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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땀과 의지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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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이다. 그런가 하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에 맞서 만들어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를 처음 만들었다 하여 초조대장경이라 부른다.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되자, 당시 강화도로 피신 중이던 고종이 불력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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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이다. 그런가 하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에 맞서 만들어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를 처음 만들었다 하여 초조대장경이라 부른다.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되자, 당시 강화도로 피신 중이던 고종이 불력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제작하기로 한다. 그래서 대장도감이 설치되고 당시 실력자였던 최우와 개태사 승통이었던 수기가 16년에 걸쳐 완성하고, 이를 강화도 서문 밖 선원사의 대장경판당에 보관했다. 이후 조선초기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을 조정래작가가 소설로 엮어 내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대장경이 우리민족의 거대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불법(佛法)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당시 집권층의 정치적 술수를 부정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한다. 팔만대장경은 집권층의 의도와는 달리, 나라 잃은 민중들의 순정한 나라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합일로 이루어진 영혼의 꽃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쓰인 [대장경]은 조정래작가의 최초의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몽골군이 침입하자 고려는 허무하게 무너진다. 고종은 강화도에 천도하고, 백성들은 몽골군의 말발굽에 유린당한다. 부인사에 있던 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 불타자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는다. 도장별감 최우를 위시한 무인세력은 대장경이 소실되었다는 소식을 고종에게 전하지 않다가, 패전의 책임을 벗어날 목적으로 뒤늦게 대장경의 소실 소식을 거짓으로 고한다. 그리고 불법으로라도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대장경 판각작업이 필요하다고 상소한다. 어명에 의해 대장경 판각작업을 위한 불사가 시작되자, 총 지휘를 맡은 수기대사는 백성이 겪는 고충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수기대사는 준비작업을 위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며 필생과 각수를 구한다. 몽골군에게 부모와 누이를 잃은 장균은 수기대사를 찾아와 필생이 되겠다고 한다. 부인사의 대장경을 승려들과 함께 지키기 위해 원병을 자청했다가, 구사일생으로 혼자만 살아남은 천민 근필은 목수를 지원하고 나선다. 이처럼 대장경 판각 불사를 지원한 사람은 승려들 외에도 민간인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들 오백여명의 필생과 각수들은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다시 3년여 동안 글씨를 쓰고 판목에 글을 새긴다. 판목은 자작나무가 많이 나는 남쪽해안에서 바닷물에 3, 응달에서 1, 그리고 다시 소금물에 1년을 담가 만들어진 것으로 배에 실려 강화도로 옮겨졌다. 판각들이 만들어져 경내에 쌓이기 시작할 즈음, 판전의 완성을 눈앞에 둔 근필이 그 동안의 피로로 쓰러진다. 판각이 봉안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근필의 말에 수기대사는 그때까지 새겨진 판각을 봉안하라고 한다. 엷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는 근필을 보고 울부짓던 수기대사는 천일불공을 준비하라고 외친다.

 

  위정자들이, 집권세력들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백성들을 도외시하지만, 백성들은 나라를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당당히 죽음의 길을 간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는 백성들의 땀과 의지가 소중한 우리의 유산 팔만대장경으로 피어난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백성이야 죽든 말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 당시 위정자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본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나 보다.

k*****1 2016.11.23.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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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예술혼이 깃든 팔만대장경
"시공을 초월한 예술혼이 깃든 팔만대장경" 내용보기
불법을 일정한 규준 아래 집성해 놓은 불교성서를 대장경(大藏經)이라 한다. 장(藏)이란 말은 광주리를 뜻하는 범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이 담뿍 담겨져 있는 큰 광주리라는 뜻이다. p318   몇 년 전 합천군에서 고려대장경 간행 천 년의 해를 맞이하여 열린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렸다. 대장경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문화의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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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일정한 규준 아래 집성해 놓은 불교성서를 대장경(大藏經)이라 한다. 장(藏)이란 말은 광주리를 뜻하는 범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이 담뿍 담겨져 있는 큰 광주리라는 뜻이다. p318

 

