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충우돌(左衝右突),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①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부딪침. ② 아무 사람이나 구분하지 않고 함부로 맞닥뜨림. 그런데 이러한 좌충우돌이 아니라 우충좌돌이란다. 분명 좌충우돌을 패러디한 것이 맞는데,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우파적 힘의 논리에 우선 부딪히지만(우충), 진보의 타성적인 다소 공허한 이념과도 부딪치기(좌돌) 때문에 우충좌돌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진보, 보수 안 가리고 막 부딪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우파보다는 중도와 진보 사이에서 더 많이 부딪친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진보라는 개념이 보수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모호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도란 부동층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존 정치판의 구태의연한 진보와 보수 이분법으로는 잘 잡히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점점 더 증가하는 사람들을 중도라 보고 있다. 우충좌돌은 이러한 중도적인 집단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이들의 시각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이슈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 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새는 좌우의 양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몸통과 양 날개로 난다고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개혁, 진보세력이라고 묶어서 말들 하지만 개혁과 진보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이들 사이의 오해와 왜곡은 끈질기고 악의적이기 까지 하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들은 진보와 좌파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무지막지와 혼란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그는, 중도나 중도좌 혹은 리버럴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아니고, 또 보수에 반대하면 자동적으로 진보가 되지만, 그리고 진보는 좌파라는 말을 대체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져서 한국에서의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중도라고 한다. 자칭 중도라 했을 때 보수와 진보의 이분화된 정치지형에서 존중 받지 못하고 왕따 신세를 당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좌파라는 말에 불편을 느끼기에 모두 진보라 칭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은 중도좌인지 아니면 자신이 믿는 좌파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개혁은 우파, 좌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진보 또한 모든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기에 우리사회에서 강남좌파나 진보로 불리는 사람 중에 전통적 의미의 좌파는 많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진보와 좌파를 정의한 저자는 한국사회의 대형이슈들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접근방식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우충좌돌 한다. 등록금인하운동, 교육문제, 보편적 복지, 비정규직, 부동산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수와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현실적인 문제는 도외시하고 강자의 논리만 추구하는 보수나, 거대담론으로 현실성 없는 소리만 반복하는 진보 모두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도를 제안한다. 또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찾고자 한다. 등록금인하운동에 앞서서 왜 등록금이 미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고 한다. 그것은 대학진학률과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그리고 대학의 80퍼센트 이상이 사립인 현실, 여기서부터 모든 비극은 탄생한다. 그렇다고 대학에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던지 간에 대학 학력이 없이는 안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백수도 대학을 나와야 백수 취급을 받는다. 대졸자들의 실업률은 사회문제화 되지만 고졸자들은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진보나 좌파가 등록금인하운동이나 비정규직문제를 거론할 때 먼저 우리사회가 대졸자 주류사회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보수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이기에 차치하고라도, 진보진영은 거대 담론보다는 실천적이고 구조적인 담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복지문제에서도 저자는 우충좌돌을 멈추지 않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이슈화된 복지는 이제 정치권의 쟁점이 되었다. 올해 치러지는 양대 선거에서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라는 것이 과연 절대선인지를 저자는 묻고 있다. 진보진영은 친환경, 혹은 복지라는 의제가 언제, 어디서나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복지는 오히려 보수의 정책으로 더 힘을 발휘했으며, 보편적 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가재정이라고 강조한다. 즉,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진보는 너무 단순하게 증세를 주장하지만,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개인과 가정은 공적인 해결보다 사적인 해결을 선택해야만 하는 우리사회에서 증세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흔히 복지문제에 대해 보수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이념논쟁을 하는 것은 그들이 정치, 정책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진보가 말하는 보편적 복지에 포퓰리즘은 없는가 하고 반문한다. 보편적 복지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복지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보편적 복지 보다는 일단 소득 하위 70퍼센트에게라도 충분한 복지 제공이 현실적이지 않은지 되묻고 있다. 부동산문제나 신자유주의 문제에서도 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자신은 결코 우파일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거대담론이나 현실적이지 않은 구호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묻고 있다. 부동산문제에서 보수는 시장경제를 말하며, 국민이 국민경제의 인질이 되도록 부추긴다. 반면 진보는 상황을 통제할 힘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거품론과 붕괴론을 앞세워 비난만 한다. 또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찬성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보수는 미국중심의 질서에 메 달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처럼 여기고, 진보는 실물경제의 장점은 누리면서도 이론과 담론차원에서는 현존하는 경제질서를 쉽게 비판한다고 지적한다. 보수가 위악을 띤다면, 진보는 위선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중도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말로는 중도라 하지만 그들은 사실 위장된 보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우 극단적인 것을 벗어나 중도실용을 주장한 그들은 항상 양비론을 펼치며, 보수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아니 극우가 국민들을 현혹하고자 보수를 중도란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우파나 좌파는 그런 국민들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분류하고, 서로 자기편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 복지에 대해 찬성은 진보, 반대는 보수, 반값등록금 반대는 보수, 찬성은 진보, 그리고 신자유주의 찬성은 보수, 반대는 진보와 같이 사회적 논쟁을 간단하게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프레임을 집어 던지자는 것에는 공감이 간다. 거대담론 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어찌 보면 집값, 교육 문제 등 모든 것이 수도권 일극사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보수에게 그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 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비난만 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또한 이런 모든 것들의 해결이 사회적 약자만의 지지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층의 지지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에 그들을 아우를 수 있다면 그들을 진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도라면 우선 회색이 먼저 생각나기에, 중도좌나 리버럴을 나 역시 진보라 부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