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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미시마 유키오는 그 세계적 명성에 비해 한국에 번역 되어 출판 된 작품이 별로 없다. 극우인사라는 그의 대외적 모습이 그의 작품을 한국에 출판하는 데 장애물이 된 것은 확실하다. 허나 정치적 스탠스와는 상관없이 그의 문학은 그 자체로 훌륭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민음사에서 그의 말년의 대작인 풍요의 바다 4부작 중 첫번째 작인 `봄눈`을 출간한다는 소식에 발간되기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다 구매를 했다.
이 작품의 큰 그림은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비극적 결말을 맺는 낭만주의 형식을 띄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의 교차점은 다른 작들의 주인공들처럼 이 작의 중심인물인 기요아키도 외부세계에서 유리 된 자신만의 탐미주의적 세계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과 세계를 모두 쏟아냈다는 유키오의 말처럼 자신과 세계의 정수를 담은 만큼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 스케일이 커졌다.
배경은 메이지 시대가 저물고 다이쇼 시대로 접어든 때이다. 주인공 기요아키는 선대가 메이지 유신 때 큰 공을 세워 후작의 지위를 하사받은 마쓰가에 후작 집안의 외동아들이다. 이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세계를 냉소적이고 삐뚤어지게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에만 큰 가치를 두고 탐미주의적이고 몽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와 가장 친한 친구는 대법원 판사의 아들인 동급생 혼다이다. 혼다는 친구와는 반대로 현실 세계를 착실하게 살아가며 이지적인 인물이다. 허나 친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서로는 절대 각자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며 그런 관계를 우정의 증표정도로 여긴다.
사토코는 아야쿠라 백작 집안의 딸이다. 일본 전통 관련된 장인 집안으로 명망있는 집안이지만 경제적으로 쇠퇴한 상태이다. 기요아키가 어렸을 때 마쓰가에 후작은 아들이 자신의 집안에는 풍겨오지 않은 명망있는 집안의 기품같은 것을 기르게 하기 위해 이 아야쿠라 집안에 잠시 의탁했었고 이 시기에 기요아키와 사토코는 친교를 맺었다. 사토코는 기요아키보다 연상이었다. 기요아키가 고등부에 진학한 후로는 예전처럼 사토코를 가까이 하지 못한다. 사토코가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느끼고 경멸과 같은 감정을 지닌다. (기요아키의 왜곡된 감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기요아키를 향한 사토코에 마음은 달랐다.
어느 날 마쓰가에 집안에서 열린 행사에 황족까지 초대 받게 된다. 사토코도 참석했는데 이 때 만남을 계기로 혼기가 꽉찬 사토코와 황족 집안의 결혼약속이 성사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기요아키는 자신도 모를 정념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 결국 친구 혼다와 자신의 서생인 이누마, 그리고 사토코의 늙은 하녀인 다데시나의 도움을 받아 사토코와 밀회를 나누는 금지된 관계를 나눈다. 처음에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 같은 사토코를 향한 복수심의 발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진심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금기된 관계는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맺게 된다. 봄에 뜻하지 않게 온 눈이 금세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뜻하지 않게 다가온 정념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은 금기된 사랑의 애틋함과 아름다움을 확증시켜준다. 금기된 사랑의 애틋함과 아름다움은 비극적 결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한 낭만주의 소설이다. 물론 작중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스토리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지만 큰 틀은 낭만주의 소설이다. 허나 큰 그림 속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그림들이 숨어있다.
소설의 시작은 러일전생 당시의 사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시작 된다. 일본의 자랑스러웠던 시절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기요아키의 눈은 애잔함과 비통함을 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황족이거나 후작 그리고 백작집안 사람들로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한다. 이들은 당시 일본의 상류층을 상징한다.
마쓰가에 집안은 선대가 메이지 유신때 큰 공훈을 세워 후작 지위를 얻은 집안이다. 하지만 기요아키의 아버지인 현재 주인은 자신의 선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겉은 선대와 마찬가지로 담대한 풍모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유약하고 어쩔때는 비열한 모습도 보인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회적 위신으로 자신의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 그에 큰 직무인 것 처럼 보인다. 자신의 집안에 방대한 장서가 있음에도 무엇하나 읽지 않는 무지함을 보인다. 14만평의 토지를 지닌 대 저택의 외형은 전체적으로 일본풍을 보이지만 집안의 라이프스타일은 서양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부와 숙부의 죽음 이후 기요아키의 조모는 별채에 칩거하는 생활을 한다. 그리고 선대의 정신이 죽고 현재 기요아키 아버지 후작이 보이는 형태를 못마땅해 한다. 기요아키가 어렸을 때 들어온 서생인 이누마는 마쓰가에 집안의 선대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있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집안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다.(특히 기요아키를 경멸한다.) 이누마의 남성적 풍모와 나이대로 보아 당시 일본의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 모든 설정들이 메이지 유신이후 피식민지 상황에 놓이면서 잃어버린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사토코 집안인 아야쿠라 백작 집안은 일본전통문화를 상징하는 것같다. 명망을 이어오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쇠퇴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인 사토코의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그저 관망하기만한 자세를 추구하는 유약하고 나태한 인물인데 당시 일본의 몰락하는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서양식 문화에 대한 선망을 보이는 상류층들의 모습과 사토코와 기요아키의 관계가 들켰을 때 각 집안 주인들이 자신들의 위신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보이는 권모술수를 쓰는 모습들은 작가가 당시 일본의 상류층에 대한 비판과 해학으로 가득차 있다.