몇 년 전 합천군에서 고려대장경 간행 천 년의 해를 맞이하여 열린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렸다. 대장경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는데 기대를 넘어선 감동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은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천 년의 시간을 견뎌 낸 대장경에는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교하고 정밀해야 하는 대장경 원고를 만드는 일과 경판 새기기 작업은 둘째치고서라도 대장경 판각에 쓰일 나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숨을 멎게 만든다. 바닷물 속에 2년여를 잠겨 있다가 건져져서 소금물에 삶은 후 바람결에 1년여를 건조 시킨다니, 오로지 정성어린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조정래의 소설 『대장경(2010.12.01. 해냄)』은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과정을 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몽골의 침략 때문에 국토도 사람의 마음도 모두 피폐해진 상황에서 권력자들은 민초들의 순수한 불심과 애국심을 정치적 술수로 이용하려고 한다. 이에 반해 대장경 제작의 총 책임을 맡은 수기 스님은 처음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는 대장경 제작에 총력을 기울인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 희생이 모아져 만들어지는 대장경의 제작 과정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백성은 어리석은 무리가 아닌 것이다. 천한 무리도 아닌 것이다. 다만 견딜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착한 무리인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 무리일 뿐이다. p304

 

『대장경』은 팔만대장경이 상상을 초월하는 극치의 예술품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는 바로 나라 잃은 민중들의 순정한 나라 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합일로 이루어진 꽃(p4)이기에 그러하다. 전란과 화재를 겪으면서 여러 차례 소실될 위험에 처했지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팔만대장경은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 나가는 민초를 닮아있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목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된 팔만대장경 덕분에 한국은 인쇄문화의 종주국이 되었지만 이보다 고려 민중들의 예술혼이 더 가치 있게 평가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읽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중 가장 감동적이다.

b******s 2017.02.2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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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산 민초들의 이야기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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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불놀이>를 비롯해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들이 하나 둘 복간되고 있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비롯한 <한강>등의 긴 대해소설들을 읽었지만 정작 짧다면 짧은 장편소설을 별로 읽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대장경>은 76년에 초판되고 4번째 복간된 조정래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몽골의 침략으로 부인사에 있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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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불놀이>를 비롯해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들이 하나 둘 복간되고 있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비롯한 <한강>등의 긴 대해소설들을 읽었지만 정작 짧다면 짧은 장편소설을 별로 읽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대장경>은 76년에 초판되고 4번째 복간된 조정래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몽골의 침략으로 부인사에 있던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초조대장경이 소실된다.

몽골군의 침략으로 강화도로 옮긴 후 깊은 고뇌에 빠지고, 신하들은 우왕좌왕하고 그런 속에서 백성들은 허무하게 죽어간다.

 천민의 후손이지만 목수 일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대장경을 만드는 목수 근필, 백성들이 받을 또 다른 수탈을 염려하는 수기대사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이름모를 민초들의 모습들이 이야기를 통해 한과 함께 펼쳐 놓는다.

 

대장경하면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떠오른다.

대장경은 1011년(현종 2)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과 1091년(선종8)에 만들어진 속 대장경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장경 원본들은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1236년(고종 23)에 만들기 시작해 1251년(고종38)에 완성된 것으로 "재조대장경"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판은 8만 1258장 가운데 6,589권이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대장경은 만든 목적은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국가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서 새긴 것으로 고려 때와 조선 초에도 인쇄되었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고 평창군 월정사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세계문화유산인 유네스코에 2007년 6월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팔만대장경을 어머어마한 규모와 자랑스러움에 뿌듯해 했다면, 이 책을 읽고나니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알지만 외면했던, 혹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당시대의 한과 염원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는 것 같다.

역시나 조정래 작가님의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같다. 그간의 책들도 그랬지만 <대장경>도 우리 민족의 얼과 아픔, 한이 베어 있다. 그와 함께 따스함과 자랑스러움도... 

 

올해가 초초대장경이 만들어진지 10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조정래 작가님의 <아리랑>에 이어서 <대장경>이 오폐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올려진다고 하는데 책이 아닌 오페라로 보는 느낌은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된다.

