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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조금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마치 압력 밥솥에 압력이 가득차 있어서 조금만 건들기만 해도 압력이 분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사실, 현실을 보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여유가 없고, 오히려 더 무언가에 매여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극심하게 분열하고 대립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볼 때에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하나 양보하면서 분노와 분열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만 알아달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런 사회 속에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스캇 솔즈는 분노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의 마음이 온유함인데, 온유함이 답이라고 말한다.
온유함으로 답하다의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온유 너무 유약한 무기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분노와 분열의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이 온유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온유한 마음으로 화를 더디 내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분노 시대에 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온유함으로 답하라는 도전을 주고 있다. 오늘 이 사회가 분노하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모두는 똑똑히 경험하였다. 그렇게 할 때 분노와 대립은 더 극에 치달았고, 모두가 상처를 받고 파괴되는 것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는 분노를 몰아 낼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습관적으로 분노하며 해결하려고 했던 나의 모습들을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고, 이전에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셨고, 가르쳐 주셨던 온유함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가능케 했는지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삶을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자신의 삶의 분노와 반목의 분열을 바꾸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온유함으로 답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이고,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해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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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으로 답하다 : 라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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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다양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이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독자의 한사람으로써 도전받기도 하였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부터 나오는 세상적이고 거친 목소리로부터 탈피하여 온유한 맘과 언어로 상대방을 대하는 명제에 있어서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며는 당연한 도리이지만 그렇게 되기위해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내자신이 겸손할때만이 가능해질수 있을때만이라는것을 다시금 깨우칠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제몸처럼 사랑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도 사랑할수 있고, 자신에게 핍박을 가하더라도 오히려 기도해줄수 있는 온유함으로 대하는것이 가능하다고 이책에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소재하고 있는 그리스도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계신 스캇솔즈 목사님은 그의 저서 "온유함으로 답하라"를 통하여 2장 8부에 걸쳐 분류되어 있는데 쉽게 분노하고 화를 내기 쉬운 이시대에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므로써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더욱 폭넓은 겸손과 교양을 성숙시키므로 겸손한 신앙생활을 누릴수 있다고 나타내어주고 있었다. 이처럼 스스로를 내려놓은 겸손한 신앙생활을 통한 삶이 분노의 시대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찾는 길임을 믿음,구원 그리고 완전함등...십자가 아래에서의 하나님 자녀의 참모습으로 내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였다. 특히 이책을 읽는중 나의 눈을 사로잡는 부분은 건강한 분노에 대해서 서술된 부분으로 의미가 있었는데 강력한 에너지가 될수가 있다라는 점이었다. 이때의 분노는 성령충만한 사람이나 공동체에게 사용된다면 건설적이고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할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흔희 알고있는 것처럼 분노로 인하여 화가 발생할수도 있는 반면에, 분노로 인하여 사랑도 발생할수 있으므로 성경이 말해주는 분노는 건강한 분노로써 사랑에서 우러나온다고 볼수있다. 다시 말하면 독한분노는 샬롬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가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감사함뿐만이 아니라 핍박이 현실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할 책임도 존재한다.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극심한 형태의 고난을 받는자들을 도와야할 정의와 용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태아,가난한자,소외된자,억압받는자,종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자등..이 될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만이 분노하여 세상을 진정시킬수 있을을 책부록을 통하여 자기점검할수 있게끔 구성된 부분은 독자로써 고마운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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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차별과 갈등, 분노와 폭력으로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습니다. 주님의 온유가 이 세상에 평화와 안녕을 가져오는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스캇 솔즈 목사는 이 책에서 그렇다고, 아니 유일한 해답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에는 온유에 관련된 성경 이야기들을 주님의 온유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온유에 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미움을 무기로 삼는 것은 이 세대가 처음이다”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정치, 경제, 성과 젠더, 인종, 환경, 등 이 시대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으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의심하고 노골적으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분노의 시대에 기독교는 온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는 주님의 부르심에 정직히 응답할 때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이 세리 삭개오를 온유함으로 대하신 것을 매우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홀로 외로움에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주님은 정죄하거나 회개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만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주님은 최악의 인간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내셨습니다. 반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교만함으로 타인에 대해 배타적이며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차별과 미움으로는 결코 사람을 바꿀 수 없으며 이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돌아가면 폭력만 커질 뿐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 그렇게 할 수 있다”(p. 111)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문장이 가슴 깊이 담깁니다.