또한 일본의 다양한 풍경들을 서정적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전생이라는 주제로 혼다와 시암에서온 왕자들의 토론 내용이나 불교 교리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들은 동양의 문화를 상징하는 장면들로 일본 문화의 복권을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자위대에 침입해 윤군의 궐기를 촉구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오는 우리가 아는 것 처럼 단순한 극우인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쇠락해져가는 일본의 정신과 자존심에 대한 유키오의 극단적 항변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기요아키의 비극적 결말처럼 작가 자신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애틋함을 표현한 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역자 후기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극단적 행위는 작가의 문학의 완성이라고 얘기한다. 문학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시켜 문학적 삶을 완성한 것 같은 느낌.
소설 속 등장인물인 기요아키와 혼다는 미시마 유키오 자신을 상징하느 것처럼 보인다. 기요아키가 보이는 정념에 대한 열정, 이단자적인 탐미주이 세계는 미시마 유키오의 내밀한 세계를 상징하고, 현실세계를 착실히 살고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는 혼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사회적 자아를 상징한느 것처럼 보인다. 혼다는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비밀스런 관계를 배후에서 도와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객관적 증인이 되어 준다. 작품속에서 혼다는 열정적으로 정념을 향해 나아가는 기요아키를 부러워 한다. 자신에게 결여된 그 모습을..
소설은 세세한 부분까지 정밀한 묘사를 해 나간다. 그의 여타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묘사의 음미. 역자는 후기에서 작가의 독자적 문체 때문에 번역이 힘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정형화된 문체를 외면하는 것이 의무인냥 끊임없이 새롭고 독자적인 문체로 글을 썼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역자의 수고에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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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도록 섬세한 기단
불탑에는 ‘기단’이 있습니다. 탑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니, 당연히 상부보다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집니다. 대개 뒤틀리거나 병들어있기 마련인 가장의 엄지발톱처럼. 미륵이 올 때까지 탑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아틀라스 같은 숙명을 짊어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죠.
<봄눈>도 총 4권의 연작으로 구성된 <풍요의 바다>의 기단인 셈입니다. 책 뒷날개의 설명에 따르면 적어도 한 세기 동안 펼쳐질 이야기의 출발이니, 이 작품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도 꽤 무거워 보입니다. 그 부담이 보통 작가들이 쓰는 장편에선 발단부의 지루함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엔 그런 부담이나 경직은 없습니다. 오히려 왕릉 속에서도 여전한 광채와 세공을 뽐내는 금제 유물 같은, 미시마 특유의 사람을 홀리는, 이따금 세이렌 앞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음을 자각한 선원마냥 고개를 저으며 빠져 나와야 할 정도의 미문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이 기교가 얄팍한 금박종이처럼 날아가지 않도록 붙드는 철학의 무거움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함입니다. 로맨스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저 같은 독자도 매혹시킬 만큼,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건 정말 그냥 천재의 문장이다 싶은...... 리뷰를 쓰기 위해 재독하며 미문의 사례로 꼽으려 붙인 포스트잇만 수십 장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를테면 이런 문장입니다.
......인력거의 동요가 바로 다음 순간 포개진 입술을 떼어 놓으려 했다. 그러므로 저절로 그의 입술은 닿은 곳을 축으로 두고 모든 동요를 거스르려는 태세를 갖추었다. 맞닿은 입술을 사북으로 삼아, 그 주위로 몹시 커다랗고 향기로운, 보이지 않는 부채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을 기요아키는 느꼈다.