 

m*****a 2011.01.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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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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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지루했던 과목이 국사였다. 역사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우리 역사를 배우는 수업 시간은 지루했다. 연도 순으로 나열된 사건과 인물을 외우기만 했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역사 속 인물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 소설은 먼지로 뒤덮인 과거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생생하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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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지루했던 과목이 국사였다. 역사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우리 역사를 배우는 수업 시간은 지루했다. 연도 순으로 나열된 사건과 인물을 외우기만 했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역사 속 인물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 소설은 먼지로 뒤덮인 과거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업 같다. 특히 조정래 작가님의 <대장경>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역사 속에 묻혀졌던 민초들의 삶이 눈 앞에 펼쳐진 듯 그려져 시대의 아픔까지 느낄 수 있었다.

<대장경>은 고려 시대 고종19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존 중이던 초조대장경이 불타면서 그 이야기는 시작된다. 혼란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소실된 대장경을 다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재조대장경,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존된 팔만대장경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머리로 이해하지만 소설로 읽는 역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대장경이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은 몽골의 침략과 무능력한 조정으로 인해 민초들이 온갖 시련을 겪을 때였다. 그런데도 대장경을 만든 것은 민초들의 힘이었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장경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속에는 시대를 이끈 왕과 영웅만이 등장하지만 역사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었다. 대장경은 단순히 목판에 새겨진 불경이 아니라 민초들의 혼이 담긴 역사의 증거였다. 조정래 작가님을 통해 새롭게 살아난 <대장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 옛날에 이토록 훌륭한 경판을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한 순간에 풀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경판을 만들고자 승려와 같은 삶을 자청했다. 아무리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인간의 숭고한 정신으로 탄생한 대장경을 따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고려 시대 고종을 떠올리면 최씨 일가의 무단정치와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쇠락한 역사만을 보았는데 대장경을 통해 민족의 한(恨)과 더불어 기상을 느꼈다. 나라가 어려워도 정신만 바로 서면 희망은 있다.

