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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많이 읽고 다양하게 접하게 되면 어떤 짧은 글을 보고도 누구의 글이란 것을 알아채게 된단다. 김훈의 글은 소설 몇 편 읽은 게 다이고, 그의 글을 따로 눈 여겨 보지도 않았지만, 우연히 그가 기자시절에 썼던 짧은 글을 읽고 그임을 눈치챈 경험을 했다. 아마 오래 전 그가 기자 신입시절에 박경리작가가 사위인 김지하시인의 출옥을 기다리던 장면을 묘사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 문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훈의 문체는 워낙 독특하고 유려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내가 글을 감식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문체를 소유한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김훈마저 가까이 하지 못할 정도의 문체 끝판왕은 이문구다. 그의 소설은 <관촌수필> 하나 읽었지만, 아직까지 그의 글을 읽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글을 썼다.
자기의 문체를 가지고 글을 잘 만드는 사람을 문장가라고 하는 것 같은데, 고종석의 글에 의하면 1990년대 초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문학 평론가 ‘김현’이 뛰어난 문장가였던 것 같다. 최근으로 시간을 좀 당기면 고종석이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알렸다고 하니, 그가 사사했던 김현의 글도 자신만의 손금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 없다. (그의 글도 읽어보려 한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작가 중에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유시민이 있다. 그의 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보아왔다. 20대 중반에 쓴 <항소이유서>부터 최근의 <청춘의 독서>까지 십여 권을 넘게 읽었지만, 그의 글에 문체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최근 유시민의 글은 쉽게 읽히도록 독자의 폭을 넓히는데 무게를 둔 듯하다. 그가 이미 여러 곳에서 말했듯, 가장 좋은 글은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말이다.
고종석의 글을 최근에 와서 대여섯 권 읽었는데, 읽는 재미가 좋다고 느꼈다. 언어학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지적 자극이 좋고 그가 사용하는 단어와 비유, 이런 것들이 참신하고 마음에 잘 와 닿는다. <말들의 풍경>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약간은 낯설고, 때로는 익숙한 단어를 비틀고 구부려서 사용하는데, 다른 사람이 섣부르게 사용했다가는 유치하거나 억지로 보일 수 있는 것이 그가 사용하면 정확하게 필요한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느낀다. 단어만 새것을 끼워 넣는다고 될 것이 아니라 문체와 문장이 거들어줘야 되기 때문이다.
고종석이 사용하는 단어들,,
언어에 들씌워진 상징적의미
드세게 실천하고
서로 너나들이를 할 정도
무람없는 짓
이라크 침략을 거들어온 대한민국
시민들의 정치감각을 뭉그러뜨리는데 골몰
맞세운다
기운차게 책을 내고 있다
한글학회 둘레의 일부 호사가들
100권에 바짝 다가간다
밍밍해 보이기 십상
시간의 더께
고종석이 드는 비유와 기타 기억나는
글들…
서북방언의 울타리를 상당 부분 걷어내버린 것
호칭은 긴장의 땔감
비를 사랑의 수채화 물감으로 쓰고 있는 것
혁명은 시의 주된 연료
기 품없는 언어로 정치권력을 저주하고 모욕하는 데 지면의 적잖은 부분을 배당하는 수구
오늘날의 주류언론이 독자나 시청자들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거스르며 제 논조를 펴기는 힘들다
이오덕은 한국어 서술어의 평서형 종결어미를 ‘-다’의 독재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했다.
아름다움이 그 심판관의 편견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 부동심은 동서고금의 많은 현인들이 다다르려 애쓴 이상적 마음상태였다
정신적 미숙의 표지다
(으르렁말) 발설자의 호승심을 충족시켜주는 모욕의 언어일 뿐
광고 카피들은 소비자들에게 이러이러한 상품을 사서 씀으로써 당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당신의 품격을 뽐내라고 들쑤신다.