약간 무거운 것을 예로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왕자들의 눈가에는 요 하루 이틀 사이 이미 짙푸른 쪽물 같은 향수가 스며 있었다. (중략) 함께 하는 내내 기요아키는 몸을 떠난 그들의 혼이 대양의 한가운데를 향해 표랑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오히려 유쾌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육체의 현존에 갇혀 떠다니지 않는 마음을, 그는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깃발’처럼, 감정만을 위한 삶
게다가 이 미문은 서사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봄눈>의 주인공, 기요아키(이하 ‘기요’)는 후작 가문의 외동아들입니다. 메이지유신 전 평범한 무가였던 가문은 기요의 조부가 메이지유신서 핵심적 역할을 하여 후작 작위를 받았기에, 지금(1912)은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14만 평에 달하는 대저택을 짓고 살만큼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18살의 소년 기요는 막연한 낙천가인 아버지와 둔감하지만 교양 있는 척은 겨우 할 수 있는 어머니완 다르게, 도쿄 전체에 이름 높은 미소년인 데다 전통적 귀족만큼 오만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졸부 특유의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유년기 교육을 메이지 이전부터 일종의 성골로 인정받아온 ‘아야쿠라’ 백작 가에 위탁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이미 자신 안에 미숙하나마 내재되었던 오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별하는 심미안을 꽃피웁니다. 그리고 러일전쟁 승리 후, 남은 것은 일몰 없는 노을마냥 끝없이 짙어지기만 할 황금빛 전성기뿐인 일본과 자신의 앞날을 지겨워하듯, 삶을 ‘깃발처럼’, 가장 순수하고 무용한 ‘감정만을 위해 살아’가는데 바치겠다 결심합니다. 혁명과 전쟁의 시대는 끝났고, 소년은 현재의 배경에선 삶을 바칠만한 ‘무언가 결정적인 것’은 찾을 수 없으리라 예지했기 때문이죠.
소년에게 귀족의 풍모를 가르친 백작 가는 한땐 그 집 수저를 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현재의 차관에 달하는 벼슬에 오르던 집안이었지만, 바뀐 시대엔 명예의 허울만 유지한 채 영락해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좀 더 어린 기요는, 그 백작 가의 외동딸이자 자신만큼 아름다운 두 살 연상의 소녀 사토코를 만나고, 사춘기를 맞기 전까지의 시기를 온전히 함께 합니다.
이 아름다운 한 쌍이 벌이는, 결국 엇갈리고 빗나가고 마는 비극적 로맨스가 이 작품의 살이자, 탑의 겉면에 장식되었던 생화 장식입니다. 그렇다면 사리와 석재는, 뒤의 3개의 연작을 받칠 만한 기반은 무엇일까요
가장 아름다운 무의미만이 인간의 존재의미이다
<봄눈>을 포함한 이 연작의 핵심이 되는 설정은 환생입니다. 이걸 읽고 김빠졌다는 듯, 웃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환생은 조금 다릅니다.
<풍요의 바다>와 <봄눈>의 철학, 나아가 연작을 이끌어가는 미시마 유키오의 역사와 인간관을 설명하는 것은 기요의 동급생 ‘혼다’의 몫입니다. 그는 기요의 유일한 친구이자 대법원 판사 아버지를 가진 대단히 명민하고 침착한 소년이죠. 보다 보수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에 법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흥미와 소양을 가진, 성향적으론 기요의 대척점에 있는 그의 입을 빌어, 미시마는 환생이란 장치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역사는 인간 행위의 총합으로, 늘 미래의 시점에서야 온전히 평가받습니다. 적극적 의지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들도 있으나, 혼다의 눈으로 본 기요는 역사는커녕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거나 주도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인간이죠. 그러나 혼다가 느끼기에 기요에겐 ‘완전히 무의지적’으로 ‘역사에 관여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힘, 혹은 그런 예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 시기, 서양 역사관 속 역사의 동력은 우연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동양의 동력은 운명이었죠. 전자는 인간의 의지를 후자는 운명을 믿기 때문에, 다시 전자는 역사의 당위나 의미를 부정하게 되고 후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느 쪽을 택하든 역사 앞의 인간은 통시적 당위나 목적으로 뭔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도,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숨 막히는 결론 사이를, 기요는 ‘빛나는 영원불변의 아름다운 입자와 같은 무의미의 작용’으로 마치 촘촘한 무의미와 운명의 거미줄을 비웃듯 피해 활공하는 나비처럼 눈부시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주사위놀음판일지라도, 혹은 닳고 닳은 타짜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설계된 비극일지라도, 기요의 삶이 갖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빛나며, 사실 이런 식의 존재만이 인간이 삶과 역사 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이자 의미인 것입니다.
평생 자신을 조탁해온 한 인간의 세공기
<풍요의 바다>는 국제적으로도 미시아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나 한국어로의 번역은 이상하리만큼 늦었습니다.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엔 제 나름대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죠.
