 이 순환의 고리는 그 주기를 반복하며 역사를 만들어간다. 조정래 작가의 <상실의 풍경>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태동기를 거쳐 충돌과 분열 속에 안정화를 찾기까지 벌어졌던 다양한 형태의 소음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고 힘들어했을 사람들-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조정래 작가의 대다수 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일상 속의 우리들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책을 구성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기존의 책들처럼 한 가족과 그 주변인이라기보다 다양한 소외 계층을 하나씩 모티브로 삼아 저자가 1970년부터 1972년에 이르기까지 썼던 단편 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놓았다. 따라서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나 아픔을 자극하며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고, 나처럼 그 시대를 겪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매체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여과없이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이야기 하는 "상실의 풍경"은 우리가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잠시 잊었던 우리의 과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한창 이념과 사상의 갈등 속에 연좌제로 인해 자신의 꿈도 포기해야 하는 청년, 국가 재건을 명목으로 행포를 일삼던 미군, 도시화와 산업화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등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가 빠르게 지나쳐 왔던 풍경들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각각의 이야기도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떠들썩하던 그 시절의 군중들과 소시민들의 일상이란 조정래 작가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조정래 작가의 <한강>이나 <태백산맥>, <아리랑> 등과 같은 장편소설들의 연장선에 있는 듯 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도 역사의 이 순환 고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괘도를 찾기 위해 겪어 내야만 하는 다양한 충돌과 아픔 그리고 소멸... 그 과정을 거친 후 유지되는 가장 적절한 거리와 균형. 어쩌면 우리는 이 적절한 균형을 위한 여정에 몸을 맡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정래 작가의 눈을 통해서 그 치열했던 지난 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던 <상실의 풍경>!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시간의 기억을 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고 되돌아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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