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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빵조각, 길을 찾는 여정 어릴 적 가슴을 콩닥이게 하던 동화가 스멀스멀 떠오르는 단어들이 가득 담겨있다 시를 아껴 읽는 취향 때문에 아직 완독하지 않았지만, 서랍에 숨겨놓은 간식을 조금씩 꺼내먹는 설레는 기분으로 한입씩 베어무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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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과 김근이라는 믿을 만한 시인들의 '추천의 글'을 달고 나온 첫 시집이 있다. 신진 시인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둘로 나뉘는 듯하다. 첫번째 경우는, 사람은 결국 똑같구나. 인간이라면 느끼는 어떤 보편적 정서나 감정에 천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 경우는, 역시 젊구나. 감각적이고 새롭고 신선하고 못 보던 것이구나. 그 나이에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쓸 수 있는 것들로 가득찬, 입안에서 톡톡 튀는 폭죽같은 사워드롭스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매우 감각적이고 비비드한 시들을 접할 때 드는 생각이다. 심민아는 직관적으로 대할 땐 후자에 해당한다. 일단 시의 제목들부터가 심상치 않다. 일상적이거나 보편적인 것보다는 유일한 것, 독특한 것, 새로운 것, 감각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막상 시를 들여다보면,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매우 일상적인 것들이다. 흔히 '시어'로 구분되는 단어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니깐 그의 시가 감각적이거나 독특함을 확보한다면, 그것은 시어의 특별함이 아니라 그의 시각과 관점의 남다름에서 올 것이다. 그 다름은 '아가씨'에서부터 기인한다. 분명히 '장미와 빵'에서 기인한 것같은 '아가씨와 빵'이라는 시집의 제목과 표제작인 동명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집 전체는 빵 냄새와 같이 감각적인 것들로 진동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휴먼 빙'들이 겪는 세상에 기반한 것이다. 소위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바 '아가씨'는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타인이, 대개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기성세대가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일텐데, 타자에 의해 '아가씨'라 불리워지는 '휴먼 빙'인 이 '아가씨'들에게 필요한 건 장미와 빵이지만, 적어도 이 시집에서 더 천착하는 건 '빵'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먹고사니즘'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나 아직 사회적 기반이나 토대가 없는 젊은 세대에겐 매우 절실한 문제일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휴먼 빙'이 특별한 건 빵의 절실함을 알면서도 장미의 낭만과 아름다움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젊은 휴먼 빙 노동자에게 아낌없이 장미를 헌사하며,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 *참고로 심민아는 시인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첫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이 다재다능한 휴먼 빙에게 장미와 빵의 축복이 항상 임하길. 생존을 위한 밥벌이도 씩씩하고 우아하게 하는 휴먼 빙이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