이 연작은 아마도 <금각사>나 <가면의 고백>처럼 아직 스스로를 ‘탈바꿈’할 의지와 방향을 설정하기 전의, 유충처럼 부드럽고 비밀스러운 내면을 드러낸 작품과는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봄눈>의 기요아키는 환생을 통한 경험과 사상의 비단실을 얻어 탈바꿈한 뒤, 어떤 ‘날개’를 지닌 성충이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미사마는 기법적으로도 완성된 이 문학적 스완송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가치 판단을 배제하더라도) 전후 일본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과격한 우익인사로 거듭나게 된 것인지를 세세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런 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당연히 고민스러웠겠죠. <나의 투쟁>같은 졸작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출판되어 조리돌림 당하고 있지만, 악마적 재능으로 나치의 스펙터클을 영화에 담았던 레니 리펜슈탈의 작품과 삶은 여전히 뜨겁고도 더러운 감자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예술적 설득력과 완성도를 갖춘 프로파간다는 이렇듯 다루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라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미시마 유키오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물 간 표현이지만, 일본의 다테마에적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 아닐까 싶네요. 일본의 군국주의를 작품 속에서 ‘어디에도 없는 일본의 혼!’이라 비웃으며 사적이고 정서적인 세계로 침잠하던...... 예의 바르고 염치 있게 객관적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며 생활과 현실 속에서 규모 있게 도를 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죠. 하지만 혼네는 역시 미시마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주의라고 퉁치기엔 훨씬 공교하고 복잡한 애국심과 전체주의로, ‘보통 국가화’라는 상식적 단어 속에 숨은 비상식적 야망들을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시마의 정치적 사상에 대한 판단은, <풍요의 바다>가 완역된 후로 미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한 권의 소설로서도 차고 넘치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이 원래 그랬듯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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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 표현에 대하여 미시마와 다자이는 차이가 있다. 다자이는 간단한 예시나 표현으로 ‘-아-‘ 라는 소리를 내며 그의 표현에 감탄하게 되고 미시마는 인간의 내면을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이게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는 표현이라 위험한 서술 방식이다. 하지만 미시마는 세련된 문장과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 대한 관찰로 ‘-아- 이 사람 천재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한다. 인간 내면의 유약함을 지닌 다자이를 비판했지만 자신도 그런 모습이 있었고 금각사에서 자신의 유약한 모습을 딛고 일어서려는 행위자로서의 삶이 녹아들어있는 풍요의 바다 시리즈는 그가 일으킨 할복 사건에 대하여 기행이 아닌 문학적 삶의 완성이었다는 반증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속편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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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은 귀족 청년 기요아키의 섬세한 감정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중심으로, 덧없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시대 속에서 욕망과 운명에 흔들리는 인물들의 내면이 깊이 있게 묘사되며,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문장이 오래 여운을 남긴다. |
| 미시마유키오 정말 좋아해서 봄눈 고민 백번 하다가 샀네요 책을 많이 사서 안 사려다가 자꾸 눈에 밟혀서 안 살수가 없었어요 풍요의바다 4부작 다 읽고 싶은데 달리는 말 부터는 호불호 갈릴 것 같아서 봄눈만 찍먹 해보려구요 아직 안 읽었지만 기대됩니다 |
|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4부작 시리즈 중 첫번째 작품입니다. 기요아키와 혼다, 그리고 사토코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3권이 혼다 중심의 이야기라면, 봄눈은 특히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굳이 4부작을 다 읽지 않더라도 쉽게 읽히고 이야기가 적절하게 마무리 되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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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시리즈 4부작이라고해서 구매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시대상이 옛날일지 몰랐어요. 일본 특유의 전쟁에서 일본이 피해자다 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소설같아 아름다운 이야기라고해도 읽기가 꺼려집니다. 그런 이유로 이 책 읽으신 분들이 적은게 아닌가 싶네요. |
| 1970년 11월 25일 풍요의 바다의 시리즈를 탈고한 날은 마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시리즈 제 1권으로 금지된 이야기를 그 당시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정말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설이라면 그 시대를 살아봤던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과감한 표현이 많았다. |
| 이 책 한권만 보면 내용은 별거 없음 하지만 문장 오로지 하나만으로 이 책에 가치를 굉장히 높임 미시마에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운 문장과 당시 일본귀족 문화에 대한 내용이 어우러져 우아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음 미시마가 보여주는 풍경묘사 인물묘사에 대한 문장은 진짜 압권이니 이 책은 꼭 읽기를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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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함께 소설 자체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힙니다. 줄거리 자체가 통속적인듯 하면서도 자극적이어서 뒷내용이 궁금하여 계속 읽게 됩니다. 미시마 유키오 소설에 입문하기에는 금각사 보다는 이 봄눈이 훨씬 접근하기 쉬울듯 합니다.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