이 책은 예수의 마음을 살아내자고 힘주어 말합니다. 주님의 온유한 마음을 가진다면 박해받는 상황에서도 쉽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약자를 위해 정의롭고 용감하게 일어나게 합니다. 분명 참된 평화를 위한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결코 순한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수록 선한 것을 추구하며 악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그것은 인생의 독으로 변할 것입니다. 스캇 목사는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일상의 작고 사소한 짜증거리를 잘 다루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부당한 비판에도 비판으로 응대하면 악순환만 반복될 뿐입니다. 분노를 참아내는 것, 용서하는 것,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위대함입니다. 주님의 온유함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차별과 혐오와 분노가 가득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입니다. 스캇 솔즈 목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하고 있기에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배우길 원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꼭 읽어야 할, 매우 따뜻하면서도 강력한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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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언제인가부터 사람들은 아주 사소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끝없이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식사 중에 일어난 사소한 말다툼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고 운전을 하던 중에 자신의 앞길을 막은 누군가를 끝까지 쫓아가면서 보복하는 모습들이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항상 분노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현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왜 그렇게 마음속에 분노가 넘칠까?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살아가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세상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어렸을 때 받은 상처가 점점 곪아가다 터져버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분노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이가 있을까? 아무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한다.
스캇 솔즈 목사님의 <온유함으로 답하다>는 분노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와 일화, 무엇보다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예수님의 온유함을 성품을 닮아가도록 이끌어준다.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가장 더디게 분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자비와 은혜, 온유함으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p.137)
그렇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노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시면서 그 분노를 자신에게 쏟으셨다.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의 잘못을 다그치며 분노할 수 있을까
지금도 기도한다. 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스스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랑의 주님이, 온유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그 사랑과 온유함을 부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렇게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과 온유함을 보여주셨으니까, 그런 삶이 우리가 이 땅 가운데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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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으로 답하다
분노사회,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의 마음을 전해주는 이 책은 코로나 시대에 또, 죄악속에서 신음하는 이 세상의 소망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말해줄 것이다. 어떤 도덕적인 선생인 예수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백신이 필요하다.
치료제가 필요하다. 죄와 사망에 죽어가는 영혼들은 예수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자 백신이다. 그 안에 머무르면 양같이 온유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기준대로 살아간다면 남는건 죽음과 두려움과 허무함뿐이다.
기독교인들에겐 온유를 잃어버린 기독교를 향한 본질을 말해주고 모든 현대인들에겐 예수의 진리를 말해주는 귀한 도서가 될 것이다. 코로나는 죄와 매우 흡사하고 닮아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코로나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어 인간의 무지와 완악함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했는지 모른다.
코로나도 백신과 치료제가 필요하듯 인간의 영혼에도 구원의 백신이 필요하다. 수많은 진리의 말씀가운데 온유함은 예수의 피에서 나오는 가장 근본적인 평화의 백신이다. 인간은 예수가 없으면 죽는다. 그러나 예수가 있다면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산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명확한 진리와 구원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살다 인생을 마감한다. 심판이 있다고 말해도 죽어봐야 안다고 말한다. 문제는 진짜 죽음후에 심판이 있다면 그 때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캇 솔즈 저자는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그리스도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악한 세상에서의 기독교의 책임은 논하고 있다. 그러나 온유함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중에서도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선 교회가 예수의 온유함을 따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분열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속에서 예수의 마음을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다.
예수가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보면 우리는 우리자신의 수준과 수천년전 시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굴레에 빠져 정말 예수가 하고자 했던 말씀을 버리며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인식하고 다시 예수에게로 돌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유하게 대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도 남들에게, 심지어 우리를 원수로 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온유하게 대해야 한다.”