대장경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근필이라는 목수다. 비단 이 한 사람만의 희생은 아니었지만 그가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은 나라를 구한 영웅 못지 않은 장중함이 느껴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이 어떤 정신으로 사느냐는 평범한 목수마저 위대한 인물로 만드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인물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은 평범한 행복과 개인의 이득을 먼저 생각해서일 것이다. 영혼을 불사르는 그를 통해 살아있는 부처의 모습,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았다. 어렵고 힘든 시대에 태어나 이 땅을 지키고자 온몸을 바쳤던 민초들의 이야기, <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혼(魂)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a*****7 2011.01.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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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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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조정래의 초기작품이다. 초판이 1976년이니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 책에서 3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작가의 혼을 느낄수 있었다. 오래전 부터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수많은 대작을 쏟아놓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인 곧은 정신. 우리 민족의 고난의 시간들을 잘 견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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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조정래의 초기작품이다. 초판이 1976년이니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 책에서 3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작가의 혼을 느낄수 있었다. 오래전 부터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수많은 대작을 쏟아놓게 된 계기가 된 듯 하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인 곧은 정신. 우리 민족의 고난의 시간들을 잘 견뎌온 곧은 정신이 돋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팔만대장경에 관한 책이다. 팔만대장경하면 떠오르는 것이 합천 해인사이고,  불심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라는 사실 뿐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팔만대장경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그릇된 방법중의 하나일것이다. 그저 겉모습과 결과만 아는것에 만족하는 태도. 숲도 나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릇된 시선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몸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팔만대장경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목판이라는 것 밖에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전무했었다. 하지만, 조정래의 대장경을 읽고나니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 속에 깃들어져 있는 뜨거운 혼을 느꼈기 때문일것 같다.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우를 필두로한 무인정권의 병폐가 심했던 시절. 더군다나 고려는 몽골군에 의해 백성과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철저하게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백성들의 피흘리는 원성은 그저 저잣거리의 개 짓는 소리만도 못 할 뿐이었다. 왕을 비롯한 수많은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뒤로한 채 강화도로 들어간다. 강화도에서도 그들의 생활은 전쟁전과 아무것도 다를것이 없었다. 힘들고 아픈건 가진것 없고 힘없는 백성들 뿐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버림을 받을 망정 자신이 먼저 나라를 버리는 법은 없었다. 힘없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 만큼은 위정자라 자칭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진솔했다. 그들 속에는 자신만의 부처님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 과 가족들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못난 나라님을 바라는 불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고려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불교가 널리펴져있던 시절이었다. 승려들의 지위도 그만큼 높았으며 불심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보다 우선순위에 놓였던 시절이었다. 어느시절이나 마찬가지만 권력이 커지면 그에 따른 병폐도 심해지는 법이다. 불심을 핑계로 승려라는 이름을 달고 저지른 병폐도 상당히 심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도 불심뿐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그저 극락왕생만을 바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삶의 저항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부인사에 보관된 대장경이 고려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라고 생각한 몽골군은 부인사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고려는 이미 대장경의 불력을 빌어 거란군을 퇴치했다고 믿고 있었기에 이번 몽골군의 침입또한 불심으로 이겨내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대장경의 존폐 위기에서도 정권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부인사를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나선것은 승려들과 진정한 불심으로 가득찬 백성들 뿐이었다. 그들은 현격한 힘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끝까지 대장경과 함께 했다. 불타오르는 대장경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의 몸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고려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그렇게 불꽃은 사그라 들었다. 모든것이 소멸된 그 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부인사 주지스님의 사리와 목수 근필 뿐이었다.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이후 무인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기는 커녕, 또다른 대장경을 만들고자 한다. 명목은 불력의 힘을 빌려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부인사 대장경의 소실을 알게된 왕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었다. 이미 왕으로써의 권위 및 능력을 상실한 고종은 최우를 중심으로 한 무인정권의 끊임없는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 물론 왕또한 전쟁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이다. 새로운 대장경의 판각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는 백성들에게 과연 최선책이었을까? 이 물음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새로운 대장경 판각의 책임자로 지목된 수기대사는 무인정권의 책임자였던 최우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대감은 지금 네 가지 대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 잡고 있는 괴로움을 이용하여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 고함으로써 상감을 우롱한 죄를 범했으며, 셋째 전란을 겪느라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게되고,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성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사를 내 어찌 찬성할 수 있으며 참예할 수 있단 말이오.(본문 119쪽) 정말 속이 시원한 장면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최우앞에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는 수기대사의 배짱이 돋보인다. 물론 왕이 가장 신뢰하는 스님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종교의 책임자로써 불사를 일으키는 일에 대놓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기대사의 말은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왕의 뜻을 거역하기 힘들었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수기대사는 대장경 판각에 책임자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대장경 판각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작업 이었다. 대장경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판목,필생,각수로 구분할 수 있다. 대장경의 바탕이 되는 나무를 구하고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 강화도로 옮긴다. 그 과정에 무수한 노동력과 인명의 손실이 따르게 된다. 두번 째 필생은 전국의 명필들을 모아 똑같은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각수는 글씨를 판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한 획 한획 틀림이 없이 조각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축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한 장균은 스스로 대장경 필생을 위해 붓을 잡는다. 몇년 째 각수작업을 하던 사내는 부인의 부고를 뒤늦게 어린 아들에게서 듣는다. 부인사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근필은 판전을 짓기 위해 수년 간 혼자서 대목의 길을 걷는다. 그 과정은 모두다 고통스러운 수행의 길이었고,  어느것 하나 쉬울것이 없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댓가도 없이 엄청난 작업에 자신의 힘을 보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어쩔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기대사가 미리 예언했던대로 전란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대장경 판각은 또다른 부역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완성된 팔만대장경. 순수하지 못한 출생의 비밀로 인해 대장경의 의미가 훼손될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 아로 새겨진 민초들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기에 팔만대장경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서야 제대로 알게 된 대장경의 의미와 그 과정은 정말 경이로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만대장경의 방대한 양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다. 오로지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모든것을 바쳤던 사람들. 사고를 치는 사람과 그 뒷수습을 하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은 역사또한 예외가 아니다. 군사독재로 인해 피폐화된 국토에 희망의 싹을 심은것은 다름아닌 이름없는 민초들의 몫이 었다. 그 싹을 잘 키우기는 커녕 끊임없이 짓 밟는 것은 또다른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틴 민초들의 생명력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이어져 온다. 그것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오래전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가 않으며, 조정래 선생의 초기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작가의 3부작 대하소설이 워낙 출중하기에 다른 작품들이 행여 빛을 발하지 못할수도 있었을 텐데, 이번 기회를 빌어 오래전 작품들을 다시 만날수 있어서 정말 반가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2 2011.01.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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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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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 대장경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아낸 소설이다. 팔만대장경을 주제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 책 중에 태백산맥, 아리랑은 못 읽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책에 담아내는 작가로써 역사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강은 현대화적인 내용이었고, 처음 시작으로는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눈여겨 볼 수 있는 책으로 재건되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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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 대장경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아낸 소설이다. 팔만대장경을 주제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 책 중에 태백산맥, 아리랑은 못 읽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책에 담아내는 작가로써 역사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강은 현대화적인 내용이었고, 처음 시작으로는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눈여겨 볼 수 있는 책으로 재건되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허수아비 춤을 시작으로 불놀이, 대장경이 나왔는데 허수아비 춤만 안 읽은 상태이다. 대장경 책은 부인사가 몽골군에 인해서 불에 태어졌고,