상류층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상류층의 표지가 붙은 취향을 부러 실천함으로써 허위의식을 통한 자족감을 누린다
한국 민주주의가 기지개를 켜던 1989년
방송매체가 몸집을 불리기 전에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 이라는 프랑스적 지식인 개념
나는 나중에 말하는 자의 유리함에 기대어 불공정한 게임을 했다. .. 16년이면 제 둔함을 감추고 날램을 가장하기에 넉넉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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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은 나로서는 의미 있는 책이다. 내게 있어서 관심을 갖고 구입한 책이 아주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책의 대다수(연간 100여 권)가 서평단 이벤트에서 받은 것이다 보니, 관심을 갖고 구입한 책은 우선순위에 밀리게 마련이었다. 서평의 의무가 없다 보니 뒤로 미루다가 읽을 시기를 놓치고, 어떤 경우는 1년이 넘도록 읽지 못한 경우가 있다. 또한 모처럼 읽었다고 하더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은 관심을 갖고 구입했고, 만난지 한 달 이내에 읽었으며, 가슴 뭉클한 향수에 잠기게 한 책이다. 이 책이 내게 준 인상에 대하여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저자에 대한 관심에서 책을 선택했다. 내가 고종석 저자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한겨레신문에서였다. 그가 쓴 고정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말과 글에 대한 그의 시선이 신선하면서 단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그의 저서에 대한 관심이 자주 일었지만 만나는 인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달에 10여 권을 구입하면서 저자의 글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둘째, 저자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빈약했음을 실감했다. 저자에 대한 나의 상식은 우리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정밀하고 단아한 문체 정도였다. 즉 이 책을 읽으면 우리말과 글에 대한 상식이나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깊이는 몰랐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서 내가 저자에 대해 너무도 몰랐다는 반성을 했다. 글쎄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본 이웃에 고운 처자가 그저 예쁘장한 여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빼어난 절색이 되었거나, 만인이 인정하는 재원이 된 것을 보고 놀란 것이라고 하면 저자에 대한 실례일까 저자의 글에 대한 치열한 정신과 언어에 대한 동서고금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문학과 문법에 대한 깊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자가 이 정도로 깊이 있는 학자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자의 학문적인 깊이나 문학적인 소양은 내가 가름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셋째, 읽을수록 저자의 깊이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 ‘말들의 풍경’은 표준어나 우리말의 쓰임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지식이 담겨 있다. 내가 한겨레신문에서 읽으면서 생각하고 있던 저자의 모습이었다. 생각했던 내용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2부는 ‘말들의 산책’이다. 이오덕・홍회담・김윤식・최일남 선생 등 13명의 문사의 글과 문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스치고 지났던 분들의 글을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보니 새로웠다. 특히 학창시절에 가슴을 뛰게 했던 양주동 선생과 최일남 선생의 글을 보면서 향수를 느꼈고, 전혜린 수필가 글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배경을 보면서 그녀의 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3부는 ‘말들의 모험’이란 주제로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쉬르와 촘스키는 대학 강좌에서 들은 이래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나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준이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창 시절에도 소쉬르와 촘스키 등의 학설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나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의 학문을 내가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저 학창시절에 열심히 듣지 못한 나의 불성실을 몇 번이고 반성했을 뿐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정말 좋은 책이라는 것은 실감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힘들 듯하다. 1부 정도는 중고생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2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 정도 되어야 할 듯하고, 3부는 언어학에 대한 상당한 소양을 필요로 한다. 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 특히 국어교사들은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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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릴적 나는 국어를 정말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하자마자 배우기 시작한 국어문법은 갑작스레 다가온 적응불능의 국어의 생소한 모습이었다. 두음법칙, 연음법칙 등등으로 설명되는 국어의 문법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한글의 발음과 철자의 현상이지만, 그 당시 나는 갑작스런 혼란과 이해불가의 상태에서 국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트라우마였고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2년간이나 담임선생님이 국어선생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어본고사를 치르지 않는 대학을 골라 진학하려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국어는 내 스스로 벽을 치고 접근자체를 불허했던, 심리적 트라우마 그 자체의 과목이었다. 