세상의 분노는 예수님의 온유로 막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님의 온유가 없다면 세상은 멸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 사회와 우리와 가까운 이웃들 가족 동료와의 관계속에서 온유함으로 답해준다.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의 분노에 대한 처방을 해주는 대안이 되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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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카중에 한 명 이름이 온유이다. 이름대로 성격이 온유하다. 나한테 가장 연락을 많이 한다. 고모뭐해,,고모 자? 고모 나 여행가고 있어,,고모 나 숙제하는데 하기 싫어,,고모 나 태권도 하러 가,,고모 나 춘천가고 있어,,고모 나 카약 타려구,,고모 나 잘려구 고모는 뭐해? 고모 나 공부하고 있어,,고모 나 이뽑았어,,등등 성경의 온유든지 온유라는 말만 들으면 나의 조카가 생각난다. 만나도 내가 머리를 땋고 있으면 나처럼 해달라고 하고 내가 멜빵바지 입고 있으면 자기도 멜빵바지를 따라서 입는다. 남동생이랑 올케가 키가 크니까 온유도 키가 커서 나랑 거의 비슷한데 만나면 항상 내 무릎에 앉는다. 항상 내 옆에만 있으려고 한다. 온유라는 단어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분노에 대한 대답이 기독교인은 온유로 한다는거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 요즘 사회가 분노로 넘쳐나는 것 같다. 보복과 갈등에서 온유로 대답을 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에게는 온유가 무기가 된다. 분노가 넘치는 세상에서 나도 무기를 가져야 겠다. 책은 온유함으로 답하라고 하는데 벌써 분노가 일어나는 일이 생겼다. 일본어시험이 코로나때문에 취소됐다. 급수를 올려야 하는데 정부를 잘 못 만나서 일본 급수를 못 올리는거다. 미세먼지를 중국이랑 나누자구? 국민을 호구로 알지,, 우린 미세먼지를 나눌 생각 없으니까 너네가 먼지 다 먹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 조나단 에드워드이다. 난 20대 중반부터 조나단 에드워드 같은 기독교명문가문을 이루게 해달라고 지금까지 매일 기도하고 있다. 교회 성경에서 코로나가 묻을 수 있어서 성경을 다 치운다면서,, 우체국이나 은행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쓰던 볼펜을 주던데 그건 괜찮은거야? 어떻게 코로나는 성경에만 묻고 다른 거에는 안 묻냐,, 조나단 에드워드는 온유함은 양 같고 비둘기 같은 영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진정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온유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온유함은 그냥 부드러운 걸 많이 생각한다. 온유하면 예수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아에 대해서 말씀하신거다. 온유함은 예수님의 가장 깊은 차원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삶을 온유함으로 살아내야 한다. 온유함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풍기는 길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주께서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18;35) 하나님의 온유함은 자기를 크게 한다.
예수님은 날카롭고 재치가 넘치고 지적이고 강력한 분으로 산상수훈과 감람산 설교, 수많은 비유에 놀라운 분이다. 예수님의 이런 놀라운 가르침 외에도 남들의 삶에 생명과 건강, 소망을 더해 주는 놀라운 역사를 펼치셨다. 병자를 고치고 낙심한 자를 위로하고 약자를 옹호하고 권좌에 있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씀하셨다. 자신의 가치도 보도록 도와주셨다. 그분은 스스로 정치인 같은 유력한 자로 나서질 않으셨다. 사람들을 볼 때 화려한 이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주목하시지 않았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 각 사람 속에 흐르는 내면의 가치에 주목하셨다. 의로운 분노는 많이 들어 봤는 데 건강한 분노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분노는 강력한 에너지다. 분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나 집단의 손에 들리면 건설적이고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엄마랑 조금 지나면 보수단체 대표님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 대표님은 어린 학생들을 후원한다. 어릴 때부터 보수로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런 분들은 의로운 분노나 건강한 분노를 하시는 것 같다. 성경에는 분노로 충만한 동시에 은혜로 충만한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성경이 권하는 건강한 분노는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독한 형태의 분노도 있지만 건강한 형태의 분노도 있다. 사랑에서 우러나온 건강한 분노는 오래 참음이라는 성경의 열매와 비슷하다. 이 분노는 반격하고 복수하려는 욕구를 거부한다. 이 분노는 궁극적인 정의의 분별과 실행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하지만 동시에 건강한 분노는 파괴하기도 한다. 독한 분노는 악을 퍼뜨리기 위해 선을 파괴하지만 건강한 분노는 선을 퍼뜨리고 보호하기 위해 악을 파괴한다. 분노를 해도 악을 저지르면 안 된다. 예수님은 항상 순하시지만은 않았다. 순한 사람은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남들의 기분을 잘 맞춰 준다. 하지만 순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순한 사람들은 대립하기 싫어하는 기질 탓에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동하곤 한다. 하나님의 뜻이나 신앙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대립될 때가 더 많다. 온갖 비난과 비방이 난무한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친절하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신다. 