대장경도 같이 소멸이 되 버렸다. 손실 된 것을 다시 재건하기 위한 승려와 농민이 힘을 합쳐서 노력을 거듭 거듭 하면서 성과를 일궈낸다.

대장경을 만들기 위한 시간들이 6년이란 시간이 지날 만큼 길었던(과정) 민족의 얼이 묻어있고, 자부심을 가지고서 관전을 만들었던 목수 작업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목수의 일생도 눈앞을 선하게 하였다. 나였으면 그런 용기와 자부심을 가지고 하였는가 하는.. 역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몽골군으로 인해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과 소망이 있기에 역사에 대한 품은 마음은 뜨거워진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옛조상들의 이야이지만

현대역사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억들로만 기억하기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 이러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발벗고라도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라면.. 지금 현대역사는 옛조상님들이 세운 덕목이나 문화재는 소실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다. 소실된 문화재가 더 완벽해질수는 없지만.. 옛것을 깃점으로 해서 다시 복원이 되고 문화재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계획들도 세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소실되는 문화재를 보면 우리것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강국의 나라가 아니다. 라고 생각이 든다.

강국의 나라가 되기 위한 일은 역사가 왜곡되지 않는 일이고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읽지 못하였던 역사에 대해서 좀더 깊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을 알게 되었고, 소설 이야기로만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생각을 해 본다.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즐거운 일이 아닌가 하는 싶기도 하다.

j*******2 2011.01.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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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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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으로 국난극복을 목적으로 대장경을 제작했다고 오래전 학창시절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고려 몽골에게 침략을 당하여 임금과 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하게 됨으로서 백성들을 버렸다는 느낌을 갖게 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당시 무신정권이었으며 최우가 집권을 하고 있었기에 고종은 거의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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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으로 국난극복을 목적으로 대장경을 제작했다고 오래전 학창시절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고려 몽골에게 침략을 당하여 임금과 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하게 됨으로서 백성들을 버렸다는 느낌을 갖게 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당시 무신정권이었으며 최우가 집권을 하고 있었기에 고종은 거의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을 추진했고, 부인사에 보관 되었던 대장경(초조대장경)의 소실은 집권자들이나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충분했다. 

<대장경>은 우리가 잘 아는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으로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에 피난 중 제작되었고, 15년에 걸쳐 총 81,137장의 대장경과 대장경 판목들을 보관하기에 건립했던 판전이 지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전쟁 중에 백성들을 버리고 떠난 집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환기해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신집권자인 최우와 최고 불교계의 수장격인 수기대사가 하나가 됨으로서 정치적으로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장경의 제작은 백성들의 부담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역사적이나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남겨 진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기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남겼지만, 어떻게 보면 '불심으로 국난극복'이라는 것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장경을 제작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 백성들의 땀 흘린 그 과정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모두 초보였을 수도 있었으나 하나하나 배워가며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이 맡은 바 일들을 훌륭히 해 온 결과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팔만대장경이 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 중에 가족과 가정을 떠나서 묵묵히 버티며 작업을 해냈던 (글을 쓴 후 다시 나무에 한자 한자 새겼을) 긴 시간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대장경>은 1976년에 쓰신 조정래 선생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조정래 선생님의 책은 중편 연작 4편을 엮은 <불놀이>에 이어 읽는 두 번째 책이니 내게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정치가도 종교인이 아닌 백성이 만들어 우리에게 남겨진 대장경의 숨은 뜻과 거기에 쌓인 땀과 눈물을 이해하며 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조상님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민중의 아픔, 고통 등의 진한 삶에 공감을 하며, 대장경 제작에 참여했던 수많은 분들께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c*********n 2011.01.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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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 두번째 팔만 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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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많이 팔린 창작소설로 기록된 태백산맥을 쓴 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쓰기전에 쓴 장편소설이 바로 이책 대장경이다. 지금보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다 되어버린 노작가가 내나이즈음인 32세에 이 소설을, 그것도 첫줄을 쓴지 28일만에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36년이나 지난 지금, 길고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나를 만났다.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이 200쇄라는 어마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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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가장많이 팔린 창작소설로 기록된 태백산맥을 쓴 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쓰기전에 쓴 장편소설이 바로 이책 대장경이다.