국어, 그러니까 한글 또는 우리말에 지금도 내가 단어적 선택이나 표현의 매끄러움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시절의 트라우마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2. 그러던 내가 블로그라는 매체를 통해 글을 끄적이고 있다는 것은 트라우마에 이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국어를 잘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싸움닭 길러지듯 공부를 해야만 했던 그시절의 상황과 더불어 한글로 된 글들 자체와 연관된 모든 행위에 심적 부담을 느끼던 내가 스스로 글을 지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벽을 넘어선 획기적인 변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어느날 추천받아 읽었던 책들에서 기인했지만, 이후로 수많은 글들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느낌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국어의 문법이나 분석을 넘어서, 글의 표정과 감정과 모습들이 이토록 다양하구나 하는 깨달음이 섞인 친근감이었다. 욕심은 도를 넘어 글쓰기를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어딘가 어색하고 표현력과 방식이 뒤떨어짐은 혹시 어릴적 딱딱하나마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한 한글의 골격과, 이에 대한 트라우마로 거리를 두었던 스스로의 벽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3. 표현과 방식은 뒤떨어지나마, 말이나 글이라는 방식이 가지는 어떠한 특성들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조금씩 읽어온 바가 있다. 그래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의 다양성과 하나의 사물에 주어진 단어의 적확성, 그리고 발음과 의미의 연관성 등등에 대해 어느정도 기본적인 개념은 가지게 되었다. 아울러 말이 가지는 지역성과 말의 지역성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말에 배인 사회성까지 사유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깜냥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언어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한글이 보여주는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과 언어의 바다에서 한글이 가지는 특성과 문화적 위치 등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한글을 포함한 수많은 언어들은 인간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나오긴 하지만, 흘러나오는 말들은 단어와 소리 하나하나엔 광활한 풍경과도 같은 방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확인하게 되는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4. 고종석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지인이 그의 글을 좋아한다며 읽어보기를 권했을 때 들었던 이름에서부터였다. 사실 읽고 싶은 책들 속에서 고종석을 만나는 일은 그닥 관심이 가지 않은채 지내오다 최근 트위터 속에서 만나 그의 멘션을 본 것이 그의 글을 대면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 '해피 패밀리'가 두번째 만나는 글이었다. 이후로 만난 것이 이 책을 통해서였는데, 언어학적으로 한글에 대해 풀어내는 그의 글 이야기는 위에서 했으니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서평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의 글은 어딘가 게으른 듯 하면서도 납득할 만한 여유가 느껴진다. 언어학 이야기만큼 분석적이지는 않지만 상대의 느낌과 평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 자신의 것으로 녹여낸다. 여유로운 자가 받아내는 상대의 기분같달까? 무딘듯 편향되지 않고 균형이 느껴지는 글이 사실 나에게는 조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의 글은 여유롭고 균형잡혔다는 면에서 또다른 표정과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트위터에서 왜 그리 어수선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지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강하게 다가오는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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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객원 논설위원인 고종석이 2006년 3월 부터 2007년 2월까지 연재한 「말들의 풍경」에 실린 글들을 모아놓은 연재글 모음집”이면서 뒷부분에는 “텍스트나 저자에 대한 비평을 제2부 ‘말들의 산책’에 모았다. 제3부 ‘말들의 모험’은 저자가 2009년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고종석의 언어학 카페-말들의 모험>에서 가져온 글”로 꾸며져 있어 제목 그대로 한국어의 풍경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해 저자가 발표한 책이 눈에 보일 때면 곧장 구하고 있는데, 이 책 또한 우연히 만나게 됐다.
저자의 글쓰기 성향-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목부터 어떤 식의 내용일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끝자락에 있는 ‘말들의 모험’ 부분이 이론적인 경향이 강해 조금은 의외지만 그것 말고는 저자의 다른 글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저자의 글을 좋아하고 따르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아 그저 찾아 읽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절필해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지금까지 발표된 글들을 구할 수 있을 때마다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참고 : 저자의 글이 갖는 특징이 뭔지 혹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무언가에 대해서 되도록 거리 두기를 하면서 말하려고 하는 점이 좋아 찾는다 말할 것 같다. 그리고 어쩐지 무심함과 차분함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은 점도 좋다. 마지막으로 허전함을 애써 내비치지 않으려는 씁쓸함을 느껴서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