그분은 화를 내시는 것이다. 붉은 나비의 영혼처럼,, 성전 내의 부패한 예배 관행과 태도에 분노한 예수님은 성전의 탁자들을 엎으셨다. 베드로가 충성보다 위안을, 지기 희생보다 힘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지자 예수님은 그를 사탄으로 부르셨다. 죄의 삯이요 죄로 구속된 이들의 최대 적인 죽음은 예수님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기 위해 돌아오실 때 사탄과 불의를 행한 자들의 악을 갚아 주실거다. 예수님은 악한 상황에 불같이 노하셨고 이런 분노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라고 했다. 인격을 잃지 않고도 화내는 것이 가능하다. 건강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는 건설적이고 생명을 주는 결과를 이룰 수 있다. 온유하지만 또 분노를 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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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면부터 시작하여 사람과의 소통문제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접촉에서 비접촉으로 변화됨에 따라 삶이 어려워짐에 따라 내 자신부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삶이 화가 나있고 분노와 인내심이 부족해져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노에 찬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이 사회에 어떤 문제를 주고 해답이 무엇일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논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온유함으로 답을 하면서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성도님들을 향한 우리들의 신호등역활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접촉에서 비접촉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가는 현실속에서 요즘은 나라와 나라와의 관계속에서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살아남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강대국속에 있는 작은 나라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남기위해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팍팍한 살림 신앙생활을 하려니 온유함이 아니라 분노가 차있고 힘들어하고 화가 난 모습을 찾기가 일상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1. 분노의 시대 온유를 잃어버린 기독교 - 온유함은 대가가 따르는 사랑이다. 모세는 분노함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도 분노하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만 바야 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교만은 배타적이고 쌀쌀맞은 사람을 만들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보잘것 없는 작은 권력 권위를 가지면 교만해지고 갑질을 하는 모습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것을 알게 될때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교만한 인간은 영원할줄 알고 배타적이고 쌀쌀맞은 사람을 만들게 되는데 온유함이 그리워집니다. - 분노는 분노를 몰아낼 수 없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만들어 낼 뿐 분노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분노는 사랑으로 온유함으로 녹여내야 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2. 예수의 마음을 살아내다 - 화날 이유가 차고 넘쳐도 쉽게 요동하지 않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 사회문화 모든 방향이 모두 화가 나있고 참지 못하여 사건 사고가 매일 생겨나고 특히 코로나가 일상화 됨에 따라 더욱더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조금만 참고 인내한다면 이 시국이 잘 넘어가리라 생각합니다. - 용서하다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말이 쉽지 진정한 용서 할 수 있을까 매순간 생각을 해봅니다. 조그만 권력으로 갑질을 하면서 나에게 희귀난치병을 준 상사, 본인은 건강해서 아픈 사람의 고통을 모르다보니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런 상사를 용서하고 사랑해야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 나를 미워하는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다 저는 개신교인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불교의 환생과 윤회는 믿지 않지만 윤회와 환생이 반복된다면 또 다시 그런 미움과 분노를 하고 싶지 않아 이 땅에서 용서하고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하기까지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조금만 참고 인내하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살아가기 좋은 사회 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시한번 어려울때 일수록 분노를 누르고 온유와 사랑으로 주님이 주신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로 힘든 시기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가격리를 철저히 하고 아프면 쉬고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분노하고 짜증나는 사회가 아닌 더 살고 싶고 같이 사랑하고 만나고 싶은 이 세상이 만들어 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귀한 책을 통하여 화가 나고 분노가 날때 온유함으로 답하는 귀한 해답을 얻어갑니다. |