지금보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다 되어버린 노작가가 내나이즈음인 32세에 이 소설을, 그것도 첫줄을 쓴지 28일만에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36년이나 지난 지금, 길고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나를 만났다.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이 200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것이 이미 2년이고 여기에 비하면 별거 아니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속에 36년을 버텨 4판 2쇄를 찍어냈다.

  28일만에 다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쓴기간만 친것이고 자료조사나 취재등의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을 것이다. 아무리 천재작가라 해도 역사소설을 인터넷 소설 쓰듯이 휙휙쓸수는 없고 휙휙 썼다한들 그것이 공짜로 생성된 지식이랴.  

 




 
  몽고의 침략으로 임금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부인사의 장경도 몽고군에 의해 소실된다.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 모든 백성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던 시대여서 그 충격은 더 큰것이다. 중신들은 문책이 두려워 임금에게 그 사실을 숨기나, 결국 알게된 임금의 분노는 극에 달해, 결국 몸져 누워버렸다. 최우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장경을 다시 새길 계획을 세우고 임금에게 고한다. 임금의 뜻을 받든 수기대사는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지원자들을 모집한다.  

 


  수기대사는 그들, 승적 없는 승려가 되어 있는 민간인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더듬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수기 대사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힘이 뿌듯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건 어떤 자신감이었다. 확신이고 믿음 이었다. 비록 나라가 작고 국력이 약해 끊임없는 고난을 겪어오고 있는 땅이지만 저들과 같은 백성이 있는 한 소멸되지 않으리라. 저들이 지닌 예지와 신념과 끈기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고 다시 퍼져 뿌리를 내리는 동안에 이땅은 기필코 번영하리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자들의 현세욕으로 범해진 어리석은 잘못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슬기와 성실과 인내로 이 땅은 결코 박토로 버려지진 않으리라
 
           - 303p中-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한사람 한사람 수년간 정성을 들여 대작업에 혼신을 기울인다.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빡빡하 고된 작업을 그야말로 무보수로 몇년동안 착수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도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비야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극히 드문것이다. 요즘시대는 보수를 많이 준다해도 이런일을 하려드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나, 그시절은 나라가 큰 위기에 처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 위기의 상황이기 때문에, 민족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헌신을 할수 있었으리라.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시대나 집권자들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70년대의 경제발전이 어찌 한사람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겠는가? 백성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그렇게 만든것이다.

팔만 대장경을 생각할때 그것을 만드는데여한 승려및 백성들의 노력은 기억되지 않고 고종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되듯이, 70년대의 경제성장도 박통의 성과로만 기억되고 있다.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대표하는 하나의 키워드만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때문에 희생되어진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 고려 현종때 만들어진 첫번째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 두번째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군부독재 시대에 목숨바쳐 싸우거나 비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인물들마다 개성과 사연이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세명이다. 모든 일을 총 지휘하는 수기대사는 한없이 넓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고승이지만, 강한자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와 추진력, 결단력과 리더쉽까지 갖춘 이상적인 인물이다.

부인사의 습격에서 홀로 살아남은 목수 근필은 대장경의 판전신축을 담당하기 위해 수기대사를 찾아오고, 신들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에 몰두한다. 12살의 어린나이에 수기대사를 찾아오는 정장균은 명필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신동소년이다. 몽고 오랑캐에게 부모를 잃은 그는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은 굳은 의지와 정신으로 수기대사를 여러번 감탄하게 만든다.

태백산맥이후의 작품들 보다 인물묘사나 내면묘사가 자세하지는 않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 그런 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이 주로 이야기 하는 주제는 인물보다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 계기와 과정, 헌신과 노력, 거기에 담긴 민족혼에 더 중점을 둬서 그런게 아닐까.

조정래 소설의 장점은 탁월한 인물묘사와 내면묘사에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무거운 주제나 골치아파서 듣기 싫고 딱딱하기까지 한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아무 생각도 없던 내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었다.

학창시절에 이렇게 역사가 재미있는줄 알았다면 열심히 했을텐데. 왜그리 재미가 없고 딱딱하기만 했던가. 의욕없는 학생이였기 때문이지겠만 재미도 없고 의식도 없는 수업이었기 때문에도 그렇다. 
t*********d 2011.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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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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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난생처음 말로만 듣던 ‘팔만대장경’을 보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장경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해인사를 방문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훼손을 막기 위해 외부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한 번 보겠다고 나무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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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난생처음 말로만 듣던 팔만대장경을 보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장경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해인사를 방문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훼손을 막기 위해 외부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한 번 보겠다고 나무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책꽂이 같은 것이 전부였다. 이 때가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지 올해로 천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일환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준비 중인데 조정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대장경의 재간행도 때 맞춰 이뤄졌다.

 

조정래 작가의 유명한 대하소설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의 첫 장편이 대장경인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여 진 이 작품을 어른이 된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니!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장경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탄생하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 하였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국사 시간마다 배웠던 팔만대장경의 의의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불심으로 적의 침입을 막자는 것은 당시 패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수기대사는 이러한 술수에 휘말려 가뜩이나 전쟁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이 더 이상 힘들어 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대장경 판각 불사가 시작되고야 만다. 그러면서 말로만 듣던 팔만대장경의 제작 과정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장균과 근필 등 민초를 대변하는 필생과 각수들의 노력은 팔만대장경의 역사적 가치에 빛을 더하고 있다. 그들의 뼈를 깎는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 역사도, 우리 문화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민중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들어 낸 값진 유산의 의미가 위정자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에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의도가 소설 대장경에 잘 녹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팔만대장경과 소설 대장경을 읽고 난 후의 팔만대장경은 분명 같은 존재이지만 그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민족의 혼이 깃든 놀라운 예술 작품이자 불심의 응집체이고, 백성들의 순수한 애국심이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이것을 단순히 국난 극복의 수단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대장경을 꼭 만나보길 권한다.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팔만대장경의 진실이 당신의 가슴을 뜨겁게 해 줄 것이다.

 

 

 

m*******6 2011.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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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오래전 작품에서 또다른 문학세계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오래전 작품에서 또다른 문학세계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내용보기
어느 해였던가 해인사를 찾았었다. 늦가을이어서였는지 인적이 드문 해인사에 이르는 길은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남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었다. 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국보 52호인 팔만대장경이 궁금해서 였는데, 해인사 경내의 뒷부분에 장경판전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판전 틈새로 보이는 경전들을 둘러 볼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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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였던가 해인사를 찾았었다. 늦가을이어서였는지 인적이 드문 해인사에 이르는 길은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남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었다.

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국보 52호인 팔만대장경이 궁금해서 였는데, 해인사 경내의 뒷부분에 장경판전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판전 틈새로 보이는 경전들을 둘러 볼 수 있었는데, 좀 오래된 기억이어서 지금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로 고려대장경이 간행된지 1,000년 (고려 현종 2년, 1011년 시작 선종 4년 1087년 완성,팔공산 부인사에 보관중에 몽고침입으로 불에 탔다)을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고 한다.

이에 맞추어 조정래 작가의 '대장경'이 오페라로 공연이 되기도 한다.

얼핏 생각하면 조정래의 새로운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대장경'은 이미 작가가 32살(1976년)에 발표한 처녀장편소설인 것이다.


굵직한 대하소설 32권을 쓰기 시작한 것이 마흔살부터 였으니, 그 이전의 작품인 것이다. 1976년,  역시나 작가는 이 작품을 쓰게된 동기가 독재 정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때문은 아닐까?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 민족의 거대하고 거룩한 문화유산일 수는 있으되, 불법의 힘으로 외적(몽고의 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 술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것이 '대장경'의 주제이고, 그 소설을 쓴 목적일 수 있다.

'팔만대장경'이 나라 잃은 민중들의 순정한 나라 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합일로 이루어진 청정한 영혼의 꽃임을 나는 쓰고자 했다. 왜냐하면 '팔만대장경' 한 장, 한 장은 오늘날 보아도 상상을 초월하는 극치의 예술로, 보는 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수많은 영혼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위대하고 칼칼하고 싱싱한 예술품의 가치를 쓰고자 감히 필을 든다. (p4, 작가의 말 중에서)

그렇다. 거란족을 막아내기 위해서 70여년에 걸쳐 만들어졌던 고려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서 불타 없어지자 정방정치의 일인자였던 최우는 외적의 침략에 대한 당시의 정권에 대한 비난과 계속되는 몽고족에 의한 패배를 대장경의 조성으로 돌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후세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는채 역사책에 쓰여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작가의 처녀 장편소설이 이처럼 왜곡된 민족사의 한 획을 주제로 삼았다면, 그 이후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대하소설이 나올 수 있는 밑바탕이 '대장경'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소설은 몽골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에 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10만 기병의 침략군에 비해서 부인사를 지키는 지원군은 승려를 비롯한 천 명 안팎. 싸움다운 싸움도 아닌.... 픽픽 쓰러진 고려인들. 칼에 찔리고, 불에 타고... 여기에서 살아 남은 근필은 불타는 가운데 스님의 시퍼런 광채의 사리 3 점을 수습한다.

고려 고종은 강화에 천도되어 있지만, 왕의 귀를 막고 있는 정방정치의 실세인 최우는 부인사의 대장경이 소실된 사실마저 말하지 않다가, 그 돌파구로 대장경의 조성을 거론하게 되고, 이에 처음에 수기대사는 최우의 술수에 반대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대장경을 조성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고뇌하는 고종의 심리와 수기대사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그리고 대장경의 조성과정을 세밀하게 써나가고 있다.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에 천도한 위정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대장경 조성당시에 그리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생활했음에도 가여운 민초들은 몽골군에 의해서 무참하게도 핍박받으면서,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생을 살아가야 했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 놓고 있다.

천도 이후 지금까지 그들의 꺾을 줄 모르는 호화로운 생활은 정녕 누구에 의함이며 누구를 위함인가. 백성은 어리석은무리가 아닌 것이다. 천한 무리도 아닌 것이다. 다만 견딜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착한 무리인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 무리일뿐이다. 그래서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자들이 민심을 잃으면 천심을 잃고, 천심을 잃으면 역사를 잃는 것이다. 역사는 잃은 정객을 당대만이 아니라 두고두고 자손 만대를 이어내리며 역적이 되는 것이다.  (p304)

얼마나 힘있는 문장인가?

이 시대의 위정자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위정자들이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어떤 전쟁이 힘겹지 않은 전쟁이 있겠느냐....

그러나, 몽골군에게 살륙당하는 민초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대장경의 조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목수 근필이도, 12살 짜리 장균이도.

근필은 오직 대장경 판각에 온 힘을 쏟아 섬뜩 섬뜩할 정도 광기어린 열정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장균이는 가화의 연정에도 판각이 끝날 때까지 한 치 흐트러짐없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던가.

81,137 장의 경판본인 162,274 장의 글씨, 한 판 양면을 650자로만 치더라도 52,739,050 자를 백여 명의 필생들이 3년에 걸쳐서 쓰고, 또 판각을 하고, 목수들은 대장경을 보관한 판전을 짓고.

이 소설은 비참한 우리의 역사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도 깔끔한 문장으로 이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래서 청아하게까지 느껴지는 '대장경'.

'대장경'이 밑거름이 되어 작가의 대하소설들이 쓰여졌음을 느끼게 해준다.

언제나, 조정래 작가는 글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작가이다.

그래서 작가는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 살아오지 않았던가.....



n******5 2011.01.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